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76
176화
그것을 아는가.
아무리 같은 곡이라고 해도, 부르는 사람과 장소에 따라서 감상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구성이 같아도 마찬가지다.
창법이 같아도 그러하다.
아주 똑같은 명화라고 해도 어디에 걸려 있는가에 따라 감상이 다르듯, 음악에서도 같은 효과가 작용했다.
“날 위해 헌신짝이 되어 주었던 그대. 이제는 알 수 있어요.”
지금, 가디건을 입은 남자가 연주하고 있는 [반추] 또한 그러했다.
반추라는 건 원래 슬픈 곡이었다.
내가 처음 곡을 만들 때부터 아쉬움과 회한을 담은 곡이니, 아무래도 기쁨이나 흥 같은 정서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저 남자에게는 뭐라고 해야 할까.
“그 거룩한 몸을 기꺼이 바쳐 한 움큼 거름이 되어 주었던 당신, 헌 옷을 자랑스럽게 걸쳤던 당신.”
어떤 곡이든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감성이 있는 듯했다.
‘잘하네.’
해변 부설 무대 위에서 사내가 차분하게 연주를 이어 나갔다.
내가 연주한 [반추]와는 악센트가 다르다.
서정성을 강조했던 내 목소리가 가을이었다면, 저 남자의 목소리에서는 따뜻함이 흘러넘쳤다.
‘아니다, 저건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감사다.
후회보다 감사의 마음이 훨씬 더 컸다.
사내가 품은 고유의 감성이 [반추]를 은인에게 감사하는 곡으로 만들어 냈다.
‘실력은 충분하겠는데.’
좋다.
이 정도면 오늘 하루의 주인공이 되어도 모자랄 게 없을 듯하다.
이쯤 생각이 닿았을 때 1절이 끝났다.
“라라, 라, 라라라, 라라.”
간주에서 사내의 어레인지가 들어갔다.
마치 내게 지금이 적기이니 딱 들어오라고 타이밍을 제시하는 듯했다.
좋다.
거부하지 않겠다.
물론, 저쪽에서 내게 타이밍을 내주려고 간주를 연주하는 건 아니겠다만, 어찌 되었든 나는 거부하지 않겠노라고 자의로 판단했다.
“야, 진짜 가게?”
옆에서 고희범이 내 어깨를 살짝 치며 물었다.
“들어가려면 지금 가야지.”
인생은 타이밍이고, 방송도 타이밍이다.
막상 만류하는 듯한 고희범도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 있지 않나.
생방송 화면에는 이미 불이 들어온 지 한참이었다.
[???] [여기가 어디임?] [무슨 노래 들리는데? 이거 반추 아님?] [반추 맞네] [근데 김한영이 부르는 게 아님] [어두워서 어딘지를 모르겠네] [아! 여기 강문해변 거기 버스킹하는 곳 아닌가?] [??? 지금 바로 간다] [김한영 딱 기다려]시청자들도 기다리고 계신다.
자, 이제 지체하면 안 될 순간에 다다랐다. 나는 기타 스트랩을 어깨에 멘 채, 자동차의 문을 열고는 바깥으로 나왔다.
하지만 인파에 섞여들기 직전까지도, 내게 크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왜냐.
오늘은 패션에 신경을 썼기 때문이었다.
날씨가 날씨이니만큼 질감이 두꺼운 외투를 걸쳤다.
머리에는 모자를 썼으며, 얼굴에는 마스크를 걸쳤다. 그 누가 보더라도 테러리스트 혹은 평범한 시민으로 간주할 코디였다.
‘이게 힘을 숨기는 기분이구나.’
일본에 여행을 갔을 무렵, [자비에르]에서 느꼈던 그 즐거움이 다시금 심장에서 솟아났다.
하지만 아직 모자라다.
흥이라는 것을 터뜨리기까지 앞으로 몇십 초 남았다.
“라, 라라, 라라라라라.”
나는 저 남자의 노래에 흥을 조율하듯 입으로 작게 중얼거리며, 무대 위로 두 다리를 움직였다.
* * *
박유동, 33세.
부천시 송내역 인근 모 출판사에서 근무하는 평범한 직장인.
너무나도 모범적인 소시민인 그에게는, 누가 봐도 특별한 취미가 하나 있었다.
바로 기타 하나를 들고 전국을 여행 다니는 것.
게스트하우스.
버스킹 거리.
지역 축제.
역 앞.
어디가 되었든 그는 곡을 연주할 만한 무대라면 기꺼이 두 다리를 향했다.
오늘 강릉에 온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공연하는데 시에서 참가비까지 후원해 준다고? 개꿀이잖아]그냥 공연하기 좋은 장소라서 왔다.
하지만 박유동은 가진 음악적 역량에도 불구하고 뜨는 데는 연이 없었다.
크게 무게도 두지 않았다.
음악이란 즐거우면 그만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기 때문.
“사진 속 풍선을 들고 활짝 웃는 아이. 그 액자 바깥에 사진사가 있었다는 걸 이제 알았네.”
즐거우면 된다.
즐거우면.
‘이곳에 가을 바다가 있고, 내 곡에 잠깐이나마 귀를 기울여 주는 관객들이 있다.’
박유동의 음악에 즐거움이라는 삘이 깃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흥에 취한 채 곡을 이어 나가길 한참이었다.
‘음?’
어딘가에서 자그맣게 기타 연주가 들려왔다.
딩.
관중석의 어딘가, 집중하지 않으면 크게 의식하기 어려울 음량으로.
디링.
하지만 그 볼륨과 멜로디가 절묘했다.
곡을 깨뜨릴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곡의 맛을 한층 살리는 것도 같았다.
반주의 반주라고 하면 좋을까.
존재감을 너무 과시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그의 곡을 돋보이게 했다.
‘난입하려는 건가?’
의심할 여지도 없이 남자는 곧바로 무대 위로 올라왔다.
“오?”
“와아아!”
무대 위로 환호성이 번졌다.
이상한 광경.
난입이 신기할 수는 있다 쳐도, 몇몇 관객들이 이상하리만치 감탄을 터뜨리는 게 신경이 쓰였다.
‘아무리 봐도 그냥 평범한 사람인데. 좀 꽁꽁 싸매기는 했다만.’
박유동은 내심 황당해하기도 잠시, 이내 피식 웃음을 지었다.
‘꼭 이런 사람들 있지.’
무대라는 건 본디 흥에 휘둘리기 좋은 장소다.
버스킹은 더더욱 그러했다.
관중석과의 거리가 짧은 만큼 격식 없이 가볍다. 그러니만큼 흥을 못 이겨 무대에 난입하려는 사람이 아주 가끔 나타나기 마련이었다.
그러다가 관객들까지 그 흥에 휘말릴 수도 있고.
‘그래, 음악에는 이런 맛이 있어야지.’
원래대로라면 조금이나마 꺼려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실력이 보였다.
‘좀 치는데?’
이 남자의 연주에는 잔잔한 터치와는 별개로 심오한 내공이 깃들어 있었다.
모든 호흡에 실시간으로 강약 조절을 넣으며 곡에 맞춰 간다.
아주 오랫동안 연주하지 않고서야 얻을 수 없는 섬세함이었다. 박유동은 자기 자신도 기타에 일가견을 쌓았으니만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선은 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반주의 반주까지는 양보할 수 있다. 하지만 보컬만큼은 절대 안 된다.
왜냐고?
이건 [반추]니까.
그가 근래 가장 좋아하는 곡이자, 인생곡으로 삼은 명곡이니까.
이거 하나만큼은 제대로 부르려고 목이 쉬도록,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연습했다.
더욱이 오늘의 마지막 곡이니까 절대로 넘겨줄 수 없다.
설마 이 자리에 원곡자라도 나타나지 않는 이상, 그 누가 됐든 절대로 넘겨주지 않겠다.
그렇게 결심한 순간이었다.
“…….”
남자가 마스크와 모자를 벗었다.
그곳에서 나타난 얼굴은.
“김한영?”
김한영이었다.
어느 관객이 중얼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관중들 사이로 놀라움의 함성이 조금씩 번져 나갔다.
“미친.”
“김한영이 왜 여기서 나와?”
“카메라, 카메라 어딨어?”
“대박.”
경악한 건 박유동도 마찬가지.
그가 곡을 연주하는 처지가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비명을 질렀으리라.
‘김, 김, 김한영이 왜 여기에 나타났지?’
박유동은 기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김한영이다.
그가 지금 연주하고 있는 곡의 원곡자이자, 요즘 인기가 너무 올라서 라이브 무대 한 번 보기조차 어렵다는 그 남자.
김한영이 싱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손? 왜?’
박유동은 사고가 굳어서 손으로 반주만 이어 나가기를 잠시.
‘아, 마이크 달라는 거구나.’
곧 김한영의 의도를 깨닫고는 자연스럽게 마이크를 넘기고야 말았다.
설령 원곡자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마이크만큼은 넘기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했건만, 그 원곡자가 나타나 버렸다.
어쩔 도리가 있나.
자연재해가 덮쳐 왔다면, 휩쓸려 주는 게 예의였다.
“어설펐던 내게 뿌리 깊은 나무는 천천히 자라고, 큰 그릇은 천천히 만들어진다고 해 주었던. 당신의 나이테가 새겨진 얼굴.”
얼핏 설렁설렁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데 감성이 말도 안 된다.
빨려 들어간다.
‘미친.’
박유동 그 또한 노래에는 상당한 자신감을 품은 사람이었다. TV에 나온 가수를 보면서, 내가 더 잘 부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기도 했다.
공연을 보러 가서도 그러했다.
하지만 김한영은 차원이 달랐다.
‘사람이 이렇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
목소리에서 세월이 느껴진다.
아직 20대 초반밖에 안 되는 앳된 학생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에, 진실된 인간의 온갖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대와 함께했던 공간을 정리할수록 내 안의 무게추를 되새깁니다. 지겨웠던 잔소리가 이제 거리의 어느 노래보다도 그리워 사무칩니다.”
이게 이렇게 부르는 곡이었나.
음원과는 차원이 달랐다.
어느 정도 믹싱빨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착각이었다.
오히려 음원이 훨씬 별로다.
‘휩쓸린다.’
박유동은 조금 전까지 부르고 있었던 노래에 그만 부끄러움마저 느끼고 말았다.
그만큼 김한영의 노래가 압도적이기 때문이었다.
“…….”
어?
왜 노래를 안 부르지?
의아하려니 김한영이 그에게 마이크를 내밀었다.
‘어, 어? 나한테 부르라고?’
미친.
대체 왜 그러지.
혼자서 다 부르지, 대체 왜 잘 부르다가 갑자기 넘긴단 말인가.
박유동은 울며 겨자 먹기로 마이크를 붙잡았다.
* * *
채팅창이 다시금 터졌다.
[김한영 무친놈아 무친놈아 무친놈아!!!]뭐가 그렇게 미쳤을까.
게릴라 무대를 하겠다고 선언했고, 마침 주위에 버스킹을 하는 곳이 있으니 저쪽에 나타나리라는 건 예상한 범위였다.
문제는 그 타이밍이었다.
[아마추어가 곡을 부르겠다는데 그걸 꼭 뺏어야겠냐!!!!]난입.
무명 가수의 옆에 나타나서는, 완전히 자기 무대로 만들어 버렸다.
[이 양심 없는 샛기야!!!!!]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복장이 터질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남의 밥그릇 좀 존중하라고오오오오오!!] [지만 재밌으면 장땡이죠?] [김한영이 정말 사람이냐? 놀랍다. 아무렇지도 않게 웃는 얼굴로 삶의 모든 걸 앗아가다니] [저 가식 넘치는 얼굴 아래 붉은 피가 흐르기는 하는지 의심스럽다.] [기만영!!!! 양학이 재밌느냔 말이다아아아!!]그중 화룡점정은 마이크를 넘긴 장면이었다.
잔인하다.
나름 잘하는 아마추어의 무대에 난입해, 그 아마추어를 압살했다.
물론, 듣기 좋았다.
하물며 무대를 강탈당한 당사자도 만족하다 못해 감격해서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런 사실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상공인이 보이면 괴롭혀야 적성이 풀리죠? 인성질 오졌죠?] [아주 숨만 쉬면 기만이야!!]그들은 김한영이 놀리고 싶으니까.
그저 그뿐이니까.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
[아 ㅋㅋㅋㅋ] [기만영 근데 진짜 잘하기는 하네] [쉿] [아무래도 같이 세워두고 보니까 김한영이 다르기는 다르다] [칭찬하지 마!!!! 칭찬하지 말라고!!!] [왜?] [버릇 나빠져!!]즐거워서 그냥 죽으려고들 한다.
이게 그들이 김한영의 방송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 * *
‘좋아, 방송 분량 깔끔하게 챙겼다.’
예상치 못하게 성과를 거뒀다.
강릉시청과 약속한 일이니까 대충하고 넘기려고 했는데, 예상 밖으로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았다.
“나쁜 놈.”
“…….”
“양심을 서울에 두고 왔느냐.”
“…….”
안 들린다.
홍윤서가 뭐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안 들린다.
“하이고, 잘하는 짓이다. 진짜 올챙이 개구리 시절 모른다고 하더니.”
“그거 반대예요.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 모르는 거죠.”
“듣고 있었네?”
“아.”
낚였다.
나는 작게 헛기침을 뱉고는 말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으면 된 거죠. 저쪽에서도 고맙다고 와서 인사하고 그러던데. 여기서 며칠 더 머무를 거라고 하시던데, 나중에 방송에 게스트로 모실까 생각 중이에요.”
아까 그 사람, 아무리 봐도 실력이 썩 괜찮았다.
이름만 부족할 뿐 어지간한 프로 수준은 넉넉하다.
몇십 년 전이였다면 프로 중에서도 꽤 잘한다는 평가를 들었으리라.
‘역시 시대가 발전해서 이런 게 좋아.’
전 국민의 평균적인 음악 실력이 어마어마하게 향상됐다.
그 덕에 나도 수혜를 본 거고.
“일단은 가서 밥이나 먹죠. 슬슬 배고픈데.”
“한영아, 시장 가서 조개 구워 먹자.”
“좋죠.”
“어? 괜찮아?”
조은솔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 강릉 오기 전에 빵 먹을 거라고 막 그랬잖아. 커피 빵 먹을 거라고.”
“빵은 아침에 갓 구운 거 먹어야 제맛이지, 저녁 빵은 별로라.”
“……취향 문제였구나.”
“농담이에요. 누나가 운전한다고 고생 많으셨잖아요.”
“응, 참 고맙네.”
오늘은 기분이 좋다.
뭐든 웃어넘기고 싶은 그런 기분.
그렇게 슬슬 차에 올라타는 순간이었다.
“잠시만요!”
한 중년 남자가 뒤뚱거리는 발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런데 그 얼굴이.
내게도 어느 정도 익은 사람이었다.
‘시장님?’
강릉시장.
살집이 두툼하게 오른 그가 헉헉 거칠게 숨을 몰아쉬더니, 이마의 땀마저 닦으며 말했다.
“잠깐 이야기 괜찮겠습니까?”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