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4
004화 회생 4
* * *
“윽.”
거센 충격이 몰려온다.
타점이 빗나갔지만 어린 카인에겐 그것마저도 치명타에 가까웠다.
둔중한 충격에 몸이 하염없이 뒤로 밀려난다. 넘어지려던 찰나, 가까스로 중심을 바로잡은 카인이 다리를 들어 재주를 넘었다.
자연스럽게 벌어진 거리. 격렬했던 싸움은 한시적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어디에서 이런 녀석이 나온 걸까. 버터나이프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카인의 모습에 바템이 실소를 머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계획적으로 만들어졌다면 또 모를까. 거기까지 생각하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쯧, 이래서 점조직은…….”
바템은 알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보아하니 착오가 있었던 거 같구나. 나는 조직의 무술 사범 중 한 명인 바템 로무닌이라고 한다. 너도 조직의 교육을 받았다면 기본적인 건 알고 있을 텐데? 어디 소속인지 밝히거라.”
“조직? 요즘은 납치범도 무리를 이루나 보지?”
“그래, 이해한다. 조직에서 그런 식으로 대처하라고 교육했을 테니까. 하지만 경계할 거 없다. 나도 너와 같으니까. 자, 말해 보아라. 어디 소속인지 말하면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다. 너도 상급자와 이렇게 엮이는 건 싫지 않으냐.”
“그딴 건 없으니 닥치고 덤비기나 해.”
그 말에 바템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다.
한마디를 내뱉었을 뿐인데, 장내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바뀌기 시작했다. 단번에 죽이겠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단기 결전을 노리는 들개처럼 금방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뛰어오를 듯했다.
“그래, 그거다.”
카인이 바라는 태도였다.
장기전은 불리했다. 지금도 한계였다. 평정을 가장해도 누적된 충격은 숨길 수 없었다. 몸은 방금 전부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지금 당장 고무적인 결과를 보이고 있다고 해도 곧 스러질 사상누각에 불과했다.
수련하지 않은 육신은 백지, 그 자체였다. 체내에 쌓인 마소(魔素)도 없으니 요행을 바라는 것도 무리였다. 믿을 건 약한 몸뿐.
지쳐 쓰러지기 전에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천둥벌거숭이가 따로 없구나. 절기 하나 배웠다고 눈에 보이는 게 없나 보지?”
“그 나이가 되도록 3급 아귀인 녀석에게 듣고 싶은 소리는 아닌걸. 그 정도면 죽지 못해 사는 급일 텐데.”
“……. 가만히 데려갈까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조직에 도움이 되지 않을 녀석이로구나. 너는 재교육 없이 폐품 처리다.”
바템이 만전을 기하자 경맥을 따라 마소가 흐르기 시작한다. 마소는 모든 걸 아우르는 기운이자 힘의 근간. 경맥은 그 마소가 흐르는 혈관이었다.
누적된 힘이 폭발한 건 찰나.
쾅, 폭발적인 굉음과 함께 바템의 몸이 앞으로 튕겨 나갔다. 그와 동시에 팔을 뻗자 탄력을 받은 검이 순간적으로 바람을 일으켰다.
그야말로 전력이 담긴 일격. 사각에서 찔러 들어왔지만 카인은 검이 그리는 궤적을 놓치지 않았다.
코끝까지 다가와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체구가 작다는 건 단점이기도 했지만 장점이기도 했다.
낮은 위치에 있으니 검이 내려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바템의 자세는 실로 어정쩡했다.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사선에서 멀어진다.
‘이때.’
기이잉. 불길한 괴음을 토해내며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검을 무시한 채, 몸을 한껏 웅크리며 돌진한다. 지면에 부딪힐 듯이 아슬아슬하게.
이건 절호의 기회였다.
검이 멀어지는 것과 동시에 지면을 박차고 뛰어오른다.
공격과 방어가 뒤바뀌는 순간에 벌어진 일. 바템의 반응은 한 박자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게 호기였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아이가 어른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설령 상대가 노인이라고 해도 매한가지였다.
하물며 그게 조직에서 단련된 귀신―요원―이라고 한다면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체격 차이는 절망적인 격차를 낳았다. 발재간이 제법이지만 그것뿐. 카인도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건 아니었으나 후천적인 정보가 있었으니까.
한때나마 바템과는 사제지간이지 않았던가.
오랜 시간 동안 같이 단련한 것도 모자라 같은 유파였다. 더구나 9년 동안 마주친 사람이었다. 버릇과 습관까지 전부 꿰뚫고 있었다.
재능은 믿지 않았다.
오로지 정보의 힘만을 믿었다.
알고 있다는 건 그만큼 커다란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그러니…….
‘할 수 있다.’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한 카인이 버터나이프를 휘둘렀다. 돌연히 들어온 반격에 바템이 놀라자 입꼬리가 올라간다.
왼발을 뒤늦게 빼는 것도 그대로였으며, 예상하지 못한 일격이 날아올 때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는 것도 그대로였다.
해답지가 옆에 있으니 질릴 때까지 풀면 될 뿐. 이제 바템은 장난감에 불과했다. 몸을 좌우로 움직여 검을 피한 카인이 고무공처럼 튀어 올랐다.
자그마한 몸집을 최대한 활용해 바템의 등을 점령한 그는 뱀처럼 똬리를 틀었다.
카인을 떨어뜨리기 위해 바템이 옷깃을 잡았지만 헛수고였다. 손을 잡아도, 머리채를 잡아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뿐이었다.
잔망스러운 움직임에 분노를 터트린 바템이 검을 반대로 들었을 때, 카인이 버터나이프를 곧게 들었다.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경맥의 흐름이 살핀다.
두 눈에 보이는 건 아니었으나 어떻게 흐르고 있을지 알고 있었다. 한때나마 2급 살귀로 활동했던 그였다.
오랜 시간 동안 쌓은 마소가 사라졌다고는 하나, 경험과 지식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요동치는 살결. 3급 아귀들이 익히는 기술은 거기에서 거기였으니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지직. 쇄골과 어깨 사이에 존재하는 틈 안으로 버터나이프를 찔러넣자 불길한 파열음이 터져 나온다.
찰나의 순간, 좁쌀보다도 작은 틈 안으로 이물질이 들어가자 바템이 간헐적으로 발작을 일으킨다.
반사적으로 검을 휘두르지만 이미 방점은 찍혔다.
확인 사살을 하듯이 버터나이프를 걷어차며 떨어진 카인이 한 발자국 물러나자 바템은 비명을 터트렸다.
“끄으으,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절묘하게 들어간 버터나이프는 경맥과 동맥을 정확하게 갈라놓았다. 지금 뽑는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터. 일그러지려는 얼굴을 다잡은 바템이 정면을 응시했다.
카인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크크, 그래. 너도 어쩔 수 없었겠지. 하지만 이거 어쩌지? 네가 쓸 기회는 다 날아갔구나. 이게 없으면 날 찌르고 싶어도 찌르지 못할 테니까.”
보란 듯이 검지를 들어 버터나이프를 가리킨다.
“다시 찾으면 돼.”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카인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꼭 찾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엿보이자 바템은 신이 났다. 목적을 알았으니 대비하는 건 쉬웠다.
나이에 맞지 않는 기량에 당황한 건 사실이었으나 그도 조직의 귀신을 육성하는 무술 사범 중 하나였다. 조직 내부에서는 비루한 직책일지언정, 어린아이에게 무시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거친 황소를 유도하는 투우사가 된 듯한 기분으로 이리저리 팔을 놀리며 카인의 움직임을 제한한다.
하나, 둘, 셋.
순간, 버터나이프를 향해 올라가는 손을 낚아챈 바템이 비릿하게 웃었다.
“제법이었다만, 할아버지를 즐겁게 해주기엔 부족했구나.”
고사리처럼 작은 손을 꽉 쥔다. 도망칠 구멍이 없다는 걸 확인한 바템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카인이 순순히 잡혀준 건 자질구레한 과정을 건너뛰기 위한 전초전에 불과했다.
“뭣?”
다른 손에서 버터나이프가 나오자 바템이 탄성을 터트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어떻게 된 일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정도였다.
“단검은 두 개가 한 쌍. 기본이잖아?”
버터나이프는 처음부터 두 개였다.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척 연기를 한 것뿐이었다.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간 바템을 비웃은 카인이 벼락처럼 팔을 뻗었다. 화살처럼 쏘아진 버터나이프가 정확하게 경동맥을 꿰뚫고 지나간다.
한 명은 찌르기 위해 접근했고, 다른 한 명은 그런 줄도 모르고 방심했으니 결과는 보지 않아도 명확했다.
분수처럼 솟아오르는 피를 무시한 채, 바템이 급하게 검을 휘두른다.
“이 새끼가!”
“소용없어.”
손아귀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 어깨를 짚고 뛰어넘은 카인이 바템의 얼굴을 걷어찼다.
쿵. 충격을 견디지 못한 노인이 뒤로 쓰러진다. 날다람쥐처럼 공중을 돌아 지면에 착지한 카인이 천천히 그를 향해 걸어갔다.
승부는 끝이 났다.
남은 건 승자의 선언뿐.
“허, 허. 이런 일이…….”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 믿기지 않는지 바템은 연신 헛웃음을 내뱉었다. 죽음의 그림자는 어느새 발밑까지 드리워진 상태였다.
어린아이에게 죽다니.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마지막 발악을 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지만 바템은 말을 잇지 못했다.
도리어 숨이 멎는 듯했다.
거기에 보이는 건 서슬 퍼런 눈동자.
불꽃에 다 타고 남은 잿더미가 이러할까. 음산하게 빛나는 눈동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이를 담고 있었다. 그건 단순한 분노가 아니었다.
“너, 넌 누구냐?”
“죽다 만 귀신.”
“무슨 소…….”
어깨에 꽂힌 버터나이프를 뽑아 그대로 목구멍을 찌른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과거의 잔재를 털어내듯이.
어차피 영양가도 없는 넋두리였다. 들어줄 필요도 없었다.
뜨거운 핏물을 맞으며 한숨을 토해낸 카인은 무릎을 꿇고 어금니를 깨물었다. 겨우 몇 분 움직였을 뿐인데, 물먹은 솜처럼 몸이 무거웠다.
단순히 형(形)만 따라 했지만 축퇴보는 오래 단련해야 빛을 발하는 절기였다. 갑자기 쓰려고 했으니 대가가 뒤따라올 수밖에.
그래도 머리는 개운했다. 무언가 풀리지 않은 고리가 풀린 듯했다. 앓던 이가 빠진 것 같기도 하고.
첫 단추는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하게 끼워졌다고 볼 수 있었다. 조직으로 향하는 길을 직접 막은 것이다.
“나아갈 수 있어.”
두말할 것도 없었다. 과거와 달라졌으니까.
이제부터 시작이라 할 수 있었다.
성녀가 이단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히고, 자신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조직을 뿌리까지 없앤다.
오직 그것만 생각하면 된다. 머릿속으로 목표를 설정한 카인은 부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났다.
“죽이는 것만으론 성에 안 차.”
괘씸하다는 듯이 읊조린다.
망태기 할아범처럼 순진한 아이들을 납치하는 녀석에겐 그만한 형벌이 필요했다.
바템에게 다가가 품 안을 뒤적거린다.
짤그랑. 귓가에 익숙한 소리가 들리자 휘파람이 절로 나온다.
카인이 발견한 건 돈주머니였다. 그것도 금화가 가득 든. 묵직한 무게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너 같은 녀석에겐 노잣돈도 아깝지.”
변하지 않는 가치가 거기에 있었다. 맛있는 밥도, 아름다운 미녀도, 평온한 삶도 모두 돈에서 파생되었다. 돈이 없으면 어느 것 하나 누릴 수 없다는 건 만변의 진리.
황금은 그중에서도 으뜸이었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언제나 정점을 지키고 있었다.
누가 볼세라 서둘러 갈무리한다. 적어도 반년은 거뜬히 버틸 수 있는 금액. 음지에서 활동하는 조직답게 손이 컸다. 한낱 무술 사범이 이 정도라니.
하지만 히죽일 수 있던 것도 잠시뿐이었다.
크르릉. 불현듯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짐승의 콧소리에 카인은 고개를 돌렸다.
피 냄새를 맡고 접근한 늑대들이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아차 하는 사이에 상황은 급변했다. 하나같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운이 좋더라니.”
그럼 그렇지. 바템을 죽였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었다. 자그마한 언덕 너머에 있는 건 또 다른 언덕이었으니까.
덜덜 떨리는 팔을 부여잡는다. 경련이 멈추지 않았으나 칭얼거릴 틈은 없었다.
늑대들은 어느새 성큼 다가온 상태였다.
안타깝지만 올라탈 나무도, 밟고 도망칠 바위도 없다.
땅바닥을 굴러 바템의 검을 집어 든 카인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연달아 싸우는 건 피하고 싶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다행히 들짐승이라면 질리도록 잡았다.
바템을 사냥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터.
카인의 기세를 읽은 늑대 한 마리가 지면을 박차고 도약했다. 무리 중에서도 유독 커다란 몸집을 자랑하는 놈이었다. 우두머리가 사냥을 개시하자 다른 늑대들도 따라 움직였다.
검을 곧게 들어 놈을 맞이한다.
서로의 일격이 마주친 순간, 수풀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번쩍이는 것과 동시에 늑대의 머리가 정확하게 둘로 갈라졌다.
절단면은 거울을 보는 것처럼 매끈하기 그지없었다. 수풀 속에 누군가 있다는 걸 눈치챈 카인은 서둘러 바템의 뒤에 엎드렸다.
그가 몸을 숨긴 뒤에도 섬광은 멈추지 않았다.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늑대까지. 갑작스럽게 번뜩인 섬광은 주변에 있는 모든 늑대를 도살하고 나서야 사라졌다.
‘풀잎이라고?’
섬광의 정체가 아무렇게나 꺾은 풀잎이라는 깨달은 카인의 팔뚝에 소름이 돋아났다.
적어도 반푼이의 솜씨는 아니었다. 어쩌면 이름이 알려진 인물일 수도 있었다.
이윽고, 수풀을 헤치고 한 남성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