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25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25화
젖은 아스팔트의 밴드맨(1)
한국의 밴드 음악은 죽었다. 언제 죽었는지 감이 안 잡힐 정도로 오래 죽었다.
하도 죽어 있어서인지 더는 찾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장르가 있었는지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가 됐을 정도.
망자.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이것보다 잘 어울리는 게 있을까?
밴드는 망자다.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기는 있지만, 살아 돌아오기 바라는 자가 없다.
아니, 부활하는 순간 놀라겠지. 관뚜껑에 못까지 박아뒀는데 대체 어떻게 했느냐면서.
‘그래도.’
그래도 박민수는 부활을 꿈꾼다. 밴드 음악이 땅속에서 기어 나와, 햇살과 네온사인, 그 사이 어딘가를 거닐기 바란다.
야무진 꿈이었다.
그리고,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꿈이었다.
짹- 짹-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참새 소리.
부르르르릉-
구멍이 뚫린 게 확실한 오토바이 마후라의 굉음.
슬슬 잠에서 깰 시간이었다.
“으으으으윽.”
다 뒤져가는 치찰음이 한 남자의 목에서 터져 나왔다.
맹한 얼굴, 원래부터 부스스한 머리, 언뜻 보면 남에게 존경심을 받을만한 외모는 아니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날카롭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열 살부터 기타를 잡아 지금 나이 서른.
20년 동안 같은 짓거리만 반복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어디 보자….”
그는 일어나자마자 책상 앞에 가서 앉았다.
삶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손에 쥐고 있는 기타는 500이 넘는다.
기타 세션으로 밥 벌어먹고 사는 이상에야 장비에 대한 투자는 필수였다.
디리링-!
빈약한 일렉기타의 생 줄 소리와 함께, 잠이 달아났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손을 푸는 것이 그의 첫 번째 루틴이며, 자신의 일감을 살피는 것이 두 번째 루틴이었다.
남자, 아니, 박민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오디오 인터페이스에 기타를 꽂았다.
요즘 기타 세션들은 스튜디오에 찾아가는 일이 적어졌다.
아날로그 이펙터 보드, 바닥에 널브러진 케이블, 앰프 스피커에 처박힌 마이크 등등. 20년, 아니, 10년 전까지만 해도 흔히 보이던 풍경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다.
대신에, 편했다.
생각해 보라, 10킬로짜리 페달 보드에 3킬로 이상 나가는 기타를 짊어지고서 스튜디오 찾아가서 풀 세팅하기 vs 집구석에서 코딱지 파며 컴퓨터에 기타 연결해서 앰프 시뮬레이션으로 전부 작업 끝내기.
후자의 환경이 정말 압도적이지 않나?
‘하지만….’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이게 편하고, 이게 옳다는 것을.
하지만 가슴은 마땅히 알아먹지를 못했다.
자꾸 아른거렸다. 나는 이곳에 있으면 안 된다고. 이곳이 싫다고.
수많은 조명이 내리쬐는 무대 위에, 당당히 기타를 메고서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대고 싶다고.
…그래서 어쨌냐고?
저질러 버렸다.
이제 1년이 거의 다 되어갔다.
딩~ 딩딩~
한참 녹음에 집중하고 있자, 잠들어 있던 전화가 울렸다. 밴드 멤버의 전화였다.
“여보세ㅇ….”
-합주실!
뚝.
말 한마디와 함께 전화가 끊겼다.
“…개X라이 새끼.”
기타를 잡는 이상 밴드를 하고 싶은 것은 세상의 이치 아니겠는가?
베이스도, 드럼도 결국 똑같지 않겠는가?
그래서 밴드를 만들었다.
친구들이랑.
“하아….”
박민수는 얼굴이랑 물을 칠한 다음에 기타와 간단한 장비를 챙겨 밖에 나섰다.
합주실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애초에 합주실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하다. 상가 지하에 앰프와 드럼을 갖다 둔 게 전부였으니까.
터벅- 터벅.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간 계단을 내려가니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왔냐?”
베이스를 메고 있는, 배가 슬슬 나오기 시작하는 홍승현.
드럼 위에서 자동사냥 돌린 모바일 게임을 감상하는 김건우.
오래 전, 고등학생 시절부터 음악의 길을 함께한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1년 전 만든 밴드의 멤버들이었다.
“연습이나 하자.”
“그래 인마.”
알고 지낸 지 오래되면 만나서 할 말이 별로 없어진다. 그냥 얼굴만 봐도 웃기다. 대체 왜 저 따위로 생긴 건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둑 둑 둑-!
탓-!
울려 퍼지는 드럼 비트.
두우웅~
날리는 헷 소리를 코팅하듯, 따뜻하게 감싸 안는 베이스의 저음.
“차게 올라오는….”
마이크에 대고 나름 혼신의 자작곡을 불러본다.
기타 코드의 선율이 귀를 감싼다.
좋았다.
기분이 좋았다.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따 버스킹도 할 거지?”
“그러지 뭐.”
“콜.”
세 사람은 짐을 챙겨 홍대로 이동했다.
우글거리는 사람들, 비어 있는 공간에 척척 놓여지는 간단한 장비들.
모든 동작은 거침없기 그지없었다.
1년째 서는 이 자리도, 주위를 동그랗게 에워싸기 시작하는 관객들도, 슬슬 익숙해져만 갔다.
마치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갈 준비가 된 것처럼 말이다.
“오늘 사람 많다.”
“이러다 데뷔하는 거 아니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왜, 그 기획사 사람한테 명함 받았잖아. 어쨌냐?”
“연락해서 세션 일거리 받았어.”
“이 씨…!”
“개X친놈아!”
“히히히힣.”
하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
다음 스테이지는 없다는 것을.
노래가 괜찮다고 명함을 받았어도, 정작 그들은 ‘밴드’를 원하지 않는다.
아무리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두드려 봤자 밴드의 미래는 홍대의 길바닥이 끝이다.
그 위를 위한 무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래 전에 막혀 버린, 막다른 길이었다.
“공연이나 하자.”
“그래.”
“안녕하세요오오오옥!”
“와 목청봐라.”
텐션 높은 건우가 목청을 지르자 환호성이 쏟아졌다.
셋은 차례대로 자신의 직업과 이름을 담으며 소개를 이어나갔다.
모두 음악인이었다.
백 밴드의 베이시스트로서, 유명 학원의 강사로서, 기타 세션으로서. 모두 각자 갈 길을 잘 잡은, 음악쟁이 중에서는 나름 잘 풀린 사람들 말이다.
그런 이들이 한데 모여 밴드를 만드니 반응이 썩 괜찮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땅끝에 걸린 해가 비추는 거리에서, 기타, 베이스, 드럼소리가 울려 퍼진다.
잠깐의 환호성이, 현실을 잊게 해준다.
-와아아아!
‘우리가 실력은 참 괜찮지.’
박민수는 쏟아지는 박수 소리에 취해서 약간의 자만을 되뇌었다.
후끈한 열기에 흘러내리는 땀방울, 속주를 욱여넣어 저릿거리는 손가락.
그리고 떠오르는, 행복한 상상.
‘만약.’
갈기갈기 찢어진 음악가들이, 한데 뭉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떨까.
그런 꿈만 같은 상황이, 자신에게 찾아온다면 어떨까.
이 위의 스테이지가 있는 세상에 태어났다면….
의미없는 가정인 건 알았지만, 가끔가다 꾸었다.
그린 데이, sum41, 오프스프링 같이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의 신세대의 밴드가 되는 꿈을.
멋드러진 곡을 등에 업고, 방구석이 아닌 무대에 오르는 상상을.
“자 다음 곡은 뭘로 할까요… 관객분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은데요!”
박민수는 상념을 떨쳐내고 건우와 같이 텐션을 끌어 올렸다.
설령 다음 스테이지가 없다고 해도, 즐기면 되는 것이다.
모두와 같이 웃으면서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래, 웃으면서….
‘……?’
일순간, 몸이 움찔했다.
한껏 텐션을 끌어올렸는데, 뚱한 표정을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아니.
그 때문이 아니었다.
뚱한 표정도 표정인데 저건….
‘보라색…?’
보라색이었다.
* * *
다행히 보디 페인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애초에 이걸 쓰는 인간이 있기는 한 걸까? 처음 통을 열었을 때도 거의 새거였는데.
‘얘도 몸에 발라져서 기쁠 거야.’
사용기한이 지나서 폐기 처분되는 것보다는 행복한 보디 페인트 생을 사는 거다. 나는 차디찬 깡통의 감촉을 느끼며 그리 확신했다.
“드디어 끝났구만.”
뭔가 기다리는 게 있으니 시간이 되게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지더라.
하지만 결국 가긴 갔다. 수업이 전부 끝났다.
“으으으, 일반수업 지겨워.”
이유림은 비틀비틀 나와 봄이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볼따구니에 하얀색 침이 쭉 말라붙어 있는 걸 보니 아주 그냥 잠을 제대로 처잔 모양이다.
“침.”
“아.”
침에 침을 묻혀 닦는 이유림.
“땡큐!”
“에이 뭘.”
“물티슈 있는데….”
“진짜?!”
이유림은 봄이가 건넨 물티슈를 받아들고서 침은 안 닦고 코만 풀었다. 진짜 개 레전드네.
‘이러니 난입이라는 콘텐츠를 계획할 수 있었던 건가?’
피로 피를 씻어 본 적은 있어도 침을 침으로 닦는다는 생각은 못 했는데. 본받을 만했다.
“갈까?”
“그래.”
우리는 짐을 챙겨 하굣길에 올랐다.
언제나 향하던 학원이 아닌, 홍대로.
‘회귀하고 나서는 한 번도 안 가봤지.’
대학 시절에 동기 따라 몇 번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버스킹은 해본 적이 없지만.
“너희 홍대 자주 가?”
“난 거의 안 감.”
“봄이는?”
“난 집에서 잘 안 나가….”
“크~ 그럼 내가 제대로 노는 법 알려줄게.”
아싸 둘의 오러에 몸이 짓눌릴 만했는데, 인싸의 단전은 아주 단단한 모양이었다.
운기조식이라도 한 건가?
아니, 지금은 저녁이라 운기석식이겠지.
“우선 여기서 토스트랑 모짜 핫도그를 사는 거야!”
역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이유림은 분식집을 가리켰다
진짜 석식을 먹으려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이유림이 시키는 대로 통모짜 핫도그랑 토스트를 사 왔다.
이제 막 6시가 된 홍대의 거리. 평일이라면 그나마 조금 한산하겠지만, 지금은 금요일이다.
사람이 많았다.
사람이 많으니, 당연히 관심을 받고 싶은 사람도 몰리는 법.
곳곳에서는 이미 음악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손에 들고… 공연하는 사람들 주위에서 서성거리는 거야.”
“응응.”
“그리고 동시에 먹어!”
와악-!
이유림은 한창 공연 중인 가요 2인방 앞에서 폭식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게 대체 뭔 짓거리인가 싶었지만, 곡이 끝나고 이유림을 부르는 버스커의 반응을 보고서 나는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거기 차아아암 맛있게 드시는 학생! 음악해요?! 한번 나와봐요!”
“좋아요!”
첼로를 꺼내며 자연스레 버스킹에 합류하는 미래의 대 첼리스트.
“그렇구나.”
눈에 띄고, 폭식을 보여주면서 기선제압을 하여 상대의 반응을 이끌어낸다.
바보 같아 보이지만 실로 완벽한 작전이 아닐 수 없었다.
끄덕끄덕-
울려 퍼지는 첼로의 선율을 느끼며, 관객들의 변화하는 표정을 보며 나는 연신 감동을 느꼈다.
“그런 거였어.”
“뭐가?”
“잠깐만 가방 좀 맡아줘.”
“응…?!”
나는 핫도그와 토스트를 한번에 입에 밀어 넣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띄는 것.
그리고 기선제압을 하는 것.
다행스럽게도, 나는 두 개를 다 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자신도 있었다.
향한 곳은 공원의 화장실이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머리를 세운 다음, 온몸을 보라색으로 칠했다.
“크헉!”
“어우 X바 깜짝이야!”
똥 다 싸고 나온 사람들이 저렇게 놀라는 걸 보니 눈에 확실히 잘 띄는 듯하다.
이제 다음은 희생양… 아니, 합류할 사람을 찾는 건가?
다행히 멀리 갈 필요가 없었다.
공원을 빠져나오자마자, 어딘가 익숙한 낯익은 멜로디와 목소리가 들려왔기에.
나는 인파를 헤치며 소리의 근원을 찾았다.
“인기 많네.”
밴드 공연은 꽤 오랜만이었다.
차분한 슈퍼스트랫을 멘 남자가 메인 보컬을 맡고,
옆에서는 프레시젼 베이스를 든 남자가 핑거링 중간중간에 슬랩을,
컴팩트 드럼 셋을 낀 드러머는 그 둘을 보조하듯 잔잔하게 박자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내가 아는 곡인 거 같은데.’
확실했지만 기억은 잘 나지 않았다.
아니, 이게 애초에 이런 곡이었나? 뭔가 좀 달랐던 거 같은데….
‘부족해.’
부족했다. 내가 대학교 졸업하고 들었던 것보다 더더욱.
‘…대학교 졸업?’
지금은 아직 데뷔하기 전인 건가? 시간 차가 거의 10년 가까이 날 텐데….
밴드 이름이 뭐였더라.
기억이 흐릿했다. 나중에 반짝 유명해지는 인간들인 건 확실한데, 그때는 세 명이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잠깐.
‘지금은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니야.’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밴드가 주변에서 제일 많은 인파를 끌어들이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어떻게든 난입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근데 모짜 핫도그랑 토스트는 이미 먹어 버렸고. 뭔가 방법이….
그 순간,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그만 입에 담고 말았다.
“…기타 그렇게 치는 거 아닌데?”
일순간, 주변의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
나는 관심을 놓칠세라, 바지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