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325
325화 남매 1
* * *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나 그 능력을 입증한 무인.
일각에서는 소렌스의 참사를 막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더구나 요 한 달간 그가 보여 준 성과는 한 사람이 했다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다채로웠다.
그런데 그런 이의 정체가 반푼이 공작이었다니.
대단하다고 감탄이 새어 나오기 보다―
‘믿어야 하나?’
그런 생각부터 먼저 튀어나왔다.
어차피 모든 책임은 당사자가 지는 거니까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었다.
즉시 카인이란 이름을 입력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상부에서 승인이 떨어졌다.
이는, 후딘도 인지하고 있다는 뜻.
“따로 검증이 필요하나?”
그 말에 화들짝 놀란 벨로한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공작님의 요청대로 접수되었습니다. 건투를 빌겠습니다.”
“고맙군.”
멀어져가는 카인의 등을 쳐다본 벨로한이 마른침을 삼켰다. 어쩐지 태풍의 핵을 마주한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 * *
미리 예약해 놓은 호텔에 들어간 카인은 낯익은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오셨습니까, 가주님.”
십좌전을 경험하기 위해 온 오리올과―
“외투는 저에게 주세요. 아 참, 그리고 이브와 아리아는 먼저 들어가 있어요.”
뒷바라지하러 와 준 피아.
당연하게도 그 뒤에는 소렌스에서 돌아온 호른도 있었다.
한 달 동안 보지 못한 얼굴들이기에 적당히 잡담이라고 나눌까, 하고 입을 열려던 찰나 카인은 기묘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저 멀리 서 있는 세라가 눈에 띌 정도로 진지한 표정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맞은편에는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한 명은 남자, 한 명은 여자. 생김새가 비슷한 걸로 보아 남매인 것 같았다.
“호른, 세라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라고 당부했을 텐데?”
그렇지 않아도 홀로 보내 미안하던 참이었다.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여왕님이 거절하더라고. 셋이서만 대화하고 싶다는데 내가 어떻게 하겠어?”
“그래도 옆에 남았어야지.”
“사실 내가 끼어든다고 어떻게 될 것 같지도 않았어. 저쪽도 왕족이거든.”
“왕족?”
“그래, 하인탈 왕국에서 왔다고 하던데?”
하인탈 왕국, 그곳은 전형적인 군사 강국이었다.
마탑의 풍토와 정반대인 곳이었다. 마법보다 성절이 우선시되는, 그래서 무력만이 전부인.
그제야 세라와 마주선 남매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테디라우스 남매.’
태어날 때부터 재능이 남달랐던 두 사람은 테디라우스 왕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게 대대적인 투자로 이어진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진귀한 영약을 밥처럼 먹고, 명사들에게 강의를 들은 남매는 현재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무인이 되었다.
특히 오빠 되는 에이스는 회귀 전 카인도 들었던 상대였다.
아휀, 그리고 제네갈과 함께 차기 십좌로 대두되면 인물이었던 것이다. 단지 운이 없어 십좌는 되지 못한 걸로 기억했다.
“여왕이 됐다더니 인상이 바뀌었네? 어렸을 때부터 허리를 수그리고 다니던 그 세라가 맞나 몰라.”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귓가를 긁고 지나간다. 테디라우스 남매 중 하나인 아리엘의 것이었다.
“언제 적 이야기를 꺼내는 거지?”
“내 기억 속에 있는 게 그런 것밖에 없는데 뭘. 항상 울음을 참는 얼굴로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애가 커서 어느새 성련 무술 대회에 참가한다니. 하, 웃겨서 정말.”
비릿하게 웃은 아리엘이 아무렇게나 풀어 헤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성련 무술 대회가 그렇게 만만한 자리인 줄 알아?”
“한 번도 그리 생각해 본 적 없다. 그저 성련 무술 대회를 통해 나도 한 사람의 무인이라는 걸 알리고픈 마음뿐이다.”
“말은 잘해요. 보나 마나 옆에서 누군가 헛바람이라도 넣은 거겠지.”
몇 마디 들은 게 전부이지만, 대강 흐름이 보였다. 아리엘은 어린 시절부터 세라와 알고 지낸 듯했다. 그녀가 제피로스 왕실에서 어떠한 취급을 받아왔는지도. 그러니 세라가 갑자기 여왕이 되었다고 한들 존중해 줄 리 없었다.
어딘가 모르게 축 늘어진 세라의 어깨에 손을 얹은 카인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거기까지 하시죠.”
“이건 또 누구야?”
“카인 슈발체베인이라고 합니다.”
“아, ‘그’ 슈발체베인 공작? 네가 세라에게 헛바람을 넣은 장본인이야?”
“온전히 여왕님의 결단이십니다.”
“지랄. 누가 봐도 부추긴 게 보이잖아. 검을 잡은 지 2년도 되지 않았는데 성련 무술 대회에 출전한다고? 죽고 싶다는 거랑 뭐가 다른데?”
비꼬는 어투가 역력한 아리엘의 말에 세라가 두 눈에 힘을 주었다.
“말이 심하구나. 공작에게 사과하거라.”
“나보다 약한 녀석의 말은 듣지 않아.”
“그러면 들어야겠구나. 적어도 너보다는 내가 나을 테니.”
맹랑하기 그지없는 말에 아리엘이 활짝 웃었다. 송곳니가 드러날 정도로 활짝.
“하, 정말 어디에서 그런 자신감이 솟아 나오는 건지. 그렇게 말하니 한번 시험해 보고 싶잖아.”
아리엘이 거침없이 나아갔다. 금방에라도 칼을 꺼내들 기세라, 에이스는 팔을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그만해라, 아리엘. 무의미한 짓이다. 어차피 성련 무술 대회가 시작되면 저절로 우열이 가려질 테니.”
“못 참겠다면?”
“경기장 밖에서 물의를 일으킨 이는 십좌전, 성련 무술 대회 그 어느 쪽에도 나가지 못하고 바로 맥시모스 공작령에서 쫓겨난다는 건 알고 있을 텐데?”
카인은 피식 웃었다. 따지고 보면 그가 나서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타초경사의 우를 범하기엔 너무나 이른 시기였던 것이다.
더구나 이렇다 할 구경꾼도 없었다. 여러모로 날뛸 무대로써 손색이 있었다.
그런 그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에이스는 짧게 혀를 찼다.
“정말 안타깝군. 사람을 잘못 만나 제 분수를 파악하는 능력도 없어지게 되었나.”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카인이 있는 쪽을 힐긋 쳐다보았다.
그 안에 담긴 뜻을 모를 세라가 아니었다. 어쩌다 맺은 악연이 카인에게까지 번질 기미를 보이자 그녀는 단호하게 대처했다.
“에이스 왕자, 공작은 제가 전적으로 신임하는 가신입니다. 예의를 차리세요.”
“말이 헛나왔군. 이해하라.”
고개를 까닥인 에이스가 아리엘과 함께 멀어진다. 더 말할 건 없다는 듯, 그런 걸로 말 걸지 말라는 듯.
그야말로 철저한 무시였다.
씩씩거리는 세라의 등을 토닥이면서 카인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안타깝게도 에이스는 이번에도 십좌가 되지 못할 운명인 것 같았다.
* * *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돈이 흐르고, 그게 고이다 보면 으레 도박판으로 변질되기 마련이었다.
현시대의 초인을 가리기 위한 대전, 십좌전도 그러했다. 맥시모스 공작령에 발을 들인 건 무인뿐만이 아니었다.
역사적인 순간을 보기 위해 모여든 인원들 속에서, 노름꾼들은 차기 십좌를 추측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들은 참가자들의 명단을 안줏거리 삼아 술잔을 기울였다.
“비무행을 끝마치고도 만족하지 못해 따로 폐관 수련을 했다고 하던데. 내 생각에는 아휀 경이 유력해.”
“듣기로는 제네갈도 빠르게 치고 들어온다던데? 열셋이나 되는 사형들과 다투는 걸 보면 더 볼 것도 없지.”
“그런 식으로 따지면 에이스 왕자도 빼놓을 수 없지 않나.”
모두가 제 의견을 피력하면서 소리를 높일 때, 돌연 한 호사가가 입을 열었다.
“혹 흑기사는 어떤가?”
그 이름이 거론되자 사람들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들이라고 몰라서 말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저 그럴 가치가 없을 뿐이었다.
“흑기사가 슈발체베인 공작이라니.”
“그 말을 듣고 내가 얼마나 허망했는지. 그게 가당키나 한가? 아휀 경과 비등한, 아니 어쩌면 그 이상 가는 천재가 반푼이로 지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단 말이지.”
“꼭 본인이라는 법은 없지 않나. 예전에도 이명을 빌려주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그 말에 사람들은 저마다 탄성을 터트렸다.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던 것이다. 반푼이라 알려진 카인이 흑기사일 수 있는 이유.
“돈으로 이름을 산 건가? 하긴 반푼이라도 돈 버는 능력은 타고났다고 하더군. 금으로 산도 쌓을 수 있다던데?”
“그러고 보면 학살 여왕도 성련 무술 대회에 참가한다고 했지?”
“어쩌면 화제에 오르기 위해 무리한 걸 수도 있겠군.”
사건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자 호사가들은 금세 흥미를 잃고, 다른 주제로 대화를 옮겼다. 그들의 뇌리에 흑기사라는 단어는 사라진 지 오래.
‘반푼이 공작에 학살 여왕이라……. 끼리끼리 노는군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은 세트가 그렇게 평가했다. 솔직히 몰라도 되는 정보인지라 그는 관심을 끊고 무심하게 맥주잔을 잡았다. 아니, 잡으려고 했지만 뒤에서 치고 들어오는 사람의 속도가 더 빨랐다.
쿵.
맥주잔이 깨지고, 내용물이 바닥에 쏟아진다.
애꿎은 허공만 부여잡은 세트는 자신과 부딪친 이를 쳐다보았다.
술에 거나하게 취한 중년인이었다.
제 몸도 가누지 못해 기우뚱거리는 게 꼴불견도 이런 꼴불견이 없어 보였다.
“맥주잔이 깨졌군요.”
“그래서?”
“잘못한 쪽이 사죄하는 게 인지상정이 아닐까 하는데요.”
“그러니까, 나보고 고개를 숙이라는 거지? 어디에서 굴러먹다 온 줄도 모르는 너에게?”
취객, 지머의 목소리가 커졌다.
일찍이 그의 할아버지는 자작위에 봉해진 적도 있는 귀족이었다. 비록 세월이 흘러 그 세는 없어졌지만, 혈통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
바로 지머 본인이 그 산증인이었다.
“당신은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 같군요.”
“그러엄, 내 할아버지는 자작이었다. 그 피를 이어받은 나야 말할 것도 없지. 논이나 밭을 가는 어중이떠중이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단 말이다.”
통속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인간이 나타나자 세트는 크게 웃었다. 엔지니어의 비처, 은자의 비경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경험이었다.
“어떠한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 채, 아무렇게나 교접한 끝에 나온 잡종 주제에 말이 많네요.”
그런 건 고귀한 혈통이라 부를 수 없었다. 모든 유전자를 취합한 뒤, 열등한 형질을 전부 배제하고 우등한 성질을 깨워서 적용시켜야 비로소 고귀하다 부를 수 있는 거였다.
바로 자신처럼.
“사과하고 끝낼지, 끝까지 갈지 정하세요.”
“끝까지 가? 허 참. 가려면 가던가!”
지머에게 다가가 어깨동무한 세트는 팔에 힘을 주었다.
콰지직.
“무슨 놈의 힘이…….”
목이 옥죄인 지머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었다. 압도적인 힘에 안색이 파래지기까지 했다.
“자, 웃으세요. 끝까지 갈 예정이니까요.”
세트는 그대로 지머를 끌고 골목으로 걸어갔다. 워낙 소란스러운 주점 안에서 벌어진 일인지라 이상하게 여기는 이는 없었다.
잡음이 사라지고, 고요한 적막만이 좁은 길을 가득 채웠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세트는 지머를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켁, 켁.”
방금 전까지만 해도 소리 높여 손가락질하던 지머는 풀려나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미, 미안하네. 술에 취해서 정신이 잠깐 어떻게 됐나 보군.”
“시시하네요.”
“그러면…….”
“그냥 죽으세요.”
바뀐 건 지머의 태도뿐.
세트의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