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35
35화
합방.
다른 사람의 방송에 출연해서 함께 진행하는 것.
요즘 들어서는 이게 아주 흔해졌다.
[오늘은 모실 게스트는 누구냐! 봇 하면 봇! 탑 하면 탑! 업계의 떠오르는 초신성! 팀 스나이퍼! 우리우리 조우리를 시청자 여러분들을 위해 모셔왔습니다!]시장이 원체 레드오션이라서 그럴까.
제아무리 실력을 갖춘 사람이라 한들, 일정 단계에 오르기 전까지는 기나긴 무명의 세월을 버틸 수밖에 없다.
길고 지독하다.
지독하리만치 길다.
구독자 백만을 자랑하는 어느 미튜버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제가 방송을 10년을 했어요. 그런데 그중에서 몇 년은 수입이 없었어요. 월 10만 원이 안 됐다니까요. 그래도 재밌어서 붙잡고 한 5년을 했나? 그때 처음으로 50만 원을 벌었어요. 그날 친구들이랑 다 같이 고기 먹으면서 울었죠.]사실, 수입이 적은 건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확신이었다.
내 방송이 재미가 없어서 안 뜨는 건지, 아니면 홍보가 안 돼서 묻히는 건지조차 알 수가 없다.
이 과정에서 지쳐 포기하는 사람이 한둘이던가.
하지만 합방을 통해 전략으로 푸시한다면 어떨까.
유명 미튜버의 유명세의 힘에 입어 시작부터 최소한의 구독자를 끌어모을 수 있다.
스타트라인에 설 수 있는 것.
그게 합방의 힘이었다.
하지만.
말이 거창하지, 합방은 어디까지나 예선 시드에 불과했다.
[얘는 왜 이렇게 밀어줌?] [개노잼, 놀아라]재미가 받쳐 줘야 한다.
제아무리 훌륭한 미튜버가 초대한들, 재미가 없으면 보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반감만 사기 좋았다.
[같은 팸이라고 맨날 나오네.] [둘이 사귐?] [그만 좀 출연시키면 안 됨?]이건 어찌 보면 TV 예능과도 같았다.
제아무리 잘나가는 예능이라고 한들, 게스트가 발목만 잡으면 반응이 좋을 수가 없지.
하지만 어찌 되었든 합방은 꽤 유효한 전략이었다.
요즘 어지간한 MCN은 신인들에게 전부 합방부터 밀어붙이고 보는 게 그 증거.
그리고.
[싱어송라이터 김한영]은 그 수혜를 봤다. [(모노 레전드 갱신)갓반인 듀오 기타 연주.]방송에 출연한 직후.
조회수가 미친 듯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조회수: 30,690.]시작은 무난했다.
[모든 노래]는 무려 41만의 구독자를 보유한 채널.그러니 첫날 3만이라는 숫자 자체는 그리 대수로운 수준도 아니었다.
[와, 진짜 좋다.] [왜 저렇게 잘 불러?] [모노가 선구안은 진짜 좋아.] [아무리 봐도 일반인이 아닌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임대경 아들이면 일반인 아닌 거 맞잖아 ㅋㅋㅋㅋ]시청자들의 반응은 꽤 좋았지만, 딱 그 정도.
임선우의 출연이 꽤 화제를 모으기는 했다.
하지만 연예인들도 부지기수로 도전하고 망하는 게 요즘 미튜브다.
임선우라는 이름 자체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 아는가.
나비의 날갯짓은 원래 고요한 법이다.
비로소 하루가 지나고 이틀 차가 되었을 때.
[조회수: 121,147.]숫자가 네 배로 뛰었다.
순식간에 10만이라는 숫자를 돌파한 것이었다.
[벌써 10만?] [감성 독보적이다.] [왜 중경대 김한석이라는지 알겠음 ㅋㅋㅋㅋㅋ 이름도 비슷하네.] [임대경 아들 보러 왔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까 쟤만 보고 있음.] [10초만 듣고 나가야지 했는데 눈 깜빡하니까 10분 지나갔다.]반응이 좋다.
단순히 조회수로는 가늠할 수 없는 반응이라는 게 있었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시작에 불과했다.
[조회수: 260,887.]26만 돌파.
[조회수: 330,623.]33만 돌파.
그리고.
[조회수: 520,690.]대망의 50만 돌파.
10일.
불과 10일이 안 되어서 거둬낸 성과였다.
같은 기간.
[싱어송라이터 김한영.] [구독자 수: 1.81만 명.]김한영의 구독자는 2.5배로 부풀었다.
나비의 날갯짓이 당장 폭풍이 되진 못했다.
다만.
그 과정이 되었다.
* * *
고희범이 울부짖었다.
“약빨 죽이네!”
고막을 틀어막고 싶을 정도로 큼직한 목소리.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게 그렇게 좋아?”
지난 합방이 끝난 뒤, 고희범의 얼굴에서는 연일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감정이 겉으로 다 드러나는 게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인데 고희범은 당연하다는 듯 외쳤다.
“좋지! 그럼 안 좋겠냐! 좋다! 으아아아아! 나는 최고다! 이게 인생이다! 내 인생 최고!”
“…….”
저건 조금 너무 기뻐하는 것 같은데.
조금만 더 기쁘면 당장이라도 바닥을 데굴데굴 구를 것 같다.
아.
진짜로 구르네.
나는 말릴까 하다가, 묻을 것 같아서 멀찍이 떨어진 채 말했다.
“야, 오버 그만해. 다른 사람들이 볼까 쪽팔린다.”
“보라고 해! 나는 안 부끄러워!”
“아니, 네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쪽팔린다고.”
“너는 내가 부끄러워?”
“어.”
“너무해.”
아니, 전혀 안 너무해.
‘로또를 맞아도 저것보다는 얌전하겠다.’
너무 요란하다.
하지만 그가 저리도 기뻐하는 이유라면 나도 대충은 알 것 같았다.
[싱어송라이터 김한영.] [구독자 수: 2.01만 명.]마의 구간.
1만에서부터 2만.
미튜버가 가장 많이 포기한다는 저 구간을 방송 한 방에 통과해 버렸다.
‘이제 슬슬 방송만 해도 생활비는 나오겠네.’
고희범의 말마따나 약빨을 제대로 받아 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그가 소파 위를 데굴데굴 구르던 찰나였다.
“헉!”
그는 갑자기 번쩍 눈을 뜨더니 말했다.
“우리, 이러다가 너무 유명해져 버리면 어쩌지?”
“…….”
꿈 깨라.
꼴랑 이거 가지고 벌써 연예인병에 걸렸냐.
김칫국을 마셔도 정도껏 마셔야지.
이 정도면 주모도 유산균 중독으로 급사하겠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생각을 마음속으로만 삼킬 뿐,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왜냐.
‘원래 처음 뜰 때가 제일 기쁘지.’
나도 저 기쁨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첫 성공의 기쁨은 감히 남이 방해해도 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기뻐할 수 있을 때 기뻐하는 게 낫다.
자고로 첫 성공은 평생 가슴에 남는 법이다.
사람이 살아가며 지치고 힘들 때, 첫 성공의 기쁨을 곱씹으며 버틸 때가 얼마나 많던가.
‘그동안 하꼬로 고생 좀 했다니까 더 기쁘겠지.’
나는 그가 기뻐할 수 있을 때 잔뜩 기뻐할 수 있게끔 내버려 두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야! 우리가 해낸 거야!”
고희범의 모습에서 나도 흐뭇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싱어송라이터 김한영 채널 관리자다! 어? 우리는 최고의 듀오다. 알지?”
그의 기뻐하는 방식이었다.
‘내 성공을 자기 성공처럼 기뻐해 주는 사람은 오래간만이네.’
그렇다.
지금 모노 라이브의 성공은 굳이 따지자면, 그의 성공보다는 내 성공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고희범의 모습은 어떤가.
그는 이번 성공에 질시 한 점 없이 기뻐해 주고 있었다.
이는 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은근히 보기 드문 성격이었다.
‘동업자가 조금만 성공해도 의심하고 질투하는 사람이 발에 채일 만큼 많았는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고희범의 태도는 썩 기특한 부분이 있었다.
‘처음 봤을 때는 이런 한심한 놈이 있나 했는데, 나름대로 장점도 있네.’
여러모로 한심하기는 하다.
하지만 은근히 호의를 불러일으키는 면이 있었다.
“끼얏호우!”
아무리 그래도 저건 좀 그렇고.
나는 동아리방 소파 위를 뒹굴뒹굴 굴러다니는 그를 발로 툭 차며 말했다.
“야, 좀 적당히 해라. 누가 듣겠다.”
“오늘 학교 휴일이라 회관 오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뭐 어때서.”
그렇게 중얼거리는 순간이었다.
“없기는 뭐가 없어.”
누군가가 동아리 커튼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팅에서 몇 안 되는 1학년생.
성민아.
그녀가 세상 한심하다는 눈길로 고희범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언제부터 듣고 있었어?”
고희범이 눈가를 씰룩거리며 묻는데, 성민아는 잠시의 주저도 없이 말했다.
“너 소리 지르는 거 1층 계단까지 다 들리던데.”
“…….”
“발성 좋더라.”
그 말에 고희범이 축 처졌다.
그는 언제 들떴냐는 듯, 천장만 멍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감정 기복이 롤러코스터네.’
저걸 기타로 연주해 보면 어떤 멜로디가 될까.
그 모습을 조미료 삼아 기타 연주에 시선을 돌린 순간이었다.
드륵.
성민아는 대충 책상 앞 의자에 걸터앉더니,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 말 안 했어?”
“뭐가?”
“지난번 방송 말이야.”
그녀가 찌뿌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선우랑 희범이랑 같이 나갔다면서. 반응도 좋았고. 많이.”
“그랬지.”
“나한테도 알려 줘도 되는 거였잖아.”
못 알려 줄 건 없다.
하지만 듣자 하니 어딘가 따지는 말투기에, 나는 굳이 한번 찔러 보았다.
“왜?”
“그야…….”
그녀는 말문이 막힌 듯하더니, 눈을 깜빡이다가 말했다.
“같은 동아리니까?”
이거 반응 봐라.
나는 한 번 더 찔러보기로 했다.
“같은 동아리면 내가 뭘 하는지 다 말해 줘야 하나?”
“그건…… 아닌데…….”
그녀는 자기가 말하면서도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는지 말꼬리를 흐렸다.
쉽게 말해서, 말문이 막혔다.
근래 자주 보는 광경이었다.
‘겉모습만 보면 사람이 똑 부러질 것 같은데, 실제로는 은근히 대책이 없지.’
성민아의 특징이었다.
은근히 생각이 짧고 허당 기질이 있었다.
지난번 내게 사과할 때도 느꼈지만, 말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크게 생각을 안 하고 막 던진다고 할까.
하지만 뭐.
‘이런 성격도 나쁠 건 없지.’
지나치게 생각이 많은 것보다는 이런 사람이 대화를 나누기 편했다.
아마 내가 잡생각이 많은 사람이라서 그런가 보다.
이렇게 내가 잡생각에 빠진 사이에 성민아가 우물쭈물 말을 이었다.
“은솔이 언니한테 듣고 놀라서…… 은솔이 언니는 다 아는데, 나만 모르니까 따돌려진 것 같기도 하고, 왜 말을 안 했나 싶기도 해서 그게. 네가 나 피하나 싶기도 하고…….”
아니나 다를까 말꼬리가 길어졌다.
유감이다.
나는 그녀의 우물쭈물하는 말을 듣기를 잠시, 기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럼 나중에 방송 한번 같이 찍던가.”
그 순간이었다.
“진짜?”
불과 한마디에 표정이 트였다.
아.
어딘가 내가 아는 사람을 닮았다.
그게 누구였더라.
잘 생각해 보니 오래 지나지 않아 떠올랐다.
‘고희범이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에 훤히 드러난다는 점이 그러했다.
‘이거 본인한테 말하면 화내겠지.’
나는 속으로 작게 웃으며 말했다.
“뭣하면 주말에 촬영 있는데 그거라도 같이 가든가.”
“이번 주말? 주말은 나 약속이…….”
“시간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잠깐, 어, 음.”
그녀는 뭔가 생각할 게 있는 듯 핸드폰을 꺼내서 두드리더니 말했다.
“될 것 같아.”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컨텐츠 확보 성공.’
제 발로 걸어 들어오는 게스트는 환영이다.
몹시 환영이다.
출연료는 차차 협상해 가며 올리며 되겠지.
유감이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생각을 되새기는 참이었다.
“아 참.”
성민아가 나를 바라봤다.
다음 순간, 그녀의 입에서 뜬금없는 말이 흘러나왔다.
“우리 조만간 MT 있는 거 알지?”
“MT?”
MT.
마시고 토하고의 줄임말.
……은 아니고, 멤버십 트레이닝의 줄임말이었다.
다 같이 놀고 오는 것.
성민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선배들한테 들었는데, 여름방학부터 바빠질 거라고 하더라.”
여름방학 MT라.
‘한번 가 보고 싶었지.’
그러고 보면 팅은 아직 MT를 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원래 어지간한 동아리라면 학기 초부터 친목 도모를 위해 다녀오는 게 정석이지만, 팅은 예외였다.
MT의 빈도를 줄이고 질을 높이자는 생각인 모양.
“가야겠다.”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성민아가 뭔가를 깨달은 듯 물었다.
“그러고 보니까 너는 학과 MT도 안 왔었지?”
“그랬지.”
“왜 안 왔어?”
“그야, 학과 애들이 날 피했으니까.”
그 말이 잘 이해가 안 됐는지 성민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애들이? 너를? 왜?”
나는 구체적인 사정을 대답하는 대신, 성민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잠시 뒤.
“아!”
그녀의 얼굴이 당황에 물들었다.
그렇다.
학기 초, 내가 과 MT에 빠졌던 건 다름 아닌 성민아 때문이었다.
고백 사건의 여파로 남의 시선이 껄끄러웠던 것.
‘불편한 자리에 뭐 하러 가. 굳이.’
고희범이 이 말을 듣는다면 정신승리라고 웃겠지만, 남들이 간다고 해서 꼭 가야만 하는 건 아니지 않나.
“미안.”
성민아의 말에 나는 다시 기타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됐어, 어차피 갈 생각 없기는 했어.”
남들이랑 일부러 친해질 필요는 없다.
나는 애초에 인간관계를 그렇게 폭넓게 사귀려는 사람이 아니었다.
친해질 수 있으면 친해지고, 아니면 그냥 산다.
‘이걸 요즘 말로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라고 하던가.’
아무튼, 그러하다.
방구석에서 기타나 치는 게 더 취향이다.
정말이다.
기타가 더 재밌다.
“MT는 이번에 팅 식구들이랑 가면 되지.”
그렇게 말했는데, 성민아가 입을 열었다.
“……나중에 밥 살게.”
“비싼 거 사. 비싼 거.”
“비싼 밥 살게…….”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됐다.
그보다 더 궁금한 게 있었다.
“우리 MT 어디로 가?”
팅 MT였다.
보통은 어디 계곡이나 바다 같은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 가서 술판을 벌이는 게 정석이라고 했지.
내심 궁금하던 참인데 성민아가 입을 열었다.
“으음, 사실 팅 MT는 다른 과나 동아리 MT랑은 조금 다르대.”
“달라? 어떻게?”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아, 그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생산적이라더라.”
“생산적?”
“응, 그냥 놀러 가는 게 아니라, 뭐라도 하나 남기자는 생각으로 다녀오는 거지. 도장 깨기 같은 느낌?”
“도장 깨기? 어디서 공연이라도 하나?”
“나도 선배들한테 지나가듯 들은 거라 자세한 건 모르겠는데, 다 같이 며칠간 합숙하면서 실력 늘리고 공연하는 식이래.”
아하.
듣자 하니까 감이 왔다.
“딱 좋네.”
술만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시간 보내는 것보다는 훨씬 취향이네.
그렇게 짧게 되뇌인 순간이었다.
“오.”
반쯤 시체가 되어 늘어져 있던 고희범이 외쳤다.
“이것도 콘텐츠 아니야?”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저것 봐라.
이제 프로 다 됐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