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673
1673화. 바라던 상황 아닌가? (3)
웃음 짓는 남자와 얼굴을 굳힌 남자의 대치가 짧게 이어졌다.
“궁금하군. 어떻게 알았지?”
장일소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지.”
늙은 도인, 허도진인의 입에서 고저 없는 음성이 새어 나왔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으니. 지난 몇 해라는 시간 동안, 그저 너만을 말이다.”
“이런, 이런…….”
장일소가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얼굴에 영 마뜩잖다는 표정이 노골적으로 떠올라 있었다.
“늙은이의 관심 같은 건 영 찝찝하기만 한데 말이지.”
허도진인의 눈은 한없이 어두웠다.
그가 이끌고 온 무당의 장로들 역시 잔뜩 긴장한 얼굴로 앞에 선 붉은 장포 차림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저, 정말…….’
장일소가 있다. 심지어 그들의 앞, 손 뻗으면 잡힐 듯한 곳에.
허도의 지시에 따라 산에서 내려오기는 했지만,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정말 허도진인의 말대로 이곳에서 장일소를 마주친 것이다.
황당하기까지 한 결과였다.
저들이 공격해 드는 걸 지나쳐 온 것만으로도 이리 쉽게 장일소를 대면할 수 있으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세상 누구도 알지 못하겠지만, 어쩌면 이 순간 허도진인은 저 장일소를 수 싸움에서 앞선 건지도 모른다. 설령 장일소가 허도에 대해 무지해서라 해도, 방심했다 해도 결과야 같다.
그리고 어쩌면…… 단순한 수 싸움에서 앞선 그 이상의 결과도 일구어 낼 수 있을지 모른다.
바로 패군 장일소를 잡아 내는 쾌거.
실추된 무당의 명예를 단번에 강호의 최정상까지 되돌릴, 그 어마어마한 영광을 말이다.
‘과연…… 과연 사형이구나.’
모두가 전쟁 그 자체에 정신이 팔린 상황에, 허도진인만은 이 전쟁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산을 불태우는 화공도, 제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적의 침입도 모두 승패를 가르는 핵심은 아니라는 것을.
지금 이 무당산에서 승패를 가를 만한 핵심을 쥔 이는 오직 하나. 눈앞의 이 사내, 패군 장일소였다.
“뭐, 어쨌든…….”
장일소가 느긋하게 불타는 무당을 둘러보았다. 여기서 전장까지는 꽤 거리가 있지만, 그곳의 소음이 이곳까지 생생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솔직히 조금 놀랐단다.”
“…….”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걸 예측했다고 해도, 지켜야 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산을 버리고 직접 내려올 줄이야. 우리 고리타분한 도사님들께 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응?”
장일소가 짧게 눈웃음을 흘렸다.
“이 와중에도 생때같은 제자들이 죽어 나자빠지고 있을 텐데 말이지.”
그 말에 허도진인이 살짝 산 쪽을 일별했다. 그러다 이내 다시 장일소를 응시했다.
틀리지 않은 말이다.
저 산에서는 지금도 무당의 제자들이 피를 흘리고 있다. 저기에 서서 모두를 이끌고, 함께 싸우다 죽는 것이 어쩌면 그의 역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허도진인은 그게 진정 옳은 길이라 생각지 않았다. 그건 그저 단순한 자기만족일 뿐.
그가 해야 할 일은 다름 아닌 이곳에 서는 것이다. 바로 저 사내의 앞, 천하에서 가장 위험한 곳에.
“좀 더 중요한 게 무언지 알 뿐이다.”
허도진인이 씹어뱉듯 말했다.
“잠시 잠깐의 고통을 참아 내지 못해 저질렀던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다. 네 덕분에 깨달았다. 때로는 참고 버텨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
“무당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나는 온몸이 지옥불에 타는 고통이라도 버틸 수 있다. 그게 내가 짊어져야 할 업이다.”
“……흐으으음?”
장일소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바짝 독이 오른 뱀과 같은 그 시선에, 허도의 심장이 절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허도진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장일소의 입술이 살짝 벌어지며 새하얀 이가 드러났다.
“사람이란 말이야……. 때로는 아주 어리석지.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를 정도로.”
“헛소리는 그 정도로…….”
“그게 정말 네가 원했던 걸까? 그렇게 보나?”
장일소의 시선이 허도의 뒤쪽으로 향했다. 그가 이끌고 온 무당의 장로들이 도열해 있다. 원래라면 한창 싸우고 있어야 했을, 무당의 가장 중요한 전력들.
그들이 이곳에 있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속이 뒤틀린 돼지들은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걸 그럴싸한 포장지로 덮어 버리는 데 아주 혈안이야. 대의, 협의, 정의, 미래……. 뭐 그런 구역질 나는 말로 덮으며 본인도 그걸 믿지.”
“패군.”
“하지만…… 내게는 보이는군. 네가 정녕 원하는 것이 무언지. 그 달콤한 설탕으로 뒤덮인 말에 숨긴 네 욕망 말이지. 너는 그저…….”
장일소가 손톱 끝으로 희고 곧은 제 목을 가로로 긋는 시늉을 했다. 그 동작 하나로도 모두가 침묵하며 집중했다. 장일소가 짙은 비웃음을 머금었다.
“이 목을 가지고 싶은 거란다.”
허도진인의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게 굳었다.
“넌…….”
“다른 말은 그저 좋을 대로 갖다 붙인 변명일 뿐이지. 내심은 다르잖니? 여긴 우리뿐이니 솔직해지렴.”
장일소의 작은 속삭임은 기이하게도 이곳에 있는 모두의 귀에 똑똑히 들려왔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허도에게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지독했던 절벽, 그 끔찍했던 치욕을.
꾸욱.
허도진인이 검을 쥔 손아귀에 꽉 힘을 더했다.
그 모든 걸 설욕할 수 있다. 저자의 목이라면…… 그의 모든 실책은 씻겨 나갈 것이고, 강호는 다시 무당을 천하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올려 두길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저 목이 희생을 줄여 줄 수 있다.
저 목이 무당의 미래를 되찾을 수 있다.
저 목이 그의 모든 과오를 씻어 낼 수 있다.
오직 저 목만이…… 저…….
그 순간이었다.
“뭐가 그렇게 비장하지?”
심연으로 침잠해 가던 허도진인의 귓가에 장일소의 목소리가 툭 꽂혔다. 심드렁하고 나른한 어투였다.
“혹시, 지금 자기가 이 전세를 바꿀 만큼 대단한 수라도 두었다고 생각하니? 응? 내 앞에 선 것만으로도 뭔가가 달라질 것 같니?”
한없이 내려다보는 듯한 오만한 말투가 노인이 된 허도진인의 심장에 박혔다.
“……패군.”
“착각하는 모양이구나. 여기까지 온 건 칭찬해 줄 만하나, 그렇다고 무언가가 바뀌는 건 아니란다.”
장일소는 웃고 있었다. 아니, 비웃고 있었다.
뼈를 깎는 고통으로 제자들을 내버리는 결단을 내린 끝에 마침내 이곳에 선 허도진인을. 그의 선택을. 그리고 나아가 그를.
“어째서인지 아니?”
“…….”
“지금 내 앞에 선 이가 고작 너이기 때문이란다. 허도.”
그저 단순하고 가벼운 도발로 치부할 수도 있을 말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말을 듣자 허도진인의 무표정한 얼굴에 가장 크게 균열이 일었다.
“하하핫.”
이 변화를 놓치지 않은 장일소가 요사스레 웃었다.
“추하기도 하구나. 이미 제 역할이 끝난 줄도 모르고 무대에 남아 있는 배우란! 누구도 자신을 보지 않는다는 걸 혼자만 모르지.”
파르르.
허도진인의 검이 순간 희미하게 떨렸다.
그는 이 순간만을 기다려 왔다. 오로지 이 순간을 위해 참아 낸 봉문의 시간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막상 제자들의 죽음과 불타는 무당을 외면하면서까지 마주한 장일소는 그를 적수 취급조차 해 주지 않고 있다.
허도진인이 이를 악물며 차분히 말했다.
“격장지계 따위는…….”
그러나 장일소는 다 듣기도 전에 혀를 차며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색 옅은 눈에 경멸의 빛이 번뜩였다.
“격장지계? 쯧쯧. 이래서 늙은이들이란. 아직 네게 그럴 만한 가치가 남아 있다고 생각하니? 응?”
“…….”
“가련하기도 하지.”
허도진인을 정말 분노케 하는 건 장일소의 말 자체가 아니었다.
장일소의 눈빛이었다. 무가치한 무언가를 내려다보는 무심한 눈빛. 심지어는 아주 가엾고 미개한 어떤 것을 보는 동정심 같은 게 그 속에 도사린 듯도 했다.
그 눈빛이 평생을 고고히 수행해 온 이 노도사의 심기를 완전히 뒤틀고 있었다.
“장……일소.”
“짊어질 수 없어 내던진 것을 인내라 포장하고, 극복할 수 없어 자포자기한 것을 희생이라 하던가?”
장일소가 쿡쿡 소리 내어 웃었다.
“참으로 하찮구나. 그 도(道)라는 것도 말이다.”
“이……!”
허도진인이 이를 뿌드득 갈았다.
“네놈이 뭘 안다고……!”
“아아.”
장일소가 느릿하게 손을 내저었다.
“더 놀아 주고 싶지만…… 이쪽도 할 일이 있어서 말이야. 죽을 날만 기다리는 바래 버린 늙은이에게 더 낭비할 시간 같은 건 없단다.”
까라락.
그의 손에 끼워진 가락지들이 서로 마찰하며 섬뜩한 소리를 흘렸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 늙은 몸으로 확인해 보렴. 공평하게 주어졌던 시간이 네게는 얼마나 무의미했는지 말이야.”
검을 쥔 허도진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지금…… 그 말을 반드시 후회하게 해 주겠다.”
“아무렴 그렇겠지.”
“장일소오오오오오오오오!”
허도진인의 검이 빛살처럼 장일소를 향해 날아들었다.
* * *
“군사?”
“…….”
“왜 그러십니까? 혹시 무슨 문제라도…….”
지시를 내리던 호가명이 돌연 침묵에 잠기니 부관들이 바짝 긴장했다. 하지만 호가명은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산 위만 빤히 보다가 어둡게 눈빛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수월하군.”
“예?”
“과히 수월해.”
일순 부관들의 얼굴에 의문이 스쳤다.
수월하다니. 적진을 공략하는 일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천면수사가 전면에 나서고 태양궁의 전력을 투입하며 조금이나마 승기를 가져오긴 했지만 그뿐이다. 심지어 호가명은 어떤 경우에도 방심을 허락지 않는 걸 생각하면, 결코 저렇게까지 표현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부관 하나가 조심스레 말했다.
“놈들의 저항은 여전히 거셉니다, 군사.”
“거센 정도일 리가 없지. 상대는 무당이다.”
“아…….”
호가명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적이 생각보다 약하게 느껴질 때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두 가지. 하나는 함정. 그리고 또 하나는…….
‘전력을 나눴다? 아니. 뒤를 노릴 만한 상황은 아니다. 그렇다면…….’
호가명의 시선이 산 아래, 정확히는 이곳에서 보일 리 없는 산 너머의 어딘가로 향했다.
이윽고 호가명의 입에서 한숨과 함께 굳은 음성이 새어 나왔다.
“그렇군. 련주를 노리고 있군. 아니, 이미 도달했으려나?”
“예? 구, 군사. 지금 무슨 말씀을……!”
부관들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그들 역시 군사전에서 호가명을 보좌할 만큼의 능력을 지닌 이들이니 호가명의 말뜻을 못 알아들을 리 없었다.
“지, 지금 당장 지원을…….”
“됐다.”
“예?”
호가명이 차게 조소를 흘렸다.
“기껏 생각해 낸 수라는 게…….”
묘수? 아니, 그런 건 수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승기를 잃은 이가 대책 없이 던져 대는 발악에 불과하다.
“범을 노려야 한다는 걸 알았다고 해도, 결국 그 꼬리를 무는 게 개라면 되레 물려 죽을 뿐이지. 주제도 모르고 자신이 범인 줄 알았으니, 어리석군.”
아니면…… 호가명이 예상했던 것보다 허도진인이 입은 상처가 더 컸다는 뜻이리라. 그래도 예기를 지녔던 이가 이토록 영락(零落)할 만큼.
그는 이미 수없이 봐 왔다. 과거에 사로잡힌 이들이 자신을 잃어버리는 꼴을.
어쨌건 덕분에 기회는 잡았다.
“들어라.”
“예, 군사!”
“가용 전력을 모조리 투입해라. 지금부터 일각 안에 저 절벽을 점령한다.”
“예!”
부관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호가명은 여전히 절벽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멍청한 선택에 대해 곱씹었다.
무당을 불태우는 건 사패련도 태양궁도 아니다.
바로 저들이다. 저들이 이 순간 무당의 역사를 제 손으로 끝낸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으로써.
화산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