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84
84화
“드디어 오늘이 왔구만.”
커다란 카메라 가방을 들고 자리에 앉은 기자가 북적북적한 장내를 돌아보며 말했다.
“헉, 저기 MAKE 사의 편집장 아니야?”
“이 공연이 화제는 화제인가 봐.”
웨스트엔드에서 규모가 큰 극장 중 하나인 이곳.
차례차례 모든 객석이 관객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연극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영국 웨스트엔드.
오늘 이곳에 공연을 올리는 이는 그 이름도 유명한 제시카 브라운이다.
그녀가 오늘 올리는 건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를 호령하는 ‘레인보우 픽처스’의 RUN 실사화 공연.
이미 세계 각지에서 현지화에 성공해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이 공연이 드디어 영국에 상륙하는 날이니, 화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저기 저 자……. 퀸즈 시어터 매니저 아니야?”
“저 자 뿐만 아닐걸, 오늘 웨스트엔드 극장에 소속되어 있는 관계자들이 아마 득실거리지 않을까.”
“하긴, 이 공연이라면 그럴 만도 하지.”
영국 공연이 확정되었을 때부터 화제였지만, 이번 공연은 조금 더 특별했다.
영국이 전 세계 현지화 투어를 하고 있는 RUN의 이번 시즌 마지막 나라이기도 했지만, 오늘 이 극장에 온갖 매스컴 기자들과 전문가들이 모여든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기대가 큰 상황에 동양인 남자아이가 주연으로 캐스팅된 것이다.
심지어 캐스팅된 한시우는 영국 나이로 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다.
오래된 역사를 가진 웨스트엔드인 만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견문은 넓고 다양하다.
파격적인 캐스팅이 이곳 웨스트엔드 역사에 없던 것은 아니지만, 한시우의 캐스팅은 단연 화제였다.
[올해 가장 주목받는 웨스트엔드의 기대작의 주연…… 동양의 다섯 살 아역 배우] [한국 RUN 흥행 신화를 이룩한 기대주, 영국에서의 성적은?] [연극의 성지 영국, 주연 자리를 동양의 작은 나라에게 내주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영국의 연극 언론뿐만 아니라 일반 언론에서도 한시우에게 주목하고 있었다.
많은 기자들이 우려와 걱정, 그리고 이 작은 주연에게 끝없는 호기심을 드러냈다.
자국 배우의 자리를 뺏겼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해, 비판적인 시각을 단단히 세운 이들도 적지 않았다.
“나는 제시카 브라운이 이번에는 실수한 거라고 봐.”
“하지만 원래 캐스팅된 아이가 도망간 상황이었다며?”
“그러니까. 급한 마음에 악수를 둔 거지.”
객석에 앉은 이들 사이에서도 한시우의 존재에 대한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았다.
“왜, 그래도 RUN 현지화 프로젝트를 맨 처음에 훌륭하게 이끈 주연 아니겠어?”
한 사람이 RUN의 한국 공연 흥행 성적을 콕 집어 언급했다.
그의 말마따나 한국에서의 성공으로 현지화 공연 프로젝트가 전 세계로 확장된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 말에도 주변인들은 고개를 내젓거나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한국과 영국의 공연 수준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잡혀.”
“한국 공연에 대해 아는 사람이 워낙 적으니.”
공연까지 남은 시간은 겨우 십분 남짓.
그 사이 객석에서는 한시우라는 다섯 살짜리 동양인 배우에 대한 의심과 억측, 그리고 미약한 기대가 넘실거렸다.
제시카 브라운의 무대에 오른다는 다섯 살짜리 동양인 남자아이를 아무런 편견 없이 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2000여 석의 관객석.
기대와 의심이 한데 섞인 눈빛으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무대를 보고 있었다.
“이야, 웨스트엔드 안 죽었네. 이런 파격적인 도전을 하다니 말이야.”
“너, 영국인들 귀에 안 들리도록 조심해. 오늘 여기 내로라하는 연극인들 많다고.”
“하지만 사실이잖아? 그리고 봐. 결과가 어떨지는 공연이 시작되어야 알겠지만, 일단 화제성으로는 성공했지.”
영국 출신이 아닌 이들은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본공연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다섯 살은 정말 놀라운걸.”
“레인보우 픽처스 실사화 연극에 최연소로 선 배우가 아마 여덟 살이던가?”
그리고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대화.
미국 억양이 물씬 묻어나는 영어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은 친근하게 제시카의 이름을 부르며 말을 이었다.
“제시카가 큰 결심을 한 거지.”
“도대체 어떤 점을 보고 무대에 올리자고 생각했을까. 제시카를 매료한 지점이 어딘지 오늘 알 수 있다면 좋으련만.”
“첫 공연에 그게 얼마나 보이려나. 너무 나이가 어려. 아직 조금 더 다듬어야 하지 않겠어? 무대에 적응도 해야 할 테고. 모국어가 영어도 아니잖아.”
전문가들로 보이는 이들의 대화가 심도 있게 이어졌다.
여기저기서 한시우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이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는 무리가 있었으니.
“방금 시우 이름 또 들리지 않았어?”
“조용히 좀 해봐. 나 지금 듣기 평가 중이야.”
“와, 누나가 이걸 다 알아듣는다고?”
바로 한시우의 가족들이었다.
오늘 아침 히드로 공항에 도착해 바로 달려온 한시우의 부친을 비롯해, 삼촌과 모친 역시 나란히 특별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왜 이래. 시우가 영어 배운 게 TV라고 했잖아? 그거 나랑 같이 본 거야.”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냐, 여보.”
“쉿, 방금 또 시우 이름이 나왔어.”
한시우의 어머니, 지연화는 조용히 하라며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그 모습에 두 남자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무대를 바라보았다.
한국 공연 보다 배는 넓어 보이는 무대.
눈에 익은 세트 같으면서도 묘하게 낯선 RUN의 무대 세트가 잔잔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연극 무대에 서본 지동욱은 한국에서 봤던 RUN의 무대를 떠올리며 경악하는 중이었다.
소극장도 아니고 저렇게 큰 무대를 홀로 채워야 하는 장면도 있는데, 그 압박감을 어린 조카가 감당할 수 있나 덜컥 걱정이 되었다.
‘연습하는 걸 보면 잘하긴 했지만 서도…….’
“다들 걱정 반 기대 반인 거 같네.”
“정말?”
한차례 영어 듣기 평가를 끝낸 지연화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말에 한시우의 아버지, 한태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RUN 공연을 본 건 한국에서 딱 한 번뿐.
그 외에는 어린 아들의 소식을 알음알음 전해 들은 것밖에 없기에 더욱 긴장이 되는 것 같았다.
연습을 잘한다더라,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더라.
직접 본 적은 없고 항상 남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만 들어왔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아들이 괜찮은지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다.
“우리 시우… 안 떨고 잘하겠지?”
“그럼요, 매형. 누나 닮아서 시우 강심장이에요.”
“나보다 더 하다니까.”
한태호의 긴장을 안 것인지, 지동욱과 지연화 남매가 걱정하지 말라고 그에게 말해주었다.
항상 아들의 곁에 있는 두 사람의 확신 어린 말에 한태호는 미약한 미소를 되찾았다.
두 사람은 항상 한시우가 얼마나 많이 노력하는지 알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렇지…?”
“네, 걱정 마세요.”
“누구 아들인데. 당연하지.”
세 가족이 서로를 다독이는 동안, 객석이 가득 찼다.
팟.
그리고, 극장 안의 모든 조명이 꺼졌다.
***
“Bravo-!”
모든 공연이 끝나고 극장이 떠나갈 듯한 박수와 환호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차례 조명이 꺼진 뒤, 밝아진 무대에는 배우들이 차례로 나와 커튼콜을 했다.
조연들의 인사가 끝나고, 닉슨 역을 맡은 고든이 환하게 웃으며 양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는 젠틀하게 무대 뒤편을 가리켰다.
그러자 오늘의 주역.
조나단 역을 맡은 한시우와 벨라 역을 맡은 에밀 리가 나란히 손을 잡고 무대로 나왔다.
와아아아!
휘익-!
두 사람의 등장에 객석은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Jonny! Perfect-! Excellent-!”
“Bella! Bravo!”
엄청난 고함소리와 함께, 두 사람을 향해 끝없는 감탄이 쏟아졌다.
기립 박수는 물론 여기저기서 주연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했다.
무대에 오른 한시우는 고든과 에밀리의 손을 잡고 다시 한번 객석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아낌없이 박수를 받은 배우들은 환한 미소와 함께 관객들 앞에서 퇴장했다.
커튼콜이 끝나고 객석은 기분 좋은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후우, 정말 멋진 공연이었어.”
“이봐, 아까 걱정하는 사람들은 모두 어디 갔지? 완벽한 조니를 보고 모두 꽁무니를 뺀 건가?”
“아니, 아니. 그보다 정말 한국에서 온 거 맞아? 영국에서 자란 애가 아니라?”
“그러니까 영국 억양을 제대로 살린 영어가 아주 환상적이던데!”
우려가 섞여 있던 관객들의 대화는 고양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어린 동양인 배우에 대한 의심이 무한 신뢰로 뒤바뀐 순간이었다.
“외양도 원작에서 튀어나온 것 같던걸! 너무 귀엽지 않아?”
“갈색 곱슬머리가 사랑스러웠지. 나는 이제 한시우의 조니가 원작 조나단보다 더 사실 같을 거야.”
아직도 공연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는 듯이 한시우의 외모에 대한 찬양도 끊이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이 작은 배우가 동양인이라는 사실은 잊은 듯했다.
“무엇보다 연기가 말이 안 되던걸. 정말 다섯 살이라고? 긴장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던걸?”
“무대 경험이 아주 많은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노련함이 엿보였어. 정말 말도 안 되는군. 다섯 살에게서 이런 감상을 느끼다니.”
“인정해야겠어. 제시카 브라운이 데려올 만하더라고.”
“저런 조니를 만났는데 다른 조니들이 눈에 찰 리가 있나. 이미 완성된 조니를 봐버렸는걸!”
전문가들도 하나같이 한시우의 실력을 보고 흥분해서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극장을 벗어나면서도 끝없이 분석을 곁들인 감상을 내뱉는 그들의 얼굴은 공연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밝았다.
“저거 잘했다는 소리 맞지?”
“응, 응! 끝내준대요. 어메이징, 판타스틱, 이런 말만 계속 들린다고. 와, 우리 시우가 영국에서도 이렇게 통한다고?”
조용히 다른 관객들의 대화를 듣던 한태호가 멍한 얼굴로 다른 식구들에게 물었다.
지동욱은 보람찬 얼굴로 무대를 돌아보며 감탄했다.
자신의 꿈을 접은 보람이 절로 느껴지게끔 조카는 날이 가면 갈수록 거대한 인물이 되어 가고 있었다.
“우리 아들이 이렇게 낯설게 느껴질 줄이야.”
“매형, 대사 얼마나 알아들었어요?”
“…그냥 대충 내용을 알아서 볼만 했지 뭐. 나도 영어 공부 좀 해야 할까 봐.”
같이 영국에 와주지 못해서 미안하기만 했는데, 자신이 없어도 이렇게 훌륭하게 공연을 마친 아들에 대한 대견함으로 한태호의 눈시울이 붉어지려 했다.
“후……. 정말 다행이야.”
그리고 모든 결과물을 지켜본 지연화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슥 훔쳤다.
세 사람의 뇌리에 마지막으로 환하게 웃던 한시우의 얼굴이 남아 있었다.
***
첫 공연 바로 다음 날.
웨스트엔드 거리의 사람들이 들고 있는 신문 구석에 작은 기사 하나가 실렸다.
[ 한국에서 온 작은 거인. 그가 웨스트앤드에 퍼트린 파장이 얼마나 커질지 기대가 된다. ]기사는 영국 RUN 공연에 대해 호평을 쏟아냈다.
거기에는 제시카 브라운이 두 번이나 택한 배우라고 한시우를 소개하고 있었다.
기사에는 한국에서 온 동양인 배우 한시우의 사진도 작게 담겼다.
갈색 곱슬머리 가발을 쓰고 환하게 웃고 있는 조니의 얼굴로.
그리고 이 기사는 앞으로 한시우가 웨스트엔드 거리에 퍼뜨릴 크나큰 파장의 시작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