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RAW novel - Chapter 269
269. 답 (3)
“백작님. 무대에 한 번 올라와 보시겠습니까?”
내가 후원한 공연장을 이리저리 누비고 있었다.
안내하던 관리자가 무대를 가리키며 물었고, 나는 물끄러미 그곳을 바라보았다.
뒤에서 밀어주던 일페르소가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올라 가보시죠. 항상 궁금해하셨잖습니까. 저곳은 어떤 풍경인지······.”
엄밀히 따지자면 지금의 무대에 올라 서보고 싶었던 건 아니다. 관객들이 가득할 때에 무대 위로 올라서 보고 싶었다. 그곳에서 관객들을 바라보고 싶었다. 나의 음악을 들어줄 청중들 말이다.
그래서였다.
“그곳은 영 제 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요.”
그렇기에 닿을 수 없는 꿈은.
애초에 시작되어선 안 된다고, 나는 생각했다.
평생 그런 마음가짐으로 음악을 대했고.
첫사랑을 대했으며.
나를···그리고 내 인생을 대했다.
“저는, 이곳에서 보겠습니다.”
······언제나.
나는 몰랐다.
스스로를 규정짓는 게, 안 된다 막고 포기하는 게, 그게 얼마나 나에게 몹쓸 짓이었는지.
어쩌면, 나를 평생 괴롭힌 병마(病魔)보다 더······.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앞으로 향하며.
그 짧은 새에 머릿속을 지나친 생각들.
나는 암전된 객석을 내려다보며 허리를 굽혔다.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박수와 환호, 그리고 그 열기가 무대로 넘어와 쏟아진다.
이미 새로운 생에선 수없이 올라선 무대지만, 여전히 새로운 기분.
머릿속에 그려본다.
옛 음악가들도 이 자리 어딘가에서 이 끊어지지 않을 것처럼 이어지는 박수와 환호성에 동참하는 모습을.
천천히 머리를 들어올린다.
내 모든 상상이, 그저 상상으로 그칠 것을 나는 알지만.
그래도 빙그레 웃어 보였다.
#
3층, 가장 먼 자리에서 무대를 내려다보는 백한길 회장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백작님이 지금 미소짓고 있구나!
그렇기에 백한길 회장도 비로소 웃음 지을 수 있었다.
연주곡을 듣는 내내 불편했던 마음은 여전하지만 말이다.
분명 아름다운 곡이었지만, 분명히 시간이 흘러 훗날엔 위대하다 칭송받을 곡이었지만.
자신의 거짓말로 완성된 헤피엔딩이었기에.
다행인 거다. 잘 된 거다. 그렇게 중얼거려도 보고.
백작님과 아실리에게 미안하다 말해도 보았지만.
그럼에도 지워지지 않던 불편함.
하지만 저 미소 하나로 녹아내린다.
그래, 잘한 거라고.
그때, 일어나 손뼉을 치던 백선화가 자리에 앉으며 들뜬 목소릴 냈다.
“저도 실연으로는 처음 듣는데, 정말 대단하네요. 음반으로는 이 느낌을 못 낸다는 게 못내 아쉬워요.”
그런 그녀를 보던 백한길 회장이 새삼스럽단 표정으로 픽 하고 웃는다.
“서호가 널 많이 바꿔놓았구나.”
“저만일까요? 이미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많은 것들을 바꿨잖아요. 오늘 밤에 음반까지 공개되면 더욱 많은 것들이 변할 거예요. 우리나라가, 서울이 ‘음악의 도시’로 불리는데 또 한 발짝 다가서게 되겠죠. 브리너 백작의 바덴바덴처럼요.”
기대와 확신에 찬 백선화를 보며 백한길 회장이 오묘한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된다면 바덴바덴도, 그리고 이곳도.
모두 한 사람에 의해 ‘음악의 도시’로 불리게 될 것이기에.
그것을 자신만 안다는 게, 내심 안타까운 그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무대로 올라온 연주자들과 함께 다시 한번 인사하는 한서호를 바라보며.
백한길 회장이 웃었다.
그의 눈에, 한서호가 아닌 브리너 백작이 보였고.
휠체어가 아닌 무대 위에서.
그가 오롯이 서 있었다.
#
두 시간 내내 굳게 닫혀있던 두꺼운 문이 열리며, 관객들이 로비로 밀려 나왔다.
그들의 표정엔 웃음이 가득했다. 마치 행복한 결말로 끝난 훌륭한 영화를 보고 나오는 이들처럼.
마지막 연주곡의 완벽한 피날레가 사람들로 하여금 미소짓게 했지. 그걸 한서호가 의도를 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콘서트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나름의 분석을 하던 김세진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곡이 대단했기에 가능한 것.
‘한국에 있는 동안 서호한테 작곡 수업이나 받아볼까.’
작곡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에겐 아득한 영역이었다.
대체 어떻게 저런 선율들을 떠올리는 걸까.
자신의 공연을 본 이들도 저런 표정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로비를 가로지른다. 밖으로 나오자 선선한 공기가 그를 맞이했고, 자연스레 고개가 돌아갔다.
“춥진 않으세요?”
아버지가 언제나처럼 무뚝뚝한 얼굴로 걷고 있다.
“괜찮다.”
목소리 또한 마찬가지.
하지만 그의 표정에 번진 미묘한 차이를 김세진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모르겠나. 언제나 눈치를 보며 바라보았던 아버지인데······.
“······어떠셨어요?”
그러니, 이 정도는 물어봐도 될 것 같았다.
분명 자신이 알고 있는 아버지는.
“흥.”
저렇게 콧방귀를 뀔 테지만.
“지휘자가 되더니, 연주는 너보다 좀 못하는 것 같네.”
미간을 찌푸리며 억지로 흠을 잡을 테지만.
“아버진··· 두 곡 중에 어느 쪽이 더 좋으셨어요?”
객석에서 무대를 보며 입을 벌리는 모습을 모두 보았지만, 굳이 정정하지 않고 묻는다.
“······.”
“······.”
꽤나 긴 고민 끝에 드러나는 진심.
“우열을 가리긴 어려웠다.”
“그렇긴 하죠.”
“다만 그래도 내가 과거 피아니스트였었기 때문인지 연주곡이 더 와닿긴 하더구나.”
그 말을 들은 김세진이 툭 답했다.
“피아니스트시잖아요. 지금도.”
무심한 눈이 그를 향했다.
어느 때보다 요동치는 무심한 눈이.
“얘기 들었어요. 피아노 치신다고.”
“······.”
“할머니가 그러시더라고요.”
“그냥, 오랜만에 손을 풀었던 것뿐이다.”
“그럼 손 좀 자주 푸시는 건 어때요?”
“······?”
“할머니가 무척 좋아하시더라고요. 아들이 연주를 한다고. 그 모습이 좋아서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우게 했던 건데, 너무 오랜만에 본다고.”
이쯤 되자 더는 무심해지려야 그럴 수 없는 표정이 되어있었다.
그런 자신의 아버지를 보며 김세진이 새로운 화두를 꺼냈다.
“이번에 레오 형이 장 오슬로님과 듀엣 음반을 또 낸대요.”
뜬금없이 그들의 소식을 전하며 슬쩍 본론을 꺼내 본다.
“저랑 연탄곡 음반 내실래요?”
예상했듯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이 돌아왔다.
“난 그런 사람이 아니잖냐.”
아버지가 말하는 ‘그런 사람’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장 오슬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그와 자신은 다르다는 거겠지.
하지만 김세진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이기 전에, 레오의 스승이었다.
그리고 그건······.
“제, 스승님이잖아요.”
자신과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스승도 스승 나름이지.”
“그건 그렇죠.”
“허?”
예상치 못했는지 헛바람을 삼키는 아버지에게 김세진이 덧붙였다.
“근데 모르셨겠지만, 당연히 모르셨겠지만······제가 어릴 때 가장 닮고 싶었던 연주자였어요. 아버지가.”
용기내어 던진 고백에.
“연습은···해보마. 그런다고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또 다른 용기가 합쳐지고.
차에 함께 올라탄 민망함을 쫓으려, 두 사람은 계속 대화를 해야만 했다.
정말, 오랜만에.
“근데 피아노 소리 멋졌죠?”
“······그런 거 많이 비싸겠지?”
퍽 그 소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쭈뼛거리며 묻는 아버지.
그 생소한 모습의 아버지가.
“한번 서호한테 물어볼까요?”
김세진은 조금씩 편해지려 하고 있었다.
#
······호텔 방으로 돌아온 백인 기자, 해리스는 노트북을 앞에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이미 짧은 기사는 완성해서 보냈다. 하지만 손가락이 근질거려 못내 아쉬웠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에 한참 동안 자판을 두드렸다 멈추길 반복하던 그가 포털 사이트를 켜 이름 하나를 검색해 보았다.
베를린의 거장, 프랑코의 제자이자, 파리 국립 음악원에서 교수직을 했었던.
유럽 우월주의에 빠진 채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한서호를 만나 호되게 당했던 홀랜드 팰머 전(前) 교수.
갑자기 그의 소식이 궁금해진 건, 그가 조용해도 너무 조용해서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서호가 뭘 할 때마다 걸고넘어지던 그였으니까.
그런 한서호가 4년 만에 음반으로 돌아왔다.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생각했고, 그 생각은 정확했다.
그는 여전히 한서호를 향한 비난을 퍼붓고 있었다.
다만 상황이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다.
그가 한서호를 넘어 자신의 스승, 그리고 새로운 클래식에까지 지적질을 했지만, 사람들에겐 관심 밖이었다.
이젠 기사 한두 개 올라오는 게 전부.
더는 관심받지 못하는 거다.
대중들이 궁금해하지 않는 거다.
그에 반해 한서호의 쇼케이스는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보았다.
물론 자신처럼 코앞에서 모든 감각을 느낄 순 없었겠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위대하다 말할 법한 순간을 보고 들은 것이다.
새로 고침을 한번 할 때마다 기사가 끝도 없이 쏟아진다.
단순히 화제성 때문이라고 하기엔 이상했다.
‘내용이 쓸데없이 너무 길어.’
이유는 간단했다. 기자들이 각자의 감상을 꾹꾹 눌러 담기 시작했다. 세간에 욕을 먹는 기자들답지 않게 말이다.
자신의 손이 근질거렸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걸, 해리스는 마침내 깨달았다.
‘한서호는 영감을 주는 음악가다.’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 들었던 이야기였다.
알버트도, 프랑코도, 데이빗도, 그리고 이제는 작고한 발터와 클래식의 적을 자처했던 일리야 로이드까지도 비슷한 이야길 했었지.
‘이젠 하다 하다 우리 기자들에게까지 영감을 준다는 건가.’
헛웃음을 지은 그가 두툼한 손을 타자 위에 얹었다. 그리고 짧은 고민 끝에 두드리기 시작한다.
[여전히 유럽 우월주의를 외치는 홀랜드 팰머.나는 그가 가진 생각에 동의했던 적이 있다.
내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얘긴 결코 아니다.
다만, 클래식만큼은 유럽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아주 오래된 생각이지만, 오늘 다시 한번 느꼈다.
그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애초에 어떤 장르던 음악이란 것이 한 나라, 문화권에 속할 수 없다는 걸.
나는 이 동쪽의 아름다운 곳에서 느꼈다.
동양적이고 이국적인 것들 투성인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을 들었고, 가장 새로운 음악도 들었다.
그 전율은 지금 내가 타자를 두드리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만하임도, 바덴바덴도 아닌 이곳이.
‘음악의 도시’라 불려야 할 것이다.]
마침표를 찍은 해리스가 안경을 벗고 눈을 비볐다.
마치 연주를 마친 피아니스트처럼.
영감을 쏟아낸 음악가처럼.
······그때였다. 핸드폰이 드륵드륵 울리며 음반 소식이 화면을 가득 메운 것은.
해리스가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손목을 확인했다.
‘벌써 시간이······.’
전 세계 모든 음원 사이트에, 한서호의 음반이 공개되었다.
침을 꿀꺽 삼키며 얼른 기사를 퇴고해 본사로 전송한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캐리어에서 해드셋을 꺼내 가장 편한 자리로 이동한다.
어느새 요란하던 핸드폰이 조용해졌다. 그런 거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왜인지 알 것도 같지만.
“후우······.”
침대에 반쯤 기댄 그가 심호흡을 하며 한서호의 음반을 찾는다.
마치 초콜릿을 손에 잔뜩 쥔 아이처럼 미소를 지으며, 첫 곡을 누른 채로 천천히 눈을 감는다.
······.
그날 밤, 각 포털 사이트에선 진풍경이 벌어졌다.
끝없이 올라올 것 같았던 기사들이 일제히 침묵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 기사를 봐야 할 이들조차 사라졌기에.
그 사실을 알아차린 이들은 많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