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324
324화 맥시모스 2
* * *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이름이었다. 그저 퍼스널 네임이 아닐까, 하고 짐작할 뿐.
“정확한 건 알 수 없지만 신의 무덤에 대한 정보가 있군요. 알리파 제국 시절에 발견된 곳 같습니다.”
“어디에 있는 곳인데?”
“맥시모스 공작령에 있는 곳입니다.”
십좌전이 개최되는 곳이자 광성 후딘의 거처.
“공교롭다고 해야 하나.”
토리움 본인은 몰랐을 거다. 단말기에 걸린 보안은 이브가 세심하게 풀어야 할 정도로 복잡했으니까.
‘말하자면 풀리기만 하면 무조건 당첨되는 복권이라 여겨 들고 다녔다는 건데.’
턱을 괸 카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몰리비란 사람이 누구인지부터 밝혀내야 할 것 같았다.
* * *
예정보다 일찍 도착한 괴성은 맥시모스가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퍽 안락한 일상이었다. 불청객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그래서 이름이 뭐라고?”
“로몬입니다.”
“그래, 로몬. 왜 내가 너희들의 부탁을 들어줄 거라 생각하는 거야?”
“그야 괴성, 당신에게도 득이 될 제안이니까요.”
성황교 측의 인사와 함께 들어온 이는 오토마타의 일원.
이따금씩 동료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지라,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상대였다.
애당초 개체 자체가 다른데 동질감 같은 게 생겨날 턱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가 안드로이드가 아니라고 밝힐 수도 없는 터라 괴성은 로몬의 헛소리를 귓등으로 듣고 흘렸다.
“후딘 그 녀석에게 말하면 되잖아. 제집 앞마당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그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닐 텐데?”
“조심스레 경고하긴 했지만 들을 것 같지 않더군요.”
하긴 후딘이라면 와 볼 테면 와 보라지, 하고 자신감을 내비칠 인간이었다.
“그래서 조직이 맥시모스 공작령에 숨어 들어왔다는 정보는 확실하고?”
“확실합니다.”
쥬시의 활약에 힘입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술래잡기도 슬슬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맞기 전에 먼저 친다.
오토마타가 전면에 내건 입장은 간단명료했기에 로몬은 쉽게 답할 수 있었다.
두 세력의 싸움은 괴성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녀석들이 여기에 올 만한 이유가 있어?”
“아스테리스크가 있지 않습니까.”
화두가 전혀 다른 곳으로 번지자 괴성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로몬은 친절하게 첨언했다.
“수장인 세라 여왕이 성련 무술 대회에 참가하고, 부수장인 하이렌 삼황자가 귀빈으로 초대되었습니다.”
“수뇌부를 치겠다는 거구나.”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목표일 겁니다. 저희는 추가적인 테러 행위가 있을 거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수의 퍼스널 네임이 이쪽으로 향했으니까요.”
대륙 각지에서 모인 강자들로 가득한 맥시모스 공작령.
각국의 전력을 깎고 싶어 하는 조직에게 이만한 먹잇감은 없을 게 분명했다. 없애기 좋게 옹기종기 모여 있는, 흔하지 않는 기회니까.
조직이 판을 뒤집기 위해 어떠한 수를 꺼낼지 모르는 상황. 만전을 기해야 했다.
“그러니까 괴성 당신도 합류해 주었으면 합니다.”
“내키면.”
그 말만 내뱉은 괴성은 손을 휘휘 저으며 로몬을 쫓아냈다.
* * *
엔지니어는 카르비나가 가져온 정보를 토대로 신의 인형을 찾았다.
역량을 전부 집중한 대대적인 조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결실을 맺었다. 잠깐이지만 성황교의 비호 밖으로 나온 신의 인형을 여럿 포획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엔지니어는 그들을 해체해 신의 인형에 대해 연구했다.
그 과정에서 유용한 개념이 몇 개나 나왔으나, 신의 인형을 자체 제작한다는 과업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서 움직이는 인형은 완성했다. 다만, 유용하게 써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허수아비조차 되지 못하는 실정.
조금 더 많은 표본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세트가 우연치 않게 색다른 정보를 접한 건 그때쯤.
“괴성이 신의 인형이라…….”
소식을 들고 온 콜몬도가 넌지시 물었다.
“포획할 생각은 아니겠지?”
“못 할 것도 없지 않나요? 평범한 건 이제 있으나 마나 하잖아요.”
기본 과정을 수료했으니, 이제 심화 과정으로 넘어갈 차례였다.
“홀로 십좌가 되었을 정도로 진보한 개체이니, 분명 그 안에는 상상도 못 할 기술이 집약되어 있을 거예요.”
괴성만 잡으면 신의 인형을 양산하는 것도 꿈은 아니었다. 엔지니어가 지닌 장비와 시설이 합쳐지면 기대 이상의 성과가 나올 테니.
마침 신의 인형을 해체하면서 그들이 지닌 구조적인 결함도 밝혀낸 참이었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태생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니, 괴성의 패배는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곰곰이 이해득실을 계산한 콜몬도가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가 될 건 없어 보이는구나. 그러면 신뢰할 만한 소속원을 파견하마.”
“아니요, 이번에는 제가 직접 나서고 싶어요.”
현재 괴성이 있는 곳은 맥시모스 공작령.
십좌전이 열리는 장소였다.
무언가 더 말하려던 콜몬도는 세트의 눈 속에서 꿈틀거리는 호승심을 읽고 입을 다물었다. 이제 보니 그의 목표는 하나가 아니라 둘인 듯했다.
하긴 엔지니어를 다스리는 위치에 있다지만, 한창 격정적일 때였다.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야 차고도 넘칠 터.
이 또한 한 조직을 짊어진 사람으로서 마땅히 거쳐야 할 관문.
백의를 걸친 콜몬도가 그 염원에 수긍했다.
“십좌의 자리에 오르고 싶은 거냐.”
“네.”
“그러면 같이 가자꾸나. 빈자리가 넷이나 되는데 그중 네 자리 하나 없을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콜몬도는 세트가 차기 십좌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야말로 엔지니어가 빚은 마스터피스였던 것이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태어난 세트는 인류의 정점.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십좌가 될 수 없다면 이 대륙에 있는 그 누구도 그 자리를 넘볼 수 없었다.
* * *
대륙 남부에 위치한 게일 왕국은 수인족들의 나라와 인접해 있었다. 하지만 칼라만티아 협곡을 사이에 두고 있어, 이렇다 할 접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남쪽 국경 지대에는 한 영지가 있었다.
맥시모스 공작령.
대대로 게일 왕국을 수호한 무가는 당대에 이르러 그 꽃을 활짝 피웠다. 후딘이라는 걸출한 무인을 배출한 것이다. 더구나 십좌전을 도맡아 개최하기까지.
왕국민들에게는 겹경사가 따로 없겠지만, 카인에게는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였다.
“빌어먹게도 높군.”
웃기게도 맥시모스 공작령은 산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거기에 깊은 절벽까지 어우러져 천연 요새가 따로 없었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는 건 덤.
신선이 노니는 곳 같은 분위기에 한순간 잘못 찾아왔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인파가 늘어났던 것이다.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강자들이 모인 탓인지 입구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십좌전은 이 자리에서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자신을 입증하는 건 경기장에 올라가서 해도 늦지 않았다.
‘그러려면 일단 접수부터 해야겠지.’
일행이야 나중에 보아도 되었다. 며칠 전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을 접했으니까.
“아리아, 이브랑 같이 먼저 호텔로 가 있어. 나는 볼일부터 보고 들어갈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인파를 헤치며 접수처로 가는 길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마주치면 귀찮아질 것 같아 방향을 틀려고 했지만, 상대방의 행동이 더 빨랐다.
“어머, 이런 곳에서 또 보네요.”
“오랜만이군, 마리에트 성녀. 대륙 회의 때 이후로 처음인가. 이런 곳에도 다 오고, 시간이 넘쳐나나 보지?”
“여가 생활을 즐기기 위해 온 게 아니에요. 후딘 님의 요청에 따라 지원을 나온 거니까요.”
아무래도 부상자를 대비한 인선인 것 같았다.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마리에트가 손뼉을 친 건 그때.
“아, 그리고 레티시아 성녀님이 안부 전해 달라고 하더군요.”
“소렌스 쪽으로도 순례를 돌았나. 멀리도 돌아다니는군.”
“이럴 때 실적을 쌓아 놓아야 나중에 편하잖아요? 그런데 공작님이야말로 여긴 어쩐 일이세요? 차기 십좌의 탄생을 눈에 새겨두고 싶어서 오신 건가요?”
“직접 참가하려고 온 거다.”
“참가하신다고요?”
마리에트는 의뭉스러운 눈으로 카인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알기로 카인은 몸이 불편한 이였다. 혹시나 싶지만 역시나.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하긴 성련 무술 대회라면 참가해볼 만도 하죠.”
“내가 참가하려는 건 십좌전이다만.”
그 발언엔 세 치 혀로 성황교를 평정했던 마리에트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친선전의 성격이 강한 성련 무술 대회라면 누구나 부담 없이 참가할 수 있지만, 십좌전은 정반대였다. 싸우는 것에 모든 걸 바친 이들도 죽음을 무릅써야 했던 것이다.
그 취지 때문에 제한 조건은 낮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준까지 낮은 건 아니었다.
틀림없이 현존하는 대회 중 최고.
도전하는 이만 해도 수천, 수만에 달했다.
더구나 십좌가 되면 만벽서고에 들어갈 수 있다는 후딘의 확언에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예선전이 예견되는 상황이었다.
절름발이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그 표정은 뭐지?”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저 공작님이 이렇게나 진취적인 분일 줄은 몰라서요.”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었지만, 카인은 그러려니 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반응할 만도 했으니까.
“그래도 한꺼번에 갑자기 올라가는 건 힘들지 않을까요? 지금이라도 한 단계 내려와서 성련 무술 대회에 참가하는 게 어떠세요?”
“걱정해 주는 거라면 고맙게 받아들이겠지만, 오지랖이라면 정중히 사양하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인 마리에트가 조언인지 악담인지 모를 말을 내뱉었다.
“부디 몸조심하세요, 신성 마법이라고 만능은 아니니까요.”
* * *
“아, 슈랑나르 왕국 출신, 기사단장까지 역임하셨던 분이군요. 다른 이명은 없으시고요? 그러면 이대로 접수하겠습니다.”
8번 창구를 맡은 벨로한은 빠르게 사무를 처리한 뒤, 다음 대기자를 불렀다. 업무 전반이 마법으로 진행된다고 해도 늦장을 부릴 시간은 없었다. 숨 쉬는 사이에도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니까. 1분, 1초가 아까웠다.
따각, 따각.
돌연히 들려오는 규칙적인 소리에 고개를 내린 벨로한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팡이?’
십좌전에 참가한 이들은 지위와 계급을 막론하고, 모두 평등하게 다뤄졌다. 그게 기본적인 룰이었다.
몸이 불편하다고 하여 달라지는 건 없었다. 모든 건 자신의 책임이었다. 설령 그 끝에 죽음이 있다고 해도.
그래서 벨로한은 사내를 걱정하기보다 제 역할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카인 슈발체베인이다.”
벨로한도 익히 아는 이였다.
그래서일까.
공작이 참가한다는 경탄보다 왜 참가하는지에 대한 의문부터 떠올랐다.
“이명 같은 건 없으시죠?”
있어 봤자 망나니나 반푼이밖에 더 있겠는가.
“흑기사.”
순간, 벨로한은 멈칫했다. 대륙에서 그렇게 불리는 건 한 명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