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와…… 이걸 다 먹네.”
삼촌은 커다랬던 백숙이 언제 담겨 있었냐는 듯, 앙상한 뼈만 남은 냄비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이게 웬걸.
한창 자라는 나이인 나와 남연수의 활약으로 백숙을 정복했다.
부른 배를 두드리고 있는데 이소리가 이제 수련 장소로 떠나자고 했다.
어머니와 삼촌, 김성후는 원래 자리 잡았던 계곡에 남기로 하고, 나와 이소리, 남연수는 수련 장소로 향했다.
자기도 어떻게 수련하는 건지 궁금하다며 남연수가 따라붙은 것이다.
이소리가 뭐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무런 말이 없었다.
“와아.”
“여기도 진짜 예쁘다.”
쏴아아아.
커다란 물줄기가 떨어지는 광경에 나와 남연수는 입을 헤 벌렸다.
수련 장소는 처음 도착한 곳에서 조금만 더 위로 올라가면 나오는 야트막한 계곡이었다.
대신 들어가는 길이 바위로 가로막혀 있어서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 곳보다 계곡과 폭포를 둘러싼 나무들이 아주 울창해서 밖에서 봤을 때, 잘 안 보이기도 했다.
“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
“그러니 수련의 명소지. 저 안으로 들어가서 앉아 봐라.”
이소리는 몇 갈래로 나뉘어서 떨어지는 폭포를 가리키며 말했다.
신기하게도 폭포의 물줄기가 떨어지는 곳에 커다란 바위가 있어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딱 영상 속에서 보던 그런 장소였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서 들떠서 말했다.
“가운데 큰 폭포요?”
“그러다 진짜로 떠내려간다. 영영 못 찾게 될지도 몰라.”
“……진짜 제일 무서운 소리만 골라서 하신다니까.”
이소리의 말에 소름이 끼쳐 몸을 부르르 떨고서 남연수랑 조심스럽게 계곡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큰 폭포에서 좀 떨어진 거리에 있는, 졸졸 약하게 흘러내리는 작은 폭포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앗, 차거.”
“형은 너무 무리하지 마.”
“아냐, 근데 오늘 날이 더워서 견딜 만해.”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작은 폭포 물줄기를 머리에 맞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이소리가 차분하게 지시를 내렸다.
“우선 명상부터 시작한다.”
“네!”
“눈을 감고……. 머릿속이랑 마음속을 비워라.”
이소리의 낮게 이어지는 말을 들으면서 깊게 심호흡을 했다.
그동안 이소리의 가르침을 받으며 스킬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빠르게 성장해왔다.
정말 내가 이쪽에 재능이 있는 건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그러던 중, 언젠가부터 성장이 좀 멈춘 느낌이었다.
하지만, 영화 내 소리꾼 강창의 설정은 조선 최고의 소리꾼.
내 생각에 득음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적어도 스킬만큼은 완전히 마스터해야 원하는 장면이 나올 것 같았다.
어린 왕의 몸으로도 강창이 제 재주를 다 펼칠 수 있도록.
적어도 감정적인 면에서는 최고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물론, 몸이 완성되지 못했으니 전문 소리꾼 정도에는 끝내 도달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촬영 전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 때문에 촬영도 쉬어가며 이곳 계곡에 온 것이니 말이다.
이소리의 말대로 눈을 감으니 땀으로 젖은 몸에 계곡의 시원한 냉기가 느껴졌다.
귀로 폭포수 소리와, 매미 소리가 섞여 들어온다.
“잡 생각은 모두 버리고 폭포 소리에만 귀를 기울여라.”
이소리가 폭포 소리에만 집중하라고 하는 말에 마음을 비워갔다.
귓가에 점점 천둥 같은 폭포 소리만이 남았다.
동시에 주변의 소음이 아득해져 가고, 이소리의 말도 물에 잠긴 것처럼 멍멍하게 들려왔다.
“소리꾼에게 결국 가장 필요한 것은 한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무친 한을 가지고 있느냐가 좋은 소리를 내느냐, 마느냐를 결정짓지. 기왕 이곳에 온 거 한 번 해보자.”
아득하게 들리는 이소리의 말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최근이어도 좋고, 예전 일이어도 좋다. 슬픈 일, 화나는 일을 떠올려봐라.”
머리 위로 폭포수가 떨어지는 느낌과 소리에 집중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다른 생각들이 옅어지고 신경이 세상과 아득해진다.
붕뜬 기분이 들면서, 내 감정을 들여다보기 최고로 좋은, ‘빈 상태’가 되었다.
슬프고, 화나는 일.
이번 생에 내게 화가 나고 슬픈 일이 있었던가.
당장 떠오르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마음속에 둘 정도의 일도 없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껴주는가.
하나뿐인 삼촌은 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꿈을 포기하기까지 했다.
차근차근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던 나는, 결국 마음의 가장 깊숙한 곳에 도달했다.
노아 바텐베르크.
그가 겪었던 혹독한 전생을.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노아의 생을 생각했다.
그러자…… 조금씩, 목구멍이 뜨거워진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온몸이 계곡물에 다 젖고, 조용히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 내려가던 그때.
이소리가 또렷하게 말을 걸었다.
“자, 이제 눈을 뜨고.”
그 말에 바로 눈을 번쩍 떴다.
찬찬히 눈앞에 흐르는 계곡물을 응시하고 있자니, 이소리의 말이 이어서 들렸다.
“소리를 질러봐라.”
“…….”
그 말에 조용히 호흡을 골랐다.
***
실내에서는 아무리 소리를 지른다고 해도 자신의 목소리가 온전히 들리는 두려움이 있다.
이건 모든 소리꾼들이 가지는 어쩔 수 없는 한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실내에서 소리를 낼 때면 스스로 자기도 모르게 한계를 결정하곤 한다.
“우리가 매일 연습하던 좁은 공간과 이곳은 완전히 다르다. 한낱 인간인 우리가 소리를 질러봤자 폭포를 이기겠느냐? 오히려 여기서는 온전히 소리를 낼 수 있지.”
“네.”
어린 제자는 이소리의 말에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일일 제자로 들어온 남연수는 그녀의 말에 신기하다는 듯 아, 아… 작게 소리를 내었다.
“이곳은 한계가 없는 곳이다. 이 폭포의 모든 물은 이 세상의 모든 물과 연결이 되어 있지. 머릿속에서 이미지를 만들어봐라.”
이소리는 찰박이며 계곡물을 손으로 휘저었다.
젊은 시절 그녀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스승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읊조리며.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은 모든 세계와 연결된 곳이며, 고로 이곳에는 한계도 없는 것이다.”
“그럼…… 시간도 상관없나요?”
그러다가 뜬금없이 한시우가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평소에도 질문을 적지 않게 던지는 학생이긴 했지만, 이런 질문을 던질 줄은 몰랐다.
“시간? 시공간을 말하는 게냐?”
“네. 아주 긴 시간이요.”
“상관없겠지. 물은 어느 때나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테니.”
이소리의 답변에 한시우는 고요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도 제자들에게서 들어본 적 없는 질문을 뱉은 한시우를 묘한 눈으로 쳐다보던 이소리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 물이 어디론가 흘러 세계의 모든 물과 합쳐지고, 그 물은 또다시 전 세계로 흘러나가겠지. 자, 그럼 소리를 내볼까?”
“네.”
시작하라는 이소리의 말에 한시우는 떴던 눈을 질끈 감았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그리고, 소리를 내었다.
“아아아아-!”
구슬픈 소리가 폭포에 휩싸여 잠겨갔다.
한시우는 계속 눈을 질끈 감고 소리를 질렀다.
‘이 소리가… 노아에게 닿기를.’
소리를 내고 있음에 목구멍은 점점 더 뜨거워졌다.
‘그 아이에게 이 소리가 닿아, 한 줌의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눈시울마저 뜨거워지려는 걸 억지로 누르고 눌러, 그것마저 내뱉는 소리에 담아 토해냈다.
이런 한시우의 사정을 알 리 없는 이소리.
하지만, 그 소리를 듣고 이소리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사정은 모르겠지만, 아이의 목소리에 담겨 있는 한은 누구보다 짙게 느낄 수 있었으니까.
끝없이 뻗어나가는 서글픔이 담긴 목소리.
지금까지 한시우의 소리에서 언뜻언뜻 느껴졌던 한이 본래의 모습을 내보이고 있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항상 내뱉던 연습법으로 소리를 뽑아내는 한시우.
이소리는 누군가에게 호소하듯 나오는 한시우의 소리를 듣고 다시 살며시 눈을 떴다.
그리고, 그녀는 한시우의 얼굴에서 흐르는 눈물을 발견했다.
처절하도록 외치는 한시우의 소리.
쭉, 쭉 뽑아내며 울음을 토한다.
그럼에도 목은 잠기지 않고 구슬프게 음이 나오는 중이었다.
옆에서 어설프게 소리를 내던 남연수는 진즉에 멈춰서 놀란 눈으로 한시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이소리는 턱, 힘이 풀렸다.
‘이것이…… 일곱 살 아이에게서 나올 수 있는 소리인가.’
학원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욕심이 나 데려온 곳이었다.
비록 연기를 위해 처음 자신과 만나게 됐지만, 이왕 하는 거 한번 제대로 시켜보자는 욕심.
어린 제자 역시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기에 망설임은 적었다.
그렇게 자신의 제자들 중 일부만 도달할 수 있었던 수련 장소 데려왔다.
그런데 계곡에 울려 퍼지는 이 소리는 아이에게서 나온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마음이 아픈 소리다.
거대한 폭포수 아래, 물에 반쯤 잠긴 작은 소년이 구슬피 울고 있었다.
***
한 차례 수련을 마치고 내려오니 삼촌과 어머니가 수박을 먹기 좋게 썰고 계셨다.
김성후가 사 온 수박을 아까 계곡에 담가두었단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계속 소리를 지르느라 아까 먹은 백숙이 다 소화된 참이었는데 잘 되었다.
다만, 남연수와 나는 차가운 계곡물에 꽤 오랫동안 들어가 있어서 그런지 약간 으슬으슬했다.
이소리는 이럴 줄 알고 미리 커다란 타올 같은 걸 챙겨오라고 했다.
어머니가 둘러준 커다란 타올에서 얼굴만 쏙 내밀고 이소리가 건네준 핫팩을 안고는 수박을 크게 베어 물었다.
생각해보니 이런 수련을 일주일 내내 한다면, 정말 감기에 걸릴 것 같기는 했다.
소리꾼의 길도 배우의 길만큼이나 멀고도 험한 모양이군.
“와, 진짜 맛있다.”
“수박이 아주 꿀맛이네.”
나와 남연수는 허겁지겁 열심히 수박을 먹었다.
그 모습을 보고 삼촌은 질렸다는 듯이 수박을 마저 썰어주었다.
“너희 아까 닭 한 마리 다 먹지 않았니?”
“삼촌. 식사랑 디저트는 다른 거지.”
“맞아요. 그리고 저희는 수련도 하고 왔잖아요.”
“……그래. 너희 아주 친구같다. 아주 말도 요목조목 따박따박 잘하는 게…….”
삼촌은 마음대로 하라며 먹기 좋게 수박을 썰어 우리 앞에 놔주었다.
와삭와삭 수박을 베어 물다가 남연수가 감탄하듯이 말했다.
“근데 시우야. 너 진짜 잘하더라. 학원을 다녔어서 그런가, 소리가 그냥 엄청 크게 탁 뚫린 느낌?”
“하하, 그래?”
사실 나는 지르라기에 질렀지, 오늘 소리가 어떻게 나갔는지 제대로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전생의 노아에게 못다 한 말을 전하고 싶다는 일념하에 질렀을 뿐.
노아 바텐베르크가 겪었던 수모와 모진 일들을 떠올리며 그의 미래가 이토록 찬란하리라고 전해주었을 뿐이었다.
“응응, 시우 너는 어쩜 그렇게 못하는 게 없어?”
“타고나서 그렇지 뭐.”
아무렇지 않게 나온 내 대답에 김성후가 놀랐는지 수박을 뿜어버렸다.
“푸훗.”
다행히 뿜기 직전, 계곡으로 고개를 돌려주어서 아무도 수박을 뒤집어쓰지 않을 수 있었다.
옆에서 삼촌이 이해한다는 듯이 휴지를 둘둘 뜯어서 건네주었다.
“골 때리죠? 쟤가 좀… 당당해요.”
“하하… 시우 군은 참…… 자신감이 넘쳐요.”
둘이서 그렇게 중얼거리든 말든 남연수는 대단하다는 듯이 눈을 빛냈다.
“타고난 거라… 역시… 진짜 대단하다.”
“으응. 수박이나 마저 먹어.”
“응!”
나한테 감탄하느라 남연수가 못 먹고 있어서 그가 들고 있는 수박을 입가에 밀어넣어 줬다.
남연수는 알겠다며 또 열심히 수박을 먹었다.
나참, 이번 소리는 내가 제대로 못 들어봤으니 뭐라 해줄 말이 없네.
“그런데 시우 어머님. ……시우는 정말로 재능이 있습니다.”
잠자코 수박을 먹던 이소리가 갑자기 어머니에게 말을 꺼냈다.
“시우가 명인의 길을 걷게 하는 것… 어쩌면 그게 제 소명일지도 모르겠네요.”
……응? 스승님. 저한테는 그런 소리 생전 안 하셨잖아요.
칭찬 한마디도 잘 안 해주시던 분이 이렇게 뒤통수를 치시나?
나는 당황해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이거, 자칫 잘못하면 내 인생 계획이 대대적으로 수정될 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