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RAW novel - Chapter 66
066. 브리너 (1)
“북적북적하네.”
사운드필름에서 꽤 오랫동안 녹음해온 강준서지만,
오늘은 그에게도 첫 출근을 한 것같이 낯선 분위기였다.
특히 메인 녹음실은 그 큰 공간이 가득 찰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그만큼 이번 녹음의 스케일이 컸다.
뒤따라 들어온 첼리스트 김영태도 부스 안을 둘러보며 감탄한다.
“악기 구성들 봐. 아주 작정을 했나 본데.”
그들에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보통 현악기와 필요에 따라 관악기 정도가 들어오고, 그마저도 vsti(-가상 악기)로 대체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오늘은 녹음하는 악기의 종류만 8개가 넘었다.
인원으로만 보면 쳄버 오케스트라(Chamber Orchestra)급 정도.
부스 안에서 아는 얼굴들을 발견한 강준서가 붙임성 좋게 이리저리 인사를 다니는 사이, 비올리스트 이소현은 악보를 꺼내 들었다.
“흐음······.”
눈을 깜빡거리며 침음성을 흘리는 그녀.
그때 옆에서 연주자들의 황당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게 악보야, 논문이야. 처음에 이면지랑 겹쳐서 프린트된 줄 알았다니까?”
“저도 보고 놀라긴 했어요. 근데, 솔직히 좀 과하지 않아요? 독주도 아니고 협주인데 이렇게까지 디테일을 잡는 게?”
“연주하는 우리도 못 느낄 디테일이야, 이건. 악기 수십 개가 함께 연주하는데, 어떻게 알겠어.”
시끌시끌한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던 김영태가 뒤늦게 악보를 꺼냈다.
“그래도 서호랑 몇 번 일해봤다고, 이런 악보가 익숙하네.”
“그러게. 근데, 확실히 저분들 말도 맞는 게······ 너무 세밀하긴 해.”
한서호에겐 이게 연주자를 향한 배려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연주하는 입장에선 이런 게 더 어렵다.
연습할 시간도 부족했다며 끙끙 앓는 이소현의 말 뒤로 잠자코 악보를 내려다보던 신수아가 툭 던지듯 감상을 띄웠다.
“그래서 좀, 놀랍네.”
“응?”
“이렇게 봐선 감도 안 오는 디테일들이······ 한서호. 걔 머리엔 다 들어 있다는 거니까.”
그녀의 말에 느릿하게 끄덕이는 이소현과 김영태.
어딘가에서 실컷 떠들다 돌아온 강준서가 거들었다.
“우리가 봐온 서호라면 아무런 의도 없이 이런 악보를 만들었을 리 없잖아.”
그리곤 주변을 힐끔거리며 덧붙인다.
“근데, 다들 반신반의하는 눈치야. 뭐, 나라도 그럴 것 같긴 해. 고등학생 작곡가 때문에 이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부터 신기한 건 사실이니.”
그의 말대로였다.
삼삼오오 모인 연주자들의 대화 주제는 대체로 곡과 악보. 그리고 한서호에 대한 것들이었다.
비록 각자의 악보만 보다 보니 곡 전체의 좋고 나쁨이나 퀄리티를 분간하긴 어렵지만,
자신의 파트 만으로도 뛰어난 작곡 실력이 느껴진다는 이들도 있었고.
그게 과연 오롯이 본인의 실력이겠냐며 의심하는 연주자들도 더러 있었다.
감탄과 의심.
어쨌든, 그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이 한서호라는 것만으로도 김영태는 웃으며 낯설어했다.
“뭔가, 잠깐 못 본 새에 서호가 엄청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네.”
“느낌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되긴 했지.”
이소현이 답했고, 강준서가 뿌듯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그런 세 사람에게로 신수아가 시선을 올렸다.
“근데. 너네 왜 다 내 자리에 와서 얘기하는 거야?”
“첼로 자리엔 친한 사람이 없어.”
“나도 비올라 쪽에 아는 사람이 별로···.”
“난 이미 다 돌고 왔지!”
“······.”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신수아.
때마침 한기준 대표와 엔지니어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오늘은 엔지니어마저도 여러 명이었다.
마치 학교 교실마냥 연주자들이 각자의 자리를 찾아 앉는다. 그리곤 말소릴 줄이고 악기 점검을 하거나 악보를 훑기 시작한다.
물론 아예 적막은 아니었다.
“디렉팅은 한 대표님이 하시는 건가?”
“그런가 본데? 하긴, 디렉팅은 정말 경험이 10할인데, 아무리 작곡을 했다지만 아직 좀 이르지.”
“그치. 심지어 오케스트라 디렉인데.”
들어오자마자 진지하게 얘길 나누는 한기준 대표와 엔지니어들을 보며 연주자들이 소곤거렸다.
그러다 하던 얘기가 끝났는지 한기준 대표가 토크백을 눌렀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연주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인사를 받았다.
옅게 웃은 한기준 대표가 능숙하게 말을 이어간다.
-다들 익숙한 얼굴들이신데, 이렇게 회사에서 다 함께 보는 건 처음인 것 같네요. 여러분들 덕분에 회사가 커져 이런 날이 왔습니다.
물론 이 정도 규모로 녹음한 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공간의 제약 때문에 보통 콘서트홀을 빌려서 녹음했던 터라 회사에서 이렇게 녹음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러니, 한기준 대표로서도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널따란 부스 안을 보며 한기준 대표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때마침 녹음실 문이 열리며 오늘의 디렉터이자 모든 곡의 작곡가가 들어왔다.
-방학식이 좀 늦게 끝났나 보네?
-네. 담임 선생님이 이것저것 걱정이 많으셔서 담배 피지 말라, 어디 놀러 가서 사고 치지 마라······.
-토크백 켜져 있어.
-······아?
누가 봐도 방학해서 신난 표정과 교복 차림.
한서호가 고개를 돌려 부스 안을 바라본다.
부스 안의 연주자들도 그에게로 시선을 쏟았다.
누군가는 신기해하고.
누군가는 못 미더워하며.
-하하··· 안녕하세요?”
#
아버지와 엔지니어들이 믹서 앞에 나란히 앉는다.
나는 그들 뒤쪽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테이블 위엔 부스 안 배치도가 그려진 종이가 있었는데, 부르기 편하게 각 자리에 숫자를 매겨놓았다.
이윽고, 아버지의 신호와 함께 녹음이 시작된다.
시선을 들어 위에 걸린 모니터를 보았다.
이번엔 가편집본이 아닌, 완성된 소프라노의 한 장면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동시에, 연주가 시작되었다.
······어린 주인공의 절절한 노래 끝에 빠른 시간의 흐름으로 성장을 보여준 뒤.
주인공은 아마추어 성악가들에게 노래를 배우며 꿈을 키우고. 이미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재능은 여건을 넘어선다.
기어이 유학을 가게 되는 주인공의 뒤를 든든히 지켜준 건, 그녀가 가진 재능의 한 줌도 못 미치는 아마추어 성악가들.
흐뭇한 미소와 응원을 받으며 떠나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지고.
그 위로 음악이 채색되어 간다.
‘좋아······.’
마침내 완성된 그림은 내가 머릿속으로 상상한 그대로였다.
만족스러운 첫 녹음.
물론 세세한 부분까지 완벽한 건 아니었기에 시선을 내려 연주자 번호를 확인했다.
“어, 우선 15번 연주자님.”
시선을 다시 들자 호른을 맡은 연주자가 내 쪽을 본다.
“42마디에 제가 적어놓은 메모 보시면, ‘길게 실을 뽑듯이’라고 되어 있잖아요? 치즈처럼 쭈욱 늘어나는 느낌이어선 안 돼요. 일정한 두께감으로 쭉- 뽑아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호른은 오케스트라 전체를 포용하는 넓은 이불이다.
그런데 어딘 얇고, 어딘 두껍다면 결국 뚫려버리는 부분이 생기겠지.
-이렇게 말입니까?
내 말을 이해했는지 연주자가 묵직한 호른을 들어 올려 숨을 길게 내뱉는다.
이에 빙그레 웃었다.
“맞습니다. 정확해요.”
천천히 끄덕이며 다시 호른을 내리는 연주자.
나도 다시 시선을 내려 번호를 확인했다.
“그리고 27번 연주자님. 67마디에서 조성이 바뀔 때, 좀 더 힘있게. 악센트 살려주세요. 아, 바순은 아녜요. 방금 연주처럼 그대로 깔아주듯 하는 게 무게감 있고 좋았어요. 그리고 또······.”
내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해당 연주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연주자들의 눈에도 복잡한 감정들이 스며든다.
내가 무례하게 말하는 건 아닌지 되짚어가며 말을 이어간다.
한참 어린아이에게 지적을 받는다는 게 유쾌한 사람은 없을 테니까.
다행히 모두 언짢아하는 것 같진 않았다.
오히려 조금 놀라는 눈빛들이 이따금 느껴졌지만, 곡의 완성도를 신경 쓰다 보니 이내 그런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녹음이 계속 이어지고, 점차 곡이 완성된다. 내가 원했던 퀄리티만큼.
그렇게 여러 곡이 음표가 아닌 파형으로서 차곡차곡 새겨진다. 그럴수록 내 앞에 올려진 두툼한 악보 뭉치들이 하나씩 빠졌다.
······그리고 마침내, 합창곡 악보만 남았을 때.
나는 악보를 집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주에 동참하기 위해서였다. 오늘 녹음할 곡 중 유일하게 피아노가 들어가는 곡이었으니.
부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시선이 덩달아 쭉 딸려온다.
피아노 앞에 앉고 나서도 뒤통수가 따가울 정도로.
스윽-.
악보를 펼치고, 건반에 손을 얹은 채로 신호를 기다렸다.
이윽고, 바순과 튜바가 낮게 깔린다.
이어서 화성을 쌓아가는 트럼펫과 호른.
빠아아아암──!
견고한 관악의 울림이 뱃고동 소리처럼 녹음실을 덮었다.
이어서 현악기들이 일제히 보잉한다.
올올이 엮여나가는 화성(和聲)의 향연.
그게 신호였다.
───!
얇은 피아노 소리가 선율을 그린다.
클라이맥스에 터져 나올 ‘목소리’를 예고하며.
#
며칠 후, M&ACT 회의실.
연달아 재생되던 녹음 파일이 마침내 멎었을 때.
박동진 감독은 아까부터 콘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러프하게 그려진 마지막 합창 장면이 머릿속에선 이미 편집까지 끝난 완성본이 되어 둥둥 떠다녔다.
“······.”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고갤 들어 주변을 둘러본다.
바로 옆에 앉은 송은혜 작가가 입꼬릴 들썩이고 있다.
혹시 수정할 게 있을지도 모른다며 노트를 펼친 음악 감독도 한 글자도 적지 못했다.
건너편 한서호는 초롱초롱한 눈이다.
자신이 만든 음식이 어떠냐고 묻는 요리사처럼.
귓가에 감칠맛이 돈다.
뭔가 말해주고 싶지만, 입을 열었다간 여운이 모두 빠져나갈 것만 같다.
마른 입술을 적신 그가 시선을 돌렸다.
그 끝엔 촬영 내내 노래 선생님이라고 불린, 성악가 이지윤.
그녀는 악보와 한서호를 번갈아 보며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윤 씨는 합창곡 어떻게 들으셨나요?”
전문가의 생각이 궁금한 박동진 감독.
이지윤이 입꼬릴 슬쩍 올리며 운을 뗐다.
“아직 합창에 가장 중요한 목소리가 없으니 판단하긴 이르긴 하지만······.”
그녀의 말처럼 합창곡은 미완성 그 자체였다.
오케스트라 녹음은 끝마쳤지만, 목소리는 촬영 현장에서 녹음할 예정이기에 그냥 바이올린 선율을 겹쳐 대체했지.
하지만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몇 번 소름이 돋을만큼. 그냥 연주곡이라 해도 훌륭하다 생각했을 만큼.
여기에 배우들의 목소리까지 얹어진다면······.
그게 영화 마지막 엔딩크레딧과 함께 흘러나온다면······.
가정에 가정을 덧씌운 이지윤은 다시금 목덜미에 닭살이 돋는 것을 느끼며 피식 웃었다.
“관객들 영화 끝났다고 자리에서 못 일어나겠는데요?”
“지려서요?”
연출팀 팀원 중 한 명의 말에 조감독이 머릴 쥐어박았다.
“얌마, 성악가님이 그런 뜻으로 말하셨겠냐? 합창이 감동적이어서 눈물 닦느라 못 일어난다는 거 아니야. 그렇죠?”
“그······ 음, 아. 예. 맞죠. 맞아요. 맞습니다?”
어쩐지 어색한 웃음을 흘리던 이지윤이 이내 표정을 고치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진짜 멋진 그림 만들어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되네요. 솔직히. 저도 같이 부르고 싶을 정도예요······.”
말끝을 흘리는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레 곡의 작곡가인 한서호에게로 향한다.
연주자로서 대단하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작곡까지 이 정도일 줄이야······.’
너무 해맑게 웃고 있어서.
그게 더 기막혔다.
#
······이로써. 영화 ‘소프라노’ 내에서의 내 작업은 모두 끝이 났다.
중간에 러시아에 가 있긴 했지만, 그걸 제외하더라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 작업.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나조차도 궁금하다.
‘뭐, 박동진 감독이니 걱정 없지.’
그렇기에 기대만 안고서 M&ACT를 벗어난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며 핸드폰을 꺼냈다.
역시 무음으로 해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요 며칠 전부터 사운드 클라우디를 통해 메시지들이 엄청 들어오고 있거든.
노래 잘 듣고 있다는 단순한 응원부터, 신상을 물어보거나, 비즈니스적인 얘기를 하고 싶다는 메시지도 한두 개씩 껴 있다.
그리고 쌓이는 메시지만큼, 조회 수도 마찬가지.
요 며칠 급격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럼, 혹시······.”
내심 기대하며 음원을 확인한 나는 입매를 끌어올렸다.
‘진짜 찍었네.’
가장 최근에 올린 곡.
그저 건반 하나하나에 휘몰아치듯 느낀 영감들을 한데 모아 정리하고, 스스로 공부했던.
덕분에 루드비히 선생에 대해 조금 이해하고, 그 연장선으로 합창곡을 완성하게 도와준 곡······.
‘88개의 건반에 대한 단상’의 조회 수가 미팅을 하는 사이 1만을 넘어섰다.
‘불과 지난주까지만 해도 기백 명 정도가 들었을 뿐이었는데······.’
평소의 10배나 되는 조회 수가 신기하기도 하고 기뻤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후, 나는 얼떨떨한 기분에 휩싸였다.
또다시 10배가 되기까지,
3일이 채 걸리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