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2
12화
‘짝짝짝’
강용휘는 아낌없이 에어 박수를 보냈다.
아직 극이 끝나지 않았기에 기립 박수를 보낼 수가 없어 찾은 대응책이었다.
강용휘와 김상철은 첫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객석 맨 뒤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오늘은 모든 객석이 찬 것이 아니라 두 사람 주변 자리는 꽤나 많이 비워져 있었다.
허공에다가 박수를 보내고 있는 강용휘 옆에서 김상철은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었다.
그는 이날 이때까지 알게 모르게 걱정이 많았다.
끽해야 강용휘에게만 그 걱정을 털어놨을 뿐이지만, 그는 요즘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였다.
이제야 비상철또 777이 조금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건만, 이번 일로 사고라도 터지지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늘 한시우가 무대 위에서 울음이라도 터트리면 어떤 소리를 듣게 될지 뻔했으니까.
화제성을 위해 무리해서 어린아이를 무대에 올린 게 아니냐.
혹은 어린아이가 무대 위에서 어떤 공포를 느꼈을지 아느냐 등등······.
그래.
인정한다.
아무리, 아무리 어린아이가 연기를 잘했다지만 너무 모험적이었다.
김상철은 하루에도 열두 번 한시우의 연기에 홀랑 넘어간 자신을 꾸짖었다.
연기를 잘하는 것과 별개로, 정신적으로 성장이 덜된 아이 아닌가.
컷! 하고 외칠 수도 있고, NG를 낼 수 있는 방송 연기와는 달랐다.
무대 공연은 삑사리가 나는 그 순간이 사고가 나는 순간이었다.
노련한 배우들이라면 사고에 대처할 수 있다지만, 이제 연기를 막 시작한 그것도 어린아이.
과연 실수를 했을 때, 고작 다섯 살에 불과한 그 아이가 제대로 된 대처를 할 수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걱정이 태산과도 같은 김상철은 전체 리허설을 무사히 마친 날, 강용휘를 단골 포장마차로 불러냈다.
‘감당할 수 있겠냐? 단독 등장 장면도 있는데 이게 엎어지면······.’
자신의 걱정에 강용휘는 소주잔을 탁, 하고 내려놓으며 딱 한 마디를 건넸다.
‘웬만한 배우들보다 시우 걔가 나아요. 걱정 좀 그만해, 형. 어째 간이 점점 더 콩알만 해지는 것 같아요?’
‘콩알은 무슨!’
그 말에 김상철은 평소처럼 바락 화를 내긴 했지만, 마음이 영 놓이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걱정했던 것이 창피해질 정도다.
김상철은 너무 놀라서 강용휘에 귀에 대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물었다.
“야, 야. 저 애 도대체 정체가 뭐냐? 저런 연출 지시를 고대로 소화해낸다고? 리허설 때보다 더 좋아졌는데?”
“아니야.”
“어······?”
아니라고?
아니라기에는 너무 소름 끼치는 연기 아닌가.
저게 완벽한 게 아니었다면 도대체 얼마나 더······.
하지만 김상철의 생각은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
충격적인 강용휘의 말이 뒤따른 것이다.
“나 뭐 연출 지시한 거 없는데요? 처음부터 혼자 대본 해석해서 하길래. 좋다 싶어서 내버려 둬봤어. 리허설 끝나고도 뭐를 더 보여주고 싶은지 나한테 먼저 제안을 하더라니까.”
“뭐······?”
펄쩍 뛰려던 김상철은 뒤이어 들리는 배우들의 대사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아직 공연 중이라는 것을 인지한 김상철이 재차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그, 그럼 저게 그냥 자기가 알아서 하는 거라고?”
“그렇다니까요. 내가 한 건 조명에 맞춰서 동선 조금 손봐준 거? 그것도 처음 해주니까 알아서 잘하더라고.”
김상철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입을 떡하니 벌렸다.
그 옆에 앉은 강용휘는 객석에 몸을 깊숙이 묻고 한쪽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어떻게 된 애가 리허설보다 더 잘하냐고요. 믿겨져? 다섯 살짜리가 본무대에 더 강하다는 게.”
“허어.”
“내가 살다 살다 다섯 살짜리한테 이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네. 무대 체질이야. 완전 무대 체질. 아주 스타가 될 재목을 타고났다니까요.”
“······.”
더 놀랄 힘도 없는 김상철은 잠자코 강용휘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냥, 이 천재가 누군가를 이토록 길게 칭찬하는 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았다.
그저 납득이 갈 뿐이었다.
객석을 채운 관객들이 훌쩍이는 소리.
평소보다 밀도가 높은 듯한 무대 위 분위기.
이어지는 공연은 평소처럼 익숙한 얼굴들이 등장하고 있는데도, 리허설로 본 것과 어쩐지 다르게 다가왔다.
***
“휴.”
이마에 아주 조금 맺힌 땀을 손등으로 슥 닦으며 그린룸, 아니 백스테이지로 내려왔다.
“수고했어, 시우야.”
“고마쯥니다.”
스태프 한 명이 차갑게 해둔 생수병을 하나 건네주며 소곤거렸다.
고맙다고 인사를 건넨 후, 낑낑거리며 생수병을 가지고 씨름했다.
트득.
다행히 스태프가 눈치를 채고 생수병을 따주었다.
꼴깍, 꼴깍.
“햐.”
살 것 같았다.
이제 오늘 내가 나갈 장면은 모두 다 끝났다.
한쪽 벽에 기대 오늘 섰던 무대를 다시 떠올려보았다.
음, 나쁘지 않았다.
완벽하지는 못했지만.
아무래도 작은 아이로 돌아간 몸 때문일까.
아직 발성을 하는 데 있어서 오랫동안 몸이 긴장 상태에 놓여 있으면 아랫배가 너무 당겼다.
볼록 튀어나온 배를 슥슥 문지르며 빼꼼 무대 위를 내다보았다.
관객들이 이쪽을 알아챌 수 없을 만큼만 내밀자, 거기에는 김선우가 올라가 열연을 펼치는 중이었다.
그리고 눈부신 조명.
리허설 때 깨달았었는데, 이 시대의 무대 위는 조명 때문에 앞에 앉은 관객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 사실이 진짜 관객이 있으니 더 실감이 났다.
덕분에 무대 위에 오르자 정말 나만 무대 위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과거 야외무대에서는 횃불을 사용하다 보니 이런 느낌은 받지 못했다.
객석이 워낙 넓다 보니 밤 공연을 할 적에는 객석에도 군데군데 작은 불씨가 놓여 있었다.
워낙 무대가 객석과 가깝기도 했고 말이지.
환한 곳에서 관객이 보이는 곳에서의 연기도 좋았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하니 몰입이 조금 더 잘 되는 것도 같았다.
······!
흐음.
그나저나 김선우는 역시 제법이다.
다른 극단에 아직 가보지 못해서 ‘비상철또 777’이 한국에서는 어느 정도 규모의 극단인지는 감이 안 오지만, 저 젊은 나이에 다른 배우들을 제치고 주연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는 증거겠지.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김선우는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아, 짜증 나.
오호라.
그리고 문제의 그 구간.
내가 제대로 납득이 안 간 채로 연기하고 있는 거 아니냐고 했던 그 장면이 시작되었다.
놀랍게도 김선우는 한 달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내에 훌륭한 해결책을 마련해왔다.
저번처럼 여기서는 거칠어야 한다, 라고 머리로만 안 채 나오는 연기가 아니었다.
조금 더 대사 사이사이 호흡에 간격을 가져가면서 표정 연기가 제대로 튀어나왔다.
극복했군.
내 코멘트가 있었다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내가 노아 바텐베르크일 시절, 대사에 제대로 감정을 싣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가를 떠올려보면 더욱 그랬다.
-왜 남의 집 담벼락에 이런 걸 남겨놓냐고!
김선우의 쩌렁쩌렁한 발성이 잘도 들린다.
슬쩍 옆얼굴을 보니 별로 힘들이지도 않는 것 같은데 속이 꽉 찬 발성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저 정도면 이 극장 맨 뒷좌석까지 잘 들릴 것이다.
통통.
나는 애꿎은 내 볼록 배를 두드렸다.
아직 체구가 다 안 자라서 그랬다지만 아무래도 발성에 불만이 많았다.
예전에는 탁 트인 극장도 빵빵하게 채우곤 했는데, 지금은 이런 꼴이라니.
에휴.
아직 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다는 게 암담해질 지경이었다.
얼른 크는 것밖에 답이 없었다.
오늘도 밥 많이 먹어야지.
그래도 다행인 건, 이 극장이 야외가 아니고 규모도 과거 내가 섰던 극장에 비해 작은 편이라 이 몸으로도 충분히 소리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와아-!
짝짝짝짝.
발성에 대한 생각에 한숨을 쉬고 있는데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첫 공연인 오늘 무대가 무사히 끝났다는 신호였다.
그와 함께 백스테이지가 소란스러워졌다.
“시우야. 시우, 아 여기 있었구나. 가자. 커튼콜 해야지.”
“우웅!”
나는 바쁘게 뛰어온 삼촌에게 번쩍 들려 무대로 향했다.
이번 생에 처음 배운 ‘커튼콜’이라는 걸 하기 위해.
***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함께 출연했던 배우들이 하나둘 중앙으로 나가 인사를 했다.
은 단역까지 합쳐 총 7명의 배우가 출연한다.
그리 많지 않은 인원이기에 내 차례는 금방 돌아왔다.
‘커뜬콜?’
처음 강용휘가 커튼콜을 어떻게 할지 연습한다고 했을 때 그게 뭐냐고 물었다.
다행히 어린 몸인 내가 모른다는 게 자연스러웠으므로 삼촌과 배우들이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런데 커튼콜이라는 건 실로 충격적인 관례였다.
모든 공연을 마친 후 극에 출연한 배우들이 나가서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다니!
무릇 공연이 다 끝나고 나면 배우들은 다시는 무대 위에 서지 않는 법이거늘!
과거 내가 무대에 오를 적에는 배우가 다시 무대로 나가는 것은 극단이 만든 스토리 속 세상을 해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극단장이 직접 나가거나 다른 스태프가 무대에 나가 정리를 했지.
배우들이 그 자리에 나가는 것은 금기시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모두가 나가서 관객들에게 인사를 한단다.
······그리고 오늘.
나는 이 커튼콜이라는 것이 아주 굉장한 것이라는 걸 몸소 깨닫게 되었다.
“와아아아!”
짝짝짝짝-!
다른 배우들이 인사하는 것을 지켜보는데, 이제 객석에도 불이 밝혀져 있었다.
환한 불빛 아래 모습을 드러낸 수십의 관객들.
그 광경을 목도하자 작은 심장이 또다시 콩닥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자, 이제 나가자.”
“웅.”
한 걸음 앞으로 나간 나에게 폭포처럼 쏟아지는 환호 소리.
양옆에는 김선우와 아버지 역할을 맡은 배우가 있었다.
나는 이번 공연에서 그리 비중이 크지는 않았지만, 아이라는 특혜로 주연들과 나란히 커튼콜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되었다.
우리 세 사람은 손을 마주 잡고 관객들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와아아!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최고예요!”
그러자 더 큰 환호와 박수 소리가 쏟아진다.
무대 위에서 얼굴이 이토록 오롯이 내놓고 이런 박수갈채를 받는 날이 오다니.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솟았다.
에잇.
이놈의 몸뚱어리는 어려진 뒤로 툭하면 눈물이 솟구쳐서 큰일이었다.
아이의 몸이라 그런지 감정 컨트롤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아이의 몸이라서 그런 거다.
어려서.
진짜다.
“킁, 감쨥니다. 감쨥니다.”
“어머, 너무 귀여워!”
“영수야, 행복해야 해!”
나는 울먹거리며 나를 향해 눈을 빛내는 관객들에게 재차 인사를 했다.
배꼽 인사를 하는 내 모습에 관객들은 뜨겁게 반응했다.
“우아······.”
설마 이토록 작은 비중이었던 나에게 이런 환호가 돌아올 줄은 몰랐다.
격한 환호에 나도 모르게 놀라서 입을 헤 벌렸다.
그러자 관객들이 꺄르르 웃으면서 귀엽다고 좋아한다.
흐, 흥!
나 때는 말이야.
더한 환호도 많이 받아봤는데, 너무 오랜만이어서 그런 거야! 진짜야!
“마지막으로 인사하고 들어갈까요?”
약속된 김선우의 말에 다른 배우들 모두 환히 웃으며 서로 손을 맞잡았다.
“감사합니다!”
“감쨥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우리들 머리 위로 떨어지는 스포트라이트.
그 뜨거운 열기와 함께 함성 소리를 들으며 가슴이 벅차오르는 걸 느꼈다.
허리를 펴면 나에게 쏟아지는 몇십, 몇백 개의 시선들.
아아.
정말, 내가 이 세상에 다시 살아 돌아와 있구나.
손끝과 발끝이 짜릿해지는 걸 느끼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시 태어나 또다시, 이 무대 위에 올랐노라고.
이왕 이렇게 태어난 거, 더! 더 사랑받고 싶다.
배우로서 더 사랑받아, 매일같이 이런 폭포수와 같은 환호 속에 살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