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노백찬의 특권은 바로 다음 날부터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
그 후 일주일 동안, 거의 매일 온갖 뮤지컬을 VVIP석에서 보게 된 것이다.
전부 노백찬과 함께였다.
곁에서 지켜본 결과, 노백찬이 인맥을 사용할 때마다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노 감독님! 오셨습니까.”
“여기까지 와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제 작품을 보러 와주시고 정말 영광입니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배우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연출가가 등장하거나, 아니면 해당 공연장의 지배인이 찾아오기까지 했다.
그리고 하나같이 노백찬에게 와주셔서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이기 바빴다.
“너무 신경 쓸 것 없네. 그냥 이 친구랑 뮤지컬 구경이나 나온 것이니.”
그렇게 부담가지지 말라고 노백찬이 말해도, 듣는 이들의 입장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노백찬의 손을 잡고 공연장을 찾은 나를 보고도 다들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으니…….
항상 노백찬은 나에게 매번 스스로가 뒷방 늙은이라고, 은퇴한 지 오래된 백수 할아버지일 뿐이라고 장난스럽게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런 사람치고는 영향력이나 포스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근 일주일 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에서 나를 보며 인사를 하는 신하들을 보는 것 같았달까.
노백찬의 말 한마디에 이름난 연출가들이 쩔쩔매고, 배우들은 어떻게든 인사를 하기 위해 분장도 지우지 않고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곤 했다.
그 모습에 다시 한번 노백찬의 명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감독님!”
오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역시 VIP 자리에서 뮤지컬 ‘조선 마법사’를 보고 나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공연이 끝나고 연출자 김택이 우리를 만나러 왔다.
“아직 안 가셔서 다행입니다.”
공연이 진짜 이제 막 끝났는데 어떻게 나간단 말인가.
커튼콜이 끝난 지 아직 1분도 지나지 않았다.
“오늘 제 작품을 보러 와주시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허허, 그럴 필요 없네. 그냥 공연 한번 보러 온 거니까.”
“그럼…… 오늘 공연은 어떠셨는지…….”
아주 조심스럽게 묻는 김택 연출가의 말.
노백찬은 그 말에 자신이 대답하는 대신 조용히 나를 내려다보았다.
“네가 한번 대답해보려무나. 오늘 공연은 어땠니.”
지난 며칠간 매일매일 뮤지컬을 보다 보니 이제 대충 뮤지컬이 어떤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노백찬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좋았어요. 스토리 라인도 명확하고. 넘버도 좋아요. 특히 클라이맥스 넘버가 인상적이었거든요.”
“하하! 이제 뮤지컬 좀 볼 줄 안다 이거냐? 아주 술술이구나.”
“그럼요. 요 며칠 새 몇 편이나 봤는데요…….”
심지어 어떤 날은 같은 공연을 두 번 보기도 했다.
캐스팅이 다를 때는 어떤 느낌인지 봐야 한다면서 말이다.
내가 상당히 피곤하다는 듯이 대답하자, 노백찬이 웃으며 덧붙였다.
“이놈이. 좋은 자리에서 보여줬더니만 지금 불평하는 게냐?”
“불평은 아니고…… 그냥 너무 좋다는 거죠.”
“말은 잘한다.”
김택 연출가는 우리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어…….”
“응?”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 김택의 얼굴에는 호기심이 아주 가득했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대충 무슨 질문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크흠, 한시우 군이랑 노 감독님은 무슨 사이이십니까? 아니, 별건 아니고. 그냥 두 분이 공연장에 오셨다고 해서 저랑 단원들이 깜짝 놀라서 말입니다.”
우리 둘의 관계를 묻는 질문도 지난 일주일 동안 숱하게 받아왔다.
노백찬 역시 이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허허롭게 웃으며 대답했다.
“왜, 내가 손자라도 숨겨놨을까 봐 그런가?”
“아, 아니! 그건 아니고요…….”
말은 아니라고 하면서 눈빛에는 경악의 빛이 서려있다.
설마? 라는 말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하긴, 백전노장의 은퇴한 전설적인 감독 노백찬과 요즘 한창 뜨기 시작하는 엄청난 재능의 아역 배우, 나와의 조합이 조금 신기하긴 하지.
누가 보든 간에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조화가 아니지 않은가.
덕분에 진짜 노백찬과 내가 혈연으로 얽혀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워하는 눈초리가 꽤나 많았다.
“하하, 손자 아닐세. 이런 손주 녀석이 진짜로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지만.”
“아, 아……. 그런가요.”
왜 그렇게 아쉬워하는 건데?
나는 대놓고 아쉬워하는 김택 연출가의 눈빛을 보고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
우리 둘은 김택 연출가와 인사를 나누고 밖으로 나왔다.
“우와, 할아버지. 첫눈이에요!”
마침 바깥에는 첫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다만 금방 그칠 듯 작은 눈송이이긴 했다.
그럼에도 간만에 보는 하얀 눈송이에 내가 신나서 손을 뻗고 있자, 노백찬이 허허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 한 달 뒤면 해가 넘어 8살이 되겠구나. 그럼 이제 국민학교에 들어가야 되지 않느냐?”
“네. 맞아요.”
처음에는 국민학교가 뭔가 했다.
그런데 초등학교의 옛말이라는 걸 알고 난 뒤에 그러려니 했다.
노백찬은 물론이고, 문희성과 김상철도 국민학교라고 하고 하니 익숙해졌다.
“안 그래도 엄마가 요즘 학교 이야기를 가끔 하세요.”
가방도 사러 가야 되고, 필기구 같은 것도 준비해야 되지 않느냐고.
유치원하고는 달리 학교는 내가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다.
의무교육이랄까?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내가 처음으로 어딘가 또래 그룹에 들어가게 되자 아주 들떠 보이셨다.
“흐음, 괜찮겠느냐? 유치원도 다니지 않았는데……. 나 같은 늙은이랑 이리 말을 잘하는데 어린아이들과 말이나 통하겠느냐?”
“그거 지금 저 걱정해주시는 건가요, 아니면 저 욕하시는 건가요…?”
나 보고 애늙이라고 뭐라 하는 건가 지금!
얼른 해명해달라는 듯이 노백찬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칭찬이다, 칭찬.”
“아닌 거 같은데…….”
노백찬은 대답을 회피하고 허허롭게 웃더니 덧붙였다.
“딱히 생각해둔 학교가 없다면 거긴 어떠냐. 청염 초등학교.”
“청염이요……?”
나는 처음 들어보는 학교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반응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노백찬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누자는 뜻이었다.
나는 노백찬의 손을 잡고 눈이 솔솔 내리는 거리를 걸어갔다.
“그래. 서울에 있는 사립 초등학교인데 보통 예체능을 하는 애들이 많이 입학하는 걸로 유명하지.”
“호오, 그래요?”
그런 곳이 있구나.
“이미 일찍이 콩쿨에 나가기 시작해 스케줄이 있는 아이들도 있다고 들었다. 그러니 아마 너와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많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헤에. 청염 초등학교…….”
“그나마 비슷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애들하고는 말이 통하지 않겠느냐? 매일 스케줄이 있다고 너만 빠지면 그것도 단체생활에서는 모양새가 썩 좋지 않을 게다.”
“그건 그렇겠네요.”
그런 단체생활에서는 자고로 너무 튀는 행동을 하면 보기 안 좋은 법이긴 하다.
어차피 꼭 가야 하는 학교라면 그 편이 낫겠지.
나는 노백찬의 말에 흥미가 생겨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엄마한테도 말씀드려볼게요.”
***
학교라…….
벌써부터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도 연기하는 것 외에도 스케줄이 많이 잡히는데, 거기에 학교까지 다녀야 한다면…….
괜히 시간만 더 뺏기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뮤지컬은 재밌었어, 시우야?”
“웅! 재밌었어.”
나는 공연이 끝나고 데리러 온 삼촌과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좋겠다……. 노백찬 감독님이랑 그런 뮤지컬도 보고 말이야.”
“맨 앞자리 진짜 좋더라.”
“……와, 진짜 부럽다…….”
“나중에 삼촌도 같이 보러 가자.”
그 어조가 퍽 아쉬워 보여서 나는 선심 쓰듯이 대꾸해주었다.
“진짜?! 내 표도 잡아주신대?”
“우리가 표 잡아야지.”
“……아, 그래.”
시무룩해진 삼촌은 내버려 두고 다시 학교 문제를 떠올렸다.
이것저것 떠올려 보아도, 당장 가본 적이 없으니 뭐라 감이 잡히질 않았다.
에잇, 모르겠다.
나중에 해도 되는 걱정은 나중에 하자.
지금은 할 게 정해졌으니 그거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바빴다.
노백찬 덕에 실제 뮤지컬을 맘껏 접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가서는 뮤지컬에 대해 연구를 해야 했다.
김상철에게 받은 무대 영상도 돌려보고 말이다.
또 루카스에게 이번 영화 대본을 미리 받아볼 수 있었다.
며칠 동안 대본을 꼼꼼히 읽어본 결과, 1월에 있을 오디션까지 준비해야 할 것은 두 가지로 추려졌다.
드럼 그리고 안무.
당장 배우기 시작해야 할 것은 이 두 가지다.
***
“그래서 할아버지가 청염 초등학교는 어떠냐고 하셨어.”
그날 저녁, 아버지가 치킨집에서 퇴근하시고 돌아오자 내가 말을 꺼냈다.
어머니가 이 주변에서 학교를 다니게 된다면 어디가 좋을까 궁리하시고 계시기도 하고, 삼촌과 아까 돌아와서 찾아보니 원서접수 기간이 곧이었다.
“청염 초등학교라……. 사립 말하는 거 맞지?”
“아, 거기.”
나는 노백찬에게 듣고 처음 안 곳인데,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가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으니 이것저것 찾아보신 모양이다.
이름을 듣자마자 청염 초등학교가 어디인지 아시는 걸 보니.
나도 찾아보니 괜찮을 곳 같았다.
공립 초등학교보다 학생들의 자율도가 높고, 하고 싶은 게 분명한 애들이 많이 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예술 하는 애들이 많이 간다고.
선생님들도 경험이 풍부해 그런 상황에 맞춰 아이들을 케어해준다고 한다.
“원서접수 기간이 곧이더라고, 이번에 150명만 뽑는대.”
“……엄마는 시우가 학교에 잘 적응할까 걱정이었는데 이렇게 먼저 이야기를 꺼내주다니.”
“으응, 그치만 엄마. 나 ‘책 읽는 교실’은 꽤 재밌었어.”
“그래, 여보. 시우는 학교 가서도 잘할 거야. 청염 초등학교에 들어간다면 비슷한 상황의 아이들도 많을 테니 더 좋겠지.”
“그런가…….”
어머니는 잠시 고민하더니 곧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래. 어쩌면 이 사립예술학교가 가장 좋은 선택지일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 시우 네가 고른 거니까.”
“맞아. 우리는 시우 네가 가고 싶은 데 가는 게 제일 중요하지.”
어머니와 아버지는 쉽게 내 의견에 동조해주셨다.
하지만, 아직 고비는 더 남아 있었다.
“으응……. 그런데 여기는 사립이라, 조금 비싸대.”
나는 우물쭈물거리며 인터넷에서 삼촌이랑 찾은 연간 교육비를 어머니, 아버지에게 보여드렸다.
학비를 확인하신 어머니와 아버지는 잠시 놀라셨지만, 곧 태연하게 대답하셨다.
“초등학교치고는 비싸긴 하다만……. 시우야, 괜찮아. 네 아빠 치킨집이 대박이 났잖니?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그럼! 아니, 아니다. 그게 아니어도 우리 아들이 가고 싶다는데 아빠가 무슨 짓을 해서든 보내줬을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시우가 제일 잘 벌지.”
“……으웅.”
그건 맞다.
하지만, 부모님의 진심이 느껴져서 감동이었다.
내가 부담을 느낄까 봐 아버지의 가게를 먼저 언급하시는 어머니도.
그런 건 상관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해주시는 아버지도.
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느끼며 활짝 웃었다.
“고마워요, 엄마. 아빠.”
“당연하지!”
“엄마가 학교에 대해서는 조금 더 알아볼게.”
든든한 지원군을 바라보며 나는 실실 흘러나오는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