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252
252화 결집 2
* * *
하샤 왕국에서 과욕을 부린 덕분에 하슈겔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다.
엔지니어에 있어서는 여러모로 아쉬운 일.
특히나 카르비나에게는 부담이 되었다. 제 발로 뛰어다니면서 정보를 모으다 보니 귀찮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침음을 흘린 콜몬도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고 보니 그 하슈겔의 죽음에 슈발체베인 공작이 연관되었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말이야.”
바울이 어깨를 으쓱이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렇지 않아도 저번에 만나 보았습니다. 엔지니어 내부에서도 이런저런 말이 나도는 것 같아서.”
“호오, 어땠지?”
“별거 없는 반푼이였습니다. 카르비나에게 치근덕대는 게 꼭 발정난 개 같더군요.”
“카르비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고?”
콜몬도와 시선이 마주친 카르비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누가 보아도 대답을 촉구하는 눈빛이었다.
자연스레 압박하는 게 능구렁이가 따로 없었다.
물론 입을 연다고 해도 카르비나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한정적이었다. 차기 십좌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그녀는 앵무새처럼 몇 번이고 되새긴 문장을 나열했다.
“저도 바깥에서는 인정받는 유명 인사예요. 슈발체베인 공작도 제 팬 중 하나일 뿐이에요.”
“그런 것치고는 좋아하는 눈치였는데 말이야.”
바울이 끼어들어 훼방을 놓자 카르비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서리가 낄 정도로 차갑게 노려보았음에도 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도리어 콧방귀를 뀌었다.
거세게 반박하면 콜몬도의 관심만 끌 것 같아 카르비나는 유야무야 화제를 돌렸다. 그것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화제로.
“제 사정이야 어찌 됐건 여태까지 를 발견하지 못한 건 애석하네요. 이쯤 되니 정말 있긴 한 건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에요. 솔직히 말해서 저는 가 무엇인지 아직까지 듣지도 못했으니까요.”
바울 또한 같은 심정인지 이번에는 이죽거리지 않고 침묵을 고수했다.
“그런가, 자네들은 그게 궁금한 건가. 좋은 일이네, 물음을 가지고 탐구한다는 건.”
살짝 흘러내린 단안경을 고쳐 쓴 콜몬도가 경쾌하게 검지를 치켜들었다.
“알리파 제국의 초대 황제 알파가 숨겼다고 전해져 오는 신기, . 그건 실로 신묘한 물건이라 사용한 순간, 깨닫게 된다는군. 이것이야말로 라고. 이것이야말로 신기의 정점이라고.”
그런 게 있나 싶을 정도로 애매모호한 설명이었다.
“얼마나 놀라운 기능이 숨겨져 있길래 그런 미사여구가 따라붙는 건가요.”
“내부에서는 를 모든 신기를 다룰 수 있는 신기라고 판단했네.”
“그렇다면…….”
순간, 등골이 짜릿해지면서 군침이 절로 넘어간다. 엔지니어가 내건 대의가 하루아침만에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카르비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반응을 콜몬도는 조금 다르게 해석했다.
“그래, 모든 신기라네. 신의 인형마저도 손에 넣을 수 있는 물건이지.”
“신의 인형 말인가요?”
“녀석들 또한 신의 손 아래에 있지 않겠나.”
신의 인형.
그 단어를 듣자마자 카르비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허황된 소망이네요.”
를 얻게 된 시점에서 오토마타는 붕괴. 엔지니어 독주 체재로 전환된다는 소리인데, 말처럼 쉬울 리 없었다.
“허황된 건 아니네. 저번에도 말했을 텐데, 내 선조는…….”
“네, 네. 알리파 제국의 황족이었죠.”
질리도록 들은 이야기였기에 심드렁할 뿐이었다. 낡은 양피지에서나 몇 글자 찾아볼 수 있는 황족이 황족인가. 그것도 세상 사람들은 다 모르는데.
카르비나가 한숨을 내쉬었으나, 콜몬도는 그녀가 그러거나 말거나 제 핏줄이 지닌 일대기를 읊조렸다.
“……그리하여 선조께서는 알리파 제국이 멸망하기 직전 독립하는 데 성공했네. 기술과 장비를 보전한 채로. 그렇게 세워진 게 바로…….”
“세트 일파죠.”
엔지니어의 근간이 되는 집단이기도 했다. 그들은 알리파 제국이 누천년 동안 쌓은 힘을 일부분이나마 가져오는데 성공했다.
“아쉽게도 완벽한 건 아니었지. 우리가 기술과 장비를 챙기는데 여념이 없는 사이 역사와 기록을 가져간 곳도 존재했으니까.”
“부트 일파, 라고 했던가요.”
오늘날, 엔지니어가 완전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부트 일파 탓에 세트 일파에는 비밀스러운 정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던 것이다.
“녀석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만 낸다면 탐사에 진척이 있을 텐데 말이야.”
앞으로 세 시간은 더 떠들어야 진정될 기미라 카르비나는 헛기침을 내뱉었다.
“아무튼 이번 탐사는 이걸로 끝이라는 거네요?”
“왜 그렇게 단정짓는 거지?”
“별다른 방도가 없잖아요?”
“아직 한 곳 남았네.”
어찌 보면 가장 까다로운 장소라 남겨 두었을 뿐이었다.
이윽고, 콜몬도에게 예정지를 들은 카르비나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 * *
저 멀리 눈으로 이루어진 해파리가 둥둥 떠다니며 얼음을 옮기는 게 보였다. 그 옆에 꾸물꾸물 움직이는 눈구덩이까지도.
모두 자인의 솜씨였다.
신혈 보유자인 걸 자각한 그녀는 전처럼 무력한 소녀가 아니었다. 수중 호흡을 터득하고 건강을 되찾은 자인은 제 재능을 십분 발휘한 끝에 제법 높은 성취를 이루었다.
천재 스승 밑에서 천재 제자가 가르침을 받은 결과.
물과 관련된 마법에서는 따라올 자가 없다고 했던가.
신전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비에나도 순조롭게 무명을 떨치는 중이었다. 발키리즈가 판토마가에서 활약한 게 암암리에 퍼지면서 그 대표인 비에나 또한 부각되었다.
그동안 쌓은 선행이 알게 모르게 밝혀지면서 연쇄 작용이 일어나기까지 했다.
고독하게 범죄와 싸운 덕에 고행자라는 명칭까지 얻었다.
최근에는 그녀를 보기 위해 슈발체베인 공작령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이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영지에서 대대적으로 밀고 있는 테마파크에 눈길을 빼앗겨 그대로 정착하는 사례도 왕왕 있었다.
그야말로 선순환의 폭풍.
예견한 현상은 아니지만, 무척이나 고무적이었다.
무엇보다 바뀐 건―
“후후, 이걸로 제 색깔을 찾았습니다.”
이브였다.
치료액에서 나노 마테리얼을 추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판토마가에서 돌아오자마자 방 안에 틀어박혀 자신만의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소기의 성과를 거둔 듯했다.
은처럼 반짝거리는 머리카락이 그 증거.
“이걸로 저도 명실상부 헤로인입니다.”
“그래, 해롭긴 했지.”
이브가 사용한 치료액은 4만 여병. 금으로 환산하는 것 자체가 두려운 양이었다.
“오타 정정, 히로인입니다. 공작님께서는 절 그렇게나 보고도 학습한 게 없으시군요.”
“하아. 거기까지 가면 더 이상 오타라고 할 것도 없잖아.”
마약과 주연이 한 글자 차이라니.
“일상을 자극하는 요소라는 건 변함없지 않습니까. 헤어나올 수 없는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또한.”
“그러니까, 너는 아니잖아.”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군요. 주연에 어울리는 값은 치렀을 텐데요?”
이브가 고갯짓했다.
그녀의 시선 끝에 걸린 게 시계라는 걸 눈치챈 카인이 짧게 혀를 찼다.
“부정할 수 없네.”
한층 더 진화한 그녀의 능력은 통신기를 분해해 시계에 설치하는데에 이르렀다. 한층 더 묵직해졌지만, 성능은 향상되어 이제 언제 어디에서든 제로원과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제로원, 들리나?”
물론 상대방이 대답하는 건 별개지만.
그날 이후로 제로원이 응답하는 일은 없어졌다. 아마 거동이 제한되어 있는 곳에 있기 때문일 터.
수시로 통화가 가능한 장소는 아닐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그 간극이 길어지니 조바심이 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며칠이 될지, 몇 달이 될지 아는 사람은 그뿐일 테니까.
“이거 나중에 물어볼 질문지라도 작성해 놔야겠네.”
준비를 마치고 바깥으로 나가니 아리아가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그 옆에 극성맞은 엘리제가 서 있는 건 덤.
“공작님.”
“아리아? 무슨 일이야?”
“제가 물어보고 싶은 말입니다. 저는 안 가도 되는 겁니까?”
“아아, 그거 말이지.”
목적지가 목적지인지라 요 근래 분주하게 움직이긴 했다. 그런데 아리아의 귀에도 들어갈 줄이야. 하긴 모르길 바라는 건 무리였다. 판토마가에 다녀왔을 때도 못마땅한 눈치였고.
한쪽 무릎을 꿇은 카인이 달래듯이 아리아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아리아 네가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해.”
“하지만 저는 다릅니다. 공작님이 그렇게 말할 때마다 제가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누가 그렇게 말한 건 아니지?”
카인의 눈이 예리하게 접히자 아리아는 곧장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닙니다. 공작가에 계신 분들 모두 저에게 잘해주십니다. 그저 제가 공작님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겁니다. 비록 싸우는 재주밖에 없지만, 그래도 쓰임새가 있을 겁니다.”
임프린팅된 아기새처럼 따르는 그녀를 보며 카인은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느껴야만 했다.
마음 같아서는 세상의 모든 위협이 사라질 때까지 숨겨 두고 싶지만, 그건 자신만의 욕심에 불과했다. 조직에서 갓 벗어난 아리아에게 새로운 족쇄를 거는 꼴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
죽을 때까지 그런다면 또 몰라도 그녀는 한창 자라나는 새싹이었다. 관상용 꽃이 아니라.
언제 깨질지 모르는 도자기처럼 안고 사는 건 한계가 있었다.
머리를 긁적인 카인이 아리아를 올려다 보았다.
생각해 보면 그녀는 호른 이상의 천재였다.
빠른 속도로 성장해 1급 마귀까지 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지닌 재능을 고려하면 이 또한 금방 스쳐 지나가는 통과점에 불과할 터.
억압만 한다고 능사가 아닌 바, 카인은 손가락 두 개를 치켜들었다.
“두 가지만 지킨다면야 데려가 주지 못할 것도 없지.”
“말씀하십시오.”
“첫 번째는 내 말에 무조건 따를 것. 토도 달지 말고, 듣는 순간 바로 이행해야 해.”
“어렵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어떠한 일이 일어나든 네 목숨을 먼저 챙길 것. 내가, 아니 우리가 위험해질 것 같아도 도망칠 생각만 해. 첫 번째랑 상충되면 두 번째를 우선시 해. 어때, 지킬 수 있겠어?”
“네, 명령을 듣는 거라면 자신 있습니다.”
가슴을 탕, 하고 친 아리아가 제 의지를 표명했다. 순진무구한 표정과 다르게 섬뜩한 말이었다.
성장 배경을 가늠케 하는 어투인지라 카인은 씁쓸하게 웃었다.
“아니, 내가 바란 건 그런 게 아니지만……. 후, 아무튼 잘 지켜. 하나라도 어겼을 시엔 바로 돌려보낼 테니까.”
아리아는 대답 대신 카인의 손을 꼬옥 잡았다.
* * *
대륙의 남서부에 위치한 파트로얀 왕국은 예로부터 거칠고 호전적인 이들이 많았다.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검이나 활을 쥐고 자라, 장성하고 나서는 용병이 되어 대륙을 떠돌았다.
그래서 세간에서는 용병의 나라라고 불리기도 하는 곳이 바로 파트로얀 왕국이었다.
레서 왕국과 가까운 건 아니지만, 아예 먼 나라라고 선을 긋기엔 또 애매한 거리에 있는 나라.
카인은 도착하기 전부터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헛고생을 하는 게 두려운 게 아니었다.
제로원이 말해 준 장소가 문제였다.
‘루드니아 공작령.’
그곳은 십좌 중 하나인 궁성이 다스리는 영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