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RAW novel - Chapter 67
067. 브리너 (2)
월간 청중의 점심시간.
클래식 잡지사답게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밥을 먹고서 자리에 돌아온 최성령 기자가 동료 기자를 보며 갸웃거렸다.
“웬, 사운드 클라우디?”
그러자 동료 기자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에튀드(-미국 클래식 잡지)에 짤막하게 소개된 음악이 있길래, 대체 뭔가 싶어서 검색해봤는데. 작곡가가 여기에만 올렸다더라고.”
“엥? 무슨 클래식 곡을 사운드 클라우디에 올렸대? 누가 듣긴 해?”
의구심을 품고 동료의 화면을 들여다본 최성령 기자가 살짝 놀랐다.
“어······꽤 보네?”
14만 정도의 조회 수.
사운드 클라우디의 다른 유명한 곡들과 비교했을 땐, 결코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클래식이라는 장르 특성상 분명히 적지 않은 조회 수였다.
“88개의 건반에 대한 단상··· 작곡가는··· 브리너? 브리너면······.”
“응? 누군지 알아?”
갸웃거리는 동료 기자를 보며 한참 고민하던 그녀가 씩 웃는다.
“18세기 인물은 알아. 독일의 백작이야.”
“······비슷한 욕 해줄까?”
“흐. 모르지 또. 그 사람 이름에서 딴 걸 수도.”
“퍽이나 잘 알려지지도 않은 18세기 백작의 이름을 땄겠다.”
혀를 차는 동료를 보며 최성령 기자 자신의 자리에 앉아 말을 이어간다.
“근데, 에튀드에 소개될 정도면 곡이 괜찮긴 한가 보다. 아님 그냥 사운드 클라우디에 올린 게 신기해서 넣었나?”
“그냥 괜찮은 게 아니라, 극찬을 했어. 극찬을.”
“그래? 곡이 이렇게 대충 들어도 좋긴 한데······ 뭐라고 극찬했을지 궁금하네. 기사 링크 좀 보내줘 봐.”
그녀는 동료에게 전달받은 링크를 타고 들어가 에튀드 잡지사 사이트에 올라온 기사를 확인했다.
[우리는 종종 새로운 클래식을 갈구하곤 한다. 깊은 맛을 내는 빈티지 와인이 때론 무겁게 느껴지고, 산뜻한 샴페인이 당기는 것처럼.하지만 새로운 클래식 음악을 만들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작곡가가 극히 소수이기도 하지만, 한 곡을 녹음하는데 드는 금액이 앨범 수익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에튀드에도 신곡에 갈증이 있는 기자들이 많다. 그리고 우리는 마치 음악 학자들이 오래된 도서관에서 옛 대가들의 악보를 찾듯, 의외의 곳에서 의외의 곡을 발견했다.
이 곡은 시작부터 피아노의 ‘건반’이란 주제를 거침없이 드러낸다.
아름다운 선율마저도 이 곡에선 주제를 설명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하지만 필자조차도 이때까지 몰랐다. 이 곡의 주제가 ‘건반 전체’에 있다는 것을······]
쭉쭉 기사를 읽어내려가며 동시에 곡을 듣던 최성령 기자가 나직이 감탄했다.
과연 미국의 에튀드가 고작 사운드 클라우디에 있는 곡을 실을 만했달까.
“곡 너무 괜찮은데?”
“그러니까. 딱히 기사로 쓸 거린 아니긴 한데. 그래도 좋은 곡들 왕창 알아내서 기분 좋더라.”
“왕창?”
“이 브리너라는 닉네임의 작곡가가 올린 곡이 60개가 넘는다더라고.”
입을 벌린 최성령 기자가 얼른 자신의 노트북으로 사운드 클라우디에 접속했다.
“혹시 다른 곡들도 이런 퀄리티야?”
“내가 들어 본 건 다 그 정도 되는 거 같던데?”
“이 사람 미쳤······.”
마우스 휠을 쭉쭉 내리며 혀를 내두르던 그때였다.
핸드폰이 책상 위에서 울렸다.
화면에는 반가운 이름이 떠올라 있었다.
“여보세요? 진짜 오랜만이다!”
-그러게요. 잘 지내시죠?
“그럼! 천재를 알아보고 잡지사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이 시대에 참된 기잔데! 달라지는 게 없다······.”
편집장실을 바라보며 들으라는 듯 외치던 최성령 기자가 공허한 목소리로 말끝을 흘렸다.
“그래서, 영화 OST는 잘 돼가?”
“최근에 작업 끝냈어요.”
“벌써? 시간 진짜 빠르네··· 그럼, 요샌 뭐해?”
“푹 쉬었어요. 엄마랑 여행도 좀 다니고. 리사이틀 준비고 하고. 인터뷰도 하고.”
“푹 쉰 거 맞지?”
-하하···.
이번엔 두 사람의 허탈한 웃음소리가 함께 울렸다.
“그리고? 다음 영화 안 잡혔어? 의뢰가 엄청 들어올 것 같은데.”
-의뢰는 많이 들어오는데, 못 받고 있어요.”
“왜?”
-앨범 준비를 하게 될 것 같아요.
“벌써? 가만, 가만. 이거 이렇게 얘기해줘도 되는 거야?”
그 말에 화들짝 놀라며 되묻는 최성령 기자.
한서호는 담담하기만 했다.
-네. 기사로 내셔도 돼요.
“어떤 앨범인데? 차이코프스키 앨범?”
최성령 기자의 추측은 자연스러웠다.
콩쿠르 덕에 한서호를 대표하는 곡들이 차이코프스키의 곡들로 굳혀졌으니까.
그러니 당연히 음반사 입장에서도 차이코프스키 곡으로 앨범을 만들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모든 콩쿠르 우승자들이 그런 식으로 첫 앨범을 내기도 하고.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 들려왔다.
-아뇨. 제 곡들이요.
“응? 네 곡?”
멍한 표정을 짓고 상황 파악을 하던 최성령 기자가 이내 벌컥 외쳤다.
“······자작곡?!”
#
“친한 기자님이라 반발이라도 먼저 알려드리고 싶어서요.”
전화를 끊고 말하자, 백한길 회장이 피식 웃는다.
“네 기사를 처음 냈다는 그 기자 말이냐? 음악 얘기가 잘 통한다는?”
“네. 맞아요.”
“잘했다. 반발 먼저 알려주는 건 대세에 전혀 지장이 없지만, 얘길 들은 당사자에겐 기분 좋은 일이거든.”
그러면서 휠체어를 가까이 끌어당겨 내게 물었다.
“앨범에 들어갈 곡은 잘 선정하고 있어?”
“네, 제가 한번 골라냈고, 오늘 아버지와 함께 한 번 더 솎아내기로 했어요.”
“잘 생각했다. 네 작곡 실력은 믿어 의심치 않지만, 앨범을 구성하는 요소는 단순히 곡만이 아니지. 업계에 오래 있었던 아버지의 안목이 큰 도움이 될 거다.”
나도 그래서 아버지께 퇴근 후, 함께 곡들을 훑어보자 부탁드렸지.
주억거리며 찻잔을 마저 홀짝였다.
빈 바닥이 보이는 잔을 내려놓자, 비가 내리는 창밖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백한길 회장이 슬쩍 말했다.
“오늘은 어쩐지 하이든의 음악이 듣고 싶구나.”
나도 덩달아 창밖을 보았다.
장대비라기엔 얇고 가랑비라기엔 힘있게 쏟아지는 빗방울들이 경쾌하게 움직이는 손가락을 연상케 했다.
“소나타 한 곡 연주해볼까요?”
“좋지. 4번 어떠냐. 하이든의 동생이 형을 추억하며 자주 연주했던 곡이라지.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하이든의 동생도 뛰어난 음악가였다고 하더구나.”
“그렇죠. 독실한 가톨릭이라 많은 성가들을 작곡했었고요.”
“허, 간만에 이런 몸으로 책이란 걸 읽어서 아는 체 좀 해보려고 했더니, 모르는 게 없군. 아무튼. 오늘은 그게 좀 듣고 싶은데, 가능할까?”
“해볼게요.”
대수롭지 않게 끄덕이며 피아노 앞에 앉았다.
가만있자. 어떤 느낌이더라······.
백한길 회장이 그런 나를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암보가 되어 있는 거냐?”
“아뇨? 악보는 본 적도 없는걸요.”
“응? 근데, 어떻게 연주해보겠다는 거냐.”
황당한 백한길 회장의 물음에 내가 기억을 돋구며 가볍게 답했다.
“대신, 많이 들었어요.”
그의 동생, 미하엘 하이든에게.
#
늦은 밤.
여전히 들려오는 빗소리를 들으며,
나는 아버지 서재에 들어와 악보를 펼쳐 놓았다.
USB에 미리 저장해둔 음원들을 노트북에 꽂아 넣고, 다시 악보를 집어 천천히 훑었다.
‘이 중에 어떤 곡들을 앨범에 실으면 좋을까?’
그때 문이 슬그머니 열린다.
샤워를 마친 아버지가 혹여 잠자리에 든 엄마가 깰세라 살금살금 들어와 문을 닫았다.
“휴. 다 옮겨놨어?”
“네. 여기요.”
옆으로 다가오는 아버지에게 나는 헤드셋을 건넸다.
아버지는 그걸 받아들며 감회가 새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뭔가 오랜만이구나. 기억나니? 유럽 여행 다녀와서 아빠랑 여기서 놀았던 거?”
“제가 아빠 곡 완성 시킨 날이요?”
“그래. 그날. 그날 노트북을 너에게 맡기고 나가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을 요즘도 가끔 해. 처음으로 네게 음악적인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아본 날이니까. ”
그날은 나에게도 특별한 날이긴 했다.
내가 브리너의 존재를 제대로 받아들이고, 그의 음악적 염원에 반응하기 시작했던 날이었지.
흡족해하는 아버질 보며 나도 입꼬리가 올라간다.
“저도요. 그때 처음으로 음악을 해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12살에?”
“네.”
“역시 우리 애늙은이답다.”
푸스스 웃으며 아버지가 자세를 고쳐 앉는다.
목에 걸어둔 헤드셋을 끌어 올리며 내게 말했다.
“자, 그럼 얼른 들어보자.”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에 기대감이 서린다.
나는 첫 곡의 악보를 책상에 올려놓고, 음악을 재생시켰다.
“······.”
자연스레 나는 아버지의 표정을 살폈다.
곡에 자신이 없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궁금했다. 내가 고르고 고른 곡들이 아버지에겐 어떤 감상을 줄지.
······곡이 이어진다.
동시에 스리슬쩍 올라가는 입매.
마침내 첫 번째 곡이 끝나고, 아버지가 헤드셋을 잠시 벗었다.
“사운드 클라우디에 올린 곡들이 B군인 것처럼 말할 때,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악보를 집어 찬찬히 읽어내려간다. 그러면서 말한다.
“이젠 이해가 간다. 이쪽이 훨씬 좋구나. 아직 악기 편곡까지 안 된 스케치인데도.”
“그래요?”
내가 씩 웃자 아버지가 능글맞은 녀석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는 얼른 다음 악보를 집어 든다.
“음식이 끊기면 안 되지. 얼른 다음 곡 들어보자. 다음은······.”
말끝을 흘려보낸 아버지가 멈칫하며 악보 속 제목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곧, 미소했다.
[가족]······.
······이제 내가 골라놓은 곡들의 절반 정도 들었을까.
아직 편곡도 안 된 스케치 버전의 음원인데도, 한 곡당 길이가 상당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턱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하는 아버지.
어느새 비는 멈췄는지, 헤드셋을 벗는데 서재 안이 고요하다.
“일단 절반 정도 쭉 들은 소감을 얘기하면······곡은 엄청나다. 편곡도 제대로 안 된 곡이 이 정도라면 대체 악기가 다 들어왔을 때 어떤 느낌일지 상상도 안 돼.”
실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내저은 아버지가 이내 한기준 대표의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근데, 그렇다고 이 곡들을 전부 앨범에 넣을 순 없으니, 이렇게 하는 건 어때? 주변 인물을 소재로 한 것들이 몇 개 있더라고. 그러니 아예 앨범 컨셉을 그쪽으로 잡는 거지.”
“앨범 컨셉이요?”
“그래. 예를 들면··· ‘사람에게서 받는 영감’이란 카테고리 안에서 곡을 정하는 거지.”
나는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확실히 지금 내가 모아온 곡들은 중구난방이다. 각각의 주제가 따로따로라 지금처럼 한 번에 들었을 때 집중도가 떨어졌다.
그러니 아버지 말처럼 하면 곡을 솎아내기에도 편하고, 앨범 자체의 정체성도 명확해지리라.
“좋아요. 그러면 이 뒤쪽에서도 그런 곡들 위주로 모아서 들어볼까요?”
나머지 악보를 넓게 펼쳐 조건에 부합되는 곡들만 쏙쏙 뽑아냈다.
그렇게 모인 악보 뭉치를 아버지에게 건네고, 음악 파일에서도 해당 곡들을 골라낸다.
그렇게 카테고리에 맞게 곡 순서를 맞췄을 때쯤, 아버지가 의아한 목소릴 냈다.
“Familie? 이것도 독어로 가족이란 뜻 아냐?”
“······네. 맞아요.”
“근데 아까 ‘가족’하곤 아예 다른 곡이네?”
나는 작게 끄덕였다.
신기한 듯 악보를 들여다보던 아버지가 일단 쭉 들어보자며 헤드셋을 꼈다.
음악을 재생시키자, 자연스레 쓴웃음이 번진다.
‘가족’이 한서호로서의 행복이었다면.
‘Familie’은 브리너로서의 그리움.
헤드셋이 귓가에 선율을 떨어트린다.
그리고 그 작은 하나의 선율이,
───.
파동처럼 번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