Worthless Regression RAW - chapter (244)
이성민이 자리를 벗어나려 하기도 전에. 창왕이 먼저 그런 전음을 보내왔다.
단창을 던지는 것과 함께 몸을 날린 창왕은 아무것도 없는 양손을 활짝 벌렸다.
흑룡협에게 던졌던 두 자루의 단창이 순식간에 창왕의 손으로 되돌아갔다.
창왕은 공중에서 몸을 반 바퀴 돌리면서 두 자루의 창을 맹렬하게 휘둘렀다.
꽈과광!
얼굴을 일그러뜨린 흑룡협은 양팔을 휘저으며 그런 창왕의 공격에 맞섰다.
양팔을 덮은 시커먼 드래곤의 비늘에 호신강기가 깃든다.
날카롭게 솟구친 강기와 비늘은 흑룡협의 양팔을 한 쌍의 칼날로 만들었다.
철천지원수마냥 엉겨 붙어 싸워대는 둘을 보며 이성민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실 일방적으로 싸움을 걸고 있는 것은 창왕이었다.
그는 같은 천외천 소속인 흑룡협을 상대로 주저 없이 살초를 연달아 펼쳤고, 흑룡협은 자신을 죽이기 위해 들어오는 두 자루의 창에 저항하기 위해 쉼 없이 강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왜 나를 보내주는 거냐?] [너와는 다음에 싸우기로 약속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너와 싸우는 것은 재미가 없을 것 같으니 뒤로 미루었는데, 이 병신 같은 도마뱀 놈이 방해하고 있잖나!]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창왕은 오히려 지금 이렇게 된 것이 잘되었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는 아직 흑룡협과 싸워보지 못했다. 지금을 기회로 삼아 흑룡협과 싸워보고, 다음에 이성민과 싸운다면 창왕의 입장에서는 일거양득이었다.
투쟁심을 중심으로 두고 생각하여 행동하는 창왕을, 이성민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이 기회인 것은 틀림없었다. 창왕은 지금 어떻게 해서든 이성민을 도망치게 둘 생각이었다.
흑룡협이 가만 보고 있지는 않겠지만, 반인반룡인 흑룡협도 창왕을 쉬이 돌파할 수가 없었다.
창왕이 이룩해 낸 무의 경지는 천외천 내에서도 무신 다음이라 평해질 정도였다.
“이 미친 새끼!”
흑룡협은 답답한 마음에 욕설을 터트렸다. 둘이 다투는 사이에 이성민은 빠르게 경공을 펼쳐 그 장소를 벗어났다.
왜 무림맹주 흑룡협이 이곳까지 직접 온 것인지, 그것은 아직까지 수수께끼였으나 이성민은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았다.
* * *
마탑주들이 모였다. 그들은 살아남은 이들의 숫자를 헤아리면서 참담함에 얼굴을 찌푸렸다.
대부분이 죽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탑주들 전원이 생존했다는 것이었지만, 토벌을 위해 이곳까지 왔던 마법병단은 전멸해 버렸다.
마법병단 전체를 보면 그리 큰 피해라고 할 것은 아니겠지만, 수십에 달하는 마법사가 허무하게 몰살당했다는 사실에 마탑주들은 책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말했죠?”
스칼렛이 내뱉었다.
“괜한 지랄이었다고요, 괜한 지랄.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김종현의 얼굴도 보지 못했잖아요.”
쿠웅, 쿠우웅!
숲 전체가 뒤흔들리는 진동. 스칼렛은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힐긋 보며 말했다.
“뭔가 벌어지는 것 같기는 한데, 여러분. 가서 괜히 죽고 싶지는 않잖아요?”
토벌은 실패다. 모두가 그것을 알고 있었다. 피해를 입은 것은 마법병단뿐만이 아니다.
의뢰를 받아 지원하러 온 매드독 용병단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도베르만의 표정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의 부관인 시츄와 허스키는 죽어버렸고, 대부분의 많은 용병이 죽기는 했지만. 단장인 그는 살아남았다.
게다가 마법사 길드와 인연까지 맺었으니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용병단은 언제고 다시 만들면 되는 것이니까.
“뭐해요? 돌아가지 않고. 괜히 여기 또 남아 있다가 불똥 맞아 다 죽고 싶어요?”
스칼렛은 마탑주들을 쭉 보면서 말했다. 특히 그녀가 시선을 준 것은 녹색마탑주였다.
스칼렛이 이 숲과 토벌에 묶여 있는 것은 녹색 마탑주와의 약속 때문이었으니까.
스칼렛의 노골적인 시선에 녹색 마탑주가 천천히 머리를 끄덕거렸다.
“숲의 마법은 그리모어의 마법이었네.”
녹색 마탑주가 로이드를 힐긋 보았다.
“김종현이 그리모어를 해석하고, 그 마법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 거야. 이 악마적인 마법과 우리가 다루는 마법은 비교가 안 돼.”
“그를 내버려 두어야 한다는 겁니까?”
백색 마탑주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지친 표정을 하고 있던 성기사단장이 입을 열었다.
“그는 마족까지 소환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뭘 할 수 있다는 거죠? 우리가 다 같이 목숨을 바쳐서 김종현을 막으러 갈까요? 그리고 다 같이 죽고? 나는 그런 개죽음은 사양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목숨을 바친다고 해서 김종현을 죽이고 그리모어를 빼앗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백색 마탑주와 성기사단장이 입을 다물었다. 그들의 침묵에 스칼렛은 힘을 입어 계속해서 말했다.
“여기서는 물러서고, 다음 기회를 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일 거예요. 까놓고 말해서, 우리가 여기서 사이좋게 개죽음당할 정도로 하찮은 인물들은 아니잖아요?”
스칼렛은 두 눈에 힘을 주고서 마탑주들과 하나씩 눈을 맞대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리모어의 쌍둥이 마도서인 그리에스가 있잖아요. 김종현이 그리모어를 해석하여 끔찍한 마법을 펼치게 되었듯이, 우리도 그리에스를 해석하여 그리에스의 마법을 손에 넣는 것이 먼저 아니겠어요?”
그 말은 로이드와 다른 마탑주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였다. 마탑주라고 하지만 마법사 길드의 대표는 아니다.
마법사 길드의 대표를 맡은 이들은, 지금은 현역에서 물러나 있는 늙은 원로들이다.
그들이야말로 마법사 길드가 가진 가장 뛰어나고 강력한 마법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원로원을 설득하는 것이 먼저겠군.”
로이드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사정을 모르는 길드 외의 사람들은, 마탑주가 마법사 길드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마법사들이고 마법사 길드를 움직이는 실세라고 여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마탑주가 뛰어난 마법사들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마법사 길드의 실세인 것은 아니다.
마탑주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녹색 마탑주조차도 원로원의 늙은 마법사들에게는 어린아이 취급을 당한다.
“일단…… 물러섭시다. 적색 마탑주의 말이 맞습니다. 이곳에 더 있어 봤자, 모두 개죽음을 면치 못할 겁니다.”
로이드가 그렇게 말하자, 스칼렛은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녹색 마탑주도 머리를 끄덕거리며 로이드의 말에 찬동했다.
숲에서 떠나기 위해 물러서던 도중, 마법사들은 모용세가와 무림맹의 무사들과 조우했다.
당아희는 진즉에 숲에서 도망쳤고, 백결무혼단의 단주인 취걸도 맹주의 명령을 핑계로 대고서 숲을 나가 버렸다.
덕분에 명령권자 없이 숲을 떠돌고 있던 백결무혼단은 모용대운의 명령을 따르고 있었다.
“숲을 나가는 것이오?”
모용대운이 물었다. 그 질문에 로이드가 머리를 끄덕거렸다.
“토벌은 실패했습니다. 이미 많은 희생이 나버렸지만, 더 이상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이 숲을 나가려 합니다.”
“귀창을 만나지는 못했소?”
김종현의 목숨은 모용대운이 알 바가 아니었다. 그는 로이드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질문했다. 그 질문에 로이드가 눈썹을 찡그렸다.
“만나지 못했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 아니오?”
모용대운이 다시 질문했다. 그는 로이드와 이성민 사이에 모종의 약속이 있었음을 알았기 때문에, 로이드를 노골적으로 의심하고 있었다.
모용대운의 질문에 로이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상대가 명문세가인 모용세가의 가주라고는 하지만, 로이드 역시 마탑 중에서 가장 강맹한 금색 마탑의 주인이다. 모용대운에게 굽힐 만한 입장이 아니었다.
“나를 의심하는 겁니까?”
“귀창과 인연이 있다는 것은 금색 마탑주, 당신도 인정하지 않았소이까?”
“무림의 은원을 마법사인 나한테 들고 와서 따지지 마십시오.”
“내 딸이 죽었소.”
모용대운의 두 눈에서 시퍼런 살의가 떠올랐다.
“말을 조심하는 것이 좋을 거요.”
“말을 조심해야 하는 것은 내가 아닌 당신입니다.”
모용대운이 내뱉는 말에 로이드도 물러서지 않고서 대꾸했다. 그의 금색 머리카락의 끝이 바르르 떨리더니 조금씩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적색 마탑주를 넘기시오.”
더 이상 추궁해 봐야 의미가 없다고 여겼기에, 모용대운은 스칼렛을 힐긋 보면서 말했다. 그 말에 스칼렛이 헛웃음을 흘렸다.
“저 늙은이가 뭐라고 지껄여 대는 거야?”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겁니까?”
로이드는 스칼렛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기분을 느끼면서 그렇게 되물었다. 하지만 모용대운은 물러서지 않았다.
“적색 마탑주를 잡아 둔다면 귀창은 반드시 나타날 것이오. 서로의 입장이 있겠지만, 나한테는 내 딸의 원수를 갚는 것이 세상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오.”
“그래서…… 적색 마탑주를 당신에게 넘기라는 겁니까?”
“그녀에게 위해는 가하지 않겠소. 귀창을 처리한다면 반드시…….”
“개소리.”
녹색 마탑주가 이죽거렸다. 그는 주름 가득한 얼굴을 찌푸리며 성큼성큼 앞으로 나섰다.
모용대운의 앞을 가로막은 녹색 마탑주의 손에는 어느새 짤막한 완드가 쥐어져 있었다.
“마법사 길드를 우습게 봐도 한참을 우습게 봤군. 우리가 골방에 틀어박혀 책이나 넘기고 글자나 끄적이는 겁쟁이들이라 여긴 겐가?”
녹색 마탑주의 목소리에 짜증이 가득 실렸다.
“모용가주. 댁의 행동이 얼마나 무례한 것인가 자각하지 못하는 겐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싶거든 정식으로 절차를 밟고서 마법사 길드와 교섭을 해야지. 지금 이게 대체 무슨 무례란 말이야?”
“나에게…… 이성을 기대하지 마시오.”
녹색 마탑주의 말에 모용대운이 이를 갈면서 내뱉었다. 그의 손이 허리춤의 검자루로 향했다.
살아남은 모용세가의 무사들도 가주의 뜻에 따라 검을 잡았다.
백결무혼단의 무사들은 잠깐 머뭇거렸지만, 취걸이 모습을 감춘 지금 상황에서 그들을 통솔하고 있는 것은 백검학 모용대운이었다.
결국 그들 역시 무기를 손에 쥐었다.
“당신들이 협조하지 않는다면…… 내가 보다 더 무례해질 수도 있겠지.”
모용대운의 말은 누가 들어도 알 수 있을 만큼 노골적인 협박이었다.
짜증이 가득 솟은 스칼렛이 뭐라 말하려던 순간, 녹색 마탑주가 손을 들어 스칼렛의 말문을 막았다.
“댁의 협박에 우리가 몇 발 물러서 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라면 오산이야.”
스칼렛은 설마 녹색 마탑주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나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선 것은 녹색 마탑주뿐만이 아니었다. 로이드도 완전히 분노하여 금색 마력을 끌어 올리고 있었고, 백색 마탑주도 굳은 얼굴로 모용가주를 노려 보았다.
이 상황에서 중립인 것은 성기사단장과 용병들뿐이었다.
“나에게 무례함을 강요하는군.”
모용대운이 중얼거렸다.
쐐액!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모용대운의 검이 뽑혔다. 발도하여 휘두른 검이 바로 앞에 있는 녹색 마탑주를 노렸다.
녹색 마탑주가 급히 방어 마법을 펼치려 했으나, 그보다 빠르게 모용대운의 검이 녹색 마탑주의 목젖을 베고 스쳐 지나갔다.
“미친 새끼!”
스칼렛이 비명을 질렀다. 목이 반쯤 베어진 녹색 마탑주는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깊이 베인 상처에서 피가 뿜어진다. 녹색 마탑주의 입에서 피거품이 올라왔다.
“진짜 미쳤군.”
녹색 마탑주의 입이 열렸다. 상처가 순식간에 치유된다. 엘릭서조차 붓지 않았음에도 베인 상처가 깨끗하게 달라붙었다.
녹색 마탑주는 입에 가득 찼던 핏물을 퉤 뱉으면서 모용대운을 노려보았다. 녹색 마탑주가 평생을 바쳐 이루고자 한 비원은 불사의 마법이다.
불로는 완성하지 못했지만, 그는 모든 마법사 중에서 인간으로서 이루어 낼 수 있는 불사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었다.
“아까까지는 늦지 않았는데, 지금은 늦어버렸어. 댁의 머저리 같은 행동과 야만적인 무례함 덕에 마법사 길드는 무림맹과 척을 지게 되어버렸다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오.”
목이 베인 녹색 마탑주가 멀쩡히 목이 붙는 것을 눈앞에서 보았지만, 모용대운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무림맹이고 뭐고, 나한테는 중요하지 않소.”
모용대운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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