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Comic Genius RAW novel - Chapter 137
138화. 통 크게 간다
약속했던 주말이 다가왔다.
‘근데 여전히 토요일엔 쉬지 않아서 좀 아쉽네.’
2004년은 토요일에도 학교를 나와야했다.
초등학생은 4교시, 고등학생은 5교시까지 진행했으니.
수업이 끝나고, 2시 30분.
우린 버스정류장에 모였다.
자가용이 없다면, 하남의 교통수단은 시외 버스뿐.
우선 버스를 타고 제일 가까운 지하철역에 내리는 것으로 결정했다.
“나, 강남 가보는 건 처음인데!”
이정미는 기대하는 모습이었고.
“…….”
박은정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내가 굳이 어시들을 강남까지 데려가는 이유는 이러했다.
회사를 견학하여 새로운 것을 느끼고, 경험을 쌓아주려고 했다.
처음엔 강남 어디에 가느냐고 집요하게 물어봤지만.
나는 알려주지 않았다.
‘미리 말해주는 것보다, 직접 부딪혀봐야 더 기억에 남겠지.’
그렇게 해서, 강남에 도착했고.
어느 건물 앞에 섰다.
“여긴…….”
다른 건물들에 비해 작지만.
아주 작지도 않은 5층짜리 건물.
입구엔 펜툰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것을 알아본 이정미가 알겠다는 듯이 답했다.
“아, 펜툰. 네이바에서 보는 웹툰이잖아. 거기 본사인가 봐? 견학하러 온 거야?”
“응.”
그렇게 말하고는 나는 연달아 답했다.
“사실 펜툰은 내 회사야.”
“알아, 너 여기서 연재하잖아.”
이정미는 내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미소를 섞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펜은 내 소유의 회사란 말이지.”
아주 자연스럽게 말하자, 오히려 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이정미.
“그게 무슨 말이야. 여기가 너희 부모님 회사란 거야? 부잣집 도련님이란 거지?”
“아니, 내 회사 맞아.”
그래.
나는 펜툰 본사를 소개시켜주고자 했다.
펜툰이 내 회사라는 것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정미는 내 말을 믿지 못하는 듯 했다.
“뭐어? 말도 안 돼. 너 학교 다니잖아? 만화 그리는데 정신없을 테고. 회사를 어떻게 운영 해?”
“그야, 이미 대리를 뒀으니까. 나는 회사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믿을만한 사람을 CEO로 따로 고용했거든. 덕분에 세금 문제도 덜었고.”
청산유수처럼 터져 나오는 내 대답에, 잠깐 말문이 막힌 이정미.
“……농담이 아니라 진짜야?”
“그래.”
“농담이면 나 화낸다.”
“진짜라니깐. 거짓말을 해서 뭐 하겠어?”
내가 답하자, 박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 많이 팔렸으니까, 이런 회사를 세우는 것도 가능한 이야기긴 해.”
박은정이 내 말에 동의했다.
이정미는 크게 놀란 모습이었다.
“마, 만화를 그려서 이런 회사를 세울 만큼 많이 벌수가 있는 거야?”
아주 귀여운 질문이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한 권이 팔릴 때마다 나한테 300원 꼴로 들어와.”
“끙, 가 얼마나 팔렸더라.”
이정미는 계산을 시작했다.
“일본에 3천 만부, 한국에 700만부, 그리고 다른 나라 합쳐서 2000만부…… 헉……!”
눈이 번쩍 뜨이고, 입이 떡하니 벌어진다.
“171억! 그만큼 벌었다고?!”
이정미의 화끈한 반응이 재미있어 나는 한술 더 뜨기로 했다.
“그건 인세만 계산한 거 아냐?”
“엉?”
황당한 표정을 짓는 이정미.
“도 꽤 매출이 잘 나왔거든. 게임화 수익도 있고 그 외에 여러 가지도 있어.”
“끄헉!”
그 격렬한 반응에 절로 웃음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제 그만 놀래켜주기로 했다.
“세금을 제하면 그보다 많이 줄어들거든. 아무래도 170억보단 적어. 그래도…….”
나는 조금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100억대 자산가란 건 부정 안 할게.”
“허억!”
이정미는 이제야 믿을 수밖에 없던 모양인 듯 했다.
다름 아닌, 의 작가 안서준이 바로 나였으니까.
이제야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도 없던 것이다.
“부럽다…… 내가 평생 걸려도 벌지 못할 돈을 벌써부터 만지다니…….”
“너무 부러워하진 마.”
회사에 들리기 전, 잠깐 발걸음이 멈췄다.
“너희들 커피 마실래?”
“좋아!”
마침 1층은 카페였으니 잠시 들리기에도 좋았다.
‘다른 작가들한테도 커피를 무료 제공하니까.’
졸리거나 단 것이 먹고 싶을 땐 언제든지 카페에 들릴 수 있도록, 카드를 따로 만들어두기도 했다.
우리들은 커피를 들고 회사 내부로 들어갔다.
2층은 펜 사무실이었다.
‘여긴 뭐, 딱히 안 들려도 될 테고.’
한 층 더 올라갔다.
3층부터 4층은 펜툰 작업실이었다. 작은 유리창으로 내부를 바라보았다.
‘다들 열심히 작업중이시네.’
주말인데도 자리는 꽉 차 있었다.
회사에 지원하는 액정 타블렛으로 웹툰을 그리고 있었다.
“저분들, 웹툰 그리는 구나.”
“펜툰은 작업실도 지원해주거든. 그래서 작업실이 필요한 작가들이 출근을 하기도 해.”
“흐음…….”
우리들은 두리번거리면서, 회사 내부를 구경했다.
내 회사가 마음에 들었을까, 이번엔 박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설이 좋네.”
“인테리어에 신경 좀 썼거든.”
박은정이 그런 말을 꺼냈을 정도로, 펜툰은 미래지향적으로 좋은 시설을 구성했다.
물론 시설뿐만이 아니었다.
복지 역시 국내 최고 수준이었으니.
‘한 명, 한 명 모두 소중한 사람들이니까.’
펜툰 작가들은 나의 인적 자산이다.
나를 위해 돈을 벌어다주는 사람들인데 그들을 함부로 대할 수 있겠는가.
좋은 환경에서 만든 작품은 좋은 작품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내 생각이었으니, 복지에 크게 신경을 썼다.
계단 한 층을 더 올라갔다. 그렇게 도착한 대망의 5층은…….
“앗, 선생님!”
하림 누나가 제일 먼저 나를 반겼다. 소현 누나도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내게 인사했다.
“은정아!”
“언니, 오랜만이에요.”
희원 누나가 박은정을 살갑게 대했다. 은정 역시 희원 누나를 잘 따르곤 했다.
“서준이 왔냐. 근데 은정이는 여길 왜…….”
진호 아저씨는 조금 당황한 듯 했다. 아무 예고도 없이 대뜸 찾아왔으니 말이다.
나는 여차저차 그동안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서준이의 어시로?!”
두근두근! 진호 아저씨의 가슴에서 소리가 들리듯 했다.
하지만 다시 근엄한 표정으로 내게 귓속말을 속닥였다.
“어허, 서준아. 은정이가 실력이 돼서 뽑은 거야, 아니면 초등 동창이란 이유로 뽑은 거야?”
“당연히 전자죠.”
“그, 그래? 그렇단 말이지?”
내 말을 듣자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이는 진호 아저씨.
그리고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박은정을 바라보았다.
“정말 장하다, 은정아. 서준이의 옆에서 열심히 보필하렴. 그리고 좋은 만화가가 되어라!”
“네. 근데 만화가는 안 될 거예요.”
쿠궁!
총 맞은 것처럼, 가슴을 감싸 쥐는 진호 아저씨.
하지만 다시 정신을 차린 뒤, 박은정에게 타이르듯 답했다.
“으, 은정이 또 그런 말 한다! 은정이라면 아주 좋은 만화가가 될 수 있어요!”
“별로 마음 없어요.”
뾰루뚱한 모습.
아무래도, 박은정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만화가의 길을 거절한 듯하다.
하지만 박은정의 재능을 알아본 진호 아저씨는 매번 만화가를 권유한 것이었다.
‘뭐, 회귀 전이었다면 만화가를 권유하는 사람을 이상하게 쳐다볼 진 몰라도.’
지금의 만화가는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이 되었고, 대박을 터뜨린다면 수입을 억까지 얻을 수 있었으니.
‘그래도 자신의 진로는 박은정이 선택하는 거니까.’
나는 딱히 박은정이 만화가가 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하건, 그림에 관련된 직업이라면 나와 함께 일할 수 있을 테니까.
“아, 안녕하세요!”
이정미가 인사하자, 하림 누나가 쓰다듬었다.
“아이, 귀엽다. 선생님이랑 친구야?”
“앗, 네. 그리고 어시스턴트도 하기로 했어요.”
“우와, 그럼 너희들이 우리들 후배인 거네.”
“음…… 그런 셈이겠죠?”
이정미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다시 끄덕인다.
“선생님이 선택한 만큼, 그림 잘 그리겠어. 서준 선생님 도와서 좋은 작품 만들어줘!”
“네!”
이정미는 기운 차린 목소리로 답했다.
약 30분 정도를 견학했다.
더 이상 작업에 방해가 안 되도록 우린 다시 카페로 다시 내려갔다.
“그런데 말이야, 왜 언니들이 너한테 존댓말을 쓰는 거야?”
이정미가 그 점을 가장 궁금해 한 듯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있었지만.
“상하 관계가 뚜렷하다고 할까. 나이가 어려도 선생님이라면 어시들은 무조건 존댓말을 써야하거든. 요새 그러는 경우는 좀 적어졌지만, 90년도에 남은 옛날의 풍습이라고 봐.”
“그래? 그럼 나도 이제부터 존댓말 할까.”
“아, 아니 뭘 그렇게까지…….”
“농담인데.”
“…….”
나는 볼을 긁으면서 이정미의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이정미는 내게 시선을 유지했다.
“안서준. 너 생각보다 굉장한 놈이었구나.”
새삼스럽다.
“ 작가인 거 이미 알고 있었잖아.”
“아냐,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런 관계나 회사까지 있고…… 그런 애인 줄은 몰랐어.”
그렇게 말하더니,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파이팅 자세로 임했다.
“나도 뒤처지지 않도록 열심히 할 테야.”
다행이 내 의도대로 큰 의욕을 갖는 게 아닌가.
박은정은 말이 없었지만.
옅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정미의 말에 자신도 동의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그래. 둘 다 분발하자.’
회사를 견학시킨 보람이 있었다.
이정미는 커피 한 모금을 마시더니, 손바닥에 주먹을 딱, 쳤다.
“맞다, 우리 반에 박진태라는 애 있잖아. 걔가 네 회사에 연재하는 거네?”
“음, 그렇지.”
그러고 보니, 우리 반에서 웹툰을 연재하는 녀석이 있었다.
‘내가 아니라, 네이바 쪽에서 찾아낸 인재 같더라.’
펜툰에서 찾아본 적이 있었다.
제목은 .
작화도 좋고, 스토리도 볼만했다.
하지만.
‘모든 학생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웹툰을 무시하는 경향이 역시 있었어.’
아무래도 그랬다.
웹툰은 출판만화의 하위호환이라는 인식이 잡혀있었으니.
심지어 만창과 학생들 대부분은 펜툰 투고는 생각하고 있지도 않았다. 모두가 출판만화를 목표하고 있다.
하지만…….
‘무지막지한 상금이 걸린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상상을 초월할 상금으로.
‘그렇다면…… 웹툰에 대한 시선이 바뀌지 않을까?’
회귀 전, 만화 공모전 대상의 상금은 300만원에서 500만원. 아주 많게는 천만 원까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출판 만화가 잘 팔리기 시작하는 때였으니.
3천만 원까지 출자하여 공모전을 여는 경우도 간간이 있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라피스에게 상의했다.
“거금을 걸고 펜툰에 공모전을 열고 싶으시다고요? 아무리 웹툰이라도, 무지막지한 상금이라면 큰 주목을 받을 수 있겠네요. 그럼 1억쯤 걸고 할 건가요?
“흠.”
1억.
물론 만화 공모전 상금치고 굉장한 상금이었다. 어느 출판사도 내걸지 못할만한 상금.
주목이 꽤나 쏠리겠지.
하지만.
‘그냥 헤프닝이나 좋은 공모전이었다는 수준으로 끝내지 않을 거야.’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1억 정도론 택도 없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10억.”
아주 통 크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