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422
067. 인수 조건(1)
태영은 메이스타 안으로 들어섰다.
회의실 창문을 통해 누나와 지효상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거기를 지나쳐 사장실로 들어섰다.
{이 제품의 판권을 가지고 회사로 되돌아오라고요?}
{……그래.}
누나와 지효상이 나누는 이야기가 워처를 통해 전달된다.
사무실을 구분하는 칸막이벽이 얇아, 목소리가 들릴 테지만 그래도 워처를 보냈었다.
{상무님,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그래,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네.
{말이 안 되는 것을 아는…….}
{일단 그건 젖혀 두고 연봉은 얼마나 주시려구요?}
{그…… 그게, 두…… 아니 세 배는…….}
미쳤군.
누나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때 제가 받던 연봉, 여기서 그거 버는데 몇 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후…….}
몇 분이라고 말했다.
저 사람이 알아들었겠지?
{말을 정정하죠. 몇 초 걸릴 것 같아요?}
어우야, 제대로 된 강펀치다.
{…….}
할 말 없지.
{그럼 연봉을 얼마나 제시해야 할 것 같아요?}
대답 못 할 거다.
연봉을 조금만 올려 주면 되겠지, 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바보들이니까.
{제가 거기 가면 지 상무님 위로 오라는 말인가요?}
{어……?}
갑자기 훅 들어온 말에 놀란 것 같다.
{아니면 사장님 위로 오라는 말인가요?}
{그, 그게…….}
{그럼, 원래 거기 있을 때 그 자리로 오란 말인가요?}
{…….}
{다시 오라면 ‘감사합니다’ 그러고 올 줄 알았습니까?}
{그건 아니…….}
{이렇게 오실 때는 반대급부도 생각했을 것 아닙니까? 그게 무엇인지 들어나 보고 싶네요.}
{…….}
대답을 못 한다.
생각도 않고 왔나 보다.
{제가 지 상무님을 들어오시라고 하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저 내보낼 때, ‘미안하다’라고 하신 그 한마디 때문입니다.}
{……그래, 그땐 정말 미안했다. 지금도 미안하고…….}
그다지 나쁜 놈은 아닌가 보다.
쫓아낸 것은 유재구의 부탁이었다고 알고 있다.
노의성이 요구한 고발장 접수는 태영이 막았기에 못 했다.
그런데 이 상황이 뭔가 이상하다.
대기업의 임원인 상무쯤 되면 지위가 상당하다.
반대급부 약속도 없이 이렇게 찾아오는 것은 납득이 안 된다.
{혹시, 위에서 문책이라도 받았어요?}
문책?
누나도 같은 의문을 가졌던 것 같다.
{…….}
{곤란해하시는 것 같고 답도 충분히 되었습니다.}
{미안하다.}
{한 가지만 더 물어보죠.}
{……그래.}
{그때, 왜 저를 쫓아내셨어요?}
{그…….}
{결과적으로는 더 잘된 일이지만. 당시에 말했던 그 평가서 같은 거 말고 진짜 이유, 그게 궁금해요.}
누나의 말투에 웃음이 배여 있다.
이 상황이 재미있는 모양이다.
{……말하기는 좀 그렇고, 회사의 뜻은 아니…….}
{상무님의 뜻이었어요?}
{그게…….}
{누가 부탁을 했구나. 그게 누구인데요?}
{…….}
{유재구 의원. 친구죠?}
어? 유재구와 지효상이 친구라는 것을 알려 준 적이 없는데?
조금만 조사해 보면, 같은 학교 같은 학과라는 것은 알 수 있다.
혹시, 거기에서 유추했다고 봐야 하나?
{…….}
{제가 나이 몇 살 안 돼서, 상무님께 충고드릴 수는 없지만, 그런 사람을 친구로 사귀면 안 된다는 것은 압니다.}
크.
저 말은 비수로 심장을 관통하는 살수다.
아주 치명적인 살수.
{그리고, 저 같으면 정태경 같은 사람은 직원으로 데리고 있지 않아요.}
아, 아까 그놈.
그놈의 이름이 정태경이군.
밖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소란의 내용으로 봐서 119가 온 모양이다.
119가 정리하는 것을 구경하고 학교로 가면 될 것 같다.
지효상이 떠났다.
태영은 커피 두 잔을 준비해서 회의실로 들어갔다.
힘이 빠진 누나가 약간 처져서 앉아 있다.
“잘했어, 누나.”
“들었니?”
“응.”
“지 상무가 나쁜 사람은 아닌데, 사내에서 많이 곤란한가 봐.”
“자업자득이지, 어쩌겠어?”
“그러게, 요즘 고객 센터 준비 중인데, 여기 와서 고객 센터장이나 하라고 할까?”
그러면서 픽 웃는다.
스스로 생각해 봐도 말이 안 되지.
“고객 문의와 뒤처리가 많지?”
“응, 그때 사무실 여분을 미리 준비해 두길 정말 잘했어.”
“아무튼, 난 갈게.”
“응.”
***
“안녕하세요. 최태영 선배님?”
누군가가 태영의 이름을 불렀다.
학생회관 카페에 커피 한 잔을 놓고 앉았을 때다.
머리는 포니테일로 단정하게 묶었다.
손에 작은 가방을 앞으로 든 여자, 아니 여학생이다.
허.
보는 순간 입이 벌어질 것 같았지만 재빨리 정신을 수습했다.
이새봄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눈에 확 들어오는 미모.
소녀 같은 앳된 모습인데, 조금 전부터 웅성거리던 소리의 주인공이다.
학생회관 카페에 있는 모든 남학생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네, 누구?”
“김한슬입니다.”
“아, 그래. 앉아요.”
문자와 톡으로 이 자리의 약속을 했다.
목소리는 처음 듣고, 얼굴도 처음 봐서 누구인지 몰랐다.
질투와 부러움의 시선이 모두 이쪽을 향해 있다.
{와, 저렇게 예쁜 애가 우리 학교에 다녔어?}
{그러니까 놀라 뒈지겠다.}
{무슨 과일까?}
{야, 그 과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아, 내 여친은 완전 쭈그리네.}
{너 어디를 보는 거야? 침 좀 닦아.}
온갖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뭐?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오늘 처음 본다.
대체 너희들이 왜 질투를 하는데?
마주 앉은 여학생에게 어깨를 맞는 남학생이 있다.
그 옆에는 손등을 꼬집히는 남학생도 있다.
“고맙습니다.”
김한슬은 가방을 앞으로 모아 들고 구십 도로 인사를 했다.
가방을 옆 의자에 놓고 앉을 자리의 의자를 살짝 빼냈다.
“커피?”
“제가 사 올게요.”
“자, 카드.”
김한슬이 움직이는 사이에 카드를 꺼내 내밀었다.
“아…….”
잠시 쭈뼛쭈뼛하며 받지 않는다.
“괜찮아. 받아도 돼요.”
“네, 그럼.”
학생회관 카페의 커피 값은 시내에 비하면 저렴하다.
지금의 김한슬에게는 그것조차도 아쉬울 것이다.
태성기술 김성태 사장과의 이야기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 아버지에게 날 찾아가라고 조언을 했다구요?”
커피와 카드를 내미는 것을 받으며 물었다.
“네, 그랬습니다. 받아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래핀에 꽂혀서 거기에 있는 돈, 없는 돈 다 쏟아부어서 힘들어졌다고 하던데, 맞아요?”
“네, 맞습니다. 그리고 말 놓으셔도 됩니다. 선배님.”
“그래, 그러지 뭐.”
김한슬은 조심스럽게 앉았다.
“무슨 과?”
커피를 한 모금 넘기고 물었다.
“신소재 공학과입니다.”
여학생의 지원 비율이 높지 않은 전공 영역이다.
김성태 사장이 하는 일에 영향을 받았을 것 같다.
“아버지의 영향?”
“아버지는 반대했지만, 제가 선택했습니다. 아버지가 하시는 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요.”
“착한 딸이네.”
“…….”
으이그, 어쩌다가 이런 어투가 나왔다.
주위의 학생들이 ‘꼰대’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살아온 세월이 있으니, 은연중에 이렇게 한 번씩 나온다.
조심해야지.
“학교 끝나고 우리 회사에 와서 아르바이트 해도 돼. 어느 정도 정리되면 아버지도 우리 회사에 출근할 거니까, 같이 퇴근하면 되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부탁 한 가지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저도 회사의 지분 10%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미리 상속을 해 주셔서요.”
그건 좀 의외다.
“응, 그런데?”
“제가 1%만 계속 보유하고 있으면 안 되겠습니까?”
“왜?”
“비록 지금은 상황이 이렇게 되었지만, 언젠가 태성기술의 사장을 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태성기술 사장이라.
“비록 선배님께서 허락해 주셔야 가능한 일이지만, 그때 직위만 사장이 아닌 1퍼센트라도 지분이 있는 사장이고 싶습니다.”
주위의 수군거림이 달라졌다.
태영과 김한슬의 꽁냥꽁냥을 생각했을 수도 있다.
‘저 커플 깨져라.’ 그렇게 빌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일 이야기를 한다.
마치 교수님에게나 보일 법한 김한슬의 깍듯한 말과 행동.
회사와 지분 이야기 같은 것이다.
당연히 수군거림이 달라질 수밖에.
{야, 둘이 사귀는 사이가 아니네? 그럼 내게 기회가 있을 거야.}
{야, 꿈 깨라. 저렇게 예쁜데 남친 없겠냐?}
온갖 상상도 소군거림에 묻어 나왔다.
이것들아.
저렇게 예쁜 아이가 여학생이 많지도 않을 그 과에 있다.
그 과의 남학생들이 그냥 놔두었겠냐?
생각을 좀 해 봐라, 생각을.
당연히 사귀는 사람이 있겠지.
만일, 아직도 솔로라면?
그건 모르겠지만.
태성기술 사장이 되고 싶다는 그 야무진 꿈을 위해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
***
유제범 부장과 김지열 과장이 사장실로 들어왔다.
“태성기술 조사 내용 보고서입니다.”
유제범 부장이 결재판을 내밀었다.
태영이 학교를 가기 때문에 간부들은 대부분 아침을 일찍 시작한다.
그래도 오늘은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어서 여유가 있다.
“부채가 520%이고,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태에서 대출 이자를 내야 하기에 그것조차도 밀려 있습니다.”
결재판을 넘기자 태성기술의 현황이 정리되어 있다.
“이자가 밀렸으면 채권자가 회수 조치에 들어가지 않았나요?”
“그게 회수를 위해 재판 진행 중입니다만, 태성기술이 패소하는 것은 기정사실이고, 조만간 압류될 것입니다.”
“공장 부지는?”
“3천 평 규모로 비교적 큰 편입니다. 그 중에 공장이 들어선 자리는 약 1천 평, 나머지는 노천 창고와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부지가 제법 넓다.
“설비는 어때요?”
“설비는 생산량을 늘리지 않는다면 현재 상태로도 충분합니다. 도입한 지도 오래되지 않았고, 관리도 아주 잘 되어 있었습니다.”
김지열의 대답이다.
“그리고 그래핀 관련 시설이 최신 설비로 아주 많습니다. 그거 도입에 많은 돈이 들어갔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잠깐 생각하는 사이에 김지열이 추가로 보고했다.
쓸데없는데 돈을 쓴 셈이다.
“자금 여유는 어때요?”
그동안에 판매된 것만으로도 회사의 재무 상태는 아주 좋다.
해외 투자 형태로 들어온 돈도 여유가 있다.
그래도 물었다.
“충분합니다.”
“그럼, 인수 절차는 곧바로 진행하고, 인수가 끝나면 은행 대출은 모두 갚아 버리세요.”
“네, 그리하겠습니다.”
“직원들은 현직 그대로 승계하도록 하고, 거기 주주 구성이 어찌 돼요?”
“김성태 사장이 지분 50%, 한지은 씨는 김성태 사장 부인인데 10%, 김한슬, 김윤슬, 두 사람은 김성태 사장의 따님인데 각각 10%, 그리고 직원들 15명이 20%를 나누어 가지고 있습니다.”
“주식은 액면가로 전량 인수하세요. 유지하고 싶으면 10배수로 환산해서 추가액을 입금하라고 하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김한슬의 지분은 1%를 유지해 주고 그만큼을 차용증으로 받아 두세요.”
“1%라도 상당히 큰 금액인데, 괜찮을까요?”
김한슬의 빚이다.
김한슬이 학생이라는 것은 이미 알았을 테니, 그 빚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다.
“그제 학교에서 만났을 때, 내게 부탁을 하더군요. 그 자리에서 답은 안 했지만, 그 부탁 들어주고 싶어요.”
“어제저녁에 연구소로 출근한 알바, 그 학생 아닙니까?”
“맞아요.”
“눈이 돌아갈 정도로 미인이던데, 이거 사내에 문제 생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하하.”
“괜한 노파심이죠, 뭐.”
“아, 물론 노파심이긴 하지만, 알바 학생이 너무 예쁘니까 직원들이 그 학생 이야기로 꽃을 피우기에 괜한 걱정이 들긴 합니다.”
김경훈 전무에게 아침에, 대표로 추천할 사람의 이력서를 받았다.
위니에게 조사를 시켜 두었으니, 그 내용을 토대로 만나 본 후에 결정하면 된다.
“오늘 미래이오티 가는 거 알죠?”
“네, 준비하겠습니다.”
미래이오티의 현장 답사에는 이 두 사람에 영업 마케팅 총괄인 정우찬과 최재훈 과장까지 동행한다.
태영에게는 간부들에게 현장을 구경시키는 목적이 더 크다.
***
“아이고, 최 사장. 반가워.”
입구까지 달려 나온 박주한 회장.
그 뒤로도 일곱이나 더 달려왔다.
경비실에서 연락을 받은 것이다.
뒤의 사람들은 60대 이상으로 보인다.
회사의 고위급 임원들일 것이다.
“반갑습니다, 회장님.”
“추운데, 오느라 고생하지 않았나?”
12월에 접어들면서 날씨가 쌀쌀해지기는 했다.
그다지 춥진 않았는데, 태영이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다른 직원들은 이미 패딩 점퍼를 입었다.
태영만 봄가을용 캐주얼 복장이다.
“고생은요.”
“자, 인사는 들어가서 하지.”
“네, 그러시죠.”
태영과 박주한 회장이 나란히.
그 뒤쪽으로 터니테크 직원과 미래이오티 임원이 뒤를 따랐다.
“잠깐 세면장에 갔다가 들어가겠습니다.”
2층에 올라서 박주한 회장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래요. 세면하고 저기 대회의실로 오시게나.”
“네, 그러죠.”
태영을 뒤따라 터니테크의 직원들도 들어왔다.
태영은 입구의 세면대 앞에 섰다.
누구는 볼일을 보고, 누구는 태영처럼 옆의 세면대 앞에서 물을 틀고 손을 씻었다.
[뭐야? 새파라네. 완전히 핏덩이구만.]다른 임원들의 대화가 워쳐를 통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러게, 우리 손주가 곧 저만해질 텐데.] [조용히 좀 하시게. 다 들려.] [화장실 갔는데 들리긴 뭐가 들려? 여기서 거기까지 거리가 얼마인데.] [그리고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능력만 있으면 되지.] [글쎄, 타고 온 차로 봐서 능력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안 그렇습니까? 회장님.]이런 반응을 보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온 것이다.
말로 듣는 것과 실물을 봤을 때의 느낌은 다르다.
첫인상을 어찌 평할까 궁금했으니까.
워처를 통해서 전송되어 오는 회의실 내부 영상.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
세면대 앞에서 일부러 시간을 끌며 조금 더 들었다.
박주한 회장은 대답하지 않는다.
“으흠.”
가자는 신호로 헛기침을 하고 세면장을 나섰다.
“우리 임원들 소개하지.”
“네.”
테이블 위에는 차와 물병, 다과가 세팅되어 있다.
“여기는 경영 지원 본부장인 현선규 부사장.”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고 했던 그 사람이다.
그렇게 시작해서 일곱.
맡고 있는 분야와 직책을 말하면서 소개를 했다.
태영도 터니테크의 간부들을 소개했다.
터니테크의 임원은 김경훈 전무 한 사람이다.
오늘 여기에 참석하지 않았으니 나머지는 모두 다 젊다.
저들이 조금 시들하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