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몇 주 동안 연이어서 촬영을 마치고, 7월 말.
나는 장진홍으로부터 일주일간 휴가를 받게 되었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촬영이 없을 뿐, 휴가는 아니었다.
이번 휴식은 극 중 가장 중요한 씬 중 하나인 판소리 씬을 준비하기 위해 나에게만 주어진 시간이었다.
나는 이 기간 동안 판소리 스승님인 이소리와 삼촌, 엄마와 함께 수련을 가기로 했다.
“스승님! 저희 수련을 떠나요.”
처음 일주일이라는 휴가 소식을 듣고 신이 나서 이소리에게 달려가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 수업을 하다가 본 영상에서 폭포수를 맞는 판소리 장인이 나왔다.
그때 그걸 보고 선생님한테 신기한 문화라고, 한번 해보고 싶다고 한 적이 있는데 진짜 가게 된 것이다.
“그래? 그럼 내가 잘 아는 곳이 있으니 거기로 가자.”
이소리는 내가 말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자신이 아는 곳으로 가자고 했다.
너무나 선뜩 나온 대답에 오히려 내가 더 놀랐다.
명창이라고 불리우는 유명하신 분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스케줄을 빼실 수 있는 건가?
정말 기다렸던 사람 같네…….
“예로부터 득음을 위한 수련 장소가 있지.”
“우와. 그럼 저도 폭포 맞아요?”
“시우 네가 그 폭포 밑에 서면 목이 똑 부러질 수도 있어. 무서운 소릴.”
“……방금 스승님 말씀이 더 무서운 소리 같은데요.”
섬찟한 말에 순간 움츠러들었지만, 기분만은 좋았다.
장인들이 수련을 위해 가는 곳에 내가 가게 된다니!
애초에 영화에서도 득음하지 않은 목소리로 기술만 고수인 설정이었으니 기술만 제대로 익히면 되었다.
그래도 이왕 배울 거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이소리에게 말한 건데.
흔쾌히 수련을 떠나게 되었다.
아이참, 이러다 득음이라도 하면 안 되는데.
대단히 열정적인 스승님이다.
이러다 내가 진짜 그 ‘득음’이라는 걸 해버리면 어쩌지 싶다.
우리가 수련을 떠나기로 한 곳은 강원도 삼척.
내일 나와 이소리, 어머니, 삼촌이 함께 가기로 했다.
판소리는 다른 것보다도 마음가짐을 가다듬는 수련이 중요하다고 들었다.
‘소리’라는 새로운 분야를 배우는 것도 신이 났는데.
그곳에서는 과연 어떤 걸 얻게 될까.
삼촌보고 카메라 들고 오라고 해야지.
아마 어머니도 캠코더를 들고 오실 것 같긴 하지만.
가서 잔뜩 기록을 남겨야겠다.
나중에도 볼 수 있게끔.
“그나저나 여름인데……. 다른 애들은 놀이동산이나 워터파크 같은 데를 가는데 시우는 폭포를 가게 생겼네.”
“뭐, 어때 누나. 폭포가 있다고 하면 계곡도 있겠지.”
“그런가…?”
삼촌의 말에도 못내 아쉽다는 기색인 어머니를 보고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괜찮아. 거기도 물이 있는 건 똑같으니까 놀이동산 안 부러워.”
“워터파크에 물만 있는 건 아니잖아? 우리 시우 신나게 놀 수 있는 기구들도 많고……”
“뭐. 그렇긴 하지. 허허. 아무튼 내 조카 특이하긴 해.”
“흐음…….”
웃기다며 허허 웃는 삼촌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지금 어머니를 안심시켜야 하는데 어디서 망발을!
“으음, 그럼 친구라도 데려가는 건 어떻니? 아무리 그래도 놀지도 못하고 매일 일만 하는 것 같아서. 우리 시우도 또래 친구들이랑 놀아야 할 텐데…….”
아뿔싸.
나를 위해 겨우 찾아주셨던 ‘책 읽는 교실’에도 못 나간 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가 고민 중이셨나 보다.
“내년에는 시우도 초등학생이잖아. 그런데 너무 어른들하고만 어울리는 건 아닌지 요즘 걱정이 돼서.”
“누나는. 시우가 어디 가서 적응 못 할 거 같아? 오히려 학교 가면 인기 폭발일걸?”
“그럴까…….”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고민하다가 한 얼굴을 떠올리고 무릎을 탁쳤다.
나만큼이나 못 놀고 일만 하는 내 또래!
바로 남연수였다.
남연수는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지만, 마침 지금은 7월.
여름방학이었다.
거기까지 계산을 마친 내가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연수 형한테 연락해볼게요! 삼척에 같이 가자고.”
“와, 연수한테? 그거 좋은 생각이네.”
어머니는 드디어 나온 내 또래 친구의 이름에 환하게 웃으셨다.
나는 바로 핸드폰을 꺼냈다.
거기에는 마침 어제 남연수와 주고받은 문자가 있었다.
[남연수 매니저 김성후 – 여름 끝나기 전에 우리 한번 보면 안 돼?ㅠㅠ] [나 바빠. 천명.] [남연수 매니저 김성후 – 시우야…] [남연수 매니저 김성후 – 답장 조금만 길게 보내주면 안 돼?] [남연수 매니저 김성후 – 아, 아니야. 그럼 촬영하느라 시간 안 나면 내가 촬영장 놀러 가면 안 돼?]마지막 문자를 보고 아차 싶었다.
아, 오늘 장진홍 감독님한테 물어본다는 거 까먹었네.
뭐, 어때.
촬영장에 놀러 오는 것보다 더 좋은 기회가 생겼으니.
나는 들뜬 얼굴로 남연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
“우와아. 진짜 좋다!”
“시우야! 여기야 여기!”
시원한 물줄기가 떨어지는 폭포 앞 너른 계곡물.
강원도 삼척의 한 구석진 산골짜기에 도착했다.
저쪽에서 밴의 문이 열리더니 남연수가 크게 손을 휘저었다.
삼척에서 만나기로 한 터라, 우리는 각자 차를 타고 이동해 여기서 만나게 되었다.
“어, 안녕하세요.”
내가 가는 걸 기다리지 못하고 밴 안에서 폴짝 뛰어내린 남연수가 언제나처럼 환하게 웃으며 우리 가족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래. 연수도 오랜만이네. 안녕하셨어요?”
“네네. 저희도 이제 막 도착했습니다.”
남연수의 매니저, 김성후도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삼촌과 인사를 나눴다.
촬영 현장에서 항상 같이 있고, 최근에도 스튜디오에서 만났던 터라 두 사람은 제법 친해졌다.
“오시는 데 별일 없었죠?”
어머니도 연수네 일행을 반기며 물었다.
별다를 것 없는 안부 인사에 일순 김성후의 표정이 흐려졌지만, 곧 밝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 남연수가 이곳에 온 걸 남연수네 아빠 허락을 받았을 리 없다.
이 모든 것은 평소 남연수를 짠하게 여기는 김성후의 작품이었다.
그가 다른 스케줄이 있다고 둘러대고 남연수를 삼척으로 데려와 준 것이다.
“에이, 별일은요. 저희 연수도 요즘 쉬는 날이 없었는데 이렇게 불러주셔서 감사해요.”
“후후, 시우가 친구 부른다면서 바로 연수 군 찾던데요?”
어머니의 말에 내 옆에 있던 남연수가 감동의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잇, 어머니도 참.
그걸 애 앞에서 말씀하시면 어떡해요.
“시우야……. 진짜야? 나 시우 친구야?”
“당연하지! 내가 연수 형 친구 아니면 그럼 뭐야.”
“응! 친구지! …근데 왜 맨날 문자 답장은 그래?”
이것 봐라.
은근히 뒤끝 있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연수 형 휴대폰이 아니잖아. 성후 삼촌 업무 연락 받으셔야 하는데 불편하실까 봐 그런 거지.”
내가 생각해도 아주 훌륭한 변명이었다.
“으음… 그런 거야?”
“그럼.”
남연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수긍하는 눈치였다.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헤헤, 이렇게 시우 너랑 이런 데도 놀러 와보고 되게 좋다.”
“아빠한테는 뭐라고 했어?”
“지방 촬영이 있다고 했어! …휴, 들키는 날에 나는 죽음이야.”
“에이, 괜찮아. 일단 왔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신나게 놀자.”
“응!”
잔뜩 들떠서 대답하는 걸 보고 있자니 절로 짠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둘은 나란히 길가에 서서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계곡을 구경했다.
무더운 여름이지만, 워낙 외진 곳에 있는 계곡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나와 남연수를 알아보는 사람도 없어서 우리는 간만에 아주 편하게 돌아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시우 네 선생님은?”
이번 삼척행이 내 수련을 위한 것임을 알고 있는 남연수가 우리 뒤를 살피며 물었다.
“으응, 수련 장소를 한번 확인하고 오신대. 거기 내려드리고 오는 길이야.”
“우와…… 멋있다.”
“그치. 이따가 나랑 같이 가자.”
“그래!”
오랜만에 나와 만난 탓인지 남연수는 정말 내 곁에 붙어서 조잘조잘 끊임없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우리 둘이 진짜 친해 보였는지 어머니와 삼촌, 그리고 김성후는 아주 흐뭇한 얼굴이었다.
평소에도 김성후의 핸드폰을 빌려서 툭하면 문자에 전화도 하면서 무슨 할 이야기가 이렇게 많은지 모를 일이다.
“나 어제 그거 봤어. 형 이번에 나오는 .”
“어, 진짜?! 어땠어?”
이번에 남연수가 아역 배우로 나온 작품 이야기를 꺼내자 남연수는 더욱 신났다.
매일 보라고, 봤냐고 남연수가 물었는데 요즘 내가 촬영이 바빠서 못 챙겨보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반가워했다.
“생각보다 세트장에서 찍는 장면이 많아서 놀았어. 그저께 찍은 장면은…….”
“그래서 그때 내 엄마 역 배우가…….”
“내가 이렇게 대사를 쳤을 때 PD님이 뭐라고 하셨나면…….”
그래도 작품 이야기를 시작하고 나서는 열심히 연기 이야기를 풀어놓은 터라, 듣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이번에 들어간 작품은 인물 심리가 정말 심오하더라고.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많이 보고 있어.”
“배경이 정신병원 맞지?”
“응! 맞아.”
“진짜 신선하네…….”
내 반응에 신이 났는지 남연수는 촬영장 세트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조금 더 열심히 설명했다.
“얘네는 일곱 살이랑 아홉 살 맞아?”
“그러니까 말이에요. 만나자마자 일 이야기라니…….”
옆에서 듣고 있던 매니저 두 사람이 고개를 내저었다.
정작 삼촌과 김성후는 일 이야기는 조금도 안 하고 있는데 말이다.
두 사람은 잡일이나 하자며, 계곡 근처에다가 짐을 풀고 있었다.
어차피 여기서 놀고 수련 장소는 조금 더 올라갈 거라, 아예 여기서 자리를 잡아 놓을 모양이었다.
“정신병원이 배경이라고? 그럼 내가 다큐멘터리 하나 추천해줘도 될까?”
“와, 좋아요.”
“영국 다큐멘터리인데…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졌단다. 환자들 심리 상태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거야. 제목이 뭐냐면…….”
우리가 신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뒤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왔다.”
“스승님!”
수련 장소를 살피고 온다던 이소리의 등장이었다.
여기서 걸어서도 충분히 갈 수 있다더니 정말인 모양이다.
금세 내려와서 우리를 찾아온 것을 보면.
내가 환히 웃으며 그녀를 반기자, 남연수와 김성후가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나만큼이나 인지도가 있는 남연수의 모습에도 이소리는 별 동요 없이 태연하게 두 사람의 인사를 받았다.
“그래, 반가워요. 시우야. 수련 언제 시작할까?”
이소리의 안중에는 나밖에, 아니 내 수련밖에 없는 모양이다.
“오, 상태가 괜찮았던 모양이네요?”
“최근에 쓴 사람이 없다고 들어서 조금 걱정했는데. 크게 변한 건 없더구나.”
“좋아요. 그럼…….”
당장에라도 수련을 시작하자는 이소리의 말.
그 말에 나는 바로 하자고 대답하려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어라……?
그런데, 코끝을 간지럽히는 향긋한 냄새가 있었으니.
나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반대편 계곡에 위치한 식당을 올려다보았다.
멀리서도 보이는 오두막 같은 가게에서 뭉게뭉게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킁킁, 이 냄새는?
“그… 일단 먹고 시작할까요?”
“뭐?”
뜬금없는 내 말에 이소리는 미간을 좁히고, 남연수는 만세를 불렀다.
내가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속담이 하나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
그래. 계곡에는 백숙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