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368
368화 노심 2
* * *
효율과 비효율이 맞부딪친다.
그란델에서는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오의가 연신 흘러나왔다. 천변만화하는 검격은 지면을 헤집어 놓았고, 그 여파는 슈발체베인 공작령을 지나 호른산에 이르렀다.
압도적인 위용에 찢기고 갈리면서도 카인은 제가 할 일을 잊지 않았다. 그의 손에서는 개수일촉이, 발에서는 비상천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아휀이 질이라면 카인은 양.
오의가 오의를 쏘아 떨어뜨리는 가운데, 공작령의 참상은 배가 되었다. 그들 주위에 건축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애당초 주축이 되는 지면조차 온전치 못했다. 유성우라도 떨어진 듯 곳곳에 깊은 구덩이가 가득했던 것이다.
피에 절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카인이 가쁜 숨을 내뱉었다. 그란델과 아이슬로우, 양쪽 다 인세에 보기 드문 보물이었다. 국보로 지정되어도 이상할 게 없는 수준.
그런 기물을 두 개나 지니고 있는 아휀을 직접적으로 노리는 건 무리였다. 아니, 벌써 몇 번 노렸으나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회심의 한 수가 적중해도 치명상이 아닌 경상에 그쳤다.
“신체 능력은 확실히 경이롭습니다만, 그래서야 마물과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보구나 빼고 말하는 게 어떻지?”
“도구를 사용하는 건 인간의 지혜. 제가 마물이 아니라는 그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죠. 뭣하면 당신도 착용하면 되지 않습니까. 이런 걸 찾을 수 있을지나 모르겠지만.”
[정련정심 ― 개수일촉]그렇지 않냐는 듯 익숙한 오의가 턱끝까지 들이닥치자 카인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완전히 피했는데도 스쳐 지나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뼛속까지 으스러졌다.
‘내가 고안한 오의지만, 지독하군.’
아휀은 싸우는 와중에도 성장하는 중이었다.
더 정교해지고, 더 날렵해졌다.
치가 떨리는 재능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그에게 패배란 승리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한순간의 망설임은 보다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한 과정일 뿐.
한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몰랐다고 하면 거짓말이리라.
이미 두 번이나 싸운 전적이 있었으니까.
“아리아는 제가 잘 보살피겠습니다. 제 아이의 어미가 될지도 모르잖습니까.”
그란델로 카인의 어깨를 짓누른 아휀이 희게 웃었다.
“개소리 집어치워.”
카인은 십검으로 검날을 튕겨내며 아휀의 복부에 일권을 쑤셔넣었다. 갯가재와 개미, 거기에 그리즐리 베어의 괴력까지 합친 일격이었다.
아픈 걸 무척이나 싫어했던 아휀이었다. 비록 경상에 그칠지라도 표정에 변화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등골을 스치고 지나가는 위화감에 카인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따지고 보면 십검 앞에서도 그러했다. 상처를 인가하는 전가의 보도 앞에서도.
도출되는 결론은 하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건가.”
“눈치채는 게 너무 늦지 않습니까?”
아휀이 조직에서 부여받은 번외 인자는 사마귀. 먹이를 낚아챌 때 0.25초도 걸리지 않는다는 경이로운 속도도 속도지만 그가 눈여겨본 건 부차적인 효과였다.
‘통각이 없다는 것.’
고통에서 벗어난 아휀의 역량이 급증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는 이제 두려울 게 없었다.
“지랄났군.”
일생일대의 강적이 유일한 약점을 지우고 나타났으니, 카인의 머릿속엔 적신호가 울릴 수밖에 없었다. 파고들 틈이 사라진 상황. 온전히 실력만으로 자웅을 겨뤄야 했다.
하지만 천재 앞에서 범재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매분 매초마다 밀려나는 게 느껴졌다.
즉심통을 얻었으나, 그 사고 방식은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심통은 엄밀히 말하자면 원초적인 본능. 보조 기구는 될 수 있으나, 결코 핵심 동력은 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용하면 된다.’
발상의 전환.
없는 걸 채우기 위해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었다. 눈앞에 적당한 상대가 있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비급의 단면을 슬쩍 보여 주자 아휀은 체계화되고 정형화된 모습으로 그 내용을 풀어놓았다.
제 딴에는 기를 죽이기 위해 잔꾀를 부린 걸 테지만, 그거야말로 카인이 원하는 바였다. 덕분에 십 년이 가도 정립하지 못할 무학의 정수를 엿보았던 것이다.
한 번 물꼬를 트는 게 어렵지, 그 결실을 받아먹는 건 어렵지 않았다.
카인은 아휀을 교보재 삼아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너무나 많은 걸 얻고자 했어.’
그동안 분에 넘치는 과욕을 부렸다. 제 분수에 맞게 그 수준을 재단해 놓지 않으니, 제자리만 빙빙 돌았던 것이다.
결정해야 할 때였다.
과거의 유산에서 무엇을 배울지.
현묘한 이치? 특별한 개념? 유일한 묘리?
‘그딴 건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
아휀을 보고 알았다.
그런 건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걸.
비급에서 취해야 하는 건 실질적인 힘이었다. 사용 방법을 고심하지 않아도 그 존재만으로도 압도적인 힘.
‘마력.’
정련정심과 오더 링크의 경맥은 따로 돌았다. 그게 가능한 건 겹치는 부분이 없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마력을 쌓는 속도가 다른 이보다 두 배 더 빨랐다.
‘만약, 그 수를 늘린다면?’
본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련정심과 오더 링크에 비견되는 성절이 쉽게 구해질 리 없을뿐더러, 구한다 해도 그 뒤에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인은 모든 단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
그의 손에는 비급이 있고, 그 육신은 강철이었으니까.
비급에 기록된 경맥의 종류는 총 서른넷.
기경팔맥을 중심으로 경맥을 형성하자마자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쿵.
과유불급이라, 경맥 중에서도 겹치는 부분이 서로 충돌하며 일어난 파국이었다. 미래 예측이 제시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했는데 이 정도.
급속 회생이 없었더라면 한 줌의 핏물이 되었을 거라는 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이변을 맨 처음 느낀 건 카인과 검을 맞댄 아휀이었다.
“이건 또 무슨 수작입니까?”
“…….”
카인은 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의 의식은 이미 무의식의 저편을 걷고 있었다.
사지를 내달리는 경맥은 붕괴되고 재생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결코 퇴보하지 않았다. 세기의 시도는 점차 그 결실을 드러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연결된 경맥은 카인에게 새로운 감각을 선사했다.
경맥을 돌리는 건 무인에게 있어 숙명이나 다름없었다.
수만, 수십만 번 반복한 행동이 체화되는 순간, 개념이 하나 들어찼다.
여섯 번째 개념, 마력 노심.
마소와 공명하며 끊임없이 마력을 토해내는 노심은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았다.
카인이 위에서 아래로 검지를 내리그었다.
십검, 창상.
개념은 전과 같았으나, 그 출력은 천지 차이였다.
전혀 다른 기술이라 착각할 정도로.
“크흑.”
손끝에서 느껴지는 반발력에 아휀은 입술을 깨물었다. 정화로도 어찌할 수 없었다. 바닷물을 통째로 들이붓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아휀이라고 지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상대가 상대였으니까. 하지만 마지막 방점을 찍을 정도는 되었다.
여태까지 경험한 오의를 겹치고 겹치자 그란델에서 검기가 뿜어져 나왔다. 하늘까지 닿은 빛줄기는 어두운 장내를 밝게 비췄다.
그야말로 오의의 정수만 엮은 오의.
[파성 ― 건곤일척]그 안에 담긴 능력은 일격 필살.
맞은 상대는 반드시 죽는다. 어떠한 개념도, 의념도, 천념도 대상을 보호해 줄 수 없었다. 벤다는 행위를 넘어 죽는다는 운명을 부여한 것이다.
“마지막입니다.”
신이 내렸다 여겨질 정도로 새하얀 검격이 카인의 머리와 몸을 절단한 순간, 아휀은 비릿하게 웃었다. 이미 승패는 결정된 거나 다름없었다.
떨어져 나가려는 머리를 부여잡은 카인은 포기하지 않고 제자리에 욱여넣었다. 하지만 붙지 않았다. 그란델이 지닌 필사의 저주 앞에서는 급속 회생도 빛을 잃었던 것이다.
물론 넘쳐흐르는 마력 앞에서는 상성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이이익.
무한에 가까운 마력에 힘입어 절단된 부위가 억지로 엉겨붙기 시작하자 아휀이 헛웃음을 흘렸다.
“정말 마물이 따로 없군요. 인간이긴 한 겁니까?”
“금수 새끼가 논할 문제는 아니군.”
순식간에 아휀의 턱밑까지 치달은 카인은 그 앞에서 오의를 남발했다. 아휀도 아이슬로우를 믿고, 방어를 도외시한 채 맹공을 가했다.
한쪽은 죽어도 죽지 않고, 한쪽은 죽을 상처를 입지 않으니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균형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긁힌 상처가 가득한 아휀의 몸은 카인에게 영감을 주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유효타는 통해. 중요한 건 위력이 아니라 횟수.’
숟가락으로도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게 인간이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부서지지 않으면 부서질 때까지 패면 되었다.
더구나 아이슬로우의 적용 범위는 착용자뿐이었다.
허리를 뒤로 젖힌 카인은 있는 힘껏 되돌아오며, 아휀이 쥐고 있는 그란델을 집요하게 후려쳤다.
‘폭탄먼지벌레.’
위기에 직면하면 거의 200도나 되는 화학 물질을 발사하는 곤충이었다. 집중해야 할 건 초당 500번이나 연사하는 그 속도였다.
용의 인자가 반응한 순간, 두 팔에 로켓 엔진이 달렸다.
목이 꿰뚫리고 심장에 바람 구멍이 생겼지만 권격은 멈추지 않았다. 타격 횟수가 급증하자 그란델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점차 달라졌다.
쾅!
얼마 지나지 않아 그란델은 저 멀리 날아갔다. 누적된 충격을 견디지 못한 아휀이 기어코 놓아 버린 것이다. 그 사실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그의 손바닥은 핏물로 흥건했다.
“너도 이제 피를 흘리는군.”
아휀을 넘어뜨린 카인은 즉시 그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사정없이 연타했다. 교차되는 두 주먹의 궤적은 보이지도 않았다. 아휀 또한 저항했지만, 애당초 이 거리는 카인의 것이었다. 항상 육탄전을 치르는 그에게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지면이 가라앉고, 지축이 흔들릴 정도로 강렬한 후폭풍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런 위력과 별개로 아휀의 몸 위에는 나뭇가지에 긁힌듯 자그마한 상처만 날 뿐이었다.
“그래, 차라리 이렇게 되니 상쾌해지는군.”
어차피 쉽게 죽이고 싶지 않은 상대였다.
“너같이 일신의 영달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버러지는 고통받아 마땅하다.”
“부러운 거군요. 괜찮습니다. 그건 자연스러운 감정이니까요.”
“언제까지 지껄일 수 있나 보자.”
카인은 울분과 원한을 담아 주먹을 때려 박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이슬로우에서 파열음이 들려왔다. 동시에 누군가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그래서 카인은 아휀이 괴로워하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반대였다.
“후후, 마음껏 때리시지요. 분이 풀릴 때까지. 저는 하나도 아프지 않습니다.”
드러난 그 얼굴은 처음과 다르게 흉이 지고, 일그러졌지만 표정만은 처음과 똑같았다.
이왕 죽을 거 의연하게 죽겠다는 걸까.
고통이 없어지니, 두려움도 함께 사라진 듯했다. 이기적인 녀석다운 선택이었다.
하지만 아휀이 간과한 게 있었다.
아픔은 육신에서도 비롯되지만 정신에서도 비롯되었다.
“타나 님은 살아 있다.”
“하, 이제 와서 무슨 소리입니까.”
“듣자 하니 복귀하는 대로 테레나브스가의 명부에서 네 이름을 파내겠다고 하던데 말이야. 아마 역사에는 최단기 가주로 기록되겠군. 아니지, 배신자로 기록되려나?”
“웃기는 소리군요.”
짐짓 부정하면서도 그 목소리는 나지막이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