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74
074화 귀향길 2
* * *
어쭙잖게 정보 길드나 도둑 길드를 돌아다니는 것보다 레이의 말을 듣는 게 백배 나았다.
멀찍이 매튜와 거리를 둔 레이가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무엇이 알고 싶은 건가요?”
“엠. 그자에 대해 알고 싶다.”
레이는 침음을 삼켰다. 어찌 모를 수 있을까. 얼마 전에 만난 상대를. 하지만 섣불리 거론할 수는 없었다.
매튜의 무서움은 익히 알고 있었다.
라프만이 자리를 비웠을 때 기사단과 영지군을 야금야금 집어삼킨 야심가였으니까. 암흑가와 결탁한 건 그 정점이라 할 수 있었다.
슈발체베인 백작령이 이 모양인 것도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해야 할 매튜가 변절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범죄자가 활개를 치는데 어느 정도 일조한 셈.
그러나 레이는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 엠을 보기 전이었다면 매튜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이것저것 말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돈을 물처럼 흘리며, 미친 듯 세력을 확장하는 곳이 평범할 리 없었다.
라프만이 직접 나섰으면 또 모르겠지만, 매튜는 수준이 맞지 않았다. 그가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아마 다른 조직도 같은 의견일 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자에 대해서 궁금해하시는 거죠?”
“수상하니까.”
술잔을 들이킨 매튜가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이따금 기사단이나 영지군이 움직였다. 그리고 범죄 조직을 소탕하고 돌아왔다. 지극히 정상적인 인과처럼 보였지만, 매튜의 눈엔 달랐다. 그를 거치지 않고 움직였으니까.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점점 케이스가 쌓이니 공통분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엠의 동선과 일치하는 점이 많았다. 그것도 놀라울 정도로. 우연으로 치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십중팔구 슈발체베인 가 내부에서 지시한 명령일 터.
라프만의 심복이라 할 수 있는 로건과 로잔은 무언가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쉽사리 다가갈 수 없었다. 그들에게 여지를 주면 다른 게 터질 수도 있었으니까.
‘기사단과 영지군으로 가는 자금을 횡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안 돼.’
지금은 몸을 낮추고 있을 때였다. 자금을 빼돌린 햇수가 햇수였다. 어쩌면 의심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레이의 목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매튜 님이 신경 쓸 것도 없는 애송이예요. 슈발체베인 백작령의 무서움을 모르고 날뛰는 걸 테죠.”
“하프문의 투론이 당했는데도 애송이라 칭할 셈인가?”
투론과 몇 번 만난 적이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는 처세술에 능하고, 손익에 민감했다. 구석에 몰리면 도망칠 위인이지 맞서 싸워 장렬하게 전사할 부류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엠은 투론을 손쉽게 죽였다. 보통 수완가가 아니라는 뜻일 터.
“우리들은 운이 좋았다고 평가하는데, 매튜 님은 다르게 생각하시는군요.”
“가주님이 돌아오시고 나서 조금씩 일이 틀어지고 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매튜의 반응을 살핀 메이는 입술을 핥았다. 아무래도 그럴듯한 정보를 얻지 못하면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닐 게 분명했다. 얼마나 많은 보따리를 풀어야 할까. 고민은 그리 길게 가지 않았다.
“저희도 많이 아는 건 아니에요. 워낙 베일에 감춰진 인물이니까요. 본거지도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지 못했어요.”
“너희도?”
“그렇게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지 마세요. 그동안 놀고 있었다는 말은 아니니까요.”
레이는 슬쩍 눈을 돌렸다.
“일단 다른 곳에서 온 건 확실해요. 아마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을 테죠.”
엠은 등장했을 때부터 내달렸다. 마치 뒤는 없다는 듯. 따로 일정표라도 있는 건지 차근차근 자신의 조직을 불렸다. 그 수가 워낙 기기묘묘해 눈치챘을 땐 상황이 많이 악화된 상태였다. 견제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백작령에서 모인 녀석들이 아니라는 건가.”
“그랬다면 매튜 님이 먼저 알았겠죠. 그렇지 않나요?”
기사단과 영지군이 움직여서 슈발체베인 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닌 듯했다.
‘대체 엠은 누구란 거지?’
술잔을 기울인 매튜의 고민은 길어졌다.
* * *
간밤에 푹 잤더니 몸이 개운했다.
어깨를 이리저리 돌린 카인은 병상을 박차고 일어나 빙글빙글 돌았다. 아휀에 이어, 타나까지. 난적을 여러 번 마주한 덕인지 정련정심이 진일보했다.
한 달 전이라면 상상도 못 했을 성취.
들뜬 미소를 억누르며 창밖을 바라본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따라 햇살이 따가웠다.
무언가 바뀐 듯했다.
“조망이 이렇게 훤했던가?”
멀지 않은 곳에 동산이 몇 개인가 있는 걸로 기억했는데, 지금 보니 그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다.
“뭐, 병실이라 바깥 풍경도 다른 거겠지.”
하루아침에 지형지물이 바뀔 리 없으니 모두 자신의 착각일 터. 시답잖은 상념을 지운 카인은 서둘러 짐을 챙겼다.
오늘은 테레나브스 가에서 떠나는 날이었다. 대리전의 결과도 나왔겠다 더 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여느 때처럼 검은 장갑을 착용하고 밖으로 나오니 나르달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아직까지 살아 있는 걸 보니 일이 잘 풀렸나 봅니다. 다행이군요. 송장을 치우지 않게 되어서.”
“일이랄 것도 없었다. 잠깐 얼굴만 보았을 뿐이니까.”
“과연 검성이 지켜볼 만합니다.”
유난히 시끄러운 아첨에 카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생색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만, 제가 협조했기에 일이 잘 풀린 면도 없잖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뭔가 했더니 줄을 타고 싶다는 말인가.”
“그건 너무 노골적이군요. 보다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정도로 정리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이 은혜는 잊지 않도록 하지. 시간이 있다면 슈발체베인 백작령으로 와라. 환대는 못 해주겠지만 부탁 한두 개 정도는 들어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약속이라는 건 카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지난밤, 카인은 타나와 내기를 하나 했다.
나르달의 거처를 두고.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친구가 사실 다른 조직의 끄나풀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하고 있을 터. 그녀는 쉽게 생각하는 듯했으나, 진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두 눈을 질끈 감고 용서해줄까?
‘그럴 리가.’
제국 대란이 일어났을 때 테레나브스 가는 모두가 주목하는 장소가 되었다. 황제를 죽인 범인이 총관인 나르달이라는 게 밝혀졌던 것이다.
진노한 타나는 나르달을 직접 찢어 죽였으며, 그의 뒤에 있는 조직을 거침없이 파헤치기 시작했다.
의심되는 건 전부 뿌리를 뽑았다. 꼬리가 잡혔다 싶으면 뜯고 생각했다. 그 기세가 얼마나 강맹한지 조직도 움츠러들 정도였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뒤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리는 듯했으나 카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곧 죽을 귀신과 이야기하는 취미는 없었으니까.
* * *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등짐을 짊어진 카인은 테레나브스 가를 쳐다보았다. 이제 지긋지긋한 곳과도 안녕이었다.
순간, 아휀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많은 걸 배웠습니다.”
“나도 많은 걸 깨닫고 간다. 잘 지내라.”
내밀어진 손을 마주 잡으며 미소 짓는다.
아쉽게도 백기사 아휀은 만들어진 우상이라는 게 판명 났다.
그가 한 행동에 정의는 있을지언정 선의는 없었다. 눈앞에 있는 아휀을 보고 판단하건대, 백기사 아휀은 지극히 계산적인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 틀림없었다.
기저에 깔린 선민의식. 재능에 대한 자부심. 아휀은 자기애로 똘똘 뭉친 인간이었다.
하지만 단면만 보고 그를 판단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노예로 팔려갔을 나이아가 지금은 슈발체베인 가에 있듯 미래는 어떻게 변할지 몰랐으니까.
어찌 됐든 거리를 두는 게 최선이었다. 그가 걸었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싫어도 조금씩 진상이 드러날 테니까. 경거망동할 때가 아니었다.
“다음에는 지지 않을 겁니다.”
누가 싸워준 데? 반사적으로 나올 뻔한 소리를 억누른다. 지금이야 어리니까 동등해 보일지 몰라도, 이후엔 극명하게 차이가 갈릴 게 뻔했다.
‘그리고…….’
대리전이 시작되기 전에 보여주었던 미소가 마음에 걸렸다.
아직은 의심만 하고 있지만 시꺼먼 속내가 사실로 밝혀지면 경계 수위를 대폭 높여야 할 터.
어느 쪽이든 가까이해서 좋을 녀석은 아니었다.
* * *
라프만 앞에선 타나가 저 멀리에서 아휀과 대화하고 있는 카인을 보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아휀보다 더 흥미로운 녀석이 있을 줄 몰랐는데 말이야.”
“어제 질리도록 들었다. 그만 입 다물어라. 네 주관적인 감상은 듣기 싫으니까.”
콜록, 콜록.
기침을 거칠게 내뱉은 라프만은 자연스럽게 거리를 벌렸다.
어제 무리한 탓에 몸이 좋지 않았다. 지금은 심신의 안정을 취해야 할 때. 시시콜콜 타나의 말에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타나는 그가 물러나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
“저 아이를 내게 넘겨라.”
“제자는 파는 물건이 아니다. 그리고 네 변덕에 어울려주는 건 어제로 족해. 그러니 포기해라.”
“알았으니 내게 넘겨라. 그래, 슈발체베인 가의 살림살이가 좋지 않다고 했었지. 보석 광산이라도 원하느냐? 저 녀석을 주면 교환해주지 못할 것도 없지.”
“이제 보니 속물이 다 되었군. 천금을 준다 해도 나는 관심 없다. 저 녀석은 내 뒤를 이어야 해.”
“잘 들었으니 내게 넘겨라.”
“일 없으니 꺼져라.”
라프만은 모르쇠로 일관하며 등을 돌렸다. 너는 짖어라, 나는 가련다. 일말의 동요도 보이지 않는 그 철벽같은 대응에 타나는 대상을 바꿨다.
스승이 싫다 해도 제자가 가겠다면 어쩌겠는가. 자고로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했다.
슬그머니 카인에게 붙은 타나가 허리를 숙였다.
“카인 슈발체베인.”
“네, 타나 님.”
“내 제자로 들어오거라. 서운하지 않게 대접하마.”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시답잖은 제안이었다. 어제 치렀던 연장전이 어지간히도 기억에 남은 듯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거절하겠습니다.”
“검성과의 정 때문인가?”
“그렇게 좋은 녀석으로 보였다니 황송하군요. 하지만 저는 실리를 추구하는 쪽입니다.”
“내게 오는 건 실리가 없다?”
그 말대로였다. 자금줄인 금광도 비수인 리벨리온도 모두 슈발체베인 가에 있었다. 그걸 버리고 여기까지 와야 할 이유가 없었다.
“후후, 테레나브스 가는 무가로도 유명하지만 보석 공예와 귀금속 가공으로도 이름을 날리고 있지. 이게 무슨 뜻인지 너는 알 텐데?”
“무력과 금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거군요.”
“슈발체베인 가와는 차원이 다르지.”
순간, 두 귀가 팔랑거렸다.
어찌 모를까. 테레나브스 가가 대륙 5대 상단만큼 부유하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하지만 평안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었다.
“그래도 내키지 않는군요.”
파성은 천재가 익혀야 제 효용을 발휘하는 성절이었으니까. 설혹, 라프만을 떠난다고 해도 무신의 흥밋거리를 채워주는 장난감으로 전락할 게 뻔했다.
더구나 근처엔 아휀이라는 걸출한 인재가 있으니 들러리나 하다가 인생이 끝날 터. 이리 보나 저리 보나 악수였다.
두 번의 거절.
타나도 예상했던 건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싫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강요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지. 하지만 기억해 두거라. 테레나브스 가는 언제나 열려 있다는 걸.”
그렇게 말하며 카인의 엉덩이를 두드린다.
“그동안 무럭무럭 자라거라. 내가 더 놀랄 수 있게.”
“히익.”
카인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벌레처럼 보던 사람이 이리 살갑게 구니 적응이 되지 않았다. 카인이 질겁하며 물러나자 타나는 유쾌하다는 듯 크게 웃었다.
“그러면 잘 가거라.”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본 라프만이 머리가 아프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내가 보고 있는데도 못 하는 짓이 없군.”
“귀여운 아이에게 엉덩이를 토닥여 주는 게 무에 몹쓸 짓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니 받아칠 말이 없었다. 손을 휘휘 저으며 작별을 고한 라프만은 잘 있으라는 말도 없이 테레나브스 가를 나섰다. 꾸벅, 고개를 숙인 카인 또한 황급히 그를 뒤 따라갔다.
멀어지는 스승과 제자를 보며 타나는 상념에 빠졌다. 불현듯 어젯밤 백년해로가 가리킨 숫자가 떠올랐다.
‘100점.’
이론상으로만 볼 수 있었던 숫자였다. 곰방대에 불을 붙이며 한 모금에 빨아들인다. 가슴에 가득 찬 연기를 내뱉으며 타나는 아무도 모르게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굳이 제자가 아니어도 괜찮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