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304
304화 미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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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대적한다고 어찌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바 카인은 이브에게 해답을 구했다.
“어떻게 상대해야 하지?”
“일단 시선을 끌어야 합니다.”
“시선?”
“오토 파일럿 모드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그만큼 행동도 다양하지요.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게 뭐지?”
“경계 대상이 정해지면 그 상대를 지울 때까지 공격한다는 것.”
“그러고 보니 네메시아에 있었던 녀석도 왕궁이 무너질 때까지 주먹질했었지.”
“네, 그와 같습니다.”
기신은 핵병기를 대체한 무기. 국가 간의 분쟁에서나 등장하는 최후의 보루였기에 평상시에는 억제력으로 작용했다.
그만큼 제약이 많은 건 당연지사.
때문에 파일럿이 없으면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몸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신도 스스로 행동할 때가 있었다.
그건 바로 주변에 배제해야 할 위협이 있을 때.
당연하게도 그러한 상황은 곧바로 공격성으로 표출되었다.
“경계 대상이라…….”
카인은 저 높은 곳에 떠 있는 기신을 올려다보았다. 녀석은 사방에 재앙을 흩뿌렸다. 하전 입자포는 충전 시간이 필요한 건지 즉시 쏘지 않았지만, 허리춤에 탑재된 레일건이나 내장된 미사일은 아낌없이 토해 냈다.
하늘에서 무차별적인 폭격을 날리는 기신은 천벌을 내리기 위해 강림한 천사라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위용을 보여 주었다.
벌써부터 국지적인 피해가 들끓고 있었다. 그나마 왕궁 주변은 결계가 완비된 건지 사상 초유의 사태에 어느 정도 대처하고 있지만, 그것마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
기신의 시점에서 보자면 인간이나 알브나 개미와 다를 게 없을 터.
과연 녀석이 동요할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 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십검을 사용한다면 한두 번 정도는 그럴듯한 피해를 줄 수 있을 테지만, 녀석이 하늘을 자유로이 난다는 게 최대 난점이었다.
기신과 동등한 선에서 싸울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다.
그때, 호른과 오리올이 카인의 앞에 나타났다.
이미 기신을 한 번 본 적 있는 오리올은 동요하지 않고, 알브들을 대피시키는 데 집중했지만 호른은 아니었다. 그는 답지 않게 입을 떡 벌렸다.
“가주님, 저건…….”
“기신이다. 신의 인형이 커졌다고 보면 되지. 그보다 저 녀석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다. 나이아가 저기 있으니까.”
“그래, 나도 보여. 어째서 나이아가 저곳에 있는지 의문이지만, 급한 일부터 처리하자고.”
고속 사고로 최적의 방안을 도출해 낸 호른이 여섯 개의 고리를 끌어올렸다.
“아무래도 협력해야 할 것 같은데 가주님 생각은 어때?”
“바라던 바다.”
정련정심 때문에 보구나 마법 도구 같은 건 일체 패용하지 않는 카인이지만 지금만큼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그 무엇보다 나이아의 안전이 우선이었다. 활용할 수 있는 건 모두 활용해야 했다.
“얼마나 도움이 될지 구경이나 해 볼까.”
회귀하기 전, 호른은 대마법사로 유명했다. 위력이나 화력보다 주문의 개수와 발동 속도로 승부를 보는 그런 대마법사. 그래서인지 특기 또한 여타 마법사들과 궤를 달리했다.
‘버프와 디버프.’
주류가 아닌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물론 생경하다 해서 그 효능까지 미약한 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마력과는 다른 활력이 온몸에 맴돌았다. 마치 용의 인자가 깨어난 것 같은 기분.
“어때? 나름대로 쓸 만하지 않아?”
“그래, 나쁘지 않다.”
한껏 무릎을 구부린 카인의 머리 위로 투명한 발판이 연달아 생겨났다. 호른이 만들어 준 기회는 기신에게로 이어져 있었다.
“위치를 고정하는 건 힘들 것 같아.”
“걱정하지 마라. 이정표가 필요하지 계단이 필요한 게 아니니.”
기신과 시선이 마주친 순간, 카인은 주저하지 않고 비상했다. 발판에서 발판으로, 옮겨다니며 최고 속도를 유지했다.
디딤판만 있으면 성층권까지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정련된 육신이 그에게 있었다.
소닉 붐을 일으키며 기신의 턱 밑까지 치달은 카인은 여태껏 응축한 힘을 풀어 헤쳤다.
발파 이백오십육중첩.
쾅!
손바닥에 닿은 기신의 어깨가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우그러졌다. 허공에 뜬 거체가 살짝 밀려날 정도로 커다란 충격파가 일어난 건 덤.
몸을 비튼 카인은 기신을 부서뜨릴 기세로 목덜미를 걷어찼다. 그의 목적은 내부로 들어가는 것.
만능 열쇠를 지니고 있으니 콕피트에 들어가 파일럿 권한을 탈취하면 게임 끝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카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듯 기신은 무언가를 잡고 버틸 여유조차 주지 않고 거리를 벌렸다.
눈이 돌아갈 정도로 입체 기동, 이른바 곡예 비행의 시작이었다.
철로 제작되었다고는 믿기지 못할 정도로 기민한 움직임에 카인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소리의 벽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기신은 아차 하는 순간 멀어졌다.
더구나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저 멀리 나아가며 미사일을 터트렸던 것이다.
탄두째로 깨부순 카인은 발판에 무게 중심을 실어 쏘아지듯이 앞으로 나아갔다.
한도를 모르고 상승하는 고도.
한계를 모르고 가속하는 속도.
두 팔을 X자로 교차한 카인은 벽이 되어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대기를 베었다.
순간, 공기 저항이 사라졌다.
투쾅!
주위의 모든 광경이 선으로 보이는 초음속의 세계 속에 진입한 카인은 기신의 뒤를 맹렬하게 추격했다.
이 지평선에서 저 지평선까지.
허공에 선과 선이 이어지며 두 존재의 행적이 선명하게 아로새겨졌다.
기신과 자신의 위치가 일직선이 된 순간, 카인은 주저하지 않고 수도를 내질렀다.
십검, 관통상.
거리와 간격을 무시하고 쏘아진 개념이 기신의 등허리를 강타했다. 막대한 힘에 외부 장갑이 꿰뚫리는 듯했으나, 그건 착각에 불과했다. 심대한 타격을 입기가 무섭게 나노 마테리얼이 스멀스멀 기어나와 결손 부위를 수리한 것이다.
“이브, 기신의 나노 마테리얼 잔량을 알 수 있겠어?”
[의미없습니다. 자체적으로 생산 장치를 갖춘 기체니까요. 안에서부터 부숴야 합니다.]그 말에 반사적으로 합장한 카인은 발파와 십검의 묘리를 섞었다. 일파만파를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는 손바닥을 내밀지 못하고 다시 거둬들였다. 정신을 잃고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이아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오의는 안 돼.’
개수일촉에서 파생된 기술은 전부 전체 타격이 주가 되었다. 자칫 잘못하면 나이아까지 다칠 가능성이 있었다. 아니, 십중팔구 그렇게 될 게 틀림없었다.
안 하느니만 못한 공격.
순간, 카인의 고뇌를 읽기라도 한 건지 기신은 즉시 반격에 나섰다. 레일건을 쓱 겨눈 것이다.
카인은 피하려고 했으나, 하늘은 본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갑자기 제동을 건다고 수월하게 이루어질리 만무했다. 더구나 발판을 제공해 주고 있는 건 호른이었다.
일심동체가 아니니 한 박자씩 늦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
한 번이라도 페이스를 늦추면 영영 따라잡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카인은 날아오는 전격을 베어 갈랐다.
“크흑.”
하지만 후폭풍은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한 번만 쏘아진 게 아니었던 것이다. 무려 14번. 거의 난사에 가까운 연사였지만, 빗나가는 일은 없었다.
일단 겨눈다 싶으면 명중이었다.
치가 떨릴 정도로 정교한 사격.
하지만 카인이라고 마냥 당하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확장된 세 개의 사고를 통해 빈틈을 엿보고 있었으니까.
범재도 셋이 뭉치면 정답은 아닐지언정, 해답은 찾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집단 지성은 기어코 오토 파일럿 모드의 결함을 찾아냈다.
‘처리할 정보가 많아서 그런지 지연 시간이 늘어났어.’
행동 자체는 부드러웠다. 하지만 한 동작이 끝나고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는 순간, 문제가 발생했다. 뚝뚝 끊어졌던 것이다.
어렵고, 난해한 비행을 유도할수록 그러한 경향은 강해졌다.
물론 그래 봤자 콤마 몇 초 차이.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하나, 찰나에 생사를 거는 무인의 눈에는 그 돌파구가 똑똑히 보였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뿐이었다. 여태껏 잠자코 있던 포대가 돌아갔던 것이다.
‘하전 입자포.’
산조차 녹여서 비료로 사용하는 무기가 드디어 충전된 듯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포구에 빛이 일렁였다.
바로 앞에 생성된 발판을 부서져라 밟은 카인은 마지막 가속을 시작했다.
그가 앞으로 쇄도한 것과 응집된 빛이 쏘아진 건 거의 동시.
작렬하는 하전 입자포에 맞서 카인은 두 팔을 편 채로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베고, 찌르고, 찢고, 터트리고, 치대고, 두드리고, 물고, 달구고, 얼리고, 꿰뚫고.
열 가지 상처를 강요하는 십검을 위시한 채, 하전 입자포를 가르며 나아갔다.
일촉즉발의 상황임에도 기신은 포대를 거두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이브나 여타 신의 인형과 달리 기신은 강인공지능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저 절차와 규율에 따라 움직이는 약인공지능만 가지고 있을뿐.
그렇기에 오판을 내린 거였다.
기계의 신에 도전할 수 있는 인간이 생겨날 거란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으니까.
미래의 양상까지 파악하지 못한 설계자의 패배라 할 수 있었다.
쾅!
하전 입자포가 중구난방으로 갈라졌다. 갈 곳을 잃은 빛무리가 구름을 뚫고 저 멀리 나아가는가 하면, 지면에 깊은 상흔을 남기며 지나가기도 했다.
그 난리통을 뚫고 나온 카인은 붉게 달궈진 두 팔을 식힐 생각도 하지 않고, 어깨와 포대를 잇는 지지대를 뿌리째 뽑아 내던졌다.
위협이 될만한 요소는 제거했다.
가까스로 얻은 기회.
나노 마테리얼이 포대를 형성하기 전에 카인은 모든 걸 끝마칠 기세로 손바닥을 내질렀다.
쿵.
동시에 기신의 어깨가 푹 가라앉았다. 거체를 구성하는 축 하나가 부러진 것이다.
연이어 공세를 취하려던 카인은 난데없이 느껴지는 열기에 옆으로 굴렀다.
위를 쳐다보니 커다란 빛줄기가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인은 그게 기신의 손바닥에서 나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곧 이건 근접 무기라는 소리. 말하자면―
[포톤 블레이드입니다.]“가지가지하는군.”
이제 와서 저항한다고 대세가 기울어질 리 없었다. 더욱이 포톤 블레이드는 같은 기신을 상대할 때나 효용이 있는 병기.
카인은 가뿐하게 포톤 블레이드의 범위에서 벗어나 외부 장갑을 뜯었다. 그리고 기신이 반응하기 전에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허락도 없이 내부로 진입했기 때문일까.
거세게 난동을 부리는 게 느껴졌지만 카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가락을 들었다.
본디 기신을 해체하려면 수많은 공구가 필요할 테지만, 십검으로도 충분했다.
카인은 합금을 두부살처럼 가르며 콕피트가 있는 곳까지 나아갔다. 한 번 가 보았던 곳, 두 번이라고 못 갈 리 없었다.
이내, 방금 전과는 다른 감촉이 느껴지자 카인의 미소를 지었다. 기신 내부에서 유일하게 격리된 공간, 콕피트에 도달한 것이다.
“열려라, 참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