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319
319화 극진 1
* * *
콰앙!
굉음이 울리고 후폭풍이 들이닥쳤으나, 괴성은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았다. 신의 무덤에서 핵연료집합체의 폭발도 막은 듀렉스였다. 아무리 마탑의 보조를 받는다고 한들 한낱 보주에 질 리 없었다.
두 갈래로 갈라진 빛줄기는 애꿎은 수면만 후려쳤다. 극렬한 열기가 식으며 그 위로 수증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른 건 덤.
자욱하게 깔린 안개를 뚫고, 카인은 마탑과의 거리를 좁혔다. 괴성이 만들어 준 기회. 허투루 날리는 건 죄악인지라, 그는 낯익은 입구가 보이자마자 어깨로 들이받았다.
하지만 굳게 닫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마탑을 구성하는 모든 게 단단하고 견고했다.
함부로 침입하는 걸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한 태도에 카인은 방향을 바꿔, 벽을 타고 내달렸다.
현재 마탑은 영구 기관으로써 그 면모를 드러냈다.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해 온전하지 않지만, 일부로도 헤아릴 수 없는 위용을 드러냈다.
문제가 되는 건 마탑을 돌리는 원동력이었다.
‘핵연료집합체.’
원자력 발전소를 돌리고 남은 찌꺼기.
처리하지 않으면 세기의 골칫거리로 전락할 천덕꾸러기였다.
아직 대륙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영역이었다.
제노바를 없애지 않으면 이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카인은 정상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나갔다.
그때, 머리 위로 운석이 떨어져 내렸다.
손날을 세운 카인은 날파리를 치우듯이 다가오는 위협을 베어 넘겼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먹구름을 뚫고 운석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기 때문이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낼 듯한 기세.
상황이 이렇게 되니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추진력을 잃고 떨어지기 직전, 카인은 부스트 드러그를 꺼내 목덜미에 꽂았다. 약효가 전신에 도는 순간, 잠들어 있던 용의 인자가 깨어났다.
‘개미, 진드기.’
선택과 동시에 온몸이 요동쳤다.
쾅!
킬로미터 단위를 한 걸음만에 초월한 카인의 등 뒤로 소닉 붐이 발생했다. 그의 두 다리에는 천둥과 벼락이 깃들었다.
지금 그 앞을 가로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카인의 몸과 부딪친 운석은 그 충격만으로도 산산이 조각났다.
단번에 마탑의 꼭대기에 다다른 카인은 보주를 향해 있는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갯가재.’
허공에 선명한 궤적이 아로새겨지며 음발광이 일어났다. 한 박자 늦게 반응한 보주가 광선을 쏘았지만, 소용없었다.
제로 거리에서 욱여넣은 일격이었다. 당해 낼 재간이 있을 리 없었다.
결국 보주는 이렇다 할 저항도 못 해본 채 반파되어 마탑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끓어오르는 열기를 다스린 카인은 다리에 힘을 집중했다. 그리고 진각을 밟았다.
발파 이백오십육중첩.
쾅!
지체하지 않고 천장을 무너뜨린 카인은 고대하던 이와 만날 수 있었다.
“제노바.”
“생각보다 일찍 왔군요.”
불과 수십 분 전에 만났던 이였지만 생경하기 짝이 없었다. 그 외견이 확연히 달려져 있었던 것이다.
비대하게 부풀어오른 종기 덩어리 안에 제노바가 있었다. 영락없이 제 살에 잡아먹힌 모양새.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마탑과 하나가 된 걸 테지.
“추악하군.”
“일시적인 현상일 뿐입니다. 걸어갈 걸 달려간 탓에 부작용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물론 공작이 신경 쓸 바는 아닙니다. 저보다 당신이 더 빨리 죽을 테니까요.”
제노바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자마자 코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정련된 육신으로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의 방사능이 층 전체를 채우고 있다는 걸 그제야 깨달은 카인은 허탈하게 웃었다.
제노바는 기어코 선을 넘었다. 근 시일 내에 소렌스는 불모지가 될 게 틀림없었다.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힘을 손에 넣고 싶은 건가?”
“모든 건 마법의 발전을 위해서입니다. 마탑의 종주로서 지켜야 할 덕목이지요.”
“개소리 집어치워라, 안경잡이. 그딴 말이 하고 싶었으면 뉘우치는 척이라도 해라.”
순식간에 최고 속도로 치달은 카인이 지면을 박차며, 날아올랐다.
어찌나 빠른지 잠깐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고 여겨질 정도.
마치 공간과 공간 사이를 전이한 듯한 모양새였으나, 제노바는 그 앞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그라고 해서 적수가 당도할 때까지 두 손 놓고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애당초 수해를 일으키고, 탄막을 형성한 건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함이었다.
핵연료집합체 더미를 장작으로 활용해 불꽃을 지핀 제노바의 손아귀에는 이미 승리의 열쇠가 쥐어져 있었다.
자질구레한 견제는 시간 낭비일 뿐.
그렇기에 그는 다가오는 카인에게 최대, 최고의 일격을 선사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리고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마탑과 연결된 제노바는 신의 좌에 올랐다. 그리고 그 경험은 고스란히 평생 동안 쌓은 지식과 합쳐져 이루 말할 수 없는 효과를 낳았다.
비의―
“하이퍼 노바.”
깨알만 한 화구가 세상을 집어삼킬 듯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미시 세계의 종말이 그곳에 있었다.
수많은 원자핵이 분열되며 막대한 양의 에너지로 화한 순간―
쾅!
구름이 사라지고, 저 멀리 날아가는 철새 무리가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깨끗하게 전소했다. 여파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소렌스의 일부분까지 쓸어버린 것이다.
후끈한 파동이 온 기류를 헤집어 놓았으며, 복사열에 노출된 대지는 들끓었다. 전 영토를 뒤엎을 정도로 범람했던 물은 한 방울도 빠짐없이 증발했다.
공전절후의 폭발 앞에서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의 육신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정련되었다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
아차 하는 사이에 카인의 반신은 허망하게 날아갔다.
두 눈은 실명하고, 고막은 터지고, 입과 코의 경계는 희미해졌다. 그렇게나 자랑하던 열 손가락도 빛을 잃었다.
흉측하게 짓무른 피부 위로 김이 피어오르자 카인은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다.
온갖 종류의 고통을 경험한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감히 인간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정신 자체가 갈기갈기 찢기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애당초 머리가 제대로 붙어 있는 건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
측정 불가능한 수준의 방사능에 노출되었기 때문일까.
재생되는 속도조차 시원치 않았다.
엉망진창이 된 오감이 미쳐 날뛰는 건 당연지사. 팔팔 끓는 어항 속에 들어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어떻게 용의 인자를 활용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이성보다 본능이 앞선 그때, 카인의 머릿속에 신의 무덤 안에서 보았던 한 생물이 스쳐 지나갔다.
‘바퀴벌레.’
지독하리만치 질긴 명줄의 소유자. 생존력이라면 첫 손에 꼽히는 녀석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의 인자를 빌리자 상태가 호전되었다.
시력이 돌아온 카인이 제일 처음 본 건 화구였다. 방금 전 세상을 집어삼킨 화구.
그건 제2파를 알리는 서막이었다.
본디 비의는 막대한 마나를 소모하기에 연달아서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마탑과 동조한 제노바에게 한계는 없는 듯했다.
찰나의 순간, 하이퍼 노바가 다시 한 번 작렬했다.
불쾌하다 못해 끈적한 열기 앞에 선 카인은 합장했던 손을 펼치며, 앞으로 슥 내밀었다.
[정련정심 ― 일파만파]산도 무너뜨릴 수 있는 오의는 하이퍼 노바의 궤도를 비트는 데 그쳤다. 카인도 지대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서 있을만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내지른 것에 불과했으니까.
일파만파와 하이퍼 노바, 두 기술의 효율은 엇비슷했다. 차이가 나는 건―
‘에너지원의 유무.’
일개 개인의 출력이 원자력 발전소의 그것을 뛰어넘는 건 요원한 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머뭇거릴 수만도 없었다.
하이퍼 노바로 인해 발생한 후폭풍을 발판 삼아 제노바의 품 안으로 파고든 카인은 재생이 채 끝나지 않은 주먹으로 그를 후려쳤다.
순간, 고계위 마법이 밀물처럼 들이닥쳤지만, 카인은 손가락을 들어 닿는 족족 찢어놓았다. 하지만 간격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고작 세 걸음.
엎어지면 코가 닿을 정도로 짧은 거리인데도 제노바에게 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했다.
수백, 수천 개의 마나 방벽을 뚫는 즉시 그만한 마나 방벽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뚫리지 않는 방패와 뚫기 위해 전진하는 창.
카인의 앞을 막아선 건 제노바가 아닌 마탑 그 자체였다. 하지만 약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규모는 군단에 버금간다 해도 그걸 다루는 건 어디까지나 한 명이었던 것이다.
카인은 두 주먹을 번갈아 가며 놀렸다.
차륜처럼 맹렬하게 돌아가는 연격이 제노바의 사고 속도를 앞지른 순간, 빈틈이 생겨났다.
두 걸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빠르게 한 발자국 내디디려던 카인은 아연실색했다. 가까스로 기회를 잡은 것과 동시에 부스트 드러그의 제한 시간이 다 된 것이다.
마법의 구두가 벗겨지자마자 카인은 각혈했다. 팔뚝 위로 울긋불긋한 종기가 불쑥 튀어 오른 건 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 번째 하이퍼 노바가 터져 나왔다.
쿠왕!
이번엔 막을 수 없었다.
카인은 폭발에 휩쓸려 마탑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망가진 육신으로는 중심을 잡는 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쿵, 하고 지면에 깊은 구덩이를 남기며 떨어진 카인은 피거품을 토해냈다. 하늘에서 눈처럼 내려오는 검은 먼지를 멍하니 바라본 그는 이내 비틀린 팔에 힘을 주었다.
괴성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
“괜찮아?”
“쿨럭, 이 모습을 보고도 괜찮다는 말이 나오나?”
“역시 혼자서는 무리지? 딱 봐도 레이드 보스인걸.”
그 난리가 나는 동안에도, 마탑에 다가오려고 노력했던 건지 괴성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행색이었다. 그녀를 뒤따라온 이브도 대동소이했다.
“이미 끝난 겁니까.”
“아니, 승산은 있어. 아직 녀석은 자신이 지니게 된 힘에 심취해 있을 테니까.”
퉤, 하고 입안에 고인 핏물을 뱉은 카인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노바는 마탑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하이퍼 노바를 세밀하게 조정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소렌스도 한 방향으로만 초토화된 상태.
“그럴 거라고 예상했어. 가주님은 한 번 찍은 사람은 넘어갈 때까지 도끼질하잖아. 그게 남자든 여자든.”
일행과 함께 공간을 뛰어넘어 온 호른이 못 말린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생각해 놓은 게 있나요?”
레티시아의 물음에 카인은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괴성과 함께 녀석의 눈길을 끄는 동안, 마탑을 멈춰 줬으면 한다.”
방사능으로 범벅이 된 곳을 누빌 수 있는 사람은 한정적이었으니까. 그런 점에서 레티시아와 비에나는 중요 전력이었다.
“알겠어요.”
그때, 옆으로 다가온 아리아가 허벅지를 콕콕 찔렀다. 자세를 보아하니 어떤 상처라도 치유해 줄 기세였다. 카인은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아리아. 마음만 받을게.”
“하지만…….”
“도움이 되고 싶다면 너도 레티시아 성녀를 따라가서 도와줘.”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