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216
216화 봉사 2
* * *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슈발체베인 공작령은 사시사철 추운 지방이었기에 계절의 변화를 느껴지지 않았지만, 달력이 가리키는 날짜는 명확했다.
그동안 카인은 델리아와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오토마타에 대한 정보를 취합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그들의 기억 또한 이브처럼 온전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인류가 한 번 멸망했다는 사실만 알지, 자세한 사정은 모르고 있었다. 그저 대륙인들을 계도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어디에서부터 뒤틀린 건지 알 수 없지만, 헤브니아의 진실을 알고 있는 카인이기에 오토마타의 기본 이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인류가 두 번 다시 실수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막겠다는 거겠지.
놀란 게 있다면 그들의 수가 생각보다 적다는 것 정도.
그럼에도 대륙 각지에 흩어져 있는 녀석들이 어떻게 위화감 하나 없이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나 했더니, 독자적으로 구성한 가상 현실을 통해 연락을 주고 받는다고.
그 수단의 이름은 공용 네트워크.
아직까지도 그런 기술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카인은 식겁할 수밖에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지도 몰랐던 것이다.
혹시 몰라 이브에게 말하자 그녀는 별거 아니라는 듯 입을 열었다.
“여기에 오기 전부터 차단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접속 방법은?”
“일단 숙지해 두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깨어났을 때부터 맹활약 중인 이브였다. 유능하기 그지없는 동료의 존재는 언제나 든든한 법. 카인은 한시름 놓고 호른에게 델리아를 맡겼다.
의외의 사실이지만, 그는 이런 분야에 조예가 깊었다. 아니, 깊어지고 있었다. 보기와 다르게 진득하게 연구하는 게 성미에 맞는 듯한 기색이었다.
델리아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부품 단위로 그녀를 해체한 것도 호른의 솜씨였다.
지위가 높아지고 세력이 넓어지면서 챙겨야 하는 것도 고려해야 하는 것도 많아졌지만, 카인은 자신의 목적을 잊지 않았다. 회귀하기 전에나 한 후에나 그의 소원은 하나였다.
아리아를 구하는 것.
그녀의 행적을 뒤쫓는 건 어느새 일과가 되어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핵심은 놓치지 않았다.
‘강철 의수를 달고 있는 노인.’
그를 찾으면 만능열쇠에 대한 해답을 알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태생에 대한 비밀도.
노인을 뒤쫓을 때마다 막연한 불안감이 등골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자신의 뿌리를 알고 싶은 건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제법 지났는데도 발견된 단서는 한 톨도 없었다. 벌써 20여 년이나 된 일이긴 해도 이례적이라 할 수 있었다.
포기하지 않고 끈덕지게 꼬리를 밟은 카인은 중간에 흔적이 지워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영영 진실을 알 수 없다는 뜻이었지만, 그에게는 다르게 다가왔다.
익숙한 일처리였던 것이다.
누군지는 명약관화했다.
‘조직.’
웃기게도 아무것도 찾지 못하게 된 결과, 강철 의수를 단 노인이 귀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 * *
호른이 주관하는 마법 교실은 그의 제자인 자인에게 활짝 열려 있었다. 당연하게도 듣는 사람 또한 그녀 한 명뿐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특이하게도 두 사람이 더 참관해 있었다.
바로 카인과 이브.
“콜록, 콜록.”
카인은 평소보다 더 가쁘게 숨을 쉬는 자인을 쳐다보았다.
“괜찮아?”
“네, 어제 조금 무리했을 뿐이니까요.”
목도리를 코끝까지 올린 자인이 다시 한 번 콜록거렸다.
현재 테마파크를 구성하는데 자인은 없어서는 안 되는 인재였다. 예상보다 빠르게 공사가 진행되는 것도 모두 그녀의 활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게 건강을 해친다면 본말전도였다. 오리올도 마땅찮게 볼 터.
“일주일 정도 쉬는 게 어때?”
“하지만 제가 없으면 진행이 되지 않는 일도 있는 걸요.”
“그러면 호른에게 시키면 되지.”
정작 지목당한 호른은 카인이 거론하거나 말거나 이브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성절이 탄생한 연유는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법은 어떻게 나타난 건지 이해할 수 없더군요.”
성절은 반복 행동의 정수. 마소라는 특별한 힘에 의지해 무작정 쌓은 기적에 가까웠다.
하지만 마법은 그 출발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처음부터 그리될 거라는 가정하에 명확한 체계를 가지고 주창되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브의 물음은 지당하다고 볼 수 있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카인조차 절로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헤브니아는 묘한 세계였다. 일견 현대 문명과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파고들면 선명한 연결 고리를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물론 그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는 호른은 그저 역사에 새겨진 대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헤브니아란 세상이 시작되었을 때, 그분이 내려왔다고 해.”
“그분?”
“마탑의 창시자이자 마법사들의 어버이. 모든 마법은 ‘제로원’, 그분의 손 아래 확립되었다고 해.”
“한 사람이 모든 걸 계획했다는 겁니까.”
“그렇지.”
“하지만 미심쩍은 부분이 있습니다.”
“뭔데?”
“다른 마법과 다르게 신성 마법은 성황교에 소속된 이들만이 사용할 수 있더군요.”
신성 마법은 현대 마법 중 유일하게 치유와 복원이 주가 되는 마법 체계였다. 그걸 한 집단이 독점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천년동자의 위업이자 성황교가 지금까지 성세를 누릴 수 있었던 근간이야. 엄밀히 따지면 이상할 것도 없고 말이야.”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성황교가 모시는 신이 바로 그니까.”
마신(魔神) 제로원. 인류에게 등불을 내려 준 선지자의 정식 명칭이었다.
“그러니까 성절은 인간이, 마법은 신이 만들었다는 말이 되는군요.”
“마법사들의 총본산, 마탑에만 가도 알 수 있는 사실이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탑은 지금 기술로도 재현할 수 없으니까.”
그 말을 듣고 무언가 짚이는 게 있는지 침음을 흘린 이브가 카인을 바라보았다. 여느 때처럼 무미건조한 표정이었지만,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마탑에 가 보고 싶다는 소리는 아닐 거야, 그렇지?”
“제 마음속을 엿보다니. 수련의 성과가 있는 걸까요. 미래 예측이 하늘에 닿은 거 같습니다.”
그럴 거 같냐고 카인이 반박하려던 순간, 쿵 하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아침부터 간간이 기침을 터트리던 자인이 기어코 정신을 잃은 것이다.
재빨리 그녀의 이마에 손을 얹은 카인이 두 눈을 부릅떴다. 손가락 마디가 후끈한 게 펄펄 끓는 물이 따로 없었다.
평소에 그녀가 들고 다니는 약을 먹였으나 소용없었다.
“호른. 신관, 신관을 불러라!”
다급하게 소리를 지르자 호른이 공간 너머로 사라진다.
자인이 늘 하고 다니던 목도리가 흘러내린 건 그때. 그녀의 목에 ‘三’ 모양으로 갈라진 틈이 보였다. 다친 상처는 아니었다. 목구멍 안쪽과 연결되어 있는 듯했으니까.
딱 잘라 말해 어류에게나 달려 있을 법한 아가미였다.
카인의 입장에서는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가녀린 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신체 부위였으니까.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카인의 눈에 이브가 들어왔다.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자인의 목을 관찰했다.
어딘가 모르게 그리운 표정.
“오랜만에 보는 특성이군요. 이해했습니다. 이래서 자인이 자주 아팠던 거군요.”
“뭐?”
대답하지 않고 일어난 이브가 입을 열었다.
“슈발체베인가에서 가장 큰 온천은 어디에 있습니까?”
“별채에 있어.”
“그러면 그곳으로 가죠.”
납득할 수 없는 지시였지만, 카인은 대꾸하지 않고 자인을 안아 들었다. 한시가 급한 상황. 이것저것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탕에 오니, 정신이 번뜩 들었다. 정말 이게 맞는 건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떻게 할 거야?”
“이렇게 할 겁니다.”
카인에게서 자인을 빼앗은 이브가 그대로 그녀를 온천에 던졌다. 위중한 환자를 물에 빠트린다는, 어처구니없는 폭거.
“이게 무슨 짓이지?”
그 상황에 직면한 카인은 이브를 노려보았다.
“살아나는 중입니다.”
“그걸 말이라고!”
카인이 어금니를 꽉 깨물며 다가오자 이브는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신혈에 대해 알고 계실 겁니다.”
보통 사람에게는 나타나지 않는 형질의 총칭, 신혈.
그게 격세 유전의 일종이라는 걸 카인은 알고 있었다.
“설마.”
“소수지만 바다에도 진출한 인류가 있었습니다. 추측하건데 자인은 그들의 피를 진하게 이어받은 것일 테죠.”
“아가미가 있는 건…….”
“양서류의 특징을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 대개 피부 호흡의 비중이 높은 종이죠.”
“세이피르 왕실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었어?”
“돌연변이가 태어날 가능성이 높은 것뿐일 테죠.”
카인은 어째서 지금까지 자인의 병이 낫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추측할 수 있는 요소는 많았다.
자인은 평상시에도 목도리를 벗지 않았으며, 온천에 들어갈 때도 수건을 목에 두르고는 했다. 사소한 습관처럼 보여서 신경 쓰지 않았을 뿐, 이미 해답이 나와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재능이 한군데에 편중되어 있거든. 기이할 정도로 말이야. 물에 대한 친화력이 인간 수준을 뛰어넘었어. 이 정도면 거의 물고기 수준이야.’
‘아니, 그만큼 대단하다는 소리야. 바다에서 태어나지 않고 육지에서 태어난 게 이상할 정도라니까.’
자인을 제자로 받아들이며 내린 호른의 평가는 정확했다.
그녀는 포유류가 아니라 양서류로 분류되어야 할 테니까.
슈발체베인 공작령에 와서 병세가 호전된 건 피부호흡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온천에 영향을 받은 게 아니라 온천욕을 하는 행위 자체에 영향을 받은 거였다.
자인의 병은 항상 육지에만 있기에 생겨난 거였다.
물가에서 살아야 하는 천성을 거슬렀기에.
순간, 눈을 뜬 자인이 허우적거렸다. 무리도 아니었다. 그녀의 시점에서 보자면 갑자기 물속에 빠진 걸 테니까.
하지만 이브는 설명하는 것보다 다시 자인을 물속에 밀어 넣는 걸 선택했다.
“가만히 숨을 쉬면 됩니다. 자인, 당신은 이미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일단 말이라도 해 주는 게 어때.”
“같은 상황이 반복될 뿐입니다. 본능을 이끌어 낸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이브의 단언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오리올이 이 모습을 보고 소리 없는 경악성을 내질렀기 때문이다.
영락없이 익사시키려는 듯한 자세. 오리올은 황급히 이브를 밀어내려고 했다.
“이게 무슨 짓…….”
“동생을 죽이고 싶은 게 아니라면 가만히 계십시오.”
“뭐?”
“쉿. 보기나 하시죠.”
잠시 후, 잠들어 있던 아가미가 깨어나자 자인은 물속에서도 호흡할 수 있게 되었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건만, 자유롭게 헤엄치기까지 했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자인이 갑작스레 발작을 일으켰다는 말을 듣고 헐레벌떡 뛰어온 오리올은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멍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쳐다보았다.
“대체…….”
자인의 목도리를 오리올에게 건넨 카인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사정을 알고 있는 카인도 오리올과 비슷한 심정인 건 매한가지였다.
“아무래도 나눠야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은데?”
“그,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