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36
36화
해가 바뀌어 2007년이 되었다.
특별할 건 없었다.
여전히 ‘RUN’이 상영 중이었기에, 매일 같이 연습하고 공연하고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색다른 하루가 될 모양이다.
“후움.”
나는 목에 걸려있는 고무줄을 만지작거렸다.
오늘은 1월 15일 월요일.
월요일이라 공연은 없지만 연습을 위해 출근은 한다.
“안냐세요!”
아무 생각 없이 광화문 문화센터 대 연습실로 출근했다.
그리고 바로 스태프에게 잡혀 이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것도 이런 고깔모자를 쓴 채로.
“우씨.”
내일모레, 1월 17일이 내 생일이다.
내가 말한 적은 없지만, 아무래도 RUN 공연 팀도 내 생일을 알고 있던 모양이다.
축하 파티를 해줄 거라며 스태프가 생일 축하 고깔모자를 내 머리에 씌워놓았다.
나 이제 벌써 여섯 살인데, 이런 모자를 써야 하다니.
뭔가 분하다.
몸은 어리지만 속은 아니니까 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는 다르게 몸은 들떠서 다리를 동당거린다.
흐, 흠. 그렇다고 또 준비해준 성의를 무시할 수는 없지.
항상 연기 연습을 위해 텅 비어 있는 연습실인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기다란 테이블이 둥그렇게 대형을 맞춰 세팅되어 있었다.
나는 그 가운데에 앉아서 사람들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공연에서 주인공인 것과 별개로, 오늘은 진짜 내가 주인공이군.
벌컥!
“생일 축하합니다-!”
얌전히 기다린 지 얼마나 되었을까.
연습실 문이 열리면서 스태프들과 다른 배우들이 들어왔다.
“사랑하는- 시우의- 생일! 축하! 합니다!”
중심에는 유정석이 촛불을 밝힌 케이크를 들고 다가왔고, 그 곁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노영희, 그리고 그 옆으로 우르르 몰려오는 다른 배우들.
스태프들까지 밝은 얼굴로 노래를 부르며 테이블에 앉았다.
“시우야! 불 꺼!”
“후우.”
와아아!
축하해 시우야!
내가 한 번에 초 여섯 개에 붙은 불을 끄자 스태프들이 아주 좋아했다.
휴, 이 몸의 인기란.
나는 카메라를 들이대는 스태프들의 모습에 케이크를 들고 앙증맞은 표정을 지어주었다.
이런 표정을 지으면 어머니가 껌뻑 넘어가고는 했지.
“허어, 너무 귀엽다. 시우야.”
“시우야, 시우야. 다른 포즈.”
“이로케?”
스태프의 제안에 나는 바로 케이크를 두 손으로 들고 방긋 웃어주었다.
내 모습에 스태프들이 또 심장을 부여잡고 줄줄이 테이블에 엎어졌다.
“시우, 생일 축하해.”
“고마워요. 제시카.”
제시카와 조이수도 뒤이어 등장했다.
축하의 말을 건네는 두 사람에게 나는 활짝 웃으며 화답했다.
“오늘은 연습 없어. 시우 생일 축하 겸, 우리에게 아주 좋은 소식이 있어서 파티를 열어야 하니까.”
응? 무슨 소식이지?
“좋은 소식?”
“뭔데요 감독님?”
모두가 조이수를 통해 통역을 듣고 제시카를 바라보았다.
제시카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던 영자 신문과 우리나라 신문을 여러 개 들어 올렸다.
“크흠, 아주 좋은 소식이니까 좀 읽겠어요. 모두 집중!”
제시카의 외침에 옆에서 조이수가 이마를 짚는 것이 보였다.
뭐지, 싶어서 제시카를 올려다보았다.
“레인보우 픽처스 사의 ‘RUN’ 한국 공연은 연일 전석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는 공연을 이끌고 있는 제.시.카 브.라.운.의 놀라운 실력을 재확인하는 기회가 되었으며 한시우라는 한국의 보물을 발굴하는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아, RUN 공연과 관련한 좋은 기사가 뜬 모양이었다.
줄줄 흘러나오는 영어에, 영어를 잘 모르는 스태프들은 두 눈을 꿈뻑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말을 온전히 알아들을 수 있는 나와 조이수는 멀거니 제시카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칭찬 일색인 기사를 줄줄 읽어내려가면서 정말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를.
허허.
웃음이 나올 뻔했다.
제시카는 자신의 이름을 강조해서 기사를 읽어내려갔다.
한편으로는 참 대단하다.
나는 자기 입으로 자기 칭찬을 주저 없이 줄줄이 읊는 제시카의 대범함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고 보니 아까 조이수의 표정이 안 좋던데, 제시카의 이런 행동이 한두 번 벌어진 게 아닌 모양이었다.
“공연 RUN은 저번 주 금요일 열린 2차 티켓팅에서도 전석 매진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앞으로 이 블록버스터급 공연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 귀추가 주목되는 바이다.”
길고 긴 공연에 대한 기사를 기어코 다 읽은 제시카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이건 무려 브로드웨이를 다루는 기자가 쓴 미국 기사예요. 이것 외에도 많은 기사들이 나왔더군요. 물론, 한국에서는 더욱 뜨겁죠.”
제시카는 아주 들뜬 얼굴로 한국 신문도 펼쳐 보이며 말했다.
거기에는 광화문 문화센터의 거대한 건물 사진과 제시카와 나를 비롯한 주연 배우의 얼굴이 실린 기사가 있었다.
말 그대로 자화자찬이었지만, 이상하게 그런 제시카가 밉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이렇게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끈 것은 확실하게 그녀의 실력이었으니까.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달까?
대충 조이수가 통역해준 말을 들은 스태프들과 배우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시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 기쁜 소식을 함께 나누고자 여러분과 조촐하게 파티를 열어볼까 해요. 오늘은 즐겁게 놀고 즐깁시다!”
마지막 제시카의 말에 모든 사람들은 기뻐하며 만세를 불렀다.
“오늘 진짜 축하할 일투성이네, 우리 시우 생일에, 2차 티켓팅까지 매진이라니!”
“솔직히 잘 될 줄은 알았지만, 기대 이상 아니냐?”
배우들도 다들 신나서 주절주절 이야기를 내뱉었다.
그 가운데, 노영희가 손에 곱게 포장된 무언가를 들고 천천히 내게 걸어왔다.
“시우야, 축하한다.”
생일 선물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선물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것도. 정말 축하한다. 시우야. 이제 여섯 살이네?”
“형도 하나 준비했다!”
“녜! 감쨥니다.”
기쁨으로 흘러넘치는 연습실에서, 나는 주인공을 놓치지 않았다.
노영희부터 시작해 다른 배우, 스태프들에게 셀 수 없이 많은 생일 선물을 받으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아, 환생 최고다.
내가 이런 나날을 보낼 수 있다니.
이런 기쁨을 누려도 된다니.
나는 샴페인을 따야 한다는 제시카를 보면서 싱긋 웃었다.
제시카 역시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활짝 웃어주었다.
***
“아니, 선배. 이게 왜 안 돼요? 재밌는데!”
KMB 방송국 회의실.
차일남 PD는 다짜고짜 소리치는 자신의 대학 후배, 한유주 작가를 마주하고서 두통이 가시질 않아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아, 여기 회사야! 한 작가. 조심 좀 하지?”
“진짜······. 알았다고요. 차 PD님. 제 작품이 왜 안 되죠? 솔직히 재밌는 건 인정하시잖아요?”
회사라는 말에 조금 누그러진 한유주는 다시 종이 뭉치를 그에게 들이밀며 물었다.
당찬 목소리의 주인공은 한유주.
그녀는 2004년에 KMB 방송국에서 주최한 공모전에서 단만극 부문 대상을 받은 인재였다.
이후 KMB에 입사해 단막극 다섯 개를 집필했지만, 모두 단막극이라 크게 흥행하지 못하고 관심도 못 받았다.
덕분에 제대로 된 입봉작 없이 드라마국에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대상 수상자를 쉽게 내칠 수도 없고.
가져오는 기획들은 또 하나같이 그럴듯하다.
편성 받기가 까다로워서 그렇지.
차일남 입장에서도 가만히 썩히기 아까운 인재임은 분명했다.
“누가 재미없다 했냐? 당근 재밌지! 근데 16부작 편성 받기가 힘들다고.”
그런 한유주를 바라보는 차일남은 답답한 마음에 성을 냈다.
자신도 안다.
대학 후배인 한유주가 얼마나 글을 잘 쓰고 또 재밌게 쓰는지.
그런데 문제는 윗선들이 좋아할 만한 자극적인 소재가 아니라, 잔잔한 소재로 단막극을 쓰기 때문에 이걸 늘려서 16부작으로 맞추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대박을 한번 터트려야 하고 싶은 글을 할 수 있을 텐데.
한유주는 글을 잘 쓰는 만큼 고집도 엄청나서 도저히 타협이라고는 못 보는 성격이었다.
그나마 이번에 절치부심해 새로운 16부작 드라마 극본을 가져왔는데······.
이게 또 항상 드러나는 그 문제를 고스란히 안고 있어서 대치 중이었다.
“나도 순식간에 읽었어. 기획서도 잘 나왔고. 대사도 좋고. 앞부분도 좋아. 좋은데.”
“좋은데?”
“자극적이지가 않잖아!”
“아, 선배. 꼭 자극적이어야 드라마예요? 우리나라 이제 막장 한물갈 때 됐잖아요. 이걸로 16부작 만들어도 충분히 먹힌다니까요?”
혹하는 이야기긴 하다.
자극의 자극이 판을 치는 드라마 시장에 이토록 다른 색깔을 보여주면 반가워하는 시청자들도 있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딱 봐도 기획부터 캐스팅, 편성까지 절대 순탄치 못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아, 한 작가······. 나도 그거 모르냐? 재밌다니까? 그런데 이거는 두 번째에 하면 안 돼? 입봉은 다른 스타일로 가고,”
차일남은 그나마 다른 길을 제시하기 위해 넌지시 운을 띄웠다.
그런데, 역시나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한유주의 얼굴이 굳어져 버렸다.
“저 그런 타협하기 싫어하는 거 잘 아시잖아요.”
“휴우······. 너를 어쩌면 좋냐.”
안다.
그게 문제다.
한유주도 이런 이야기를 고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게 대학 선배인 자신밖에 없으니 찾아온 것이다.
“한 작가. 알지? 이렇게 가면 또 지금까지처럼 흘러갈 거야.”
“······.”
“이렇게 좋은 스토리가 아깝지도 않냐? 우리가 좋으면 뭐 해. 윗선에서 트렌디하지 못하다고 까이고. 연기 잘하는 쟁쟁한 배우들한테 극본 넣어봤자 흥행 못 할 거 같다고 까이고. 결국 어떻게든 데뷔 한번 해보려는 얼굴 반반한 애들이 네 거 하겠다고 달려들 텐데. 그럼 어떻게 되겠어. 어?”
“망하겠죠. 지금처럼.”
한유주는 세상 우울한 얼굴로 나직하게 말했다.
“그렇지. 걔네는 연기력 없이 얼굴 믿고 달려든 건데. 네가 쓰는 건 어떠냐. 스토리에 감정선 잘 표현해야 하는데 그걸 해낼 연기력이 없잖아.”
“연출로 잘 어떻게 하면······.”
“한 작가. 작가의 의도랑 연출의 의도 표현할 수 있는 애들이 바로 내가 말한 연기 잘하는 애들이야. 알만한 사람이 왜 이래?”
“그럼 어떡해요, 저······.”
“답이 없다, 답이 없어.”
차일남 역시 막막한 현실에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극본은 정말 좋은데, 이걸 잘 표현할 인재를 데려오기가 힘드니.
뭐라도 하나 대박이 나야, 연기 잘하는 탑급 배우들이 하겠다고 달려들 텐데 한유주가 타협을 안 하니 악순환만 반복되었다.
“이번 거도 봐라. 스토리 좋아, 좋은데. 이걸 누가 연기하겠냐.”
게다가 이번 극본은 한술 더 떠서 어린 형제가 16화 내내 등장한다.
극본 자체는 단막극보다 내용도 깊어지고 재미도 있다.
그런데 조주연급인 이 아이들을 대체 누가 연기한단 말인가.
안 그래도 성인 배우들도 제대로 소화하는 배우를 못 찾는 마당에, 어린아이 두 명이라니.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남연수 있잖아요, 남연수!”
“···그래. 남연수 연기력이야 인정이지. 근데 걔 캐스팅이 쉽냐?”
“감독님이 있잖아요. 작년에 연수랑 작품 하면서 친해졌다고 하지 않았어요?”
“······후. 그래. 내가 백번 양보해서 연수 캐스팅했다 하자. 그럼 동생은? 연수보다 더 어린 배우여야 할 텐데.”
남연수는 정말 몇십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인 천재로 언급되는 8살 배우였다.
한유주가 가져온 대본 중 ‘형 역할’을 남연수가 기가 막히게 소화한다고 쳐도, 그 연기를 따라와 줄 어린 동생 역할 배우를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대한민국 땅덩어리가 이렇게 넓은데 있겠죠! 전 이번 극본 절대 포기 못 해요.”
안 된다, 안 된다 말만 하는 차일남의 모습에 결국 한 유주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니, 한 작가!”
“제가 죽어도 찾아올 테니까, 그때 다시 얘기하시죠. 아셨죠? 이거 버리시면 안 돼요?”
한유주는 자신이 쓴 극본을 품 안에 고이 안고 회의실을 나섰다.
“찾으면 되잖아, 찾으면. 왜 해보지도 않고 맨날 안 된다, 안······. 어?”
씩씩거리면서 엘리베이터를 찾아가던 한유주의 눈에 한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광화문 문화센터 ‘RUN’ 공연 KMB 임직원 특별 할인 안내문.]‘RUN이라면······. 주연이 어린아이들 아니었나?’
한유주는 바로 뒤를 돌아 자신이 나왔던 회의실로 되돌아갔다.
“차 피디님!”
“아이, 깜짝이야. 뭐야, 왜 돌아왔어?”
놀란 차일남이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물었다.
거기다 대고 한유주는 척 손을 내밀었다.
“임직원 카드 좀 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