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377
377화 천벌 1
* * *
보이지 않는 파동이 쏜살처럼 쏘아졌다.
일격이 닿기 직전 물 찬 제비처럼 매끄럽게 한 바퀴 뒤로 돌아 선회한 베가는 포톤 블레이드를 뽑아 들었다.
섬뜩할 정도로 빠른 공방의 전환.
허공에 붕 뜬 카인은 쇄도하는 베가를 보고도 즉시 반응할 수 없었다. 용의 인자가 있다고 해도 비행하는 건 미지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그대로 두 동강 날 수도 있는 상황.
몸을 둥글게 말아 공기 저항을 줄인 카인은 팔 하나를 아래로 내렸다.
발파 천수.
손바닥에서 발출된 힘이 몸을 더 높은 곳으로 떠민 순간, 포톤 블레이드가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마이크로초에 불과한 찰나, 즉시 사지를 활짝 핀 카인은 용의 인자에서 한 가지 특성을 불러왔다.
하늘다람쥐.
날개 없이도 100미터는 가뿐히 날아가는 녀석의 힘을 빌어 카인은 기류를 타고 날아올랐다.
비상했다 착각할 정도로 자유로운 활공.
하지만 착각해서는 안 되었다. 떨어지고 있는 건 마찬가지. 추락하는 과정이 늦춰졌을 뿐이었다.
그러나 베가는 그것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나노 마테리얼을 사용해 새로운 무구를 형성했다.
테라.
자율 유도 공격 시스템이 내장된 포격용 판넬은 순식간에 수천 기를 돌파했다. 매초마다 늘어나는 테라를 쳐다본 카인은 침음을 흘렸다. 눈치챘을 땐 이미 늦었다. 송곳처럼 뾰족한 비행 물체가 사방을 빙 둘러싸고 있었으니까.
이 지평선에서 저 지평선까지, 사방팔방 모든 곳에서 중성자포가 쏘아졌다. 거기에 목표물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엿가락처럼 휘어지기까지 했다.
뿌리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는 걸 직감한 카인은 테라 중 하나를 밟고 떠올라 팔을 휘둘렀다.
십검, 창상.
열 손가락에서 발해진 검기는 채찍처럼 휘둘러져 접근하는 중성자포를 오는 족족 쏘아 떨어뜨렸다. 선과 선이 맞부딪치며 생겨난 폭발은 온 하늘을 수놓았다.
먼지구름을 뚫고 빠져나온 카인은 테라를 징검다리 삼아 내달렸다.
베가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는 건 한순간.
마지막 테라를 박차며 뛰어오른 카인은 그동안 참았던 힘을 방출했다. 용의 인자가 날뛰자 신체 능력은 금세 배가 되었다. 말아쥔 주먹에 산도 허무는 거력이 깃들었다.
[정련정심 ― 개수일촉改]그 뒤에 이어지는 비상천, 그리고 일파만파.
피아를 가리지 않고 연계되는 오의에 수천, 수만의 테라가 날개를 잃었다.
하지만 녀석들은 떨어지는 대신 잿빛 입자로 화해 베가의 등 뒤에 몰려들었다. 그리고 핵융합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빌어 재탄생했다.
때문에 포격은 그치지 않고 빗발쳤다.
그때 공세에 공세를 더하겠다는 듯, 야구공만 한 구체가 탄막을 이루며 허공에 흩뿌려졌다.
그 이름은 루나.
전투기나 정찰기를 비롯해 온갖 전략 병기를 처리하기 위해 설치되는 지뢰였다.
자체적으로 척력장을 발현할 수 있기에 한 번 펼쳐진 화망에 사각지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늘까지 뒤덮어 돔 형태를 이루었던 것이다. 어느 쪽으로 뚫든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
한 손에는 발파, 한 손에는 십검을 위시한 카인이 빈틈 사이로 머리를 욱여넣었으나, 돌아오는 건 폭발뿐이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닌 수십 번에 걸친 거대한 폭발.
쿠쾅! 쿵, 쿠웅!
초고온을 동반한 핵분열은 모든 것을 남김없이 집어삼켰다. 한 번 타들어 가기 시작한 풀숲은 사막이 되고 나서야 그 형세가 진정되었다.
불바다를 뚫고 뚜벅뚜벅 걸어 나온 카인은 부서질 듯한 가면을 움켜잡았다.
그 순간, 눌어붙은 피부에 새살이 돋아났다. 전투 코트 또한 언제 탔냐는 듯 제 형체를 되찾았다.
베가는 카인이 상대한 기신 중에서 최고라 할 수 있었다.
미래 예측으로도 쉬이 따라잡을 수 없는 기동력. 그와 더불어 무궁무진한 무장. 거기에 끝을 알 수 없는 출력까지.
몇 세대는 훌쩍 뛰어넘은 것 같은 스펙이었다.
하지만 알맹이가 없었다.
단순히 강할 뿐인 병기였다. 여느 신기가 그러하듯.
몇 번 뒷발질한 카인은 지면에 깊은 족적을 새기며 질주했다.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낀 베가가 높이 날아올랐다. 대기권 밖으로 나갈 기세였지만 카인은 개의치 않고, 달리는 데 집중했다.
중성자포에 팔이 날아가도 소규모 핵폭발에 피부가 녹아내려도 마찬가지.
저돌적인 맹진은 멈출 줄 몰랐다.
개미의 괴력,
진드기의 속력,
거품벌레의 도약력.
세 개의 특성이 합치된 순간 카인은 한 줄기 빛이 되었다. 극초음속에 진입한 그는 순식간에 베가의 가슴팍에 도달했다.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
하지만, 그 찰나에도 베가는 옆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아슬아슬하게 지나칠 수밖에 없는 상태.
‘안 될 말이지.’
그 순간적인 판단에 카인은 팔을 옆으로 뻗어 발파를 내질렀다.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에 찢어질 듯한 격통이 전신을 강타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쾅!
기어코 베가 위에 올라탄 카인은 주먹을 말아쥔 채 사정없이 난타했다. 갑작스레 쥐어짜인 마력 노심이 두근거릴 정도로 십검을 퍼부은 건 덤.
세 쌍의 날개 중 넷이 꺾이고 둘은 떨어져 나갔다. 헤드 부위는 없어진 지 오래. 결손된 부위가 수복되려고 할 때마다 카인은 극진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호쾌하다 못해 야만적인 연격.
결국 회생이 불가한 처지에 이른 베가는 볼품없이 추락했다.
쾅!
가슴팍에 올라간 카인은 게 등딱지를 벗겨내듯 억지로 장갑을 뜯어냈다. 그리고 조종석에 앉은 소년을 오연하게 내려다보았다.
“천년동자.”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년동자는 홀스터 안에 수납된 소형 블래스터를 꺼내 방아쇠를 당겼다. 정확하게 미간을 노린 사격이었으나, 카인은 피하지 않았다.
투둥.
허무하리만치 쉽게 두 동강 난 가면이 땅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상대의 정체를 파악한 천년동자의 얼굴에 경악이 스쳐 지나갔다.
“카인 슈발체베인. 그래, 제로원과 결탁한 건 너였구나.”
“이제 와서 알아도 바뀌는 건 없다.”
“눈빛을 보니 날 살려 둘 생각이 없나 보네.”
“넌 이 세상에 해악밖에 되지 않으니까.”
“누구 마음대로 그걸 정하는 건데? 나는 그 누구보다 인류를 위해 헌신했어. 그건 천년의 역사가 증명해.”
헐벗은 자를 구원했고, 길잃은 이를 인도했다. 기아, 전염병, 전쟁 등등 온갖 분쟁에 관여해 보다 더 나은 길을 제시했다.
성황교란 이름은 일련의 행동 아래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비사를 알고 있는 카인에게 통할 만한 논제는 아니었다.
“웃기지 마라. 네 궁극적인 목적이 인류를 지배하는 거라는 걸 모를 줄 아나?”
“제 무지와 무능을 감추지 못하고 자멸할 바에야 그편이 나아. 너도 느끼는 바가 있을 텐데?”
콜록. 한 번 헛기침을 내뱉은 천년동자가 카인을 올려다보았다. 그라고 마냥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건 아니었다.
세계 자원 분배 시스템, 그 원형이 되는 프로그램이 전뇌 안에 있었다. 여건만 된다면 테레사가 건재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건 일도 아니었다.
“나만 믿고 따른다면 영원한 평화를 이룩할 수 있어. 누구나 제 능력에 따라 평가받고, 제 수명이 다할 때까지 변함없는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거야.”
“남이 적선하듯이 넘겨준 평화에 의미는 없다.”
등급이 매겨진 채, 울타리 안에서 생활하는 건 가축과 다를 게 없었다.
더구나 생각하는 걸 멈추는 순간, 퇴화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내일은 바라지 않고 오늘에만 만족한다면, 다른 의미로 인류는 종말로 걸어갈 게 자명했다.
제 설득이 통하지 않자 천년동자의 표정은 싸늘해졌다.
“결국 벌주를 마시겠다는 거네.”
천년동자의 이마에 찍힌 세 개의 점, 트라이포드가 빛난 순간 베가가 꿈틀거렸다. 그건 마지막까지 고이 감춰 둔 비장의 패.
자폭이었다.
안전장치가 풀린 핵융합로는 더 이상 이로운 에너지원이 아니었다. 세상을 파멸로 이끌 재앙이었다.
아차 하는 순간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쿵!
벼락이 치는 듯한 폭음과 함께 엄청난 열기가 치솟았다. 충격을 견디지 못한 지면이 무너질 듯 흔들렸지만 카인의 표정은 고요하기만 했다.
어차피 지나갈 풍랑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정련정심 ― 극진]슬며시 손가락을 내민 순간, 핵융합로는 구멍이 숭숭 뚫린 채 죽음을 맞이했다. 미처 해소되지 못한 힘은 구름을 뚫고 저 멀리 날아갔다.
일장춘몽이라, 천년동자는 오색찬란하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베가까지 제물로 바쳤건만, 결과는 시원찮았다.
과연 절대적인 무력 앞에서는 어떠한 모략도 소용이 없다는 걸까.
가까이 다가온 카인이 제 목에 검지를 겨누자 천년동자는 쓰게 웃었다.
“무지하다는 건 때로는 행복한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지?”
“여기에서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 것 같아? 네가 원하는 미래가 펼쳐질 것 같아? 아니, 천만의 말씀. 조직이 내 뒤를 이을 뿐이야. 녀석들 뜻대로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는 거지.”
“걱정하지 않아도 내가 알아서 처리할 거다.”
“마음대로 되지 않을걸.”
자신만만한 어조.
돌연 뇌리를 스치는 불안한 예감에 카인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대낮임에도 무언가 번쩍이는 듯했다. 그게 신의 지팡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방금 전부터 조잘거렸던 건 최후의 한 방을 속이기 위해서였을까.
“고작 내놓은 수가 저거였나. 너도 알 텐데, 내게 통하지 않는다는 걸.”
막는 게 어렵다면 피하면 그만이었다.
“그야 잘 알지.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그 말을 듣기라도 한 듯 신의 지팡이의 궤도가 틀어졌다.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경로를 계산한 카인의 입가가 일그러졌다. 천년동자가 노리는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예상이 맞다면 신의 지팡이가 떨어질 곳은 나힘달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천년동자가 이죽거렸다.
“나힘달에 천벌이 내리면 사람들은 누구의 짓이라 여길까. 나? 아니면 그 잘난 제로원?”
백이면 백, 후자라 여길 거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카인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가 마신이라는 명함으로 권한을 가져왔듯이, 천년동자 또한 마신이라는 이름으로 책임을 인가하려 했다.
참사가 발생하면 성황교는 갈기갈기 찢어질 거다.
자칫 잘못하면 성전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엔지니어는 사라진 상황. 이렇다 할 경쟁자도 없으니 오토마타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권리를 얻기 위해 기꺼이 파벌을 형성할 거고, 그사이 조직은 득세할 거다.
물론 억측일 수 있지만, 매일 악화일로를 걸을 거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셈.
“너…….”
천년동자를 걷어찬 카인이 그의 머리를 짓밟았다.
“크크, 내가 가지지 못하는 건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해. 눈앞에서 얻은 승리는 네가 갖도록 해. 나는 네가 얻지 못하는 미래를 가져갈 테니까.”
콰직.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천년동자의 머리를 터트린 카인은, 극진으로 상반신은 물론이고 하반신까지 날렸다. 잿더미가 되어 사라진 천년동자가 남긴 건 옷가지 정도.
황급히 등을 돌린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한시라도 빨리 신의 지팡이를 막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