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134
134. 브로커
각성자 특수부대 윤현식 중령이 지난번 전투 이후에 일어난 일을 설명했다.
“작전이 끝나고 나서 다들 네가 누군지 무척 알고 싶어 하더라.”
“그때 이미 아는 얼굴이 둘 있었어.”
“공략대 참가자 중에 그 두 명 빼고는 네 얼굴을 몰랐잖아. 이젠 다들 알게 됐지만. 돌아가자마자 비상을 걸고 너에 대해 알아봤겠지. 인상착의. 나랑 잘 아는 사이. 네 감지와 사격 스킬. 그리고 결정적으로 실력. 그럼 뭐 결론 금방 나오잖아? 코드네임 지옥부처.”
“그게 뭐 큰 비밀이라고. 난 이미 옛날에 제대했는데. 이번에 참관인으로 딱 한 번만 싸운 것도 다들 알잖아.”
“이번 참가자들이 다음 작전 때 너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하겠다고….”
“시끄러워. 한 번이라고.”
“네 실력을 직접 본 것하고 서류로 지옥부처 네 글자만 읽은 것하고는 느낌이 많이 다르겠지. 너 제대하고 시간도 오래 지났고. 어쨌든 다음 작전에도 너를 꼭 참관인으로 불러달라고 다들 부탁하더라.”
“안 해. 거기는 그런 방법으로 뚫릴 게이트가 아니야. 공략대 규모를 줄여야 해.”
“그럼 네가 작전 수립 단계부터 참가할래?”
“안 한다고.”
윤현식 중령이 주변을 슬쩍 훑어본 후에 목소리를 낮췄다.
“이제부터 본론이다. 각국 첩보기관에서 지옥부처에 관한 정보 갱신을 위해 움직였어. 그런데 그놈들이 새 정보를 어디서 얻을까? 정보를 손에 넣을 권한이 있으면서 뇌물이 통하는 놈을 통해 알아봤겠지.”
“이홍국 같은?”
“맞아. 그놈도 너에 대한 최신 정보를 요구하더라. 느낌이 싸해서 주기 싫었지만 어쩌겠냐? 국회 게이트 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이 요구하면 줘야 하는 게 법인데. 물론 우리도 아는 게 없어서 네가 이번 작전에서 보여준 모습만 전달했지.”
“형은 좀 알잖아.”
“나만 알지 부대에선 몰라.”
“강릉 비행기지 건은?”
“부대에선 모르니까 그건 당연히 뺐지. 흐흐. 잘했지?”
“그거 하나 잘했네. 그래서?”
“그런데 말이야. 우리가 넘긴 정보가 너무 적으니까 이홍국이 이번 작전 자체에 대해 요구하더라. 그러다 그 양방향 게이트 공략 작전에 대한 정보도 넘어갔다. 이번 연구의 개요는 물론이고, 실험 장비를 놔두고 왔다는 것까지. 법이 그래서 안 줄 수가 없더라.”
“이홍국이 직접 게이트를 노릴 리는 없지?”
“없지. 대신에 게이트 저쪽을 자원이 넘치는 신대륙으로 생각하는 놈들이 있지. 에너지 기업, 자원 기업, 제약회사 같은 곳들. 이홍국은 원래 직접 움직이는 놈이 아니야. 그놈은 돈을 받고 국가 중요 정보를 팔아먹는 놈이지.”
“그중에 어디야?”
“전부 다. 각국 첩보기관이 원한 건 지옥부처에 대한 최신 정보이고, 기업들이 원한 건 게이트 작전 정보야. 우리도 이홍국에게 넘긴 정보가 돌아다닌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욕 많이 했다. 그래서 이홍국을 파봤더니 그 정보를 브로커에게 홀라당 팔아먹었더라. 난 그 브로커가 그걸 각 기업에 팔았다고 본다.”
“이홍국과 거래하던 브로커니까 백상어 클랜에 대해서도 알겠네. 그럼 브로커가 청부를 넣은 거네. 날 이용해서 그 게이트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캐내 팔먹으려고. 난 민간인이니까 각성자 특수부대보다 만만해 보였나 봐?”
“우리가 넘겨준 자료만 봤을 테니까 아마 그렇겠지?”
“그 브로커 이름.”
“이주호. 그런데 전투 스킬을 각성한 부하가 몇 놈 있다던데.”
“상관없어.”
“그래. 물론 너한테는 상관없겠지. 이주호에 대한 정보를 줄게. 주긴 주는데.”
윤현식이 진지하게 말했다.
“정우야. 이홍국은 안돼. 그놈이 국가 정보를 팔아먹는 개새끼이긴 한데, 지금 국회에 그런 놈 많다. 그놈들을 다 쏠 순 없잖아. 그리고 국회 게이트 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이 총에 맞으면 일이 너무 커진다. 조사하러 움직일 곳이 한두 곳이 아니야. 당연히 너부터 의심받는다.”
“그냥 놔두라고?”
“널 직접 노린 놈은 아니잖아. 아마 그 정보가 어디 쓰일지 신경도 안 썼을 거야. 그리고 잘만 이용하면 쓸모가 많은 놈이야. 네가 이번 일을 어떤 식으로든 처리하고 나면, 내가 그걸 가지고 이용할 방법을 찾을게. 물론 입도 닥치게 하고.”
“그놈하고는 다른 일로 또 얽힐 것 같은데?”
저쪽 세계 이홍국은 해킹과 납치 등등으로 엮여 있다.
“그럼 그때 쏴. 지금은 리스크가 너무 커.”
나쁜 방법은 아니다. 이쪽 이홍국을 이용해서 저쪽 이홍국의 약점을 찾을 수도 있다.
“알았어.”
“고맙다.”
“내가 이 정보 받아간 건 비밀이야.”
“물론이지. 그러니까 너도 다음 우리 작전에 참관인….”
“이 형이 진짜. 그건 안 한다고.”
그날 밤에 이선화가 서정우에게 자랑했다.
“이번 오디션은 진짜 느낌이 좋다니까?”
“그래. 그렇게 느낌만 좋다가 똑 떨어진 게 한두 번이 아니지.”
“어디서 초를 쳐!”
서정우가 말을 돌렸다.
“그런데 너 혹시 각성할 것 같은 느낌 안 드냐?”
그걸 물어본 이유는, 저쪽 세계의 이선화가 호텔에서 제대로 된 전투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만약 각성에 경험치가 필요한 거라면, 저쪽에서 테러리스트 두목까지 잡았으니까 꽤 찼을 텐데.’
“오빠 지금 나 놀리냐?”
“아니구나.”
옆에서 남수정이 눈치 없이 설명했다.
“선화 언니처럼 재능이 뛰어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아직 각성하지 못했다면, 앞으로 각성할 확률은 극단적으로 낮대요. 차라리 게으른 사람이 갑자기 각성할 확률이 조금 더 높아요. 이유는 모르지만요. 그러니까 아저씨가 그런 말 한 건 언니를 놀린 게 맞아요.”
서정우는 그가 세운 가설로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저쪽 세계의 이선화가 아쉬울 게 없는 상태라서 선화가 각성을 못 하듯이, 비슷한 상황의 다른 사람들도 그런 이유겠지. 저쪽에서 그 노력과 재능으로 각성 조건을 채운 사람들은 이쪽에서 이미 다 각성했고, 이선화처럼 아쉬울 것도 부러울 것도 없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각성 조건을 채우기 어렵겠지.’
이선화가 남수정에게 말했다.
“오빠는 말로 놀리는데 넌 아주 칼로 후벼 파는구나?”
“아니요. 전 그냥 데이터를….”
“그 데이터 나도 알거든!”
* * *
이쪽 세계의 건물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5층을 넘겨 짓지 않는다. 고층으로 지었다가 전투에 휘말려 무너지면 건물주가 파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고층건물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20세기에 지어지고 그동안 벌어진 게이트 전투에 휘말리지 않았거나, 휘말렸다 해도 안 무너지고 잘 넘어간 건물들은 아직 남아 있다.
그 고층건물 중에는 호텔로 사용되는 곳도 있다.
전망 좋은 고층 객실은 수요가 꽤 있다. 손님이 볼 때는 어차피 거기 머무는 동안만 안 무너지면 되기 때문이다.
30층 높이의 호텔 27층 넓은 객실에서 브로커 이주호가 자료를 확인했다.
“백상어 클랜이 이런 작은 일 하나도 처리하지 못하다니.”
정보 분석을 담당하는 부하가 말했다.
“그 동네까지 가서 이선화를 납치하려 한 게 실수인 것 같습니다.”
“깡패 출신인 놈들이라 그런지 전문적이지 못해. 당연히 멀리 나왔을 때를 노려야지 거길 왜 가? 아니면 이름값 높은 클랜 마스터 전창수가 직접 나서든가.”
“이선화가 오늘 시내에 나타났습니다.
“그래? 일이 쉬워지겠네. 백상어 클랜이 이번엔 제대로 하겠지.”
“그런데 경호팀이 붙었습니다.”
이준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경호팀? 혹시 그놈이 직접?”
“아닙니다. 남자 하나에 여자 둘인데, 그놈은 없었습니다.”
“그래? 그럼 할만하겠군.”
“셋 다 전투 스킬 각성자라고 합니다.”
“거짓말이겠지. 그렇게 말하고 다녀야 함부로 못 건드리니까.”
“아무래도 진짜인 것 같습니다.”
“흐음. 그래?”
백상어 클랜의 힘은 각성자 세 명짜리 경호팀보다 훨씬 강하다. 그렇다고 해서 대놓고 경호팀을 공격할 수는 없다. 전투 스킬 각성자가 세 명이면 쉽게 당하지도 않는다.
이쪽 세계의 대한민국은 최소한의 법체계가 살아있는 나라이고, 서울은 그 체계가 좀 더 잘 돌아가는 곳이다. 무장 경찰의 출동도 빠르다.
이주호가 커피잔을 들었다. 그 잔에 담긴 건 진짜 원두로 만든 커피다. 그는 창문 앞으로 걸어가서 바깥에 보이는 낮은 건물들을 보며 커피를 마셨다. 고층건물이 많이 무너져서 전망 하나는 좋았다.
“진짜배기 경호팀이라면 서울에서는 어렵지. 이선화를 의정부 북쪽으로 유인할 방법을 찾아서 백상어 클랜에 전해줘. 그 새끼들은 총만 쏠 줄 알지 머리를 못 쓰니까.”
“의정부로 오디션을 보러 오라고 속이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래. 그런 거. 거기다 함정 미리 파놓고 기다리면 되겠지.”
그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역시 돈이 좋아. 진짜 커피 맛….”
그가 서 있는 27층의 대형 유리창 앞에 갑자기 서정우가 나타났다.
이주호는 화들짝 놀랐다.
“엇?”
서정우는 옥상에서 밧줄을 타고 27층까지 단숨에 내려왔다. 그는 이주호를 확인하자마자 씩 웃었다.
“찾았다.”
그가 권총 방아쇠를 당겼다. 철갑탄이 유리창에 꽂혔다. 유리 표면에 거미줄 같은 금이 쫙 퍼졌다. 하지만 뚫리지는 않았다. 총알이 유리 위에 그대로 박혔다.
“이거 방탄유리네?”
이주호가 뒤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킬러다!”
그의 부하들이 일제히 총을 잡았다.
서정우가 유리창 밖에서 총으로 유리를 톡톡 두드린 후에 손가락을 까닥였다. 이주호가 여유를 찾고 유리로 다가갔다. 그의 부하들도 좌우에서 유리 너머의 서정우를 총으로 겨누며 다가왔다.
이주호가 부하 네 명을 양옆에 세워두고, 유리에 바짝 붙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이게 누구야? 어떻게 생겼는지 말로만 들었는데 실물을 여기서 보네? 그런데 어쩐다? 이건 방탄유리인데. 권총으로는 참 많이 쏴야 할 거야. 그런데 말이야.”
그가 좌우의 부하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넌 혼자 줄에 매달려 있고 내 부하들은 네 명이 널 조준하고 있지. 내 부하들이 다 같이 연사로 갈기면 방탄유리라도 금방 뚫려. 네가 그 줄 잡고 위로 올라가도 우리가 뚫린 구멍으로 총 내밀고 위로 쏘면 돼. 그러니까 넌 죽었어. 이 새끼야!”
서정우가 히죽 웃으며 물었다.
“백상어 클랜에 의뢰한 게 너냐?”
“그것까지 알아냈나? 전투력이 강하다는 건 알지만 정보력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선화는 왜 노렸냐? 네가 본 자료에는 없었을 텐데.”
“이선화? 예쁘더라?”
서정우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넌 역시 죽어야겠다.”
“네 목숨이나 신경 쓰지? 살고 싶으면 총 버리고 손들어. 너한테 시킬 일이 있으니까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준다.”
“야. 이거 선물이다.”
“선물이라니?”
서정우가 총알이 박힌 부분에 손바닥을 붙였다가 뗐다. 유리에 작은 네모난 상자가 달라붙었다. 상자 위에서 LED 칩이 붉은빛을 뿌렸다.
“표정 보니까 이게 뭔지 모르나 봐? 용산에서 재미있는 물건을 많이 팔더라. 강철 총알에 잘 달라붙는 자석도 팔고.”
그는 저쪽 세계의 용산에서 무선으로 제어되는 장치를 여러 개 샀다. 그중에는 이쪽 세계 폭탄의 기폭장치와 연결하면 원격으로 폭발시킬 수 있는 것도 있었다.
폭탄은 이쪽 세계에서 그가 만든 수제품이지만, 원격 제어 장치는 저쪽 세계의 최신 반도체 기술로 만든 것이다. 그 원격 제어 장치의 크기는 손톱만큼 작았다. 폭탄도 손바닥 안에 들어갈 정도로 작아서 겉모습만 보면 뭔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서정우가 줄을 잡고 몸을 위로 튕겼다. 그의 몸이 방탄유리 위쪽으로 빠르게 올라갔다.
이주호는 뒤늦게 그 상자가 뭔지 깨달았다. 그가 뒤로 몸을 날리며 외쳤다.
“폭탄이다!”
알아차리는 게 너무 늦었다. 곧바로 소형 폭탄이 터졌다.
폭탄은 작고 폭발력도 약했지만, 이미 총알이 박혀 금이 간 방탄유리가 버틸 정도로 약하지는 않았다. 이중 유리 안쪽에 채워져 있는 합성수지도 폭탄의 열과 충격에 찢겨 나갔다.
방탄유리가 박살 났다. 유리에 바짝 붙어 있던 브로커 조직원들은 폭발에 휘말렸다.
“으아악!”
위로 올라갔던 서정우가 줄을 타고 아래로 휙 떨어지듯 내려왔다. 그는 정확히 구멍 앞까지 내려와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허리에 걸린 줄을 분리했다.
이주호의 부하들은 여기저기 나자빠져 있었다. 호텔 문도 부서진 상태였다.
서정우는 브로커 이주호부터 찾았다. 보이지 않았다.
‘복도?’
오른쪽에 쓰러진 놈이 왼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오른손의 권총을 들었다.
“이 새….”
서정우가 먼저 방아쇠를 당겼다. 적의 몸에 총알 세 발이 박혔다.
“컥!”
왼쪽 구석에 처박힌 놈은 쓰러진 채로 총부터 들었다. 서정우의 3차원 공간 분석 스킬에 그놈의 시선이 잡혔다.
그는 왼쪽은 보지도 않고 총을 갈겼다. 그러면서 앞에서 일어나는 놈을 밀어 찼다.
“컥!”
밀어 찬 놈에게도 총알을 박았다. 다시 오른쪽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며 복도로 나갔다.
브로커 이주호는 비틀거리면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이주호의 앞쪽에 잘 닦인 금속 장식물이 있었다. 거기 서정우의 모습이 비쳤다.
이주호는 장식품에 비친 서정우의 모습을 보고 뒤쪽 어디를 쏘면 되는지 알아냈다. 그는 비틀거리는 척하면서 허리와 왼팔 사이에 권총을 끼워 넣고 방아쇠를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