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50
050화 벽을 넘어서 1
* * *
1급 마귀.
일찍이 과거의 카인도 한 번 도전한 적이 있는 자리였다. 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올라가지 못했다. 범재가 발악해봐야 천재가 되는 건 아니었으니까.
처음부터 쉽게 이길 수 있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아직 이 몸은 열네 살. 다 여물지도 않았으니 힘에 부치는 건 당연했다.
‘……. 그런가.’
거기까지 생각한 카인은 탄성을 터트렸다. 깨달은 것이다. 잘못 생각해도 단단히 잘못 생각했다는 걸.
예나 지금이나 자신은 풋내나는 애송이였다. 다시 돌아왔다고는 하나, 모든 게 일천했다.
과거에도 뼈저리게 느꼈다.
천재들의 발자취를 좇아가려면 전략이 필요했다.
못하는 건 철저하게 배제하고, 잘하는 건 아득바득 긁어모아야 했다.
장점도 단점도 모두 끌어안으려 했으니 이렇게 밀려날 수밖에.
강한 척, 있는 척해 봐야 남는 건 없었다.
‘필요한 건 압도적인 피지컬이다. 네 우둔한 머리로도 수 싸움을 이어갈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피지컬.’
불현듯 3년 전 라프만이 했던 일갈이 떠오른다.
“스승님은 아직도 제게 가르침을 주시는군요.”
카인이 전의를 잃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아울이 해머를 곧추세웠다.
“이렇게 차이가 난다는 걸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건가.”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지. 안 그래?”
“그렇다면 죽어라. 너 같이 우둔한 녀석에게 물어보고 싶은 건 없다.”
경맥에 흐르는 마력이 급증하자 아울의 팔뚝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선천적인 괴력에 후천적인 거력까지 합쳐지자 수백 킬로그램에 달하는 해머는 나뭇가지가 되었다.
쿵! 전력을 다한 풀 스윙에도 해머는 자유롭기만 했다. 마치 중력을 잊은 듯 급격하게 방향이 전환되는 건 예사였다. 속도가 붙자 활어처럼 튀어 오르기까지 했다.
짓뭉갤 기세로 쏘아지는 해머를 보며 카인은 한 발자국 내디뎠다.
피하지 않고 마주 선다. 그게 그가 내린 답이었다.
깨지고, 부서지는 걸 전제로 몸을 들이밀었다. 예전에는 이보다 더 무모하게 싸운 적도 있었다.
재능이 없어서, 혹은 경험이 없어서 몸으로 모든 걸 대신했다.
지금도 마찬가지.
서 있는 자리가 바뀌었다고는 하나, 그 안에 있는 사람까지 바뀐 건 아니었다.
언제나 실패하고, 좌절했다. 재치 있는 일격이나 신기 어린 반격 같은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저 배운 것 안에서 배운 대로 행할 뿐인 인형이었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메트로놈처럼 움직이는 해머를 두드린다. 있는 힘을 다해 우직하게 밀고 나간다. 머리가 깨지고, 뼈마디가 엇나가도 개의치 않는다.
카인이란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처음부터 이런 거였다.
아울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에게 전투란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얻는 행위였다.
당연히 상처 입을 걸 알면서도 전진하는 건 언어도단이었다. 하물며 아무런 이득도 없어서야, 자살하고 싶다는 말밖에 되지 않았다.
“내 손에 죽기 전에 스스로 죽겠다는 건가?”
“그럴 리가.”
이 난관조차 카인에겐 수련이었다. 아득바득 버티며 정련과 정심을 운용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감각은 날카롭게 벼려졌으며, 정신은 태생적인 한계를 한 꺼풀 벗어던졌다.
그러자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던 본능이 꿈틀거렸다.
그건 온갖 위협과 위험을 감지하는 또 하나의 반신.
신체 개조를 받지 못해 영영 갖지 못할 감각이지만, 이따금 느끼고 있었다.
‘쥐의 인자.’
지난 24년 동안 흥망성쇠를 함께했던 형질이었다.
도중에 과적응자가 되어 황금에 집착하는 성격이 되었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그러한 미래, 아니, 과거가 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거니까.
순간, 3년 동안 갈고 닦았던 육신과 정신에 과거의 능력이 새겨진다.
비로소 정련정심에 새로운 개념이 깃들었다.
‘초월 감각.’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결 고리가 꿈틀대자 모든 감각이 극대화되었다.
싸움의 흐름이 눈에 박히듯 들어오는 건 물론이고, 자그마한 바람 소리가 천둥처럼 귓가에 날아와 꽂혔다. 진득한 피 냄새가 콧등을 간지럽히는가 하면 싸늘한 살기에 피부가 잘게 떨리기까지 했다.
거기에, 보이지 않았던 궤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육감이라 해도 좋았고, 본능이라 해도 좋았다.
어느 쪽이든 흐름을 탔다는 건 변치 않았으니까.
해머를 걷어차고, 맹진한다.
일변한 기세에 아울이 당황한 게 보였다. 드디어 잡은 기회였다. 결코 놓칠 수 없었다.
전신을 활용해 주먹 하나에 모든 걸 담는다.
다리를 기둥 삼아 허리를 활시위처럼 길게 늘어뜨린다. 힘이 정점에 달한 순간, 앞으로 쏘아지며 아울의 옆구리에 주먹을 꽂아 넣는다.
쾅! 거구가 풍랑을 만난 돛단배처럼 거세게 흔들렸다.
동시에 파열음이 들려왔다. 주먹이 꽂힌 곳은 움푹 들어가 있었다.
카인은 미소를 지었다. 처음으로 주먹이 닿았다.
언제나 바라보기만 했던 벽이 지금 코앞까지 내려왔다.
“자, 정산의 시간이다. 1급 마귀, 아울.”
“너, 그 이름을 어떻게…….”
“나를, 정련시켜라.”
차가운 눈으로 아울을 쳐다본 카인이 두 주먹을 앞으로 내밀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정련정심이 육신과 정신을 세차게 두드렸다.
* * *
설송나무 위에 올라간 나이아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루오와 베오는 안전한 곳에 있고, 카인이 데리고 온 무리 덕분에 에렌디아 부족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아직도 싸우고 있지만, 그것도 머지않아 결판이 날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한숨이 떠나지 않았다. 방금 전에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네 특기는 초장거리 사격이야.”
“잠깐만, 네가 뭔데 남의 장기를 마음대로 정하는 것이더냐.”
“너는 연사에 재능이 있는 게 아니라 저격에 더 재능이 있어.”
“내 말은 듣고 있는 것이더냐. 나는 한 번도 저격해 본 적이 없느니라.”
“부족의 원수를 갚고 싶다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애당초 어떻게 믿으라는 것이더냐. 나 또한 모르는 사실을.”
“나는 믿어. 이런 손을 가진 사람이 빗맞힐 리 없으니까.”
두 눈을 뜬 나이아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뱉었다. 아직도 자신의 손을 쓰다듬던 카인의 손길을 잊을 수 없었다.
굳은살이 박인 손가락을 보고 추측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실패하면 어쩌려고.”
근심이 가득한 눈으로 소란을 쫓는다. 저 멀리 두 사람이 싸우는 게 보였다. 하나는 카인이었고, 다른 하나는 불청객이었다.
맹수들의 사투가 저러할까. 누구의 송곳니가 더 날카로운지 겨루고 있는 듯했다. 주먹과 해머가 부딪칠 때,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칠 법도 하건만, 두 사람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대치 중이었다.
도끼질도 수십, 수백 번은 해야 넘어가는 설송나무도 거치적거린다는 듯 치워버리는 둘이니 그럴 만도 하겠지만.
“후우.”
시시각각 위치가 바뀌니 노릴 틈이 없었다. 애당초 뒤엉켜 싸우고 있는 둘이었다. 상황이 이러한데 한 명만 노리는 건 십좌 중 하나인 궁성이 와도 해내지 못할 묘기였다.
다시 한 번 카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래, 빗맞힐 리 없으니 꼭…….’
머리를 휘휘 젓는다. 어째서 그런 요구를 한 건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집중할 때였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런 무모한 짓을 할 리 없었다.
“하아, 어떻게 돼도 난 모른다.”
될 대로 돼라. 망설임은 곧 곧은 심지가 되었다. 거리를 가늠한 뒤, 활시위를 잡아당긴다.
알브는 청각이 발달했다고 아는 사람이 많지만,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처사였다. 시각 또한 그에 못지않았다.
나이아는 특히나 시각이 뛰어났다. 맑은 날이라면 지평선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래,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도 불청객의 얼굴을 몰라볼 리 없었다.
“저 녀석이 우리 마을을…….”
쓰러진 이들을 되새긴다.
우득. 활시위를 너무나도 강하게 당긴 나머지, 손가락에 핏물이 배어났지만 나이아의 눈은 사투가 벌어지는 곳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기회는 단 한 번. 발각되면 저쪽도 눈치챌 테니 다음 기회는 없었다.
경맥을 따라 마력이 흐르자 나이아의 머리카락이 나부꼈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엔 엘리사가 주었던 활로 부족을 지킨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당긴다, 당긴다, 당긴다.
한계를 넘어선 폭거에 활시위를 넘어 활대마저 기이하게 꺾였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과녁을 노린다.
최후의 한 발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나이아가 활시위를 놓는 순간, 굉음이 터졌다. 그녀가 노린 곳은 카인의 등. 그의 요구대로였다.
* * *
아울은 미친 듯이 해머를 휘둘렀다. 여력을 남겨둘 상황이 아니었다. 조직에 대해 알고 있는 이가 있었다. 어디에서 정보가 샌 건지 알아내야 했다.
“누가 말했지? 대답해라.”
“알고 싶으면 직접 알아내지그래. 기세등등하게 날 죽이겠다고 말하지 않았나. 말과는 다르게 영 맹탕인걸.”
“쥐새끼 같은 게!”
분노는 조바심이 되어 아울의 이지를 흐트러뜨렸다. 카인은 실낱같은 빈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어 주먹을 쑤셔 넣었다.
덕분에 해머에 맞았지만, 피차일반이었다. 사이좋게 한 방씩 주고받는 싸움이라면 이골이 나 있었다.
연이은 반격에 아울의 배는 끝을 모르고 들어갔다. 기어코 핏물을 토해낸 아울이 두 눈을 번뜩인 순간, 난데없이 카인이 펄쩍 뛰어올랐다.
어찌나 높이 솟구쳤는지 코트 자락이 펄럭이며 하늘을 가릴 정도였다.
“멍청한 녀석.”
제 딴에는 마무리하겠다고 수를 둔 걸 테지만, 빈틈투성이였다. 허공은 피할 장소도 없었다. 맞으면 맞는 대로 감내하는 수밖에.
해머를 내린 아울이 승부수를 걸었다. 카인이 내려오는 타이밍에 맞춰 아래에서 위로, 해머를 강하게 쳐올린 것이다.
하지만, 카인의 가슴에 먼저 닿은 건 해머가 아니었다.
삐죽. 속살을 꿰뚫고 나온 화살촉이 빼꼼히 모습을 드러낸다. 한 박자 늦게 누군가 카인에게 화살을 쏘았다는 걸 깨달은 아울이 탄성을 터트렸다.
“무슨…….”
이해하는 것보다 먼저 사건이 터진다.
카인의 오른쪽 가슴을 관통한 화살은 쭉쭉 나아가 그대로 아울의 왼쪽 가슴을 꿰뚫었던 것이다.
중간에서 방향을 비튼 카인은 눈밭을 나뒹굴며 중심을 잡았다.
별거 아닌 잔꾀였다. 나이아가 화살을 쏜 순간, 화려하게 뛰어올라 아울의 시야를 가렸을 뿐이니까.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전형적인 수법.
결과는 보이는 대로였다.
“네, 네놈이 감히…….”
“나에게 원한이 있는 사람이 있었나. 한평생 부끄러움 없이 살았다고 생각했건만, 그것도 아니었나 보군.”
극명하게 갈린 격차에 이죽거린다. 이쪽은 폐부에 불과하지만 저쪽은 심장이었다. 불시의 기습을 받았으니 충격은 두 배일 터.
“아직, 아직이다. 이런 잡배나 쓰는 수에, 내가 질 리 없다.”
아울은 인정할 수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빌빌 기었던 녀석이, 어느 순간 턱밑까지 치고 들어온 것이다. 결코 있어서도, 이루어져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끝을 내자고.”
거칠게 쇄도하며 해머를 두드린다. 이것도 이제 마지막이었다. 격렬한 싸움을 견디지 못한 해머가 부서진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해머를 깨부순 오른손도 무사하진 못했다.
“자랑하던 두 주먹이 부서졌는데 이제 어떻게 할 거지?”
“너도 기고만장할 때가 아닐 텐데? 그걸로 빗자루질이라도 할 건가?”
“이런 활용 방법도 있지.”
아울은 부서진 해머를 앞으로 내밀며 허리를 숙였다. 금방에라도 달려들 듯한 자세는 창병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자, 마지막이다. 엠.”
“유언은 그걸로 괜찮은 거겠지.”
팔꿈치로 장대를 후려치며 접근한다.
정심은 마음을 단련하고 육신을 온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성절. 뜻이 닿지 않는 곳은 없었다. 바란다면 불수의근도 조절할 수 있었다.
우득. 근육을 조여 부러진 뼈를 맞춘다. 흉측하게 일그러진 주먹이 제 형체를 갖춘 건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여태까지 숨겨 왔던 건 바로 이때를 위해서.
경맥에서 마력을 끌어올린 카인은 주먹을 내질렀다.
단련해서 강철 같은 몸을 가질 수 있다고 해도, 강철 그 자체가 되는 건 아니었다. 한계를 넘어서면 부러질 수밖에 없었다.
연격에 연격을 퍼붓는다.
아울이 강했던 건 그의 괴력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해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게 사라진 이상, 그는 물풍선이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