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214
214화
몇 시간 뒤, 파티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이제 슬슬 파할까요?”
장진홍 감독의 말에 다들 아쉽다는 듯이 자리를 정리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맞은편 자리에 익숙한 빨간 핸드백이 딱, 눈에 들어왔다.
어라? 저거…… 어디서 본 가방인데?
누구 거지 싶은데, 그 자리의 주인인 강수정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백을 챙기는 것이 아닌가.
“……!”
저건 분명…… 밀라노의 브릿지에서 삼촌이 샀던 가방과 같은 디자인이었다.
분명히 할머니는 드린다고 하면서 샀던 그 미니백!
기억을 더듬어 떠오른 생각에 내가 미간을 좁히며 강수정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바로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다른 테이블이었지만, 강수정의 옆자리에 있던 삼촌이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오호라.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삼촌을 보자, 삼촌이 황급히 강수정에게 말을 걸었다.
“수, 수정 씨. 가방이 예쁘네요. 브릿지에서 나온 제품이죠?”
땀을 뻘뻘 흘리며 노력하는 삼촌의 안쓰러운 모습.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
이렇게 나오시겠다?
“응? 아, 네. 예쁘죠? 얼마 전에 백화점에서 힘들게 대기해서 구매한 거예요. 브릿지 신상으로.”
“흐음.”
아무래도 배우인지라, 강수정의 연기가 참 자연스러워서 속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저 가방은 밀라노 한정으로 나온 프리미엄 백이었다.
분명 그때 내가 계산할 때 삼촌과 함께 가방이 있는 쪽에 있었던 직원이 영어로 내게 열심히 설명해주던 것이 선명하게 기억난단 말이지.
아마 그 직원의 말이 너무 빠른 터라 삼촌이 직원의 설명을 다 알아듣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모두가 있는 자리라 차마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대신 팔짱을 끼고 삼촌을 바라보았다.
“…….”
그러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삼촌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로 내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다.
이거이거, 가방 사준 사람으로서 면담 좀 해야겠는데?
***
다음날 우리 집 근처의 넓은 브런치 카페.
여기는 식물원 컨셉이라 가벽 대신 커다란 화분들이 많아 다른 손님들의 눈을 잘 피할 수 있었다.
나와 강수정 그리고 삼촌이 브런치를 앞에 두고 앉았다.
“…….”
“…….”
우리는 별 말없이 나온 메뉴를 보고 식기를 들었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평소 같으면 내가 삼촌이 나란히 앉고, 강수정이 앞에 앉았을 것이다.
이번엔 내가 혼자 앉아 있다는 점이랄까?
강수정과 삼촌은 내 앞에 나란히 앉아서 조용히 포크와 나이프로 식사를 했다.
아직 믿기지는 않지만…… 어제 가방 사건으로 인해 상황은 전부 눈치채고 말았다.
우리 모두가 반쯤 접시를 비웠을 무렵.
삼촌이 벌컥벌컥 물 한 컵을 다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 맞아. 우리…… 사실 만난 지 꽤 됐어.”
“허어.”
아주 비장하게 튀어나온 삼촌의 고백.
그럴 줄은 알았지만, 막상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서 확답을 들으니 어이가 없었다.
꽤? 얼마나 꽤?
아니 왜 이야기를 안 했느냐 말이다.
내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입을 벌리고 삼촌을 보고 있자니 강수정이 입을 슬그머니 열었다.
“나는 사실 더 빨리 말하고 싶었어.”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강수정을 잠자코 바라보았다.
그러자 강수정이 아예 접시에다가 식기를 올려두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후아, 너한테 말하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하네.”
그렇게 말하는 강수정의 표정은 한결 후련해 보였다.
비밀연애가 이렇게 힘든 거구나.
“뭐…… 아직 믿기는 조금 힘들지만, 일단 축하해요. 두 분.”
내가 떨떠름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자 삼촌이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동욱 씨가 하도 비밀로 해야 한다고 해서 지켜준 거야. 나는 시우 너한테 얼른 밝히고 싶었어.”
“그래요?”
이건 또 의외다.
나는 강수정이 밝히지 말자고 했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결정적으로 들킨 원인이 가방 때문이라서 그런가…….
“그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매일 부딪치는 담당 배우인데. 숨기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잖아.”
“그러게나 말이에요. 감쪽같이 속았어요. 역시 배우 지망생은 다른 건가.”
“그러네? 동욱 씨 재능 있다.”
“둘 다 그만 놀려…….”
삼촌은 쥐구멍을 찾아 들어가고 싶다는 듯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해보니…… 이상하긴 했네요. 저 영국으로 떠나기 전에 갑자기 누나가 연락 줬었잖아요. 그때는 누구한테 들은 건가 했는데.”
“아, 맞다. 그런 일이 있었지. 안 그래도 나 그렇게 통화하고 혼났잖아. 조심성 없다고.”
“그렇기에는 삼촌이 집에서 시도 때도 없이 나가서 수상하기는 마찬가지였어요.”
“크흠…….”
삼촌은 모로 고개를 돌리며 내 얼굴을 외면했다.
맞네.
가끔 작은방에서 삼촌의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렸을 때, 어머니가 옆에서 쟤 연애라도 하는 거 아니냐고 했었는데.
그것도 다 강수정과 연락하느라 그랬나 보다.
“바빠서 잊고 살았던 일들이 이제야 하나하나 퍼즐이 맞춰지네.”
“드라마 너무 본 거 아니야 시우야?”
“저한테는 이게 공부잖아요.”
피식 웃으며 하는 강수정의 말에 나도 웃으면서 받아쳤다.
두 사람의 해명 아닌 해명을 듣고 나서 나는 후련한 표정으로 다시 접시에다가 눈을 돌렸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다시 식사를 시작하던 강수정이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우리가 말 안 해서 섭섭했어?”
갑작스러운 질문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강수정을 쳐다봤다.
그런데 어째…… 나름 섭섭해 했으면 하는 눈치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섭섭한 건 아니에요. 그저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서 알고 있는 게 나을 뿐이지.”
“그래? 하긴 그것도 그러네.”
내 대답에 덤덤하고 후련해 보이는 강수정과 달리 삼촌의 얼굴은 어두웠다.
평소답지 않게 근심 가득한 표정이랄까.
“삼촌, 왜 그래.”
내가 왜 그러냐고 묻자 삼촌이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나도 이제, 너랑 일한 지 햇수로 6년이 됐잖냐 시우야.”
그렇게 말하는 삼촌의 얼굴은, 더는 매니저나 삼촌의 얼굴이 아니었다.
어엿한 한 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결의에 찬 말에 나와 강수정은 의아하다는 듯이 삼촌을 돌아보았다.
***
내가 한창 바쁠 시기.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동분서주하던 때에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내가 쪽잠이라도 잘 수 있도록, 내 옆에는 늘 삼촌이 있었다.
내가 바쁠 때는 삼촌도 바빴고, 나 정도의 스케줄을 혼자 케어하는 매니저도 흔치 않았다.
하지만, 삼촌은 군말 없이 그 모든 일을 소화해주었다.
어느새 삼촌도 5년 넘게 내 매니저 일을 도맡아 해주었다.
게다가 바다 엔터라는 대기업에서 혹독한 교육까지 받아가며 말이다.
단순히 대기업 직원이 되어서 기쁘다는 건 잠시 잠깐이었다.
나를 제대로 케어하기 위해서 삼촌은 나를 집에 데려다주고 바다 엔터에 돌아가 김민석 팀장을 비롯한 직원들에게 훈련을 받아야 했으니까.
뒤늦게 매니지먼트 업에 뛰어든 삼촌은 알아야 할 정보도 많았고, 외우고 숙지해야 할 관례도 많았다.
원래는 연극을 하겠다고 극단에 있었던 삼촌에게 방송가 사정을 한 번에 꿰뚫고 익히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여러 분야에 도전하는 걸 좋아하는 삼촌도 이제 연예계에는 꽤 빠삭한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삼촌은 알았을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 어느 여배우가 당당하게 공개 연애를 한단 말인가.
“나 때문에 수정 씨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거야.”
“동욱 씨…….”
잠시 잠깐 둘만의 세상에 빠져든 둘이 조금 눈꼴시었지만, 잘 참아냈다.
가까이서 배우들의 생태계를 봤으니 더욱 절절하게 깨달았을지도 모르겠다.
여자든 남자든 공개연애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아니지만, 세간의 시선이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냥 밝히고 싶지 않았어. 한 명이 알면, 두 명이 알고, 두 명이 알면 열 명이 알게 되는 게 이 바닥이더라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시우만 아는 건데 뭐 어때.”
강수정이 삼촌의 말을 듣고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삼촌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 세상에 완전한 비밀이라는 것은 없어. 게다가 강수정이라는 배우는 선인장으로 완전히 탑스타 계열에 오른 배우잖아. 아는 사람은 없을수록 좋은 법이야.”
제법 어른스러운 말을 하는 삼촌을 보고 있자니 느끼는 게 많아졌다.
삼촌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삼촌에게 놀라보는 것 같다.
“으음, 그리고…….”
삼촌은 잘만 말하다가 머쓱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강수정이라는 사람에 비해 많이 부족한 사람이잖아.”
“뭐, 동욱 씨……!”
강수정은 그 말에 깜짝 놀라서 왜 그런 말을 하냐고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삼촌은 아니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런 사람이 네 매니저고, 삼촌이라는 것까지 알면 시우 네 이미지에도 영향을 끼칠 것 같았어. 대중들의 척도는 그만큼 무서운 거니까.”
“…….”
삼촌의 이어지는 말에 나와 강수정은 조용히 입을 닫았다.
그럴지도 몰랐으니까.
이게 냉정한 현실이었다.
연예인은, 배우는 결국 대중들의 관심과 인기로 연명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많은 인기를 얻고,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대중들이 등을 돌리면 그걸 회복하기는 아주 힘들다.
“자꾸만 이런저런 걱정이 들어서 시우 너한테까지도 이야기를 못 했어. 미리 얘기하지 못해서 미안해.”
“아니야. 미안할 건 전혀 없어. 삼촌이 나한테 사생활을 꼭 보고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시우야…….”
삼촌이 매니저로서, 강수정의 남자친구로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나는 내가 도움이 된다면 도움을 주고 싶은 것뿐이야. 알잖아? 매스컴도 나랑 수정이 누나가 얼마나 친한지 알아. 나를 이용할 때는 하라고.”
일부러 가라앉은 분위기에 내가 농담조로 말하자 삼촌의 표정이 조금 펴졌다.
“정말 고맙다, 시우야.”
“역시 시우네.”
두 사람은 웃으며 연신 고맙다는 말을 했다.
참, 사랑하기도 힘든 세상이네.
아닌가.
400년 전에도 사랑하기는 힘들었던 것 같긴 하다.
삼촌도 이내 조금은 후련한 듯 숨을 푹 내쉬었다.
“와…… 그래도 이제 시우 너 하나는 걱정할 게 없다.”
나는 그 말에 조금 멈칫했다가 말했다.
“근데, 삼촌. 그 가방 말이야…… 선우 형이랑 임 감독님이랑 같이 산 건 알고 있지?”
그리고 김선우와 임수호 두 사람 모두 어제 같이 있었다.
내 말에 삼촌이 경악하며 입을 떡 벌렸다.
그러게…… 그렇게 조심한다는 사람이 왜 빨간색 가방을 사서는.
삼촌은 사색이 되어서 봤을까? 못 보지 않았을까? 중얼중얼거렸다.
저러니까 내가 삼촌이 숨겼다고는 생각을 못 했지.
나는 충격을 받은 삼촌은 내버려 두고 강수정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누나. 삼촌의 어떤 점이 좋은 거예요?”
“뭐, 뭣? 시우야, 너 그거 어떤 의미냐?”
삼촌은 내 질문의 뉘앙스가 이상하다며 나에게 눈을 치켜떴다.
내 질문에 강수정이 생각에 잠긴 듯 눈알을 위로 굴렸다.
한참을 대답이 나오지 않자, 삼촌이 바싹 긴장해서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