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46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46화
언더그라운드의 초신성(3)
이런 지하 클럽에 오는 건 처음이었다.
래퍼랑 직접 만난 것은 대개 스튜디오 안에서였으니까.
‘언더그라운드인가….’
솔직히 이곳에서 잠깐 들었던 랩은 그다지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박자를 절고, 발음을 절고, 비트는 구렸다.
기성품 비트를 쓰는 사람은 그나마 좀 덜했는데, 자기가 직접 만들어 온 사람은 많이 거슬리더라.
‘객관적으로 그리 나쁘지 않은 수준일지도 모르지만.’
직업병 때문에 괜히 깐깐한 눈으로 보게 되고, 바로 직전에 ‘진’의 무대를 경험해서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다만, 그럼에도.
‘분위기는 참 마음에 들어.’
다들 열정적으로 음악을 하고 있고, 관객들은 그것을 즐기고 있다.
이게 즐겁지 않으면 뭐가 즐거울까?
“수준 이하…?”
예상외의 대답이었는지, 마이크를 잡은 채 나를 멀뚱멀뚱 내려다보는 무명 래퍼.
“수준 이하.”
나는 그의 중얼거림에 확실히 대답해 주었다.
결코 잘못 들은 게 아니라고, 확인 사살을 시키듯이.
“….”
아주 약간의 침묵,
그리고,
와아아아아아아-!
울려 퍼지는, 100에 달하는 이들의 함성.
‘주목은 확실히 받았군.’
-양준혁! 양준혁!
-실력 제대로 보여줘!
물론 저 함성이 나를 향한 것은 아니다.
작은 무대 위, 양준혁이라는 무명 래퍼에 대한 기대감일 것이다.
불청객을 처형하길 바라는 거겠지.
‘나름 유명세가 있는 건가?’
정보를 조금 더 모아오는 편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언더 톱2 래퍼들 음악이랑 이름만 좀 조사해 봤지, 양준혁이라는 이름은 못 들어봤으니까.
뭐, 그럼에도.
나는 딱히 걱정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잃을 게 없으니까.
까딱, 까딱.
검지를 접었다 펴며 나를 도발하는 양준혁.
나는 그에 응하며, 당당히 무대 위로 올라갔다.
“우리가 수준 아래? 너의 드레스 코드는 흙먼지 아래가 어울려.”
-와아아아아!
-좋다! 그거다!
박자감 있는 대사를 내뱉자마자 또다시 함성이 울려 퍼졌다.
내 복장이 힙합스럽지 않아서 아무래도 불만을 품었나 보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개의치 않다는 듯이 툭,
스탠드에 꽂혀 있던 무선 마이크를 뽑아 들었다.
“너무 구려서 귀마개라도 가져올 걸 그랬군.”
시비를 먼저 걸린 것은 맞다. 그럼에도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빌런으로 보고 있을 것이다.
자신들의 놀이터에 침입한 외부인이니까.
다만,
“비트 깔아줘. 수준 이하의 실력이 잘 덮일 만한 걸로.”
-쟤 뭐야? 뭐 하는 놈이야?!
-자신감 개쩔어!
-랩이나 할 줄 아는 거야?!
그럼 뭐 어떤가?
내가 이기든 저놈이 이기든, 재밌으면 그만이지.
물론 저놈이 패배함으로써 반발을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나를 적대하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런 건 아무렴 좋았다.
그 반대도 있을 테니까.
예컨대, 이 세상에는 슈퍼맨 배트맨보다 조커를 좋아하는 인간도 많다는 소리다.
* * *
요즘 지하 클럽-스웜 힙과 그 주변 일대에서 서서히 퍼져가는 이름이 있었다.
기존 언더그라운드 감성을 잘 따르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섞은 비트를 만드는 비트 메이커, 그리고 딱딱 떨어지는 올드스쿨 라임을 고집하는 지하의 래퍼.
양준혁.
그의 경력은 그리 길지 않았다.
랩을 듣기 시작한 연력은 10년이 넘었지만, 직접 해보자고 마음먹은 지는 2년이 안 되었나.
친구를 따라 우연히,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없는 클럽에 방문한 것이 시작의 트리거였다.
그날따라 프리스타일 랩에 도전하는 이들이 많았고, 양준혁 또한 얼떨결에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찢었다.
‘엄청났지….’
다시 생각해 보면 그건 초심자의 행운 비스름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힙합을 많이 들었기에 수많은 그루브와 가사가 머릿속에 항상 떠올라 있었고, 과하게 분비된 아드레날린 덕에 가사와 문장들을 조합하여 입으로 쏟아낼 수 있었다.
폭발적인 함성은 자신이 힙합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클럽을 계속 전전했다.
아무래도 즉석 랩 한 번에 언더의 상위에 올라설 수는 없었다.
괴물 같은 인간들이 메이저에 올라가지 않고 떡하니 버티고 있는 바닥이니까.
양준혁은 한 방을 노리기보다는 차근차근 위로 올라가는 전략을 채택했다.
이곳저곳에 비비며 무대에 설 기회를 잡고, 비트를 만들고, 인지도를 쌓았다.
승승장구.
수많은 날림 래퍼 중에서, 반짝이는 존재.
양준혁은 스스로를 그리 평가했다.
수문장처럼 버티고 있는 인간들이 메이저로 빠지면 언더의 별을 차지할 수도 있을 터.
그렇게 메이저로 진출하면 ‘언더 출신 정통 래퍼’라는 타이틀이 성공 가도를 다져줄 터.
하루하루가 기대되고 또 신나는 나날들이었다.
근데….
‘이 새낀 대체 뭐지…?’
오늘 갑자기, 이상한 놈이 눈에 밟히더라.
어디 시장 가판대에서 대충 주워 입은 듯한 패션, 밀리터리 문양이 인상적인 팔토시와 목토시, 그리고 딱 중요 부위만 젖어 있는 땀들.
뭐랄까, 노가다를 하다가 뛰쳐나온 모양새였다.
하긴 뭐, 홍대니까. 겉모습은 뭐 홍대 병 패션의 일종이라도 쳐도.
억지로 끌려온 듯, 랩을 즐기지도 못하는 건 진짜 거슬리더라.
그러므로 꼽을 줬는데….
-수준 이하.
급발진을 해버렸다.
마치 자신이 유명 래퍼라도 되는 듯이.
‘…뭐 하는 새끼지?’
얼굴을 드러내고 있지 않았지만, 몸의 크기가 워낙 특징적이었다.
일순간 헬창 래퍼 몇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지만, 이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몸이 큰 것과 위압감은 전혀 다른 문제니까.
‘실력에 자신이 있는 모양이군.’
언더에서 꽤 높은 자리까지 올라왔다.
그러면서 상대가 허세를 부리는지, 아니면 진짜 실력이 있는지 단박에 구별하는 능력이 생겼다.
놀랍게도 눈앞의 정체불명의 사내는 후자 같았다.
복장은 노가다꾼의 것과 같지만….
‘컨셉일 수도.’
미마손 같은 유명인의 제2의 인격이라면?
잡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다만,
둥- 칫- 둥!
흘러나오는 비트 덕에, 그게 오래 이어지지는 않았다.
“난 양준혁. 이 동네에서 내 이름을 못 들어본 자는 없지. 수많은 떨거지들, 그리고 나는 그 떨거지들의 제왕.”
올드스쿨에서 모던으로 변화구를 준다.
즉석에서 튀어나온 문장들을 머릿속에서 그럴듯하게 조합하여, 입으로 쏟아낸다.
“더 높이 올라가고 싶은 노가다 꾼, 불가능한 짓을 하는 나는 바로 네 꿈.”
복장의 비하부터 어리숙하게 서 있는 자세, 겨드랑이에 맺힌 땀이 역겹다는 것까지.
양준혁은 구석구석, 안 닿는 곳이 없도록 다 깠다.
‘…좀 너무한가?’
단순히 어그로 좀 끌었다고 해서 뼈와 살을 발라 버린 건 심한 처사 아닐까.
약간 걱정이 들기는 했다.
저 거대한 몸을 이끌고 눈물을 흘리며 뛰어나간다면 분명 마음이 아프기는 할 것이다.
둥- 둥- 둥-!
한바탕의 입씨름이 끝나고, 이마에서 주륵, 땀이 흘렀다.
가슴을 마구 두드리는 강렬한 베이스, 100명 남짓한 젊은 피들이 쏟아내는 함성.
양준혁은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더더욱 큰 함성을 요구했다.
‘…이대로 빤스런 칠 수도 있겠는데.’
즉석에서 내뱉은 것치고는 가사가 아주 잘 나왔다.
자신처럼 프리스타일 랩에 익숙하지 않다면 마이크를 잡는 순간 어버버거릴 수밖에 없겠지.
그렇게 쪽을 당하고 돌아가느냐, 아니면 그냥 지금 도망가느냐.
딱히 별 차이는 없을 것이었다.
래퍼 ‘양준혁’의 스토리를 위한 양분이 되면 그걸로 족한 것이다.
다만,
“흐음….”
그는 한숨을 토하면서, 마이크를 켤 뿐이었다.
단 일말의 주저조차 보이지 않은 채.
“아. 아. 카악! 크아악!”
“……?”
마이크 테스트를 하려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가래라도 마려운 듯이 마이크에 대고 계속해서 목을 긁어댔다.
-으 더러워
-개극혐
너무 리얼한 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는 관객도 있었다. 다만, 그 모든 동작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비트주십쇼. 안 빠르고 단순한 걸로.”
요청과 함께 울려 퍼지는 단순한 킥과 스네어의 반복.
노가다 차림의 사내는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대었고,
그리고….
“어?!”
랩을 했다.
아니, 이건….
-내가 드디어 이 바닥에 등장했다. 흘려 터질 것은 너희들의 복장. 애송이 같은 목소리는 집어치워라. 들어라.
그저 가사의 나열.
각 잡힌 랩이라고 하기에는 뭐하다.
표정을 보니 그저 성의 없이 내뱉는 것 같기도 했다.
근데….
‘이 목소리는 대체…?’
저음.
그냥 저음이 아닌, 횡격막이 고막이 너무 큰 폭으로 뒤흔들려 찢어질 것만 같은 저음.
상황 파악이 잘되질 않았다.
대체 뭐가 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는 소리다.
가장 처음 떠오른 생각은 속임수.
어디 목 근처에 휴대폰을 가져다 대고, 잔뜩 만져진 오토튠을 마이크를 통해 흘려보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
하지만….
-습.
-후.
내뱉는 숨이 마이크에 담겼다. 그게 명확히 프리스타일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그렇다.
프리스타일.
‘생’ 목소리란 말이다.
‘말도 안 돼!’
이럴 수가 있나?
저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어디 있다가 이제야 등장한다는 말인가?
소름이 돋았다.
귀를 팍팍 때리는 불결한 목소리에 온몸의 모근이 삐쭉 섰고, 땀샘에서는 분비물을 배출하기 바빴다. 평소보다 더욱 과열되는 느낌이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
기분 나쁜 소리. 마치 호랑이가 내뿜는 으르렁거리는 저주파를 맞닥뜨린 느낌.
뭐라 더 표현할 방도가 없었다. 그저 얼떨떨했다.
그리고 그 순간,
양준혁의 머릿속에, 예전에 보았던 음악 드라마의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토너먼트 프로그램에 출현한 주인공이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대자, 곧바로 pass 버튼을 누르는 심사위원들.
천상의 목소리라며 쏟아지는 칭찬들.
솔직히 좀 웃겼다.
좋으면 좋았지, 천상의 목소리가 대체 뭔가? 실력이 없으면 목소리든 방귀 소리든 말짱 도루묵인데.
작품 내 허용, 시적 표현.
대충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근데….
겪어보니, 그것 또한 현실에서 있을 수 있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았다.
-너희들이 맞이할 것은 그저 파멸, 나를 본 순간 모두가 전멸.
비트는 단순했다.
가사도 그냥 아무 말이나 쏟아내는 게 분명했다.
다만,
숨이 멈출 정도로,
랩이 좋았다.
천상의 목소리, 아니….
“지옥의 목소리….”
툭-!
일순간의 중얼거림과 함께, 그가 들고 있던 마이크가 꺼졌다.
짤막하기 그지없는 랩.
그리고,
-어… 어?!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100명이 200명이 된 듯한, 엄청난 목청.
“누구야? 저 사람 누구야?”
“저런 래퍼가 있었어? 지방에서 올라온 건가?!”
화산이 분출하듯 뿜어지는, 대중들의 궁금증.
“목소리 뭐야….”
순식간에 웅성거림이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를 잠식시키는 것 또한, 무대에 선 거대한 남자,
아니, 예상치 못한 ‘대형 신인’ 이었다.
“모든 욕망의 분출구, 내 이름은 변기. 기억해라. 그믐달이 뜨는 날에 다시 찾아오겠다.”
옮겨 적는다면 중2병에 걸린 듯한 대사였다.
하지만 육중하고 끝을 알 수 없는 저음으로 그리 속삭이니,
마치 그것은 ‘악마의 침공 예고’처럼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