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103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103화
아시아에서 온 정벌자(2)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와 삐까번쩍한 인간들에 슬슬 적응할 때 즈음이 되니, 콩쿠르가 시작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분위기가 압도적이기는 했다.
원래 경연 대회라는 게 경직된 분위기이긴 하지만,
이 공간은 사람 심리 저 밑에 있는 ‘불안’을 자극하는 면모가 있달까.
“….”
제2 대기실.
나는 길게 늘어선 의자에 앉아 있는 참가자들을 살폈다.
굳은 얼굴과 떨리는 입술.
다리 떨면 복이 나간다는 루머가 외국에도 있는 모양인지 다행히 다리를 떠는 사람은 없지만서도.
다들 초점 어딘가가 나가 있는 게, 상태가 참 심각해 보이기는 했다.
물론 긴장한 기색을 지우려 떠드는 열을 내며 떠드는 사람이 있기도 했지만,
그들의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일생일대의 긴장’을 숨기기에는 어려워 보였다.
나를 포함해, 단 세 명만 빼고 말이다.
“[오, 오랜만이에요 앙리 씨. 자, 잘 지내셨나요?]”
“[물론이죠~]”
“[지, 진짜, ㄷ대단하세요. 전 지금 엄청 긴장하고 있는데… 멀쩡히 인스타 보고 계시구….]”
“[재밌는 댓글이 달려서요~]”
한 명은 당연하게도 유력한 우승 후보라 평가받고 있는 앙리 르페브.
두 번째는 머리카락이 싱싱한 자몽 같은, 앙리보다는 체격이 작은 여성.
…겉으로 보기에는 자몽이 어색한 더듬이 말투로 앙리에게 아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긴장도 하고 있는 것도 같았다.
다만 뭐랄까.
자몽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눈깔에 빛이 가득 돌고 있달까.
마치 우상을 만난 듯한 느낌?
“[너무… 너무너무 기대돼요! 제가 앞 순번이라 다, 다행이에요. 제가 뒷 순번이었으면 긴장돼서 제대로 감상을 못… 했을 테니까….]”
“[반대로 저는 정말 아쉽네요~ 제가 후 순번이라.]”
“[저, 정말요?]”
“[그럼요!]”
…뭐 발음이 어떻든 간에 뜻만 잘 전하면 그걸로 된 거 아닌가?
난 신경을 껐다.
지금은 아주 중요하기 그지없는 생각을 해둬야 했기에.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지.’
이랬다 저랬다, 행동과 말을 훅훅 바꾸는 사람보다 꼴불견인 건 없다.
이건 누구나 200% 동의할 것이다.
스스로 음악의 주인이라고 칭했다면, 마땅히 사람들에게 ‘그리’ 느끼도록 해야 하는 법.
거만한 사람을 지켜보는 기대감을 심어주어야 하는 법.
그러니까,
‘여기서 내 100%의 전력을 발휘하면 안 돼.’
힘을 숨겨야 한다.
효과는 출중하지만 발동할 때 제약이 있는, 판타지 웹소설 주인공의 개사기 능력처럼.
제약을 풀어내야 강해지는, 볼 때마다 감질이 나는 능력처럼!
‘좋아. 난 이제부터 옷 벗을 때마다 강해진다.’
세계 정상급으로 고풍스러운 장소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컨셉.
천신만고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왜 그런 눈으로 절 쳐다보는 거죠?]”
한참을 고민하고 있자, 맞은 편에 앉은 앙리 르페브가 말을 걸어왔다.
자몽 여자애는 자기 순번이 된 건지, 연주를 하러 나갔더라.
귀에는 아주 부드럽기 그지없는, 마치 깃털로 귓구멍을 간질이는 듯한 연주가 들려오고 있었다.
“[세모나게 떠?]”
“[…네?]”
“[네모나게?]”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거 히트곡인데.
역시 대중음악은 잘 모르는 것일까. 얘기는 잘 안 통할 것 같았다.
“[…자기가 음악의 주인이라면서요.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정말 대단한 자신감이시네요.]”
“[내가 붙인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뭐, 팬들이 붙여준 것이다.
내가 스스로 그렇게 칭하는 건 의미가 다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애들한테 카운터를 먹일 수 있는 구실이 마련돼 있다고나 할까.
“[무대는 그 상태로 올라가실 생각이시고요?]”
“[물론.]”
“[…창피하지 않나요?]”
“[자랑스럽죠.]”
근육은 언제나 자랑스럽다.
“[오히려 먼저 ‘힘’을 조금 해방해 둬서 다행이라고나 할까.]”
말 나온 김에 나는 나의 새로운 컨셉을 밀어붙여 보였다.
물론 돌아오는 것은 아주 약간, 경멸 어린 시선이었지만서도.
“[뭔 소리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컨디션이 좋아 보여서 다행이네요. 나중에 말 돌리지는 못할 테니까요.]”
“흠.”
앙리 르페브는 언제 발광한 적이 있었냐는 듯, 끝까지 고상하면서도 고귀한 자태를 뽐낼 뿐이었다.
시간은 다시 흘렀고,
처음으로 환호성이 울려 퍼지고.
그 환호성을 일으킨 장본인이 ‘유재호’라는 사실에 앙리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지만,
곧이어,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아갔다.
나 또한, 시차를 두고 조금 더 무대와 가까운 제1 대기실로 이동했다.
‘왜 저렇게 날 싫어하는지는 모르겠군.’
…뭐, 클래식 연주자들이 나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는 것은 대충 이해는 하는데.
왜일까?
내가 몽유병이 있어서 프랑스까지 날아가서 일가족한테 칼부림을 한 것도 아니고.
쟤한테 악플을 단 것도 아니고.
‘처음에는 그냥 기선제압 하는 줄 알았는데.’
위협적이니, 적대감을 내비치며 압박하려는 줄 알았는데.
뭐랄까, 그녀에게서 엿볼 수 있었던 감정은 그 이상이었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
‘앙리 르페브’라는 이름이 호명되자마자, 심사위원석, 관객석. 그 어느 곳 하나 빠지지 않고 우레같은 박수가 울려 퍼졌다.
대중 음악의 콘서트같이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은 없었지만,
기대의 눈빛들이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티잉-!
쇼팽 에튀드, no.10 일명 ‘제비’라는 곡으로 스타트를 끊자,
모두가, 숨을 죽이게 되었다.
‘…역시 존나 잘하는구만.’
그녀의 실력은 전생 현생을 합쳐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최연소 쇼팽 콩쿠르 우승자니 따로 뭔 부연설명이 필요할까?
머릿속에는 청명하면서도 바람만은 매섭게 부는 하늘 아래에서, 새가 곡예활공을 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야말로 대단한 몰입력이었다.
“여유까지 있고.”
혼신을 쏟는 듯한, 절박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손가락 움직임 하나하나에는 여유로움이 서려 있었으며, 서스테인 페달을 밟는 발놀림은 30년 동안 동네 뒷산을 타던 마장면 김노인보다도 가벼웠다.
압도적.
단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렇다고나 할까.
“…네가 그런 표정을 짓는 건 처음 보는군.”
한참을 집중하고 있자, 어느새 유재호가 옆에 나란히 서서 입을 털었다.
“그런가.”
“그래.”
“설마 내 기술을 네가 사용할 줄이야.”
“뭐 잘못됐나.”
“아니, 하나도 안 잘못됐어. 하체만 했으면.”
“예전부터 하체 하체… 그딴 게 뭐가 중요하다는 건지.”
…뭐, 그건 따로 설명 안 해도 이제부터 알게 될 거고.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들려오는 연주에 귀를 기울였다.
집중하며 집중할수록 이미지는 선명해졌으며, 극한의 부드러움이 몸을 감싸는 듯했다.
다만….
뭐랄까.
조금 이상하다.
분명 좋은데.
엄청나게 부드럽고, 내가 흉내 낼 수 없는, 음 하나하나가 부들부들 섬세한 느낌인데.
아주 미약하게, 위화감이 들고 있다.
“….”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제1 대기실의 저 끝에서, 나에게 은은한 시선을 보내고 있던, 자몽 머리의 여자애와 눈이 맞았다.
양복 상의와 바지 차림임에도 얄상한 체격인 게 확연히 드러났다.
“…저 자몽 머리 유명하냐?”
“발레리를 모른다고? 너… 참가자 사전 조사 따위는 아무것도 안 한 거냐?”
“어떻게 암?”
“미친. 섬세한 연주로 유명한 사람이다. 올해 스물여섯이고, 이미 프로야.”
…그렇다고 한다.
직전에 들려왔던 소리를 떠올려보니 대충 이해가 간다.
물론 지금 들려오는 ‘부들함’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딱히 위화감이 느껴지지는 않았고.
“…그나저나 역시 앙리는 정말 대단하군. 저렇게 연주법을 휙휙 바꾸다니.”
“….”
“인스타에 올라온 것과 완전히 다르지 않나? 저게 내가 말한, ‘카멜레온’ 같은 능력이다.”
…그렇구나.
알겠다.
가까이서 들어보니, 아주 잘 알겠다.
여러 연주법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것, 정말 대단하지.
다만 저것은….
“아무리 봐도… 자몽이랑 느낌이 똑같은데.”
자기 자신이 제로 베이스부터 쌓아올린 것이 아닌,
일종의 복제품같이 느껴졌다.
* * *
앙리 파비엔느 르페브를 수식하는 단어가 처음 생긴 것은 아마 3살 즈음이 아니었나 싶다.
우연히 집에 초청된 음악 교사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그가 연주한 건반 진행을 그대로 연주하고.
모두가 입과 눈을 쩍 벌리며 그녀를 쳐다보았을 때, 음악교사는 그녀를 보고 ‘베르사유의 영혼이 담겼다’라고 무심코 말했고,
그렇게 베르사유의 영혼은 그녀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자주 불리는 별칭이 되었다.
그렇다.
매우 거창하기 짝이 없는, 어쩌면 유년기 발달에 악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별명이, 줄곧 그녀를 따라다녔다는 말이다.
물론,
별명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지만.
두웅-!
“와….”
“[오늘도… 연주법이 다르네요.]”
네 번째 에튀드가 끝나자마자, 관객석 여러 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마지막 곡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8번 ‘사냥’입니다.]
“[퍼스트라운드는 끝까지 산뜻하게 갈 생각이군요.]”
“[…매우 기대됩니다. 방금 전 발레리 씨의 진행도 훌륭하지만, 앙리 씨의 설계는 그보다 한 단계 높은 차원에 있습니다.]”
“[심지어 앙리 씨는 주법을 여러 개 구사할 수 있으니…]”
이제까지 없었던, 심사위원들이 참가자의 ‘연주 중간’에 대화를 나누는 모습 또한, 앙리는 딱히 이상함을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당연함.
자신이 ‘피아노 연주’라는 분야에 있어서, 꼭대기에 위치하는 것은 그야말로 당연했다.
그야,
자신은,
천재적인 음악적 감각은 물론,
타인을 ‘읽어내는 능력’까지 타고나 버렸으니까.
‘흡수하고, 소화하는 거지.’
세 살 때라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그때 발휘된 재능은 음악적 재능이 아닌, 후자의 능력이었음이 분명했다.
타인의 행동을 모방하는 것.
크게는 성대모사부터, 작게는 눈의 작은 깜박임까지.
그야말로 신이 내린 능력이 아니면,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까.
일곱, 여덟 살짜리들이 나가는 콩쿠르에서, 완벽히 자신의 ‘선생님’과 같은 연주를 할 수 있는 자신을 만났을 때,
아이들은 과연 어떤 기분이었을까.
아마 매우, 절망적이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베끼는 것만은 아니야.’
흉내만 낸다면 카피캣 소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전 세계에서 귀 좋은 사람이 전부 모인 곳인데. 들키지 않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앙리 르페브의 무서운 점은 자신이 흡수한 연주를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으로 ‘완벽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에 있었고,
컨디션 등락이 없는 연주는, 당연하게도 원본보다도 훨씬 좋게 들렸다.
…그렇다.
상대를 보고서, 상위호환으로 연주를 재창조해 내는 능력.
그것이, 앙리 르페브의 진짜 ‘힘’이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무수히많은 함성이, 밀려들어 온다.
앙리는 고귀한 자세로 자리에서 일어나 수많은 관객에게 고개를 숙였다.
…저들은 과연 방금의 ‘연주’가, 직전 순번인 발레리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아마 모르지 않을까?
‘시끄러운 여자는 정신 사나우니까 먼저 떨궈야겠어.’
아직 퍼스트라운드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미래는 이미 훤히 보이는 듯했다.
자신은 1위를 하고, 오늘 여기서 전설을 써 내려간다.
그래.
지금껏 계속 그래왔던 것처럼.
그저 그것뿐이다.
-다음 참가자는 준비가 마쳐지는 대로 무대로….
그것뿐이었는데….
“끼에에에에에엑!”
“…?”
저건, 뭐지.
“[으아아악!]”
“[뭐 하는 겁니까!]”
“[저, 저 양반 대체 왜 저래!]”
“[왜 옷을 찢어요!]”
왜 저 거대한 미친놈은,
갑자기 무대 위에 올라와,
양복을 조금씩 찢어내고 있는 거지…?
“[힘을 개방하는 중입니다. 50% 찢어졌으니, 내 힘은 50%.]”
“[그,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아무튼 그런 거야악!]”
빼애애액.
그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서 다짜고짜, 그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피아노의 건반을 두드렸다.
모두가 당황했고, 모두가 혼란스러워했지만,
디링~
단 네 마디의 음절이 울려 퍼지자마자,
“[50%? 반절?]”
“[…이게 능력의 반절이라고?]”
묘한 기류가,
콘서트 홀 전체를 에워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