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53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53화
백그라운드의 마술사(2)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나는 개학 당일에 바로 놀러 가기로 했다.
‘진짜 오랜만이네.’
아무리 전생의 내가 아싸였다고는 해도, 친구 집에 놀러 간 적 한 번이 없겠는가?
있긴 있었다. 다만,
‘가서 똥 쌌다가 X됐었지….’
초등학생 시절이었고, 그 시절 친구 앞에서 똥을 싸는 것은 거의 7대 죄악에 버금가는 금기 행위였다.
그걸 범했으니, 친구랑 소원해지는 것도 당시에는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아픈 기억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뭐 어찌 됐던 간에,
“흥흥흥~”
점심시간.
봄이는 아까부터 아주 기분이 좋아 보였다.
똥국에 이상한 나물때기들만 식판에 가득 올려져 있었는데도, 콧노래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점점 부담이 심해졌다.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는 뭐 들고 가야 되나?’
아직 고등학생이긴 한데.
그래도 프로로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니 빈손으로 덜렁 가기는 좀 그렇고.
그림 그린다고 하셨으니 화가인가?
음악이랑은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직업군이지만, 좋게 보여서 나쁠 건 없을 것이다.
‘아니… 좋게 보이는 수준으로 될까.’
…사실 좀 쫄아 있었다.
회귀하고 나서 여기저기서 바지를 훌렁훌렁 벗었고, 부끄러움 따위 없기는 했지만 그걸 ‘친구 부모님’이 봤다고 하니 좀 그렇다.
미친놈으로 오해해서 앞으로 봄이랑 놀지 말라 한다면?
유일한 말동무가 사라지는 셈 아닌가?
그럴 수는 없었다.
봄이를 잃을 수는 없다!
“밥 안 먹어?”
“…먹어야지.”
나는 밥과 나물때기를 한 큰술 떠서 입에 밀어 넣었다.
고추장이 있으면 딱인데, 우리 학교 영양사는 그 정도까지의 센스는 없는 듯했다.
“으….”
“입맛이 별로 없어? 아까부터 표정이 어두워….”
“그게….”
너희 집 가는 게 부담돼서 그래.
이렇게는 절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그냥 선물 뭐 들고 가야 하나 고민돼서.”
“선물? 꼭 들고 와야 돼?”
“나도 돈 버는데 빈손으로 가기는 좀….”
“음….”
봄이는 수저를 입에 물고서 같이 고민을 해주었다.
다만, 쉽게 답이 내려지지는 않았다.
“어머니 뭐 좋아하시는 거 없어?”
“…그림?”
난 그림 못 그린다. 직선이랑 원조차 못 그리는 절망적인 재능의 보유자였다.
사가는 건 돈이 없으니 무리고.
“아니면 음악감상…? 특이한 앨범 많이 모으시거든. 클래식 같은 것도.”
“오.”
하긴. 딸한테 클래식 시키는 사람이 음악에 아예 문외한일 수는 없겠지.
“…내가 salt swimming 켜는 거 좋아하셨어. 녹음해 둔 거 자주 들으시던데.”
그렇구나.
음악감상이 취미구나.
그렇다면….
“그러면 그거 아예 새로 녹음해서 드릴까?”
“…진짜?”
봄이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딱히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가방에 노트북이랑 핀마이크도 있고.
돈도 안 들고.
‘환심 좀 사두자.’
봄이랑은 앞으로 오래오래 같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정도는 충분히 할 만했다.
우리는 곧바로 연습실로 향했다.
봄이의 바이올린에 핀마이크를 연결하고, 인풋 밸런스를 잘 조정하고, 녹음.
예전에 만들어 두었던 인스트루멘탈을 수정해서 트랙에 깔고, 쉬는 시간마다 믹싱, 마스터링까지.
‘봄이도 따로 녹음을 해두긴 했을 텐데.’
물론 우튜브를 확인했을 때, 아직 그 수준이 높아 보이지는 않았다.
지금은 내가 만져둔 게 훨씬 듣기 좋을 거다.
“갈까?”
“응!”
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떼며 하굣길에 올랐다.
대로에서 버스를 타고, 삼성동으로.
고급 주택단지가 늘어서 있는 부촌으로.
‘…무슨 시부랄펠리스 같은 곳이 아니네?’
내 머릿속 부자들이 사는 곳은 고급 아파트에 외제 차가 겁나 세워져 있는 곳인데.
그 수준이 아니다.
진짜 여긴 찐 부자들이 몰려 있는 곳이었다.
‘봄이네 재력을 좀 얕보고 있었던 거 같아.’
나는 늘어서 있는 저택 중 한 곳에 들어갔다.
넓은 마당, 세련되고 큰 집, 그리고 우리를 마중 나오시는 주름이 적은 중년 여성.
눈매랑 코 언저리가 봄이랑 완전 판박이였다.
“어머~ 어서와! 네가 도일이구나?”
“안녕하세요.”
“그래그래! 너무 반가워! 우리 집이다~ 생각하고 편히 있어도 돼!”
“감사합니다!”
…봄이 어머니는 내 생각보다 훨씬 살가웠다.
손수 과일도 깎아 주시고, 음료수도 내 주시고.
뭔가 부자 하면 다짜고짜 김치 싸대기 날리거나 갑질하는 것밖에 안 떠올랐었는데.
내 생각이 얼마나 얕은 건지 잘 알겠더라.
“진짜 맛있네….”
“잘됐다아.”
물론,
“바지는 왜 자꾸 벗는 거니?”
…내가 걱정하던 질문이 돌아오기는 했다.
그리고 나는, 그냥 어그로 끌려고 그랬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어서 무리수를 뒀다.
“…일종의 행위예술입니다.”
“그렇구나!”
“…?”
뭐지.
거기서 질문이 끝났다.
“대단하네. 벌써부터 그 나이에.”
“아뇨….”
“행위예술 세계는 어려울 텐데. 응원할게.”
…그뿐이랴, 칭찬까지 들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가?’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는 없어서 확신은 못 하겠는데.
그림 쪽 예술인은 아무래도 음악 쪽 사람보다 오픈 마인드인 듯했다.
“집 구경할래?”
“그래도 돼요?”
“물론이지!”
봄이 어머니는 곧바로 집 구경을 시켜주셨다.
가장 인상에 남은 것은 바로 화방.
처음 발을 내디딜 때는 뭔 반응을 해야 할지 좀 걱정이 되긴 했는데,
‘다행히 현대미술을 하시는 분은 아니네.’
캔버스에 놓여 있는 것은 뭔가 좀 난해하면서도 일반인도 알아먹을 수는 있을 정도의 풍경화.
나는 순수하게 감탄을 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구석탱이에 적힌 익숙하기 그지없는 이름을 보자, 감탄은 경악으로 바뀌었다.
“백서현….”
“응. 백서현! 내 이름이야.”
….
나는 입을 쩍 벌렸다.
이유는 별다른 건 없고, 그냥 유명인이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미술계의 스타.
작품 하나가 10억에 팔렸을 때는 TV, 신문, 국뽕 채널에서 몇 번씩이나 떠들더라.
화귀 전엔 그냥 딴 세상 사람인 줄 알았는데, 봄이네 엄마였구나.
“우와….”
가장 먼저 보인 반응은 당연하게도 감탄이었다.
“딸 친구가 그러니까 부끄럽네~ 후후.”
봄이 어머니, 아니 백서현 화백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우아하게 마지막 작품을 안내했다.
에메랄드 빛 바다의 표면. 대체 뭔 소재를 썼는지 광적일 정도로 세밀하고 반짝이게 표현되어 있는 작품.
그 이름은… salt swimming.
“어…?”
“엄마 이런 것도 그렸어…?”
“우리 도일이가 봄이한테 만들어준 곡 있지? 그거 들으면서 그렸어!”
….
대단하다.
순수하게 대단하다.
‘맞아. 이런 느낌으로 곡을 썼지.’
듣는 사람이 시원한 바닷가의 풍경을 떠올렸으면 했다. 그리고 봄이 어머니는 내가 생각한 걸 그대로 그림으로 옮겼다.
뭐랄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마치 팬레터를 받아 본 기분이랄까.
“…대단해요.”
“나중에 우리 딸이 앨범 내면 앨범커버로 쓰면 좋을 것 같은데….”
“딱이네요.”
“허락해 준 거야? 고마워!”
뭐, 솔직히 허락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그럴 생각이었지만.
“아 맞다.”
…집들이 선물을 언제 건넬지 고민이었는데, 마침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졌다.
나는 가방에서 USB를 꺼내어 건넸다.
“이건?”
“봄이 salt swimming 녹음본 완전판이에요.”
“…!”
크게 떠지는 눈.
내 손을 꼭 잡으시는 백서현 화백.
“너무 고마워.”
뭐랄까, 진심이 전해졌다.
‘미친놈으로 생각하고 있으면 어떡하나 고민했지만….’
바지 관련해서도 그냥 스무스하게 넘어가 버렸고.
제대로 이미지 메이킹을 한 거 같아서 다행이었다.
“그래, 나도 받고만 있을 수는 없지.”
백서현 화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천으로 덮여 있던 그림을 내 앞으로 옮겼다.
뭐지.
보답으로 그림이라도 주려는 건가…?
백서현 화백의 그림을 공짜로…?!
“이거, 드라마에 나올 작품이야.”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실 뭐 말이 안 되는 일이기는 하지.
그림 그리는 거 하나에 수천씩 하는 양반인데.
나는 부풀었던 감정을 최대한으로 숨기며 물었다.
“드라마요?”
“이번에 친구가 화가 주제로 드라마 만들고 있거든.”
“오.”
“제목은 신이 내린 미대생.”
…뭔가 웹소설 원작 같은 이름.
나는 그 이름을 알고 있다.
아니, 안다는 수준이 아니라….
‘…미술 계열 드라마 중에 최대 아웃풋 아닌가?’
전통적인 한국의 러브라인 스토리텔링을 최대한 배제한, 진짜 미술에 대해 깊게 다루는 드라마.
드라마를 거의 안 보는 나조차도 2회 정주행을 했을 정도로 성공한 작품.
“와우.”
감탄사가 그냥 자동으로 터져 나왔다.
그리고 봄이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거기에 나왔던 바이올린 OST 중 하나가 봄이의 손을 거친 거였구나.
이건 진짜 순수하게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성공할지 어떨지는 난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미술 관련 드라마잖니? 그림이 필요해서 내 거 갖다 쓴대.”
“대단하시네요….”
뭐 자랑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상대가 백서현이다.
그냥 그런가 보다 싶은 기분.
별다른 감정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림이 나올 때 음악도 중요하다네? 일종의 해설 역을 하니까.”
“…그렇군요.”
…사실 그 부분은 잘 기억이 안 난다.
스토리가 워낙 탄탄한 작품이었으니까. 곡이 뭐 미스매치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 정도만 해도 어디야.
“그렇지?”
“네.”
“생각 있니?”
“…네?”
…일순간 뭔가 싶었다.
생각 있니, 라길래 ‘넌 생각이란 걸 하고 사니?’라는 의미인가 싶기도 했다.
다만 아니었다.
“…드라마 곡 한번 만들어볼래?”
그는 지금 나에게,
‘드라마’ 판에 진출해 보겠냐고 묻고 있는 것이었다.
꿀꺽.
삼켜지는 침.
시야를 뒤덮는, 마치 몽크의 절규가 3배 정도 일그러져 버린 듯한 그림.
“그림이 몇 점 나올 건데, 곡으로 표현하면 돼. 이건 오케스트라 형식.”
만약.
정말로 내 곡이 저 드라마에 삽입된다면.
삽입된 곡이 호평을 받는다면.
…지금까지와는 비교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엄청난 파급력을 불러올 거다.
“제가 맡아도 되는 거예요?”
“난 그냥 다리만 놔 주는 거야. 들어보니까 이 그림은 오케스트라 쪽에 오퍼가 가서 어려울 거 같은데… 다른 쪽은 남아 있어.”
…그렇겠지. 이미 오퍼가 갔겠지.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씬에 나오는 그림이니까.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근데,
‘뺏어올 수만 있다면….’
나는 손이 덜덜 떨렸다.
머릿속에 수많은 가정이 스쳐지나갔다.
‘오케스트라라….’
솔직히 말해, 당장 실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조건이다.
오케스트라라고, 말은 쉽지 관현악단의 경우 머릿수만 최소 70명이다.
이들을 한 번에 고용해서 연습시켜 풀 세션 녹음을 한다?
…돈이 얼마나 깨질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정통’ 오케스트라를 고집하라는 말은 없었으니까.
현대의 작곡가는, 언제나 편법을 달고 사니까.
그러므로 나는-
“…가능.”
친구 어머니의 앞이라는 것도 새까맣게 잊은 채, 그리 말하고 말았다.
“그래도 해보려고…? 씩씩하네! 이쪽으로 연락 넣으면 돼.”
봄이 어머니는 내게 명함 하나를 손에 쥐여주셨다.
“아줌마는 가볼게? 둘이 오붓한 시간 잘 보내고. 아, 너무 오붓해지지는 말고!”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훌훌 떠나 버리셨다.
“오붓한 시간이라….”
“….”
우물우물.
입술을 씹는 봄이.
씨익.
올라가는 나의 입가.
“…봄이야.”
“으… 응!”
봄이의 귀가 새빨개졌다.
무슨 상황을 기대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상관없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나 좀 도와줘.”
“…응?”
“오케스트라를 만들 거야.”
“누가?”
“네가.”
70명을 고용할 돈은 없다.
그러면 한 명한테 70인분을 시키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