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674
1674화. 바라던 상황 아닌가? (4)
카아아아앙!
날아든 장력을 막아 내는 것과 동시에 진현의 몸이 정신없이 뒤로 밀려났다.
“큭!”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갔다.
수를 교환할 때마다 참기 힘든 열기가 의복을 태우고, 피부를 시뻘겋게 익혔다. 불길 한복판에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남해태양궁!’
열양기공 하나만은 중원의 유수한 문파들도 감히 따를 엄두를 내지 못하는 곳이 남해태양궁이라더니.
이역만리에서도 이 중원까지 명성이 퍼져 오는 이유를 확연히 실감케 하는 열기였다.
치이이이이이익!
“으…….”
게다가 더욱 참을 수 없는 건, 저 열양공을 맞상대할수록 검이 점점 달아오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끌어 올린 내력으로 열기를 억제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송문고검은 이미 달군 쇠처럼 시뻘겋게 변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만으로는 한계가 있는지, 시간이 갈수록 검을 쥐고 있기조차 힘들어졌다.
이건 무학의 고하를 논하기 이전에 내공의 문제였다. 저 노고수들이 평생에 걸쳐 쌓아 올린 막대한 내력은 진현의 정심한 기공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더, 더는……!’
진현의 입에서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 나오려던 순간이었다.
“아아아아아아악!”
누군가가 화염에 휩싸인 채 구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제에에에!”
진현의 입에서 비명 대신 고함이 쏟아졌다. 울분과 노기, 그리고 슬픔으로 넘실거리는 목소리가 타오르는 산을 쩌렁쩌렁 울렸다.
“이익!”
진현이 분노로 몸을 날리려는 순간, 섬전같이 뻗어 온 손이 그의 앞길을 막았다.
터엉!
검면과 장심이 충돌하며 다시 한번 진현의 몸이 후드득 밀려났다.
“큭!”
“하찮은 놈이, 감히 나를 앞에 두고 한눈을 팔아?”
몸을 시뻘건 양기로 두른 태양궁의 호법이 흉신악살 같은 표정을 지으며 진현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주제도 모르는 놈 같으니.”
“쿨럭!”
열기가 뻗쳐 오자 숨이 턱 막힌 진현이 거칠게 기침을 터뜨렸다. 호법이 진노한 채 말했다.
“나와 격을 맞추려면 최소한 장로는 와야 할 터인데, 고작해야 평검수에 불과한 놈이 내 앞을 막겠다고? 그 잘난 무당의 늙은것들은 다들 겁을 집어먹고 달아나기라도 했느냐?”
“이익,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네까짓 놈에게 모욕받을 분들이 아니시다!”
“아직도 주제를 모르는구나!”
호법의 두 눈에서 노기가 솟구쳤다.
우우우웅.
그의 양손에서 시뻘건 기운이 용암처럼 용솟음쳤다.
“상관없다. 네놈들을 모조리 쳐 죽이고 나면, 비겁하기 짝이 없는 늙은것들도 고개를 내밀 수밖에 없겠지.”
호법의 양손에서 솟구친 기운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진현을 향해 쇄도했다.
극음의 정점에 올라 있다는 북해빙궁의 빙백신장(氷白神掌)과 완전한 대척점에 존재하는 무학. 남해태양궁의 독문절학인 태양화신장(太陽火神掌)이 이 무당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진현은 애써 정신을 다잡고 몸을 굴려 날아드는 장력을 피해 내었다. 아슬아슬하게 땅에 박힌 열양장력은 풀을 순식간에 불태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흙까지 새빨갛게 달구었다.
“쥐새끼처럼 잘도 피해 다니는구나!”
내력으로 때려 내는(打) 일반적인 장력과는 다르다. 상대를 밀어 내는 무당의 면장(綿掌)과도 그 궤를 달리한다.
장력에 깃든 열기만으로 상대를 녹여 버리는 열양장력의 극치다. 심지어 불도 아닌 지독한 열기이니, 그 앞에서 진현은 대처할 방법을 쉬이 찾아낼 수가 없었다.
‘큭!’
부드러움은 강함을 이길 수 있다. 하지만 부드러움으로 뜨거움을, 그 자체를 제압할 수 있던가?
유(柔)의 묘리 하나로 상대하기엔 세상은 너무도 넓었다. 그리고 그의 검은 아직 조화(調和)를 논할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당장 날아드는 장력을 상대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열양지력이 뿜어내는 지독한 열기 때문에 호흡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한번 호흡할 때마다 폐가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새외의 무학은 중원과 다른 궤로 발전했다 하더니, 과연 그 낯섦이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지독히 괴로웠다.
이를 겪는 게 그뿐이겠는가.
“아아아악!”
“진화야!”
“팔! 내 팔이……!”
한쪽 팔이 시뻘건 화염으로 뒤덮인 무당의 검수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무당을 위해 죽음을 각오했지만, 몸이 불타는 작열통(灼熱痛)은 그런 정신력만으로 버텨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아아아아악!”
그뿐이 아니었다.
검술이라면 어떻게든 상대할 것이고, 권각이라면 어떻게든 버텨 보겠지만, 내력으로 밀고 들어오는 이들을 정면으로 상대하자니 상성이 맞질 않았다.
특히나 그 내력이 무당의 검수들이 상대해 본 적이 없는 열양공의 형태로 발현되니 더욱 그러했다.
“무량아!”
무진이 다급히 달려와 전신이 새까맣게 타 버린 사제를 안아 들었다.
한눈에 직감할 수 있었다. 가망이 없다는 걸.
무당의 의술이 아무리 훌륭해도, 아무리 대단한 영단을 가지고 있어도 새까맣게 타 버린 사람을 살릴 수는 없다.
그럼에도 무진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으냐? 걱정 마라! 응? 지금 당장…….”
“사형…….”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라!”
“무…당…….”
무량의 고개가 힘없이 툭 꺾였다.
그의 몸을 달군 열기가 여전하나, 그 안에 어찌할 수 없는 한 줄기 한기가 스며들었다. 무진은 피가 나도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슬픔? 그런 건 느낄 틈조차 없다. 날아오는 장력의 기척을 느낀 무진이 무량의 시신을 수습하지도 못하고 몸을 굴렸다.
콰앙!
“사숙!”
빠르게 반응했음에도 발끝에 화끈한 통증이 번졌다.
‘빌어먹을!’
저 남해태양궁의 장로들이 전면에 나선 후로는 지금껏 무당을 버티게 해 주던 좁은 지형이 되레 족쇄로 작용하고 있었다.
좁은 지형을 더 강한 이들로 틀어막는다는 무당의 계획이 그들보다 우월한 내력을 가진 이들의 등장으로 근본부터 무너진 것이다.
‘장로님들은?’
저런 이들을 상대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동등한 실력을 지닌 이들이 나서는 것이다.
“지원! 반대편으로 간 장로님들께 당장 지원을 요청해라!”
“이미 전령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아직……!”
으드득.
무진은 참혹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었다.
도통 이해가 안 되었다.
전령? 굳이 그런 것까지 필요한가? 반대편 비탈과의 거리가 있다고는 하나, 무위의 수준이 무진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무당의 장로들이라면 이곳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도는 기감만으로도 알아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도우러 오지 않는단 말인가. 반대편 비탈로 상대의 총공세라도 쏟아지고 있단 건가? 그 좁디좁은 지형으로?
강자의 부재가 이곳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는데, 무당의 장로들은 대체 뭘 하고 계신단 말인가!
그러나 절망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외쳤다.
“사, 사형! 절벽 쪽! 절벽 쪽을 보셔야 합니다!”
무진의 고개가 획 그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내 눈을 크게 부릅떴다.
사패련의 무리가 절벽의 중앙에 매달린 채 빠르게 타고 오르는 광경이 보였다.
‘언제 여기까지 왔지?’
고개를 내린 게 아니다. 그저 옆으로 꺾었을 뿐이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는 전혀 보이지 않던 사패련도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 말인즉, 저들이 절벽을 칠 할 이상 올랐다는 뜻.
“더 바짝 기어올라라, 더! 거의 다 왔다!”
지금까지는 들리지 않던 사파 놈들 악다구니가 무진의 귓가에 메아리쳤다. 저들이 이대로 절벽 위로 올라선다면, 지금 비탈을 막고 있는 무당의 제자들은 태양궁과 저놈들로부터 협공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도 양쪽으로.
‘사숙!’
무진의 고개가 저도 모르게 한 사람에게로 향했다.
쿠우우웅!
때마침 위쪽에서 터진 거대한 폭음이 무진의 귀를 울렸다. 강한 기의 여파에 몸이 떨릴 지경이다.
어둠이 짙게 내린 가운데 우뚝이 솟은 백안암. 그 정상에서 희고 검은 기운과 숱한 손그림자가 난립하고 있었다. 그는 차마 엄두도 내지 못할 상승무학의 향연이다.
허공은 이 순간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대단한 명성을 지닌 천면수사와 대등하게 맞서고 있었다.
대단한 일이다. 감탄해 마지않을 일이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보자면, 중앙의 절벽을 줄곧 틀어막고 있던 허공이 천면수사에게 발목을 잡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무진은 직감할 수밖에 없었다.
단단히 쌓은 둑이 한 줄기 작은 금에서부터 무너지듯, 그들이 이 절벽에 구축한 방어선에도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무너진다. 무당을 사수하는 이 백안암이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머리가 외친다. 이곳은 이제 가망이 없다고.
그리고 이리 생각한 게 그 하나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사숙, 일단은 물러나야 합니다! 여긴 어렵습니다!”
중과부적. 힘이 부족함을 알고 물러나는 걸 두고 비겁하다 할 텐가, 아니면 현명하다 할 텐가.
“사숙!”
무진이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제 앞에서 소리치는 이를 밀치며 단번에 검을 뻗었다. 검 끝이 태양궁 호법의 목을 향해 쇄도했다.
“이놈이?”
콰각!
호법은 손을 휘둘러 검을 후려치고 내력을 끌어 올렸다. 열양의 기운이 무진을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듯 부풀었다.
이에 맞서 무진의 검이 검고 흰 기운을 뿜어내며 허공에 작은 태극을 그려 내었다.
콰아앙!
뻗어 오는 장력을 휘감으며 꿰뚫어 버린 태극의 기운은 이내 태양궁 호법의 가슴에 그대로 틀어박혔다.
“커헉!”
입에서 피를 뿌리며 튕겨 나간 호법이 비탈 아래로 추락했다. 이제 그가 있던 자리엔 흩뿌려진 핏자국만이 남았다.
“사숙!”
물론 무진도 무사하지 못했다. 열양공의 기운이 무진의 왼쪽 얼굴과 어깨를 뒤덮으며 살을 녹여 버린 것이다. 그 참혹한 상처에 기겁할 틈도 없이, 무진은 검을 제 앞에 콱 내리꽂았다.
아무 말이 없다.
각오를 다지기 위한 외침도, 함께 죽자 소리치는 고함도 없었다. 무진은 그저 검을 꽂은 채 비탈을 오르는 이들을 노려보았을 뿐이다.
이 순간에도 얼굴 한쪽이 열기에 타며 녹아 내리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에, 물러날 곳만을 찾던 무당의 제자들이 멈춰 섰다.
“나도…….”
무진의 입이 힘겹게 열렸다.
“나도 두렵다.”
아주 짧은 한마디였다. 그러나 무당 검수들은 이내 체념하듯 눈을 질끈 감았다. 물러날 수 없다. 물러설 수 없다. 저런 모습을 봐 버려서야. 저런 말을 들어 버려서야.
“원시천존…….”
누군가가 도경을 외기 시작했다. 경(經)이란 입으로 외어 마음을 다스리는 것. 어쩌면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건, 지금껏 수없이 반복해 온 것일지도 몰랐다.
더는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와아아아아아아!”
저 아래에서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 비탈로 적들이 몰려오고 있다. 그들의 목숨을, 이 무당의 운명을 확실하게 끊어 내겠다는 듯이.
중과부적, 혹은 당랑거철.
무엇이든 상관없다. 때로는 부딪치다 스러지는 것도 의미가 있는 법.
“사숙.”
“……진현이냐.”
한쪽 눈을 잃은 무진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아마 진현도 그가 느끼는 것과 같은 절망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남은 일은 그저 화려하게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뿐.
그런데 그때, 진현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부드러움…….”
“음?”
“온 힘을 다해 버텨 내는 것이 무당의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무슨 소리냐?”
무진이 하나 남은 눈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진현이 느리게 말했다.
“올 겁니다. 그들이라면.”
무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진현을 보았다. 열기와 피로 붉게 물든 진현의 얼굴은 진지했다. 한 치의 의심조차 없는 것 같았다.
마른 대지에 떨어진 한 방울의 비 같았다. 무의미하고 무가치하지만, 그럼에도 더 큰 빗줄기가 내릴 것이란 기대.
또 다른 말로는 희망이라 부르는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그래, 화산…….”
“천우맹.”
곁에 선 사제들의 입에서 자연스레 그 이름들이 흘러나왔다.
“……화산검협.”
비웃고 비난했다. 때로는 시기했으며 때로는 경멸했다.
그러나 그토록 경멸스러웠던 그들의 무모함이 지금 이곳에 선 이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고 있다.
‘그랬구나.’
무당이 이 고고한 산에서 비웃었던 그 무모함은 가장 깊은 절망에 빠져 있던 이들에겐 희망이 되었던 것이다. 지금의 무진이 느끼는 것처럼.
이를 깨달으니 무진은 화산이라는 이름에서 깊은 안도감과 어찌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나는…… 대체 무엇을 안다고 함부로 그들을 평가했는가?’
절박함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이가 어찌 함부로 고고함을 논했던가?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진현이 살짝 허탈하게 웃었다.
“기왕이면 살아남아 마주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요.”
무진의 얼굴에 복잡한 빛이 스쳤다.
“그들이…… 우리를 도우려 할까?”
“올 겁니다. 반드시.”
진현이 확신을 담아 말했다.
“그들은 그런 사람들이니까요.”
무진의 손이 저도 모르게 살짝 떨리던 바로 그때였다.
“옵니다! 저들이 옵니다, 사숙!”
무진이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후퇴해라! 백안암 위에서 제이의 진을 친다!”
“사, 사숙?”
그리고 제 옆에 있는 이를 콱 잡고 뒤로 밀쳤다.
“물러서라, 당장! 마지막까지 살아남는다! 한순간이라도 더 오래!”
“예!”
무당의 검수들이 분분히 몸을 빼내기 시작했다. 소리치면서도 이게 과연 옳은 선택인지 무진은 확신하지 못했다.
이제는 그저 믿을 뿐이다.
‘그래, 반드시 온다.’
그들이라면. 그가 아는 그들이라면 말이다.
화산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