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113
113화 발파 1
* * *
그녀가 바로 뒤에 있었다.
“날 쫓아온다고?”
피식, 하고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페로로가 부여받은 인자는 총 셋.
전투를 관장하는 소의 인자,
추적과 색적이 수월한 개의 인자.
그리고 끝없이 질주하는 말의 인자였다.
강력한 각력을 지닌 그녀를 뒤쫓는다는 건 구름을 잡겠다고 손을 휘젓는 거나 다름없다.
무릎을 한껏 굽힌 페로로는 그대로 투레질하며 높게 날아올랐다.
발밑에 스프링이라도 단 듯 지붕과 지붕 사이를 오가며 활공하는 그녀는 한 마리 새처럼 자유롭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한 번 정해진 간극은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경계할 정도로 가까운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만둘 정도로 먼 것도 아니었다.
‘쯧.’
쉽게 따돌릴 것 같으면 카인이 맡기지도 않았을 터. 페로로는 입술을 잘근 씹었다. 이대로 시가지에 접어들면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번화가는 슈발체베인가의 영역. 자칫 다른 이에게 잡힐 수 있었다.
빠르게 주위를 살핀 페로로는 게양대 하나를 로프 삼아 발을 굴렀다.
휘어진 게양대가 원래대로 돌아온 순간, 앞으로 몸을 던진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문 밖에 펼쳐진 설원을 향해 내달렸다.
안에서 해결할 수 없다면 밖에서 해결하면 되는 법.
페로로가 황급히 선회하자, 나이아는 옆으로 구르며 방향을 다잡았다.
사냥감인 그녀가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대강 알 것 같았다.
슈발체베인 백작령의 북쪽, 노튼 설원.
아마 버려진 땅이라고 생각해 위치를 선정한 걸 테지. 알만했다.
그곳은 백작령처럼 높고 낮은 건축물이 없었으니까. 도망치기에도 용이하다고 생각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처사였다.
노튼 설원은 나이아의 고향.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수백, 수천 번은 돌아다녔던 곳이다.
“그런 곳에서 내게 달리기 시합을 청하다니, 우습기 그지없구나.”
콰앙, 건물 모서리를 밟으며 가속한다.
나이아가 익힌 페어리 윈의 개념 중 하나는 신속 기동.
언제 어디에서든 최속으로 달릴 수 있는 능력이었다. 거기에 그녀는 추위와 험지에 적응한 알브. 부족원 중에서도 특히나 눈에 띄는 준족은 그녀의 오랜 자랑이었다.
눈 깜빡할 사이에 시야에서 문명이 사라지고, 대자연이 자리 잡는다.
나이아는 휙휙, 지나가는 광경을 무시하며 오직 한 소녀의 등만 쳐다보았다.
토끼처럼 날랜 소녀가 공격 범위에 들어온 건 한순간.
한껏 날이 선 감각이 경종을 울리자 나이아는 재빠르게 하늘바라기를 들었다.
화살을 날린다면 바로 지금.
나이아가 활시위를 잡아당기는 것과 동시에, 설송나무를 징검다리 삼아 내달리던 페로로가 돌연히 두 팔을 활짝 펼쳤다.
방금 전까지 빠르게 달리고 있었으니 맞바람에 부딪치는 건 당연지사. 아차, 하는 사이에 그녀의 몸이 뒤로 날아간다.
훅, 하고 스쳐 지나가는 페로로의 궤적을 따라잡기 위해 등을 돌린 나이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없어?’
마법이 아닌 이상에야 그럴 일은 없다.
찌르르, 울리는 육감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올린 나이아는 다리를 높이 치켜든 페로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려 차기!’
판단하는 것보다 먼저 몸이 움직였다.
쿵!
간발의 차이로 발차기를 피한 나이아의 귓가에 위협적인 굉음이 들려왔다.
눈밭에 파묻힌 페로로는 고개를 몇 번 흔들고 일어나 곧바로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나무 밑둥을 밟고 도약한 그녀는 수십 미터나 되는 설송나무를 평지처럼 내달리며 정상을 노렸다.
나이아는 올라오는 페로로를 저지하기 위해 활시위를 당겼다.
하늘바라기의 의념은 무음.
투사체 특유의 소음이 없으니 오직 눈으로만 보고 피해야 했다.
“소리가 없어지는 의념? 소소하잖아. 괜히 경계했어.”
하지만 개의 인자를 지닌 페로로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냄새만으로 사물을 구분할 수 있었으니까.
굵은 나뭇가지를 잡고 몸을 한 바퀴 돌린 페로로는 당연하다는 듯 화살을 피했다.
투두둑, 투두둑.
나무에 박힌 화살을 디딤발 삼아 거리를 좁힌 그녀는 단번에 나이아가 있는 곳까지 뛰어올랐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반동을 이용해 발차기를 날린 건 덤이었다.
“큭.”
둔기로 후려치는 듯한 충격에 나이아는 침음을 흘렸다.
궁수라 해도 근접전에 약한 건 아니었다. 여차하면 활도 둔기 대용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이렇게 있는 힘껏 휘둘러서.
“그런 거에 내가 맞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하지만 페로로는 여유롭게 활대를 걷어차며 공중제비를 돌았다.
어차피 맞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애당초 나이아에게 필요한 건 거리였으니까.
‘세 걸음.’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웠지만, 충분했다. 화살을 억지로 쑤셔 넣기엔.
나이아는 페로로가 땅에 닿기 무섭게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활시위를 놀렸다.
동시에 나뭇가지들이 덧없이 휘날렸다. 화살에 맞은 부분이 여지없이 터져나간 것이다.
흩날리는 눈과 먼지를 헤치고 모습을 드러낸 페로로는 뺨 위로 흐르는 핏물을 닦았다.
방심한 탓에 몇 군데 긁혔지만, 승패가 결정될 정도는 아니었다.
“이번엔 나쁘지 않았어.”
“후우, 후우.”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른 나이아는 의연하게 페로로를 노려보았다.
하늘바라기의 대가는 체력.
활시위를 당길 때마다 호흡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의념을 사용하지 않으면 더 길게 싸울 수 있겠지만, 그러면 맞출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없어졌다. 쏘기도 전에 페로로가 눈치챌 테니까.
여러모로 장기전은 무리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길 것 같지 않구나.”
경지의 고하를 떠나 상성이 좋지 않았다.
“그걸 이제 알았어?”
“하지만 질 것 같지도 않으니 하는 소리다.”
“뭐?”
“신나게 싸우느라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는 것이더냐.”
그제야 페로로는 나이아가 무엇을 노리는 건지 알 수 있었다.
“너…….”
“내가 자리를 비웠으니 슬슬 증원이 올 테지. 그때도 네가 웃을 수 있을지 궁금하구나.”
실제로 그런 건 없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카인의 곁에서 지내니 거짓말이 절로 늘었다.
“일단 네 미소부터 지워줄게.”
나무 기둥에 발뒤꿈치를 댄 페로로가 허리를 숙이며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마치 단거리 경주자가 출발선에 선 것 같은 자세였다.
무언가 할 것 같다고 대비한 순간―
“크흑.”
사정없이 걷어차였다.
어찌나 강한지 활을 앞으로 내밀어 충격을 상쇄시켰음에도 하염없이 뒤로 밀려났다.
나이아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나뭇가지 위에 서 있는지라 물러날 곳이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중간에 떨어지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방심하는 건 금물.
후속타를 기다리며 정신을 집중한 나이아는 이내 탄성을 터뜨렸다.
어영부영 시간을 허비하느니 차라리 도망치는 게 효율적이라 결론을 내렸던 걸까?
연격을 퍼부을 거라 예상했던 페로로는 이미 저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끝났구나.”
희희낙락하고 있을 게 뻔했다. 거리는 매초마다 벌어지고 있으며, 그녀의 모습은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나뭇가지 사이로 겨우 보일 뿐이었으니까.
평범한 궁수였다면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을 선언했을 테지.
하지만―
“냄새에 민감하다고 해도 이건 막지 못할 테지.”
나이아는 평범한 궁수가 아니었다.
근처에 있는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 활시위에 건 그녀는 페로로를 뒤따라 내달렸다.
이 간격이야말로 나이아가 제일 선호하는 거리였다.
그녀의 특기는 달리기도 속사도 아닌 초장거리 사격이었다. 시야만 확보된다면 지평선 너머까지 화살을 날릴 수 있었다.
다시 말해 페로로는 아직도 사정권 안에 있었다.
“가까이 붙었을 때 끝장을 봤어야 했다.”
평형 가속.
가속에 가속을 더한다.
들끓는 마력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나뭇가지를 발판 삼아 뛰어오른 그녀는 속도를 줄일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지지할 곳 하나 없는 허공에서 이루어진 조준.
무게 중심이 흐트러지기 마련이지만 페어리 윈의 마지막 개념이 빛을 발했다.
균형 제어.
두 눈을 부릅뜬 나이아는 나뭇가지 사이로 페로로의 다리가 보인 순간, 주저하지 않고 활시위를 놓았다.
동시에 완만하게 휘어진 나뭇가지가 벼락처럼 쏘아졌다.
결과는 볼 것도 없었다.
“끄으으으악!”
볼품없이 나뒹군 페로로가 모든 걸 말해주었으니까.
만족스럽게 웃은 나이아가 설송나무에서 내려와 페로로에게 다가갔다.
“그래서 내 미소는 언제 지워주는 것이더냐?”
* * *
단련된 주먹이 갑옷에 닿는 순간, 공기가 터지며 섬뜩한 소리를 토해냈다.
아무리 피와 살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창졸지간에 쏘아진 일권은 흉기 그 자체.
갑옷이 찌그러지는 걸 본 매튜는 카인이 치고 빠지기 전에 검을 휘둘렀다.
순간, 시리도록 푸른빛이 터져 나와 연무장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지금은 욕심에 눈이 멀어 영락했지만, 그는 엄연히 수십 년 동안 자신을 단련한 기사였다. 더구나 익힌 성절이 성절이었다.
보기만 해도 저릿거리는 기세에 카인은 우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손가락을 꺾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좁힐 수 없는 세월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지금껏 만난 적들이 미안해할 수준이었다.
하지만 나쁜 소식만 있는 건 아니었다.
매튜에게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으니까.
오더 링크.
그가 익힌 성절은 완전하지 않았다. 개념이 몇 개 빠진 건 당연지사.
오더 링크를 모두 배우지 못해 오의를 깨우치지 못했다는 건 호조 중의 호조였다.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죽을 일은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동등한 선상에서 싸울 수 있었다.
“자, 노는 건 여기까지만 하죠. 어서 검을 드십시오.”
“이미 가장 날카로운 검이 내 손에 있지 않나.”
카인이 검지를 까닥이자 매튜의 눈가에 경련이 일어났다.
“검성의 제자가 검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 말입니까?”
라프만의 성절은 오더 링크.
검을 손에 잡은 자라면 그 누구나 열망하는 절기 중 하나였다. 그런 걸 익히지 않았다니. 농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가주님은 끝까지 저를 기만하시는군요.”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다. 이 지경이 됐는데 고작 이런 걸 가지고 속일 것 같나?”
“그건 누구도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가주님은 어떻게 해서든 저를 이겨야 하는 입장이니까요.”
“착각은 자유지만, 애당초 내가 익힌 성절은 오더 링크가 아니다.”
“오더 링크가 아니라고요?”
라프만에게 검술을 배우지 않았다면 대체 무엇을 배웠단 말인가.
목구멍 끝까지 올라온 물음을 집어삼킨 매튜는 푸른 검, 클로젯을 들었다.
“뭐, 아무래도 좋습니다. 밑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베면 될 뿐이니까요.”
동시에 눈으로 좇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검격이 쏟아진다. 상하좌우, 그물처럼 촘촘히 얽힌 검의 궤적을 피해 초월 감각을 끌어올린 카인은 목덜미를 노리고 들어온 검을 손등으로 후려쳤다.
척 보기에도 흉흉하게 빛나는 검이었다. 예사 물건이 아니라는 건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더욱이 카인은 매튜가 든 검을 과거에 본 적이 있었다.
마검이라 불리던, 클로젯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