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73
073화 귀향길 1
* * *
돼지나 소도 아니고, 같은 말을 하고 같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에게 그런 처사라니.
“들어보니 첩은 알브라던데. 그것도 제법 아꼈다고 하니, 이거 웃어야 하는 일이더냐?”
“아악!”
투스마의 손등을 지르밟은 나이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가 고까운 건 그 이중적인 면모였다.
자기 좋을 때만 사람, 자기 싫을 때는 가축. 정말 제멋대로인 해석이었다.
“착각하고 있는데 난 알브를 좋아한다. 단지 내가 위로 올라가기 위한 도구로 썼을 뿐이지.”
“죄질이 더 나쁘구나.”
“흐흐, 너 같은 녀석은 권력을 휘두르는 게 얼마나 달콤한지 모를 테지. 항상 위에서 쥐여주는 명령이나 따르고 살 테니까. 그러니 그런 소리를 하는 거다.”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러면 이번 기회에 한 번 알아보는 게 어때? 날 여기에서 놓아주면 그만한 사례를 할 테니까. 어차피 암시장이 불탔으니 당초의 목적은 이루었을 텐데?”
나이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회유에 넘어갈 거였다면 애당초 이 자리에 오지도 않았을 테니까.
“조금만 더 가면 안전가옥이 있다. 흔적이 남는 게 걱정된다면 거기에 있는 황금을 주마. 개인 금고로 사용했으니 그 양이 적지 않을 거다.”
달콤한 제안이 계속해서 귓가를 두드리자 나이아는 투스마의 배를 걷어차며 로브 자락을 움켜잡았다.
“어지간히도 지껄이는구나. 그래, 그 잘난 얼굴이나 한 번 보자꾸나.”
거칠게 로브를 뒤로 넘긴다. 그러자 진한 금발이 흘러내렸다. 어딘가 모르게 친숙한 외형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유독 기다란 귀가 쫑긋거리자 나이아의 목소리가 절로 올라갔다.
“…알브?”
“왜 알브면 안 되냐?”
“하지만 너는 알브를 파는 노예 상인일 텐데? 그러면 지금까지 동족을 팔았다는 것이더냐?”
“인간도 인간을 파는 세상일 텐데. 무엇이 그리도 놀라운 거지?”
알브 노예를 파는 알브라니. 이건 나이아도 상상하지 못한 조합이었다.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대륙 서부엔 알브의 나라가 있었고, 그곳과 인접한 곳이 바로 하샤 왕국이었으니까. 거리가 가까우니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도 없었다.
어째서 투스마가 버번 백작령에서 제일가는 노예 상인이 될 수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제아무리 알브들이 배타적인 성향을 지녔다고 해도 동족을 보고 경계하지는 않을 테니까.
투스마는 바깥세상을 보고 싶어 하는 알브를 슬그머니 데려왔을 게 분명했다.
“이제 보니 첩으로 받아들인 건 알브가 아니라 인간이었구나. 그래, 처음부터 그랬던 거였어.”
어처구니가 없어 팔에 힘이 절로 들어간다. 나이아는 투스마의 머리채를 잡고 그대로 바닥에 내려찍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아인종은 항상 인간에게 당하는 역할이었다.
하나로 규합되지 못하고 사냥당하기에 보호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투스마를 통해 알게 되었다. 아인종이라고 무조건 선한 건 아니라는 걸.
약자라고 착하고, 강자라고 오만한 게 아니었다.
누구든지 가해자가 될 수 있고, 누구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 그 경계선에 종족은 필요 없는 요소였다.
이제야 당연한 사실을 알게 되니 통탄할 따름이었다.
“나는, 정말 우물 안의 개구리였구나.”
온갖 군상들이 대륙에 있었다.
그저 인간들에게 부모를 잃고 부족이 당할 뻔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을 경계했다. 그게 세상의 전부라는 듯 섣부르게 판단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선과 악의 경계는 애매모호했다. 그 안에서는 알브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래서 카인은 내가 나서길 주저한 건가.’
선과 악에 대한 개념도 잡히지 않았는데 무작정 현장에 가고 싶다고 했으니 얼마나 고심했을까.
‘만약 암시장에서 투스마와 처음 보는 인간이 동시에 나왔다면?’
아마 주저하지 않고 인간을 죽였을 테지. 그녀의 머릿속에 알브를 팔고 암시장을 만드는 부류는 인간밖에 없었으니까.
어쩌면 무고한 이에게 화살을 날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어깨가 축 늘어졌다.
현장에 나와 자신의 실력을 입증했건만, 전혀 즐겁지 않았다. 이런 거였다면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았다.
하나, 알게 된 이상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같은 알브라고 해도 투스마는 악. 여태까지 수많은 동족을 팔아 치운 장본인이었다.
활시위에 화살을 건다.
“아무리 동족이라 해도 죗값은 치러야 해.”
“동족…?”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려던 투스마가 외마디 탄성과 함께 쓰러진다.
툭.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관자놀이를 정확하게 뚫고 지나갔다. 동족을 죽였지만, 죄책감 따윈 없었다.
처음엔 걱정했다. 리벨리온은 청소란 명목으로 한꺼번에 너무나도 많은 이를 죽였던 것이다. 명확한 근거와 이유가 있음에도 정말 옳은 건지 의심을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암시장에서 구한 알브들과 지금 죽은 투스마가 증명하고 있었다. 그들은 틀리지 않았다는 걸.
합류 지점에 도착한 나이아는 언덕 위에 서서 버번 백작령을 내려다보았다.
암시장은 아직도 불타고 있었다. 짙은 연기가 피어올라 하늘 너머까지 닿으려고 했다. 아마 아침이 올 때까지 소란스러울 터.
무언가 싱숭생숭한 기분이었다.
선과 악을 떠나 손에 피를 묻힌다는 건 그만큼 피곤한 일이었다.
호른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수고했어. 제법이던걸.”
“보고 있었던 것이더냐.”
“걱정되어서 말이지. 도련님의 말도 있었고 말이야.”
“그 녀석.”
“응?”
“그 녀석은 언제나 이런 일을 하는 것이더냐.”
“뭐, 그렇지. 애당초 도련님이 만든 조직이잖아?”
“어째서 녀석은 이런 고행을 선택한 거지?”
그냥 돈 벌려고 만든 것 같던데. 무의식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밀어내며 호른은 말을 아꼈다. 나이아가 나아가려는 게 눈에 보였던 것이다.
방황하며 자신만의 해답을 찾는 건 젊음의 특권이지 않던가.
괜스레 사족을 달아 분위기를 망치고 싶진 않았다. 더욱이 나이아는 아직 열다섯 소녀에 불과했다. 스스로 상념에 빠지는 시간도 필요할 터.
다 알고 있다는 듯 직진하는 카인이 이상한 거였다.
어찌 됐든, 물음에 대한 답은 해야 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지. 너도 알다시피 우리 영지의 상태가 썩 좋은 편은 아니잖아?”
“그래서 결심한 건가.”
“일단 돌아가자고. 뒤는 다른 녀석들이 처리할 테니까.”
“알았다.”
등을 돌린 나이아는 슬쩍 버번 백작령을 쳐다보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따뜻한 만큼 차갑다는 것도.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것만 보게 된다는 것도.
하지만 조금 더 알고 싶었다.
* * *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세레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아니나 다를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누워 있던 매튜가 일어나 환복하고 있었다.
벌써 몇 번째일까?
슈발체베인 백작령의 치안을 책임지는 기사단장이라 그런지 매튜는 항상 바빠 보였다.
“나가시는 건가요?”
“순찰은 언제 해도 모자르니까.”
“그러면 아침엔 또 저 혼자겠네요.”
“미안하군. 일이 바빠서 말이야. 주말엔 시간을 내보지.”
토라진 세레나를 달랜 매튜는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러면 다녀오지.”
검을 집어 든 매튜가 매정하게 사라진다. 애교를 부리고, 마음을 흔들어도 그의 일과는 변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에게 강요받기라도 한 것처럼.
두 눈을 가늘게 뜬 세레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에 앉았다. 아울이 죽고 나서 얼마나 지났을까?
매튜와 연을 맺어 그의 집에서 살게 된 세레나는 새로운 명령을 받게 되었다.
‘엠의 죽음.’
조직이 바란 건 단순했다. 그들은 1급 마귀를 죽인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고대 유적지에 대해서 알게 된 이가 있다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때부터 세레나의 목적은 하나뿐이었다. 엠의 정체를 파헤치는 것.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조직에서 다른 귀신을 파견한다 해도 상대를 알지 못하면 노릴 수 없기 때문이다.
엠이 슈발체베인 가와 연관이 있다는 건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등장 시기와 라프만의 귀환이 묘하게 겹쳤으니까. 달리 고려할 곳이 없기도 했다.
처음엔 인명록이 길었다. 고려해야 할 게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명록은 점점 줄어들었다.
뒷골목을 헤매면서 범죄자와 매번 싸울 수 있을 정도로 슈발체베인 가에 충성심이 높은 인물. 다양한 전투 스타일을 사용할 수 있으면서 절대 패배하지 않는 인재.
무위까지 고려하면 볼 것도 없었다. 검성, 라프만 슈발체베인을 제외하면 한 명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다.
매튜 브라암히트.
슈발체베인 가가 자랑하는 기사단장.
오늘도 그는 어두운 밤거리를 나섰다.
어디에 가는지 알려주지도 않았다. 그저 순찰이라고 짧게 대답할 뿐. 1년 동안 정도 많이 쌓였다고 생각했건만 그건 또 아닌 듯했다.
‘아니면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상황이거나.’
오늘도 양의 인자를 사용해 수컷 비둘기를 길들였건만, 허탕이었다. 기사단장을 맡고 있는 건 폼이 아닌 듯, 어느 순간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항상 자신에게 미행이 붙을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둔 움직임이었다.
단순한 순찰이라면 저렇게 은밀하게 다닐 리 없었다. 매튜가 모습을 감추면 감출수록 세레나는 확신이 들었다. 그가 순찰을 나서면 얼마 뒤, 어김없이 범죄 조직이 소탕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래, 매튜는 엠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일련의 과정을 설명할 수 없었다. 창밖을 바라본 세레나의 눈은 더할 나위 없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 * *
옷깃을 세운 매튜는 여느 때처럼 골목길을 다니며 자신의 흔적을 지웠다.
기사단장에 올랐을 때부터 돌아다닌 길이었다. 숨 쉬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었다.
“후우.”
한숨을 터뜨린다. 카인이 오고 나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오더 링크를 전수할 것 같았던 라프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다물었으며, 기사단과 영지군에 있던 녀석들도 하나둘씩 그에 감화되었다.
오늘은 한 잔 걸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세레나에게 순찰한다고 나왔지만, 제대로 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기분을 달래고자 밤거리를 쏘다닐 뿐이었으니까.
골목길을 넘어 음습한 뒷골목으로 나오자 악취가 코를 질렀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이곳은 관심받지 못하는 이들이 모이는 소굴이었다.
몇 걸음 옮기자 선술집이 보였다.
낡고 허름한 외벽.
아마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일반 가정집으로 착각할 터. 하지만 이곳의 진가는 외견에 있지 않았다.
정문이 아닌 뒷문으로 돌아간 매튜는 익숙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화려하지만 결코 천박하지 않은 옷차림. 짙은 화장. 여인은 자신의 매력을 알고 그것을 십분 활용했다.
그녀는 이곳의 주인이자 이 일대를 휘어잡고 있는 범죄 조직, 화련관의 대모 레이였다.
“또 불시 검문인가요?”
“불만은 나중에 듣지. 자리나 안내해라.”
레이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매튜를 안으로 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그녀가 안전하게 세력을 넓힐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기사단장인 매튜의 도움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매튜는 완숙한 여인의 뒤를 따르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신분이 노출될 걱정이 없었다. 방마다 통로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조용히 모여, 조용히 헤어지기에 적당한 장소.
화련관은 선술집이기 전에 비밀스러운 만남을 보장하는 곳이었다.
가장 널따란 방을 차지한 매튜가 고갯짓하자 레이는 알았다는 듯 두 손을 공손히 모았다.
“그러면 쓸만한 아이들을 부르겠어요. 매튜 님이 오셨다는 말을 들으면 모두 좋아할 테니까요.”
“아니, 다른 사람은 필요 없다. 너만 있으면 되니까.”
“이제 그런 사이는 아닐 텐데요? 아니면 아직도 저를 그때 그 노예로 보는 건가요?”
레이의 눈꼬리가 올라가자 매튜는 손을 저었다.
“그런 게 아니다. 오늘은 듣고 싶은 정보가 있어 왔을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