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writer who lives again RAW novel - chapter 73
바로 그녀 옆자리의 신입 사원이었다.
“장 사원, 한국계였지?”
“네. 그런데요?”
전형적인 한국인의 얼굴을 할 젊은 남자.
그는 5살 때 한국에서 프랑스로 이민을 온, 장 스테판이었다.
* * *
화요일.
한국대 특강 후 습관처럼 도서관으로 향했다.
인수대에선 구할 수 없던 책들을 잔뜩 빌리는 것.
요즘 나의 새로운 취미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우웅―
톡이 하나 왔다.
김미소 작가였다.
― 작가님, 특강 끝나셨죠? 지온 언니랑 민상 오빠랑 같이 있는데 저녁 드실래요?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 좋죠.
나는 읽던 책을 추리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한국대 근처의 선술집.
그들은 안주를 저녁 삼아 먹고 있었다.
대학생이라도 된 것마냥 들뜬 분위기.
“이상 작가님.”
현민상 시인이 손을 들어 보였다.
반주를 좀 했는지, 얼굴이 붉었다.
“저희, 그 얘기 하고 있었어요.”
한지온 작가가 내 앞에 잔을 놓으며 말했다.
“무슨 얘기요?”
“앤솔로지요.”
“이 두 사람, 하겠대요.”
김미소 작가가 말했다.
“정말요?”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네. 안 할 이유가 없더라고요. 민상이도 같은 생각이에요.”
“사실 좀 고민했거든요.”
현민상 시인이 말했다.
“문단에서 미움받기 싫어서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알죠.”
대한문학상 본심에 오른 상태에서 이상과 함께 활동한다는 것.
정치적으로 썩 좋은 선택은 아니니까.
“그래도 작가님 작품이랑 비평을 같이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현민상 시인이 말했다.
“작가님이 더 유명해지기 전에 이번 기회에 같이 ‘놀아 봐야겠다고’요. 상은 개나 주라고 하고요. 하하….”
취했군.
하지만 의외로 한지온 작가도 그 말을 거들었다.
“맞아요. 공신력도 없어진 상 같은 거, 저희도 별로 내키지 않아요. 민상이 말처럼 작가님이랑 놀아 보려고요.”
‘논다’라.
재밌는 표현이었다.
문학은 유희다.
그것도 고도의 미학적 유희.
‘구인회’도 문학을 그렇게 생각했지.
문학이란 그럴듯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게 아니라, 문학 그 자체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어느새 술이 채워진 잔을 들었다.
“좋아요. 그럼, 같이 한번 놀아 보죠.”
그들이 잔을 부딪쳤다.
“짠!”
우리는 술을 한 모금씩 들이켰다.
계획에 없던 음주였지만 즐겁게 마실 수 있었다.
“그런데… 김미소 작가님 괜찮으시겠어요? 논문 준비랑 병행하시려면….”
“죽었다 생각하고 해야죠. 괜찮아요. 언제나 바쁜 건 똑같으니까.”
“김미소는 한 달에 단편 소설 하나씩 쓰는 괴물이니까 괜찮을걸요?”
현민상 시인이 칭찬인지 조롱인지 모를 말을 했다.
“말을 맙시다.”
김미소 작가는 됐다는 듯 입에 술을 털어 넣었다.
‘몰골’을 보아하니 어제도 학교에서 밤을 샌 것 같은데, 괜찮으려나 모르겠다.
아무튼.
“자, 그럼 이제 실질적인 얘기를 해 봐요. 저는 앤솔로지를 책으로 내는 것도 좋지만, 일단 신―문학에서 온라인으로 발표했으면 해요.”
“저희도 그게 좋을 것 같단 얘기를 했어요. 부담도 적고.”
한지온 작가가 말했다.
“그럼 제가 신라문학에 앤솔로지를 위한 게시판을 마련해 줄 수 있느냐고 요청해 볼게요. 그게 잘 되면 출판까지. 동의하세요?”
내 물음에 세 사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상 작가님, 이번에는 뭘 쓰실 거예요? 소설? 시?”
한지온 작가가 물었다.
그러자 현민상 시인이 졸랐다.
“시 쓰세요, 시.”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소설 쓸 거예요. 단편 소설.”
“왜요? 시 둘, 소설 둘. 딱 좋은데.”
“한동안 시를 붙잡고 있었더니, 산문을 쓰고 싶어서요. 시는 쓰고 싶은 게 있을 때 다시 쓰면 되고요.”
“아니, 그래도….”
“민상 오빠, 그만. 사심 채우지 말고.”
김미소 작가가 현민상 시인의 말을 딱 잘랐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김미소 작가가 듬직하다.
한지온 작가가 말했다.
“그럼… 이제 가장 중요한 얘기만 남았죠?”
가장 중요한 얘기.
나는 대답했다.
“네. 앤솔로지의 주제어. 즉, 키워드를 잡아야죠.”
71화
여러 작가가 참여하는 앤솔로지.
당연히 통일된 키워드가 필요하다.
키워드는 대체로 작가들 합의를 통해 정해지기 마련.
현민상 시인이 말했다.
“저는 너무 감정적인 것만 아니면 돼요. 사랑, 눈물… 뭐 이런 거. 제가 서정시는 정말 못 쓰거든요.”
“판타지스러운 것도 좀… 리얼리즘이 살아 있는 편이 좋아요.”
김미소 작가도 한마디 했다.
나는 한지온 작가에게 물었다.
“작가님은요?”
“저는… 모두에게 비슷한 무게를 주는 키워드였으면 좋겠어요. 너무 어렵거나 지엽적이어서 소외당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게.”
“…역시 언니는 달라. 우린 너무 이기적이었어. 그렇지, 민상 오빠?”
“어. 할 말이 없다.”
두 사람은 잔을 짠 하고 잔을 부딪쳤다.
한지온 작가가 내게 물었다.
“작가님은 생각하신 키워드가 있나요?”
키워드는 아직 없지만, 하고 싶은 건 있다.
이 앤솔로지 모임의 의미를 담는 것.
나는 이들에게서 과거의 ‘구인회’를 본다.
그때의 편안함과 즐거움을 비슷하게 느끼고 있다.
…이 감정을 보다 일반적인 단어로 바꾸자.
이 세상 모두가 가지고 있는 ‘그것’으로.
나는 그들에게 넌지시 말했다.
“‘기억’은 어때요?”
“기억… 기억….”
한지온 작가가 읊조렸다.
현민상 시인은 잠시 고민에 빠져 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데요?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단어.”
“쓸 수 있는 이야기의 범주가 넓을 것 같아요. 저도 찬성!”
김미소 작가도 좋은 모양이었다.
한지온 작가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기억’을 가지고, 함께 잘해 보죠.”
나는 잔을 들었다.
그들의 잔들이 달려와 부딪쳤다.
그렇게 앤솔로지의 대략적인 구성이 끝났다.
‘기억’을 가지고 뭘 쓸지는… 생각을 해 봐야겠지.
* * *
프랑스 파리.
리브레 출판사.
또각― 또각― 또각― 또각―
에바 편집위원은 결연한 얼굴로 복도를 걸었다.
그녀의 품엔 파일철이 하나 들려 있었다.
그녀가 멈춘 곳은 편집장실의 문 앞.
똑똑똑!
어딘지 악에 받친 노크 소리.
그 소리만 들어도 마리옹 편집장은 알 수 있었다.
에바 편집위원이 왔다는 걸.
“들어와요.”
아니나 다를까.
에바 편집위원이 입을 굳게 다문 채 나타났다.
마리옹 편집장은 소파에 옮겨 앉으며 앞자리를 권했다.
“어서 와요, 에바. 자리에 앉아요.”
“찾았습니다, 편집장님.”
“뭘요?”
“저번에 말씀하셨던 ‘이상’의 작품관을 알 수 있는 자료요.”
“아….”
‘그런 자료가 있었어?’
마리옹 편집장은 놀랐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영어로 된 건가요?”
“아뇨. 프랑스어예요.”
“네?”
이번만큼은 놀람을 숨길 수 없었다.
한국의 신인 작가가 프랑스어 작품을 갖고 있다고?
“…소설?”
에바 편집위원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이번에도 틀리셨네요. 이상의 시와 그 시를 해석한 비평입니다.”
에바 편집위원은 서류철을 내밀었다.
마리옹 편집장이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나저나 시라니… 시는 번역하기도 힘들 텐데?’
“이걸 어디서 찾은 거죠?”
“그의 SNS에서요. 저희 팀의 인재 스테판 장이 찾아냈어요. <내외인>의 제목과 우리 리브레 출판사의 이름을 모두 태그했던데요.”
“그래요? 마치 우리를 보라고 만든 자료 같네요.”
“우리가 고민할 걸 알았다는 것처럼 말이에요.”
“…똑똑하네.”
“그 시를 보시면 똑똑하다는 말로는 설명하실 수 없을걸요.”
마리옹 편집장은 서류철을 넘겼다.
그 안에 있는 세 개의 시.
그리고 그것을 해설한 비평.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번역의 수준.
‘…수준급의 번역.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아.’
그다음에 들어 온 건 세 편의 시.
‘난해해. 하지만 난해함을 위해 써진 시는 아니야. 간간이 느껴지는 확실한 이미지가 대단히 파괴적이고, 매력적이야. 그런데 이 좋은 시에 비평을 굳이 붙인 이유가…?’
그녀는 마지막으로 비평을 읽어 보았다.
짧지 않은 글.
그러나 번역이 워낙 좋아 술술 읽혔다.
“이건…!”
마리옹 편집장은 세 개의 시를 다시금 봤다.
그녀는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이 비평의 존재 의미를.
이상의 시는 대단하다.
<내외인>과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그의 시의 미학은 난해함에서 온다.
즉, 난해함은 피할 수 없는 숙명.
그리고 그에 대해 약간의 길을 잡아 주는 비평이란….
“…적재적소네요, 이 비평.”
“편집장님.”
에바 편집위원은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
“이상의 작품관은 제가 더 덧붙이지 않아도 충분히 보여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작가 중에, 이 이상 자기 세계를 확실하게 보여 주는 작가는 흔치 않아요.”
“….”
“놓치지 마셔야 해요. 이 작가.”
“…그렇게까지 확신한다고요?”
“네. 틀림없습니다.”
에바 편집위원은 확답을 했다.
마리옹 편집장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흠….”
에바 편집위원은 긴장하며 무릎을 꽉 잡았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마리옹 편집장은 확실한 지표 없인 외국 작가의 책을 내지 않는다는 걸.
하지만 그의 소설이 말해 주지 않는가.
그만이 이룰 수 있는 미학적 성취를.
그의 시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견고한 그의 작품관을.
“…에바 편집위원.”
긴 고민 끝에, 마리옹 편집장이 입을 열었다.
* * *
기억.
나는 작업실에서 곰곰이 생각을 정리했다.
내게 기억이란 ‘내려다보는 일’이다.
내 안의 기록들을… 조감도처럼.
나는 노트에 이렇게 썼다.
<오감도>
오감도.
나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연작시다.
‘오감도’라는 단어는 건축 용어인 ‘조감도’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