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75)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75화
프란치스코
황제는 이번 테러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티그리스, 레인로버, 베르강, 바스티얀, 트리샤, 샤를로트, 아이린, 리니아 그리고 라칸까지 연회장 한쪽에 있는 응접실에 모였다.
상석에는 토드 황제가 앉아 있었는데, 토드 황제의 표정은 그리 좋아 보이지 못했다.
실제로 토드 황제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키메라 실험실 사건이 터진 지 불과 몇 개월 되지도 않았는데, 봄의 궁전에서 자살 테러라니.
내일 있을 조례 회의에서 신하들의 얼굴을 어떻게 보란 말인가?
다행히 막았으니 망정이지 만약 막지도 못했다면, 황실의 권위에 사라지지 않을 큰 상처가 남을 뻔했다.
토드 황제는 물을 한 잔 들이켜 불타는 속을 진정시켰다.
일단 이 사태가 왜 일어났고, 어디에서 안보에 구멍이 났는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일단, 이 사태의 경과보고는 베르강에게 대강 들었다. 하지만 이리 그대들을 부른 것은 내가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 하여 부른 것이다. 그러니 솔직하게 이번 사건의 경위를 설명해 주거라.”
토드 황제는 티그리스를 보며 말했다.
“티그리스 자네가 이번 테러 진압을 지휘했다고 들었네. 자네가 먼저 정리해서 설명해 줄 수 있는가?”
“예. 폐하.”
티그리스는 시간 순서대로 설명했다.
라칸의 이상 행각을 눈치채고 트리샤를 포함한 네 사람을 보낸 것, 라칸이 제공한 정보를 베르강과 바스티얀 그리고 나달에게 공유한 것까지 담백하게 보고했다.
티그리스의 보고가 끝을 달릴수록 황제의 눈은 티그리스보다 라칸에게 향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테러의 조짐을 최초로 눈치챈 사람도 라칸이고, 테러를 막는 데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한 것도 라칸이었다.
한마디로 라칸이 없었다면 테러를 막기도 전에 끝이 났으리라.
토드 황제는 라칸을 보며 말했다.
“혹시 이번 테러 사건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피오라 극단에 들어간 것인가?”
“아닙니다. 폐하. 전혀 몰랐습니다.”
“그럼 피오라 극단에 왜 들어간 것이지?”
라칸은 티그리스를 흘금 보며 말했다.
“티그리스 경이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저를 피오라 극단의 단역으로 심어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좀 전에 라칸과 대화를 나누어 정리되었기에 티그리스는 당황하지 않았다.
물론 황제 폐하께 거짓을 고했다는 것이 양심에 찔리긴 하였으나, 라칸의 ‘시스템’을 설명하지 않는 한 제대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일단 오늘은 이렇게 넘어가기로 했다.
“티그리스 경은 매번 나를 놀라게 하는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가?”
“그저 황국의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번 일의 최고 공헌자는 라칸입니다. 전 혹시나 있을지 모를 위험을 대비해 라칸을 심어둔 것뿐이며, 실제로 긴장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임무를 명확하게 수행한 것은 라칸입니다.”
“그러고 보니 라칸 자네의 관찰력이 뛰어나다 들었으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 어떻게 테러범이란 것을 알아차린 것이지?”
라칸은 공손히 대답했다.
“마티아 사제가 변장한 비스코는 피오라 극단에서 친하게 지내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말투가 변하고 뭔가 숨기는 기색이 역력하기에 알아차린 것입니다.”
“허……. 정말 대단하군. 과연 티그리스 경이 아껴 사용하는 이유가 있었군. 자네의 공은 짐이 반드시 기억하고 그에 맞는 상을 내리겠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토드 황제는 베르강을 보며 말했다.
“베르강. 마티아가 어떻게 봄의 궁전에 들어올 수 있었는지 조사가 되었나?”
“예. 그렇습니다. 마티아는 피오라 극단의 단주 ‘말레’의 초대로 오게 되었습니다. 말레와 마티아 사제와의 접점은 그전에 없었고, 황도 빅토리에의 루체트 성전에 축사 기도를 위한 사제를 부탁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럼 마티아는 루체트 성전에서 보낸 것이라 이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그의 신분은 루체트 성전의 교구장인 ‘프란치스코’가 보증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현재 황금 기사 3개 소대와 철혈 마법사 1팀을 루체트 성전으로 파견하여 프란치스코 교구장의 신병을 확보하도록 지시해 둔 상태입니다.”
토드 황제는 살짝 떠는 손으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프란치스코 교구장이 관련돼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군. 30년이 넘도록 알고 지내던 사이인데…….”
토드 황제는 다소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토드 황제의 즉위식 때 머리에 기름을 부어준 사람도 다름 아닌 프란치스코 교구장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토드 황제가 독실한 룩스교 신자인 만큼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는데 이번 테러 사건의 배후자로 의심이 되니 굉장히 충격이 컸다.
그러나 티그리스는 알고 있었다.
레비스의 ‘노화의 저주’가 걸린 물을 건넨 사람이 바로 프란치스코 교구장이라는 것을.
거기에 더해 프란치스코는 황국 내 룩스 교인들을 진두지휘하며 내란 및 내분을 일으켜 황국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자였다.
티그리스도 만약 마티아가 프란치스코의 소개로 온 사람이란 것을 알았다면 반드시 경계했을 것이지만 놓치고 말았다.
‘어서 회귀록을 알릴 필요가 있다.’
만약 티그리스의 회귀록과 인명록을 황제가 알고 있었다면, 이 사태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토드 황제는 아주 무거운 이야기에 눈을 내리깔고 있는 트리샤를 포함한 네 사람을 보며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구장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지. 그것보다 그 수증기 폭발 마법은 어떻게 파훼한 것이지?”
바스티얀이 말했다.
“신이 말씀드리겠습니다. 해당 마법은 라칸을 포함한 피오라 극단의 단원들이 마신 일종의 ‘촉매제’를 반응시키는 형태로 구성된 마법입니다. 저는 촉매제와 음료수를 구분하고 촉매제의 구성 성분을 파악한 뒤, 그 촉매제의 반응을 억제하는 마법을 펼쳐 수증기 폭발 마법을 막은 것입니다.”
바스티얀이나 나달 정도의 대마법사가 아닌 이상 10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단번에 폭발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티아는 몰래 들여온 촉매제를 음료수에 타는 작업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테러 진행이 더뎌진 것이었다.
“그럼 어떻게 마티아 사제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신을 할 수 있었던 거지?”
티그리스가 입을 열었다.
“신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건 수인족들의 ‘변장’ 주술이라고 합니다. 원래 꼬리나 귀를 감추는 용도로 사용하지만, 지금처럼 아예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런 주술이 있단 말인가? 마법으로 감지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주술은 오직 주술로만 파훼가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일 이와 같은 사태를 막으시려 한다면 수인족 자치구의 주술사들을 고용하는 것이 제일 좋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르펨이 드라코레퀴엠에 잠입해 봉인된 용을 깨울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수인족의 변장 마법 때문이었다.
만약 이번에 수인족의 도움을 받게 된다면, 수인족과의 관계도 개선될 뿐만이 아니라 황궁의 안보도 더욱 튼튼해질 것이 분명했다.
“그 문제는 대장로 테호가 오는 날 이야기를 해봐야겠군. 자네의 조언은 기억해 두겠네.”
“황은이 망극합니다.”
황제는 베르강을 보며 말했다.
“내일 아침 회의 때, 이번 사태에 관한 회의를 열겠다. 황궁에 테러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완전히 숨길 순 없다. 그러니 테러가 일어나려 했지만, 성공적으로 막아냈다는 사실만 알리도록. 무슨 뜻인지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폐하.”
토드 황제는 레인로버를 보며 말했다.
“레인로버. 네겐 언제나 미안하구나. 네가 생일에도 이런 일을 겪게 하다니. 아비로서 고개를 들 면목이 없구나.”
“아닙니다. 폐하. 만약 제가 연극을 보고 싶다고 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제 책임도 있습니다.”
“아니다. 이것은 짐의 책임이 크다. 황실의 위엄을 세우지 못한 내 책임이야. 감히 봄의 궁전에서 이런 간악한 짓거리를 저지르다니…….”
토드 황제는 수치심과 분노에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네게 부끄럽지 않은 아비이자 군주로서 황국의 위엄을 세우겠다. 그러니 믿고 기다려 주거라.”
황녀는 고개를 숙였다.
“예. 알겠습니다. 폐하.”
토드 황제는 베르강을 보며 말했다.
“이번 일과 관련된 자들의 심문과 조사는 베르강 자네에게 모두 일임하겠네. 특히 프란치스코 교구장은 철저히 조사하게.”
베르강은 고개를 숙였다.
“예. 알겠습니다. 폐하.”
* * *
궁녀들이 모두 떠나자 레인로버는 침대에 털썩 누웠다.
그녀의 보드라운 머리칼이 장미꽃밭처럼 흐드러졌다.
레인로버는 홀로 중얼거렸다.
“오늘 정말 힘들었다.”
몸보단 정신이 너무 힘들었다.
행여나 라칸과 단원들이 죽을까 봐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모든 게 정말 잘 끝나서 다행이지 만약 희생자가 한 명이라도 생겼다면, 잠자리에 들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사선을 몇 번이고 넘어온 건가…….”
글로 읽었을 때와 실제로 몸으로 경험해 본 것은 차원이 달랐다.
[빅토리에에 아르펨이 잠입해 용을 깨웠다.] [레비스가 베오울프를 습격하여 포만의 저주를 걸었다.] [토드 황제 폐하께서 프란치스코가 건넨 성수를 마시고 노화의 저주에 걸려 돌아가셨다.]…….
이런 문자의 나열이 주는 긴장감은 오늘 겪은 테러에 비하면 아무렇지도 않았다.
두근- 두근-
레인로버의 심장이 다시 미친 듯이 뛰었다.
이대론 뜬눈으로 밤을 새울 것 같았다.
“아, 맞다.”
레인로버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탁상에 놓인 보라색 상자를 집었다.
티그리스의 선물이었다.
-이게 뭔가요?
-늦었지만 생일 선물입니다. 황녀 전하.
티그리스는 집으로 떠나기 전, 레인로버에게 선물을 건넸고 그 자리에서 풀어보려 했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아 열어보지 못했었다.
‘뭐가 들었을까?’
레인로버는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붉은 루비 목걸이와 은빛 날개 문양이 박힌 반지가 한 세트로 들어가 있었다.
붉은 루비 목걸이는 ‘페르셴과 아드네’였고, 은빛 날개 문양의 반지는 ‘은빛 수호의 반지’라는 이름의 성물이었다.
그 아름다움에 순간 매혹되어 입꼬리가 올라갔지만, 얼마 가지 않아 입이 툭 튀어나왔다.
“……다 좋은데 센스가 없어.”
이런 반지 선물을 줄 거였으면 아무리 바빠도 직접 끼워줘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사소한 것에 감동하는 것이 여자란 생물인데 티그리스는 몰라도 너무 몰랐다.
“하긴 연애를 해봤어야 이런 센스가 생기지.”
티그리스의 회귀록엔 티그리스가 연애나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가 없었다.
그렇다면 만약 자신과 결혼을 하게 된다면, 회귀 전후를 포함해서 자신이 첫사랑이자 결혼 상대라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졌다.
“……뭐, 그건 나쁘지 않을지도?”
이런 서투름이 그 증거라고 생각하니 뭔가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레인로버는 반지를 꺼내 어느 손가락에 끼울지 고민했다.
“에잇.”
레인로버는 왼손 약지에 끼웠다.
반지는 레인로버의 얇은 손가락에 맞춰 자동으로 줄어들었다.
그러자 반지에 달린 은빛 날개가 펼쳐지더니 레인로버를 포근하게 안았다.
긴장감 때문에 가슴을 꽉 조이던 답답함이 사라지고 두근거리던 심장이 고요해졌다.
은빛 수호의 날개의 능력 중 하나인 ‘최상의 컨디션’ 능력 덕분이었다.
그 외에도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무조건 방어해 주는 ‘은빛 방호’와 독이 든 음식을 집으면 색이 변하며 경고해 주는 ‘독 감지’ 능력 등이 있었다.
당연히 이 성물은 1등 보고에 있던 성물이었다.
“티그리스 경이 필요한 성물을 가져오라니까 왜 나한테 이런 걸 주는 건지……. 그만큼 내가 필요하다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기분이 좋아졌다.
“흠…….”
레인로버는 잠시 생각하고 왼손 약지에 낀 반지를 뺐다.
그리고 검지에 다시 옮겨 끼웠다.
“약지는 주인이 따로 있겠지.”
레인로버는 루비 목걸이를 목에 건 뒤 침대에 누웠다.
레인로버는 마치 콩벌레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루비 목걸이와 은반지를 매만졌다.
어렸을 적 애착 인형을 껴안고 자는 느낌이라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언제든지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면 티그리스가 달려와 지켜줄 것이란 안도감 때문이었다.
레인로버는 몇 분 뒤 고요한 숨을 내쉬며 잠이 들었다.
* * *
베르강은 프란치스코 교구장과 마주 보고 앉았다.
“잠은 잘 주무셨습니까?”
“제 집보다 훨씬 더 좋아서 쉽게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프란치스코는 테러 모의 및 사주 혐의를 받고 있는 용의자 신분이지만, 철창이 있는 감옥이 아닌 굉장히 고급스러운 수감실에 수감되어 있었다.
프란치스코는 평민 신분이긴 하지만 고위 귀족 취급을 받기도 했고, 아직 프란치스코가 테러를 모의하거나 사주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프란치스코는 황도 내 룩스 교인들에게 있어서 올바른 사제의 표상으로 취급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황국이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대하면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었다.
베르강은 프란치스코의 인자한 미소에서 여유로움을 감지했다.
아무리 베르강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을 해코지할 수 없을 것이란 확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베르강의 속이 뒤틀렸다.
티그리스의 회귀록에 따르면 이자는 레비스의 저주가 담긴 물을 건네 토드 황제를 죽인 살인범이다.
그런 놈을 상대로 표정을 관리해 가며 조사에 임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짜증이 났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프란치스코는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괜찮습니다.”
“마티아와 무슨 관계십니까?”
프란치스코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마티아 사제는 저번 달 즈음에 길리온 왕국에서 온 일반 사제였습니다. 늦은 나이에 사제가 되었지만 젊은 사제들보다 열정적으로 성전 일을 돕고 봉사활동도 하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이는 아니었습니까?”
“아니었습니다. 마티아 사제는 루체트 성전에 온 지 1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만 제가 워낙 바빠서 첫 면담 때를 제외하면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런 자에게 봄의 궁전에 출입할 수 있는 추천서를 써준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티아 사제는 빅토리에에 온 지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빅토리에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 마티아 사제의 식견을 쌓아주고자 하는 이유도 있었고, 마티아 사제의 기도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어 적합한 인재라 생각했습니다.”
프란치스코의 말은 막힘이 없었다.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될 줄 알았다는 듯이 미리 짜고 준비한 듯했다.
자신은 언제든지 빠져나갈 구멍을 수십 개는 준비해 둔 모양이었다.
“그럼 마티아 사제가 5서클의 마법사였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까?”
“전혀 몰랐습니다. 제가 볼 수 있는 사제의 기록은 룩스교에 몸을 담은 이후의 것밖에 없습니다. 그가 사제가 되기 전에 무엇을 했고 어떤 일을 해왔는지는 저희에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저 그 사제가 룩스교의 신자이자 길 잃은 양들을 이끄는 목자로서의 소임을 수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서만 중점적으로 확인합니다.”
실제로 루체트 성전의 마티아 사제의 기록을 확인해 봤을 때, 3년 전 사제가 되었다는 내용과 길리온 왕국의 수도 마리나의 ‘에게우스 성전’에서 사제로 활동했다는 기록밖에 없었다.
이건 비단 마티아 사제뿐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다른 사제들과 루체트 성전을 지키는 성기사들도 룩스교에 들어오기 이전의 기록은 하나도 없었다.
이런 사실은 베르강도 전혀 알지 못했기에 등골이 오싹했다.
그 말은 루체트 성전의 사제들과 성기사들은 잠재적 테러범이나 다름이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이번 일은 정말 유감스럽게 되었습니다. 저도 마티아 사제가 그런 불온한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진심으로 죄송스럽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러나 이 문제가 룩스교의 탄압으로 이어져선 절대로 안 됩니다. 빅토리에의 150만 교인들을 생각하십시오. 그들은 룩스 여신님의 가르침을 통해 마음의 안식을 받아 매일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약 이번 일로 그들을 저버린다면 빅토리에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베르강의 눈을 정확히 보며 말했다.
“그건 저나 다른 사제들도 막을 수 없을 겁니다.”
프란치스코의 말은 룩스교를 건드리면 내분을 일으키겠다는 협박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게 가능하다는 것도 베르강은 알고 있었다.
실제로 빅토리에의 백성 중 절반 이상이 룩스교의 신자다.
물론 성실하게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의 숫자는 적긴 하지만 자신이 신자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굉장히 높다.
만약 이번 일로 룩스교를 탄압하고 사제들과 성기사의 과거가 의심된다며 쫓아낸다면 황제는 한순간에 룩스 교인들의 적이 될 수 있었다.
‘지금으로선 어떻게 할 방법이 없군.’
역시 지금 프란치스코와 같은 거물을 건드리는 것은 굉장히 힘들었다.
실제로 프란치스코를 황금 기사들이 데려갔다는 것 하나만으로 룩스 교인들이 성문 앞에서 시위하고 있었다.
[루체트 황국은 상상 이상으로 곪아 있다.]베르강은 티그리스의 회귀록 첫 페이지에 적혀 있는 그 말이 너무나도 와닿았다.
그러나 이렇게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신분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황도 빅토리에는 물론이고 각 영지에 박혀 있다는 뜻은 적군의 병력이 대놓고 활보한다는 뜻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똑- 똑-
그때, 수감실 문이 열리며 황금 기사 하나가 들어왔다.
“베르강 단장님. 손님이 왔습니다.”
베르강은 프란치스코 교구장에게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수감실 밖으로 나가자 하얀 중절모를 쓴 창백한 사내가 있었다.
인퀴지터의 일곱 머리의 수장 나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