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96
096화 정산 2
* * *
모든 일의 시발점.
조직은 그곳을 공략하기 위해 그동안 충성을 다했던 귀신들을 갈아 넣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조직의 일부가 나서야 할 정도로 큰 신의 무덤.
‘갑급인가?’
투입된 인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추측이었다.
갑급 신의 무덤을 공략한 적은 없다고 적혀 있는 걸 보니 조직에서도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는 듯했다.
어찌 됐든 홀가분했다.
1급 마귀가 되어야 접할 수 있는 정보를 얻었으니까. 조직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감이 잡혔다. 성과라고 하면 성과라 할 수 있는 일.
하지만 마냥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었다.
“또 챙기지 못했나.”
워낙 상황이 바쁘게 돌아가서 다른 신기가 있는지 살펴볼 시간이 부족했다.
빠져나오면서 중간중간 살펴보긴 했지만, 관측소라는 이름에 걸맞게 구비된 건 거의 연구나 실험을 위한 시설뿐이었다. 컴퓨터조차 일체형이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고.
나이아가 히죽거리며 팔꿈치로 옆구리를 두드린 건 그때였다.
“후후, 정말 너는 내가 아니면 안 되는 녀석이구나.”
“으스대지 말고 용건이나 말하지.”
“저번에도 내가 하나 찾지 않았더냐.”
투구 비슷한 무언가.
내구성은 손톱만큼도 없는 거였는데 카인은 신기하리만치 좋아했기에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적도 있었지.”
“그때 알게 되었다, 너는 희귀한 걸 좋아한다고.”
“애당초 싫어하는 사람이 있나?”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네가 수전노라는 건 이미 알고 있으니까. 우리 부족에서 발견한 금광을 보고 태도를 바꾼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자문자답한다. 나이아의 단호한 어조에 카인은 떫은 감이라도 씹은 듯 앓는 소리를 내었다.
“그래서? 이야기가 계속 헛돌고 있는데 감당할 자신은 있는 거겠지?”
“그럼.”
가슴을 편 나이아가 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냈다.
“실망하는 너를 위해 내가 친히 구해 온 팔찌다. 저번처럼 투구 같은 건 구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 난리 통에 이거라도 챙긴 게 어디더냐.”
스윽, 내밀어진 신기에 카인은 침음을 흘렸다.
스트랩 위에 걸린 유선형 바디. 이건 팔찌가 아니라 시계였다.
겉으로 드러난 스위치가 적은 걸로 보아 터치스크린을 기용한 제품일 터.
아니나 다를까, 디스플레이에 검지를 가져다 대자 낯익은 글자가 떠올렸다.
[사용자 등록이 진행 중입니다. 등록 완료.] [■■■ 계정과 연동됩니다.] [온라인 오류. 오프라인으로 전환됩니다.]‘정말 이 손은 어떤 거나 통하는구나.’
그렇게 감탄하고 있자니 구동 화면이 넘어가며 이름이 떠오른다.
[모험 그 이상의 가치를 넘어, Via Watch.]시계의 정식 명칭인 듯싶었다. 하지만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기능.
검지로 슥 긁으며 디스플레이를 훑어본다.
위치 확인, 지도 검색, 지리 전송 등등 척 보기에도 장소 파악에 특화된 시계인 것 같았다. 인터페이스도 알기 쉬웠다.
위치 확인을 누른 순간,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산과 나무가 솟아나고, 그 위에 도로와 집이 들어선다. 등고선을 따라 고저 차가 생겨나자 눈에 익은 배치가 드러난다.
어디에서 봤나 했더니 주점 앞에 있는 사거리와 똑같았다.
손가락을 오므려 화면을 줄이자 전체적인 윤곽이 드러났다.
현재 위치에서 가까운 곳은 자세히, 먼 곳은 간략하게.
토레마 자작령의 모습이 상세하게 나타났다.
저 멀리에 있는 미로의 숲까지.
놀라운 건 신의 무덤이 있었던 자리가 밝게 빛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관측소 EAR―001.]더 멀리 나가니 채워지지 않은 지도가 광활하게 드러났다. 아무래도 사용자가 간 곳만 비추는 듯싶었다.
온라인 상태가 되어 인공위성이나 기지국의 보조를 받으면 더 쓸만한 기기가 되겠지만, 그건 무리한 바람일 터. 그도 그럴 게, 현대 문명이 사라지고 육천오백여 년이나 지난 것이다.
아득한 세월이었다.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상념을 이어가는 사이, 배터리가 다 된 건지 시계가 꺼졌다.
다행스럽게도 슈발체베인 가에 태양광 패널이 있으니 문제가 될 건 없었다.
나이아가 고개를 갸웃거린 건 그때.
“허공에 대고 뭐 하는 것이더냐.”
“안 보이는 건가?”
“뭐가 말이더냐?”
“안 보인다면 됐어.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니까.”
비밀 보호 기능까지 있는 걸 보니 대단히 유용한 물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째서 이런 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나 싶을 만큼.
‘아니지, 알브여서 볼 수 있었던 건가.’
시계를 손목에 찬 카인이 나이아를 향해 고갯짓했다.
“가지고 싶은 게 뭐지?”
“딱히 바라는 건 없지만, 그렇게까지 말하니 하나 가지고 싶은 게 있구나. 지금껏 나는 활시위만 당겨지면 아무 활이나 썼지만, 마법이 부여된 활은 당기는 맛이 남다르다지?”
“그런 거라면 몇 개든 사 주지.”
“크크, 그런 말은 아니었는데 네가 주고 싶다니 성의를 봐서라도 받을 수밖에 없겠구나.”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나이아를 손짓 하나로 떨쳐냈다.
당근 하나로 다음에도 이런 물건을 받을 수 있다면 수십 개라도 내밀 의향이 있었다.
“그것보다 활약한 건 나이아 뿐만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조용히 앉아 있는 오리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카인의 시선을 느낀 오리올이 겸연쩍게 반응한 건 거의 동시.
“아닙니다. 활약이라니, 가당치도 않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련님 덕분에 부모님을 죽인 녀석에게 복수할 수 있었으니까요. 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나이아에게 들어서 대강 알고 있었다. 라이너스가 오리올의 부모를 죽인 범인이었다고. 세상 참 좁다고 느껴지는 인연이었다.
“스스로 당당해져도 된다. 네가 노력한 결과니까.”
원수가 누구인지 알려줘도 제 능력이 안 되면 이룰 수 없는 복수였으니 오리올의 승리는 온전히 그만의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적어도 카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번 경험을 통해 많은 걸 알게 되었습니다. 도련님이 가는 길이 고단할 거라는 걸. 아마 억지로 저를 붙잡은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겠죠.”
조직의 존재를 알고, 신의 무덤을 직접 보았다.
듣는 것과 경험한 건 천지 차이.
오리올은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결코 선한 집단이 아니라는 것도.
카인이 어째서 인재 육성에 심혈을 기울이는지 알 것 같았다.
“지금껏 저는 되는대로 살았습니다. 자인이 아프다는 핑계로 정작 제 자신에 대해선 무관심했죠.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제겐 도련님이 있으니까요.”
“판단을 내게 돌리겠다는 걸로 들리는데? 자인을 들먹이며 핑계를 댔던 시절과 무엇이 다르지?”
“확실히 다릅니다. 도련님은 상황이 아니라 제가 선택한 사람이니까요. 맡겨만 주신다면 도련님이 원하는 곳에, 바라는 때에 제힘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무뚝뚝한 사내가 이런 고백도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런가.”
하지만 카인은 가타부타 첨언하지 않았다. 오리올의 다짐이 빛을 바랄 뿐이었으니까. 눈빛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가 진심만을 말하고 있다는 건.
“앞으로 힘들어질 거다. 상대가 상대니. 하지만 나와 함께하다 보면 언젠가 자인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단서를 잡을 수 있을 거다.”
슈발체베인 가에 정착하고 나서 병증이 많이 완화된 자인이지만 가끔씩 발작을 일으킬 때가 있었다.
그러나 카인은 긍정적으로 보았다. 신의 무덤에서 방법을 찾으면 되니까. 그곳은 진보한 현대 문명의 잔재였다. 만병통치약 정도는 있을 터.
“그러면 더더욱 제가 노력하지 않을 이유가 없겠군요.”
답지 않게 밝게 웃는 오리올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주점에 적막이 흘렀다.
수많은 사람이 짜기라도 한 듯 입을 다무니 싫어도 그쪽으로 눈길을 줄 수밖에 없었다.
수수한 드레스로 가릴 수 없는 화려한 외모가 눈에 들어온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찰랑거리는 자주색 머리카락이 노란색 등불과 섞이며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었기에.
미녀가 다가오자 카인은 이기죽거렸다.
“부잣집 아가씨가 올 만한 곳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심술궂은 말에 당황할 법도 하건만 미녀, 아니 로이나는 당연하다는 듯 자리에 앉으며 인사를 건넸다.
“간밤에 죽진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은혜를 갚을 사람이 없어지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거든요.”
미로의 숲에서 죽을 각오로 귀환한 게 바로 엊그제였다. 서로 만신창이가 되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멀쩡하네요. 치료액 같은 걸 사용했나요? 아니면 신관의 힘?”
“자력 구제.”
아무리 돈이 많다지만, 침 바르면 나을 상처에 투자하고 싶진 않았다.
“몸에 구멍이 나고, 피를 한 바가지나 토한 걸 제가 직접 봤는데요?”
“시답잖은 질문이 많군. 그만큼 내가 익힌 성절이 무엇인지 궁금한가 보지?”
로이나가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그녀의 옆에 서 있던 거구의 사내가 먼저 움직였다.
“미스터 카인, 아가씨에게 그 이상의 무례는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쿤달락을 쳐다본 카인이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 이마를 탁, 쳤다.
“아니, 이게 누구야. 자기 아가씨가 열심히 뛰는 동안 잠들어 있던 공주님이 아니신가. 호위란 정말 좋은 직업이야. 돈도 받고, 보호도 받고 말이지. 나 같으면 부끄러워서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 있었을 거야.”
괜히 끼어들었다가 본전도 찾지 못한 쿤달락이 헛기침을 내뱉으며 떨어졌다.
한숨을 내쉰 로이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단 계산부터 먼저 하죠.”
“그러고 보니 아직 의뢰비를 받지 않았군.”
“하지만 이야기에 앞서 조금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묻지 못한 게 그리도 마음에 걸리는 건가.”
말하라는 듯 카인이 고갯짓하자 로이나가 넌지시 말했다.
“어느 가문에 속한 분이신가요?”
헤브니아는 힘이 곧 법인 세계였다.
유력 귀족이 유명한 무인인 건 그리 드문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근간이 되는 성절은 힘 있는 자들의 전유물이었다.
개천에서 용이 나온다는 건 모두 옛말이었다. 그렇기에 로이나는 카인이 유명한 무가의 자제 혹은 제자라고 판단했다.
“보다시피 지극히 평범한 동급 모험가다만?”
“그게 아니라는 건 카인 씨도 알고 저도 알잖아요.”
의뭉스럽게 웃는 게 퍽 아름다워 보였다. 하지만 장미는 보고 만족해야 하는 꽃이었다. 무턱대고 잡으면 가시에 찔릴 뿐이었다.
“내가 아는 건 다른 건데 말이야. 혹시 대륙 남부에서 올라온 모험가 삼인방에 대해서 알고 있나? 듣기로는 그중 둘이 눈이 맞아 상단을 차렸다고 하던데.”
개인의 신상 정보와 판토마 상단의 역린, 어느 게 무거운 주제인지 말할 것도 없었다.
“정말 빈틈이 없군요.”
“알았으면 정산이나 하지.”
“어쩔 수 없죠. 받으세요.”
로이나가 금화 주머니를 꺼내자 카인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람처럼 허겁지겁 손을 뻗었다.
기본 273골드에 생존 보장 100배 옵션. 거기에 자잘한 추가 수당까지 합하면 3만 골드 가까이 되었다.
“오랜만에 일한 기분이 드는군.”
자그마한 저택을 구매하거나 아인종 노예 하나를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일반적인 모험가라면 여기에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돈.
금화 주머니를 잡은 카인이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로이나가 손에 힘을 주고 놓지 않았던 것이다.
“이게 무슨 짓이지?”
“좋은 의뢰가 하나 있는데 들어보지 않으시겠어요?”
“우리 파티에 지명 의뢰를 넣겠다는 건가?”
“엄밀히 말하자면 제가 원하는 건 카인 씨예요.”
“나를 원한다고?”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묻자 로이나는 삐죽 올라오는 입꼬리를 가리기 위해 부채를 펼쳤다.
“섭섭한 반응이네요. 같이 죽을 뻔한 위기도 넘긴 사이잖아요?”
“아니, 나 혼자 넘겼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정말 서운한걸요.”
금화 주머니를 든 손에 힘이 더 들어가자 카인은 어깨를 으쓱였다.
“알았으니까 의뢰가 뭔지 말하기나 해라.”
“한눈에 반했어요. 판토마 가에 데릴사위로 들어와 주세요. 지참금은 얼마든지 낼 테니까요. 딱히 소속된 가문도 없다고 했으니 괜찮겠죠?”
침음이 절로 흘러나온다.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칠 줄이야. 어쩐지 집요할 정도로 묻는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정체를 파악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노리는 건 따로 있었다.
“카인 씨, 대답을 듣고 싶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