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
잭의 뒤를 따라 저택 안으로 들어가니,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내게 집중되었다.
“여러분, 드디어 타미가 왔어요! 타미가!”
그 시선을 느끼고 잭이 먼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 주인공!”
“타미!”
“오, 한시우 군!”
일제히 나를 알아본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나에게 아는 체를 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나는 이들이 누구인지 잘 알지 못했지만, 곧 다들 차례로 자신의 이름과 담당 파트를 이야기해줘서 알 수 있었다.
이들이 내 첫 할리우드 영화를 함께할 동료들이라는 것을.
“세상에. 영상보다 열 배는 잘 생겼어. 오디션 영상을 도대체 누가 찍은 거야?”
“발로 찍었나 보지. 그러니까 나를 불렀어야 한다니까.”
그리고 카메라를 담당하는 감독과 그 크루들이 진지한 어조로 내 외모를 찬양했다.
나는 그들에게 고맙다고 답하며,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전했다.
“이런, 빌리. 누가 오디션장에 영화 촬영용 장비를 설치할 수 있다는 거야?”
“하지만, 너는 이 피사체를 보고도 아깝지도 않아?”
“그렇게 따지면 나는 이 목소리를 제대로 담지 못한 게 화가 난다고.”
거기다가 갑자기 카메라 vs 오디오 팀의 구도가 발생했다.
당장에 이 고급스러운 악센트는 좋은 음질로 영구 보존을 해야 한다며 어떤 스태프가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발음 좀 봐. 갑자기 LA에 영국 신사가 나타났어.”
“노래도 직접 한다지? 벌써부터 작업이 기대되는군.”
“하하, 다들 너무 띄워주시는 거 아닌가요? 저도 기대가 많이 돼요. 전부 잘 부탁드려요.”
오디오 팀의 호들갑에 내가 겸손하게 인사하자, 다들 흐뭇한 얼굴로 브라이언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이봐, 브라이언 어딨어? 최대한 빨리 촬영 시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우리는 준비가 됐다고!”
그들의 노성 뒤로 동료 배우들의 인사도 이어졌다.
“타미, 오, 타미. 드디어 만나보는구나. 내가 네 담임 선생님이 될 예정이란다.”
“네 친구들은 아쉽게도 오늘 자리하지 못했어. 내일부터 만날 수 있을 거란다.”
학교 선생님을 맡았다는 조연 배우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들어보니 어린 배우들은 주연급을 제외하고는 오늘 오지 않는다고 한다.
아쉽게도 그 아이들은 내일부터 시작되는 뮤지컬 장면 연습 때 만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일단 아직 미팅은 시작되지 않았으니, 그 전에 배를 채우렴. 고기 좋아하니?”
“그럼요. 당연하죠.”
다들 고기 대신 맥주를 들고 있어서 그렇지, 정원에는 아까부터 고소한 고기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넓은 정원에는 커다란 그릴이 두 구 놓여 있고, 그 위에는 큼지막한 고기와 야채들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고 있었다.
밝은 햇살 아래 펼쳐진 정원은 정말 바비큐 파티장의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이게 정말 대본 리딩 현장이라는 거지?
한국과 영국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대본 리딩장 분위기에 내가 얼떨떨하게 주위를 둘러보고 있으려니, 화장실에 갔다던 감독인 브라이언이 다가왔다.
“시우! 드디어 왔구나.”
“브라이언. 우리 벌써 촬영이 끝났던가요?”
거의 종방연 수준의 파티 현장을 가리키며 내가 말하자, 브라이언과 다가온 뮤지컬 감독, 다니엘이 허리를 젖히며 웃었다.
“하하! 이런,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
“이런 작업이야말로 팀워크가 중요하지 않겠어? 촬영 전에 릴렉스하자는 차원인 거지. 다들 친해지기 위한 자리이기도 하고.”
“정말 신기한 문화네요…….”
다니엘은 이번 영화에 안무 감독으로 참여하게 되었기에, 이 자리에 함께한 모양이다.
두 사람은 대낮부터 알콜이 들어간 맥주를 들이켜며 유쾌하게 미소 지었다.
“시우!”
그리고 나에게 고기가 잔뜩 올려진 접시를 내밀며 등장한 인물.
바로 딘 타이든이었다.
이번 영화의 주연 중 한 명인 그는 한국에 왔을 적 나와 친밀해져서 그런지 나의 도착을 아주 반가워했다.
“안심 괜찮아? 저쪽에서 원하는 굽기로도 구워줄 거야. 꼬치가 편하다면 그걸 먹어도 좋아.”
“고마워요, 딘. 엄청난 환대네요.”
“그럼. 잭의 바비큐 파티는 아주 유명하다고. 고기 맛이 일품이야. 이런 기회가 쉽게 찾아오진 않으니 많이 먹어두라고.”
“하하, 일하러 온 게 아닌 거 같은데요?”
따뜻한 딘의 환대를 받고 바비큐 그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안 그래도 기내식을 먹은 지 오래되어서 배가 조금 고픈 참이었는데, 식사를 하고 대본 리딩을 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하이, 동욱!”
딘은 한국에 있는 동안 친해진 삼촌에게도 아는 체를 하며 이것저것 물었다.
짧은 영어로 천천히.
덕분에 잭의 저택에 들어온 뒤로 한마디도 못 하고 있던 삼촌이 긴장을 풀고 더듬거리며 뭐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시우?”
그렇게 딘을 보내고, 고기와 함께 구운 옥수수를 먹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뒤에서 바람 소리와 뒤섞인 고운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응……?”
날 부른 게 맞나 싶어 뒤를 돌자, 거기에는 놀랍도록 흰 피부를 가지고 있는 소녀가 서 있었다.
적당한 체격이었지만, 너무 흰 피부에 너무나 또렷한 파란 눈을 하고 있어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신비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
요정이라도 만난 기분이라 내가 잠시 말을 잃고 멈춰 서 있자, 소녀가 살포시 웃으면서 인사를 해왔다.
“맞나 보네. 나는 아가사 엘. 라이키 역할을 맡게 되었어.”
“……어, 나는 시우야. 한시우. 타미 역을 맡게 되었으니… 잘 부탁해.”
“응, 나도.”
대본을 이미 한 차례 다 보았기에 라이키가 극 중 하늘색 머리를 가진 소녀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가사 엘도 이미 배역에 맞춰 염색을 한 건지 옅은 하늘색 머리를 하고 있었다.
본인의 원래 머리 색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파란 눈과 하늘색 머리가 무섭도록 잘 어울려서 위화감이라곤 전혀 없었다.
내가 한국에서 미리 찾아본 아가사 엘과는 상당히 다른 이미지다.
화면과 실물이 꽤나 다른 것도 있고, 갑자기 머리 색을 하늘색으로 물들이고 나타난 터라, 알아보는 데 딜레이가 생겨버렸다.
이 자리에서 나 외에 유일하게 십대 배우를 봐서 살짝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사실, 미국에 오기 전부터 아가사 엘을 만나게 될 걸 기대하고 있었다.
같이 연기하게 된 내 상대역으로 아가에 엘이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에 나는 미리 그녀가 나온 작품을 찾아보았다.
데뷔를 한 지 얼마 안 된 아가사는 출연한 작품은 두어 개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아주 짧게 출연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잠시 화면에 모습을 비춘 그녀는 굉장한 인상을 남겼다.
시리도록 파란 눈은 순간적으로 시선을 집중시켰고, 자연스러운 연기는 어라? 싶은 생각이 들게끔 만들었다.
그게 문제였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연기.
자신을 돋보이려고 하지도 않고, 짧은 비중이지만 여기 자신이 나오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지 않는 연기.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연기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내가 집중하지 않으면 못 알아차릴 정도로 배역에 완벽하게 녹아들었다고 볼 수도 있는 연기였다.
나는 아가사의 데뷔작 속 그녀의 등장씬을 다섯 번 정도 돌려보았다.
어린 나이에 연기를 시작한 아이들 중 이토록 섬세하게 화면에 녹아드는 배우를, 나는 처음 보았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를 얼른 만나 보고 싶었다.
그런데 실제로 마주한 그녀는 생각보다 훨씬 차분하고 조용했다.
화면으로 본 것보다 얼굴이 훨씬 작았고,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는 실제로 본 것이 더욱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아가사는 한국 나이로 12살, 미국 나이로는 11살이지만, 어린애답지 않은 기품이 느껴진달까?
신기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아이였다.
“아직 식사를 못 한 모양이네?”
“아, 응. 이제 막 공항에서 달려온 참이거든.”
“그럼 저기 빵과 수프도 있어. 내가 가져다줄게.”
가식적이지 않은 상냥함에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하는 아가사.
미리 찾아본 그녀의 출연작 속 등장인물보다 더욱 조용한 느낌의 아이였다.
그렇다 보니 절로 고개가 갸웃 기울어졌다.
극 중 라이키는 왈가닥에 난폭하고 까칠한 캐릭터가 아니던가?
저렇게 차분하고 조용한 아가사가 과연 라이키를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까?
아무렴 레인보우 픽처스에서 그 정도 검증도 없이 뽑지는 않았겠지만, 도저히 그 캐릭터를 연기할 거라고는 상상되지 않은 탓이 컸다.
그나저나 새삼 레인보우 픽처스의 결단력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세계적으로는 아직 무명이나 다름없는 동양의 한 작은 나라 출신의 배우인 나와, 아직 큰 역할을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미지의 배우 아가사를 주연으로 내세우다니 말이다.
저리도 차분한 배우가 라이키를 연기하면 어떻게 될까, 기대 반 의심 반으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데 잭 카키가 커다란 배를 들이밀며 등장했다.
“시우. 아가사한테 반했구나?”
짓궂은 어투로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말하는 잭의 말에 나는 펄쩍 뛰었다.
“뭣, 무슨 소리예요. 잭. 그럴 리가 없잖아요.”
“저기 멀리서 보고 있으려니 말문이 턱 막히던걸?”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말하자, 잭이 히죽거리며 내 어색한 모습을 지적했다.
솔직히, 내가 잠시 답지 않게 멈칫한 건 사실이었기에 우물거리며 답했다.
“……하늘색 머리가 신기해서 그런 것뿐이에요.”
“흐음, 특이한 헤어 컬러를 좋아한다는 거군.”
“아니라니까요!”
한창 잭과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아가사가 여러 음식이 든 접시를 가지고 내게 돌아왔다.
잭은 잘해보라고 작게 속삭이고는 자리를 떴다.
도대체 뭘 잘해보라는 건지.
“이것도 먹어봐.”
“아, 고마워. 아가사는 안 먹어?”
“으응. 나는 이미 많이 먹었어.”
우리 두 사람과 삼촌이 고픈 배를 채우고 있을 무렵,
모인 사람들은 신나게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쿵쿵 울리는 커다란 음악 소리에 맞춰, 누구는 수영장에서 맥주를 들이켜고, 누구는 잔디밭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잔을 부딪쳤다.
과거, 바텐베르크 성에서 열린 연회와는 또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자유로운 미국에서의 파티라 이렇게 차이가 있는 건지, 아니면 4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이렇게 바뀐 건지 모를 일이었다.
“자아, 다들 배 좀 채우셨나?”
“네에!”
브라이언의 말에 정원에 모인 이들이 각자 들고 있는 음료를 들어 올리며 외쳤다.
“그럼 이제 슬슬 대본 리딩을 시작해볼까요?”
그 말에 모든 이들이 아주 재빠르게 대본을 들고 돌아왔다.
나도 바로 옆에 있던 삼촌이 대본을 건네주었고, 아가사 역시 대본을 들고 있는 채였다.
“오늘 이 자리와 가장 어울리는 장면부터 시작할까 하는데, 다들 어때요?”
“좋아요!”
“얼른 시작하자고!”
열렬한 반응에 브라이언이 흡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그럼 세 사람이 동아리실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부터! 시작합시다!”
그렇게 말한 뒤, 브라이언은 나와 아가사가 앉아 있는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파티를 하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본업으로 돌아가다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순식간에 모두가 나와 아가사, 딘에게 주목했다.
이미 대본은 수십 번도 더 봤다.
자다 일어나도 바로 뱉을 수 있도록 외운 대사를 지체없이 내뱉었다.
“저, 저기……. 여기가 밴드,”
“어어, 어. 맞아, 맞아. 여기 밴드부 맞고, 우린…… 라이키! 잠깐! 장비는 소중히 다루라니까!”
“칫. 이딴 고물 누가 아까워한다고 그래요. 제대로 되지도 않는 것들인데 뭐.”
비인기 동아리 Dynamite의 문을 두드린 타미.
그리고 어딘지 심드렁한 말투와 표정으로 그를 반기는 고문 선생 헤이글과, 순식간에 돌변한 아가사가 연기하는 삐딱한 라이키.
세 사람이 처음으로 통성명을 하는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