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Doctor RAW novel - Chapter 421
421화 또 다른 전원 문의 (1)
“뭔데, 뭔데.”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이현종이었다.
그야말로 대학자로서의 명성이 대단한 사람이지 않은가.
그러한 자신감 덕분인지 뭔지는 몰라도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 데 일말의 주저함이 없었다.
“독수리 증후군이요.”
“응?”
“뭔…….”
“뭔 소리야, 갑자기.”
수혁 또한 이현종의 그러한 점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동시에 존경하고 있기도 했다.
결국, 발전은 내가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기에 그랬다.
이현종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제 곧 정년이 될 나이이고, 아무리 석좌 교수라 해 봐야 더 일할 수 있는 날이 몇 년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쉬지 않고 있었다.
워낙 타고나기를 천재로 난 것도 한 가지 이유이기는 하겠으나, 그가 유일하게 수혁과 맞붙어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인 된 데에는 그런 부단한 노력이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었다.
[역시 모르는군요.]‘모를 수 있지. 아무래도 이쪽은 너무 생소한 데다가……. 이건 생리적인 병이 아니라 해부학적인 병이니까.’
그럼에도 이 질환은 금시초문인 모양이었다.
대충 병 이름을 말하면 거의 다 알아듣던 이현종마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신현태나 박종국은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부연 설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물론 그냥은 좀 어려웠다.
“일단 사진을 찍죠.”
“어…… CT?”
“CT도 도움이 될 수는 있는데, 너무 오래 걸리잖아요. X-ray면 족합니다.”
“그…… 그래요? 어떤…….”
뭔가 아는 거 같은데, 자신은 아예 모르겠는 얘기만 이어지자 박종국은 은근슬쩍 수혁에게 존대를 하며 컴퓨터를 떠넘겼다.
기가 막힌 태세 전환이라 할 수 있었으나 수혁은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여전히 외부 사람이거나 혹은 태화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이 보기에 통합진료센터의 핵심은 이현종이지 않겠는가.
위에서도, 이현종도 그런 생각 때문에 센터장을 맡게 된 것일 터였다.
“이 새꺄, 호칭 정리해. 이수혁 부센터장이라고 해. 애매하게 호칭 없이 대화 이어 나가지 말고.”
“네? 아니, 선배. 제가 뭘 어쨌다고…….”
“너도 내 나이쯤 되어 보면 다 보일 거다. 은근슬쩍 응? 수혁이 얼굴 싹 피해 가지고. 빨리 부센터장님, 처방을 내려 주세요라고 말해.”
“에이, 그건…… 그건 좀…….”
“그럼 네가 처방 내 봐. 뭔 사진 찍어야 되는지 알겠어?”
“아, 아이구……. 여기 제 환자분도 계신데…….”
게다가 수혁이 나서지 않아도 이현종이 더 혹독하게 나서지 않던가.
지금도 늘 그러했듯이 아끼는 후배라던 박종국을 쥐 잡듯이 잡고 있었다.
박종국은 구원을 원하는 얼굴로 신현태를 바라보았다.
학생 때부터 이현종은 좀 이런 면이 있었더랬다.
그럴 때마다 나서서 도움을 줬던 것이 신현태였고.
“왜 날 보나?”
“네?”
박종국은 모르고 있었다.
신현태 또한 이수혁 교의 열렬한 신자라는 것을.
지금도 박종국의 체면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도리어 속으로 아, 내가 나설걸! 점수 딸 기회였는데, 이러고 있었다.
그사이 이현종의 말이 이어졌다.
여전히 굳은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처신 똑바로 하라고. 네가 나이는 위일지 몰라도 수혁이가 직급이 더 위잖아. 너는 평교수, 이수혁 교수는 부센터장. 어?”
“아, 알겠습니다. 부센터장님. 처방 좀…… 내려 주세요.”
박종국으로서는 더 버틸 재간이 없었다.
해서 박종국은 결국, 한참 어린 후배에게 처방 내려 달라는 부탁을 하고야 말았다.
“아유, 박 교수님. 그런 말씀 마세요. 일단 처방은 내렸습니다.”
그제야 수혁은 민망하다는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이미 분위기는 그에게 휙 넘어간 다음이었다.
환자도 박종국도 수혁을 바라보는 눈빛이 아예 달라져 있었다.
특히 박종국의 그것이 그랬는데, 수혁이 내린 처방이라는 게 별거 없어서였다.
“파노라마 뷰? 이게…… 이게 다인가?”
달랑 한 장만 나와 있었다.
심지어 내과에서 주로 보는 사진도 아니었다.
이건 치과에서 많이 쓰는 세팅이었다.
“어려운 사진도 아니네. 빨리 찍고 보지, 그럼.”
그렇다 보니 의심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독수리 증후군이라는 말도 너무 사자 냄새가 나지 않던가.
자신이야 처음 들어 본다고 해도 할 말이 없기는 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내분비내과 말고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그리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현종은 달랐다.
‘저 선배가…… 괴짜긴 해도…… 아니지, 괴짜라서 그런가? 하여간 나는 의학이랑 결혼했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괜히 비웃지 못했던 게 아닌데.’
근데 그런 사람이 모르는 걸 저 젊은 친구는 안다고?
이상한 일이었다.
해서 망설이고 있으려니, 이현종이 다시 한번 화를 냈다.
“이놈이 처방이 나왔으면 실행해야지, 뭐하고 앉았어?”
“아니, 처방이 좀…….”
“뭔 소리 하려고.”
“이상해서요.”
“이상? 이놈아, 네가 뭘 아냐? 의심 가는 진단이 있어? 아니면 독수리 증후군에 대해서 알어?”
“그건…… 그건 아니죠.”
“그럼 그냥 까라면 까. 창원에 있는 동안 고집이 늘었네. 어어, 이송 요원님 오셨네. 아이구, 미안합니다. 기다리셨죠? 사진 하나만 찍으면 되니까……. 찍고 모셔 와 주시면 더 감사하겠습니다.”
이현종은 그런 박종국을 신나게 까 댄 후, 이송 요원에게는 정중히 부탁했다.
환자는 여전히 뚱한 얼굴이었으나 뭐가 되었건 박종국에 대한 신뢰가 있었을뿐더러, 방금 있었던 문답을 통해 수혁에 대한 믿음도 생긴 탓에 묵묵히 검사실로 향했다.
아니, 처음엔 자기가 알아서 사진 찍는 곳으로 가겠다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태화 의료원은 원래도 거대하게 지었을 뿐만 아니라 별관 및 암센터 등 새로 지어진 건물들 때문에 구조물이 복잡하기 그지없어 반드시 이송 요원을 따라가야만 했다.
“길 잃어요. 저도 여기 일 처음 시작할 때는…… 어휴.”
이송 요원도 이렇게 말했기에 환자는 곧 그를 따라 밖으로 향했다.
그러자마자 이현종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야, 종국아.”
“네. 선배.”
표정이 별로였기에 박종국은 신중해졌다.
‘현태 형이 이수혁이 친아들이 아닌 건 맞다고 했지. 하지만 이제 보니…….’
수혁이 현종의 아들이라고 생각했다면 설령 불만이 있었더라도 입도 벙끗 못했을 터였다.
이현종이 무서워서라기보다는 이현종을 정말로 좋아해서였다.
하지만 워낙에 친한 사이라 이현종에 대해서라면 속속들이 다 알고 있었단 생각에 어처구니가 없어서 신현태를 태우던 중, 신현태의 실토를 들었기에 조금 틱틱댔는데 반응이 정말이지 심상치가 않았다.
‘친아들이라고 해도 저거보단 덜 이뻐할 듯?’
박종국은 괜히 이현종이 학자로서의 명성을 뒤집어엎고 그런 발언을 했는지 이제야 깨달은 참이었다.
“너는 외부에서 왔으니까……. 올해 외부에서 임용된 사람들이랑 좀 친하지?”
해서 뭐라고 하면 싹싹 빌어야지 하고 있는데 조금 다른 질문이 들어왔다.
“잉.”
“몇 되지도 않는데 친하게 지낼 거 아냐.”
“아……. 그렇죠. 친하게 지내고 있죠.”
“수혁이 얘기한 적 있어? 니들끼리.”
“어……. 아뇨. 아직.”
“그럼 은근슬쩍 운 좀 떼 봐. 너 보니까 제일 문제 같어.”
“아니, 저는 죄송합니다. 그…….”
“혼내는 게 아니라. 아니지, 혼내는 건 맞는데, 만회할 기회도 주는 거야. 너 나하고 일 하나 하자고.”
이현종은 여전히 진중한 얼굴이었다.
그래 놓고 대사는 영화에서 나왔던 걸 쳤기 때문에 박종국은 애써 웃음을 참아야만 했다.
‘아, 이 형은 나이가 들어도 안 변하네.’
신현태는 아예 밖으로 잠깐 나갔다.
“후.”
수혁은 환자 검사 결과를 봐야 해서 안에 남아 있었기에 길고 긴 인내의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그렇게 폭탄을 던져 놓고 이현종은 또다시 말을 이었다.
“너 내 프락치 해 봐.”
“프락치요? 갑자기 그게 무슨…….”
“외부에서 들어온 애들끼리 모임이 있으면 거기 들어가고, 아니면 네가 주도해서 만들어. 태화 출신, 비출신 가리지 말고 다 받아서…… 거기서 수혁이에 대한 거 운 좀 띄워서 가져와.”
“가져오면…… 어쩌시려고요?”
“비협조적인 놈 있으면 밟아야지.”
“아유, 그건 친일파잖아요.”
“뭔 소리야. 너네 독립운동해? 태화가 일본이야? 아니지, 우리가 독립운동하는 거고 너네가 일본 놈이지.”
“아니, 무슨 그런…….”
외부에서 온 것도 서러운데 일본 놈이라고?
박종국은 괜히 수혁 하나 잘못 건드렸다가 된통 당한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의 억울함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현종은 하나 꽂히면 거기에 대해서만 집중하는 사람이지 않던가.
“하라면 해. 넌 이제부터 내 프락치다.”
“시킬 거면 좀 멋있는 이름으로 시켜 주세요…….”
박종국도 이현종의 특성을 잘 알기에 더 거부하고 나서지는 않았다.
그저 이름 정정만 요구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안 돼.”
“아…….”
“아, 떴네요.”
그사이 환자 사진이 떴다.
사진 한 장이다 보니 찍자마자 뜬 모양이었다.
밖에 있던 신현태까지 해서 모두들 약속이라도 한 듯 사진 앞으로 모였다.
수혁은 척 보자마자 이상을 찾았으나, 일부러 뜸을 들였다.
니들도 좀 봐라, 이거였는데 과연 다들 교수들이라 그런지 따로 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 속에 사진을 열심히도 보기 시작했다.
“음…….”
“으음…….”
“흐음…….”
하지만 별로 효과는 없었다.
애초에 파노라마 뷰라는 게 치과가 아니고서는 그리 익숙한 사진이 아니었기에 그랬다.
게다가 이쪽 해부는 어렵기도 어려운 데다가 내과랑은 별로 상관이 없었다.
“모르겠네.”
“뭐가 문제지?”
“저도…….”
해서 셋 다 금세 포기하고야 말았다.
그리곤 동시에 수혁을 바라보았다.
수혁은 그런 그들을 돌아보고는 사진 구석을 가리켰다.
이가 아니라 무언가 삐죽한 구조물이 있었다.
원래 없던 것은 아니었기에 딱히 위화감이 느껴지진 않았다.
“뭐냐.”
“이거…… 경상 돌기(Styloid process) 아냐? 원래 있는 거 같은데.”
이현종은 이름도 기억하고 있었다.
거의 보지도 않는 구조물일 텐데, 과연 대단한 사람이었다.
“네, 근데 일반적인 것보다 훨씬 길어요.”
“응? 그래?”
이현종이 되물을 때쯤 환자가 돌아왔다.
해서 수혁은 환자를 사진 앞에 앉힌 채 말을 이었다.
“네, 이게 길어져서 독수리 부리처럼 보이죠.”
“오……. 그렇게 말하고 보니까, 그렇게도 보이네. 아, 그래서 이 질환명이 독수리 증후군인가?”
“네. 이게 길어지니까 목의 뒤를 찌르는 거예요. 특히 뭔가 삼킬 때는 구조물이 뒤로 가니까 푹 하고 찔리죠.”
“그렇구만…….”
“그리고 이 밑으로 경동맥이 지나요. 길어진 상태라면 고개를 돌릴 때 이 구조물에 경동맥이 눌리니까 통증도 있고.”
“혈액 순환이 안 돼서 어지럽구나. 허.”
“생각보다는 흔해요. 천 명에 하나 정도는 증상이 있어요. 이걸 생각지 못해서 놓칠 뿐이지.”
“허…….”
“심지어 경동맥이 찢길 만큼 길어지는 사람도 있는데, 이 환자분이 그렇네요. 다행히 이제 알았으니……. 이비인후과로 의뢰해서 수술하면 될 겁니다.”
– 422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