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133
133. 오디션
버스정류장에서 서정우가 이선화에게 말했다.
“잘하고 와라.”
이선화가 잔소리를 했다.
“오빠나 조심해서 다녀. 오늘은 아직 쿨타임 남았으니까 위험한 곳은 가지 말고.”
이선화는 서정우에게 특별한 텔레포트 스킬이 있다는 건 안다. 그 스킬로 차원을 넘어갈 수 있다는 것만 모른다.
텔레포트는 원래 탈출 스킬로 쓸 수 있다.
“난 오늘은 정보 수집만 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라.”
“위험한 건 무조건 내일 해.”
“잔소리 그만하고 가.”
* * *
가칭 ‘게이트 조사대’는 게이트의 비밀을 파헤치는 팀을 다룬 영화다.
그런 영화는 이미 많이 나왔다. 제목이 ‘게이트 조사대’인 영화가 이미 있어서, 거기에 단어 몇 개를 더 붙여 제목을 짓는 경우가 많았다. 이 영화도 그럴 예정이다.
게이트를 주제로 하는 영화는 이미 많지만 그래도 계속 새로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게이트 너머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하기 때문에 그런 영화를 선호한다. 게다가 소형 하급 게이트의 외곽에서 실제 몬스터와 직접 싸우는 장면을 집어넣으면 제작비도 줄일 수 있다.
사람들도 선호하고 제작비도 적게 들기 때문에, 게이트 관련 영화는 평균 수준의 재미만 줘도 손익분기점은 넘긴다.
현재 가칭 ‘게이트 조사대’는 오디션으로 배우를 모으는 중이다.
오디션장에 먼저 온 배우 중 한 명이 박현아에게 말했다.
“오늘 이선화도 온대.”
박현아는 조연 중에서는 제법 잘 나가는 배우다. 그녀가 코웃음을 쳤다.
“걔는 내가 왔다는 걸 모르나 봐?”
박현아는 기동력 향상 스킬을 각성했다. 그 스킬도 전투 스킬이지만 총을 더 잘 쏘게 해주지는 않는다. 대신에 회피 능력이 좋아서 전투 생존율이 높고, 불리할 때는 후퇴도 빠르게 할 수 있다.
영화판에서는 화려하게 움직일 수 있는 점 때문에 그 스킬 각성자를 꽤 선호했다.
박현아가 말했다.
“이선화가 노리는 배역은 뻔하지. 또 나하고 겹치겠네. 오늘도 물 먹고 돌아갈 텐데 뭐하러 온대?”
“그러게 말이야.”
이선화는 박현아와 같은 배역을 놓고 경쟁하다 마지막에 밀린 경우가 많았다.
박현아는 일부러 다른 배우 앞에서 이선화를 비웃었다. 만만하게 봐서가 아니다. 경쟁 상대로 보기 때문이다.
모든 경쟁에서 박현아가 이긴 건 아니다. 이선화가 압도적인 연기력을 보이는 바람에, 영화판에서 선호하는 스킬을 가진 박현아가 물먹은 경우가 가끔 있다. 그건 스킬을 빼고 보면 완패라는 뜻이다.
그래서 박현아는 겉으로는 이선화를 우습게 보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열등감을 느꼈다.
“걔는 그냥 시집이나 가지 왜 이 바닥에 자꾸 나타나는 거야? 영화판이 비각성자가 있을 곳이냐고.”
“아. 저기 이선화다.”
박현아가 돌아섰다.
“어디야? 내가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보여…. 혼자가 아니네?”
이선화가 앞에서 걸어왔다. 당당하게 걸어오는 그 모습에 사람들이 시선을 빼앗겼다.
그녀의 바로 옆과 뒤에서 세 사람이 호위하듯 따라왔다. 그녀의 오른쪽에서 걷고 있는 서소라는 원거리 감시 스킬로 사람들의 위치와 표정을 파악했다.
서소라가 이선화에게 말했다.
“언니. 저기 언니에게 적대적인 눈빛…. 아.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어요.”
이선화가 박현아를 보았다.
“쟤? 무시해. 원래 그런 애야.”
* * *
제작자가 오디션 장소로 걸어가며 투덜댔다.
“이 감독님. 우리 영화에 비각성자가 말이 됩니까? 몬스터 점령지로 데려가지 못하면 나중에 특수효과로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데. 현실감도 떨어지고.”
“대신에 연기와 외모가 압도적입니다.”
“감독님은 20세기부터 영화를 한 분이라서 연기력이 중요하겠지만, 요즘 세상은 그게 아니잖습니까? 비각성자를 쓰면 제작비 차이가 얼마나 많이 나는데요.”
“주연으로 쓰자는 것도 아니고 조연 아닙니까? 출연 장면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감독이 이선화를 발견하고 손을 들었다.
“어. 선화야.”
이선화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독님. 안녕하세요!”
이 감독은 전에도 그가 찍은 영화에 이선화를 출연시켰다.
“그래. 오늘 잘….”
그가 멈칫했다. 이선화의 뒤에 서 있는 세 사람을 발견했다.
“어…. 이분들은?”
“제 경호팀이요.”
“너한테 경호팀이 있었어?”
그녀가 별것 아닌 것처럼 말했다.
“최근에 버스정류장에서 절 공격한 놈들이 있었어요.”
감독은 깜짝 놀랐다.
“뭐? 다친 데는?”
“전 안 다쳤어요. 그놈들이 총에 맞았죠.”
“그, 그래? 다행이다.”
“어쨌든 그 사건 때문에 얘들을 불렀어요. 누가 또 그렇게 덤비면 쏴버리려고요.”
제작자는 원래 이선화를 만나면 충고라도 할 생각이었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감독이 이선화에게 물었다.
“그냥 아는 동생들을 모은 거야? 아니면….”
“얘들 전부 전투 스킬 각성자예요.”
감독이 콧김을 뿜었다.
“그래애?”
그가 얼른 서소라에게 물었다.
“연기는 좀 해봤습니까?”
“전혀요.”
“안 해봤어도 괜찮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배우면….”
서소라가 단호하게 말했다.
“관심 없어요.”
“그, 그래요?”
그가 이번에는 남수정에게 물었다.
“우리 영화에 나올 생각이 있으면 오늘 바로 테스트할 수 있는데.”
남수정은 연기에 관심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동생 치료가 더 중요하다.
게다가 그녀가 배우의 꿈을 가진 건 이선화의 연기에 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선화의 경호원으로 이곳에 와 있다.
“아직은 안 돼요. 당분간은 해야 할 일이 있어요.”
“먼저 테스트만이라도 좀….”
“죄송해요.”
옆에서 정현수가 끼어들었다.
“감독님. 저는 관심 많습니다.”
감독이 정현수의 얼굴을 본 후에 다시 서소라와 남수정에게 말했다.
“두 분 다 그 미모에 전투 스킬 각성자니까, 연기만 좀 하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배역 잡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지금부터라도 연기를 배우면….”
정현수가 다시 끼어들었다.
“감독님. 저는 관심 많다니까요? 저도 전투 스킬 각성자예요.”
감독이 정현수의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어…. 우리 영화에 악당 역할은 이미 지원자가 많은데….”
“예? 왜 악당 역할을….”
“몬스터는 진짜를 쓸…. 아, 아닙니다.”
감독과 제작자는 오디션 준비를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제작자가 물었다.
“감독님. 이선화 씨 말입니다. 정체가 뭔데 전투 스킬 각성자를 셋이나 데리고 다닙니까? 부자입니까?”
“가난한 배우입니다만?”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닙니다. 전부터 선화에게 질 나쁜 수작을 부리던 놈들은 다 총을 맞았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예?”
“소문입니다. 소문. 어쨌든 요즘은 그런 놈이 없었는데, 습격당했다니 의외네요.”
제작자가 어깨를 움츠리며 물었다.
“언제부터 그런 일이….”
“언제더라. 선화가 여의도 방어 전투에서 방송국에 고립됐다가 구출된 후부터인가?”
이선화가 박현아에게 물었다.
“왜? 나한테 무슨 할 말 있어?”
“어머. 무슨 말?”
“네가 날 적대적인 눈빛으로 보는 바람에 우리 애들이 총을 잡았잖아.”
“오호호호. 아니야. 반가워서 본 거야. 우리 오늘도 평화롭게 경쟁하자!”
오디션은 순서대로 진행됐다. 박현아는 먼저 대본에 있는 그대로 연기했다. 그 후에는 기동력 향상 스킬을 이용해 벽을 타고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박현아가 몇 가지 기술을 더 보여주고 나간 후에 제작자가 말했다.
“이야아. 박현아 씨 찍을 때는 특수효과는 전혀 안 들어가도 되겠네요.”
작가도 말했다.
“스킬만 좋고 연기는 못하는 친구도 많은데, 저만하면 연기력도 괜찮네요.”
감독도 동의했다.
“그래서 찾는 곳이 많습니다.”
다음 차례가 이선화였다.
그녀는 미리 제공된 대본의 한 부분을 연기했다. 주인공을 짝사랑하는 여자가 슬픈 눈으로 손을 내밀며 말했다.
“같이 가자.”
조감독이 상대역의 대사를 그냥 읽었다.
“먼저 가라. 저놈들만 잡고 곧 따라갈 테니까.”
“이 바보가. 안 올 거잖아. 못 오잖아.”
그들이 연기하는 건 영화 초반에 몬스터에게 다리를 다친 남자 주인공이 특수부대 팀을 살리기 위해 혼자 남기로 하는 장면이다. 남자 주인공은 사격 스킬 각성자로 설정되어 있었다.
팀과 구출 대상인 VIP 여주인공을 살려서 빠져나가려면 여자 조연의 감지 스킬이 필요했다. 그녀까지 남으면 높은 확률로 모두 죽는다.
이선화는 짝사랑하는 남자를 남겨두고 떠날 수밖에 없는 여자의 심정을 절절히 연기했다.
제작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입을 열면 목소리가 떨릴 것 같았다.
작가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녀는 그 연기 후에 전투 스킬 없이 어떤 동작까지 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방을 나갔다.
제작자가 그때서야 참았던 숨을 뱉었다.
“후우. 감독님이 이래서 이선화를 포기하지 못했군요.”
“이런 대접을 받을 배우가 아닌데, 세상이 이렇게 변해서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이선화에게 저 역할을 맡기고 싶습니다. 영화가 확 살아날 겁니다.”
작가도 찬성했다.
“이선화 씨가 연기한다면 대본을 수정할 수 있어요. 더 절절하게, 더 가슴 아프게. 아. 진짜 좋은 작품 나올 거예요. 아예 여주인공을 이선화 씨로….”
제작자가 말렸다.
“이선화 씨를 주연으로 하면 이 영화 엎어집니다. 제작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요.”
감독이 말했다.
“그럼 지금 배역은 찬성하시는 겁니까?”
“그것도 예산이 늘어나는 문제 때문에…. 아시다시피 제 돈이 아니잖습니까? 투자자들에게 이야기는 해보겠습니다.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 * *
이선화는 감독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의 표정이 꽤 밝았다.
통화를 마친 후에 남수정이 물었다.
“오디션 통과한 거예요?”
“아니. 그게 그렇게 쉽게 될 리가 있어?”
“왜요? 언니 연기력이면 주연은 당연한 거 아니에요?”
“주연은 액션이 많아서 비각성자가 하면 제작비가 감당이 안 돼. 조연 역할이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
“언니 표정 밝았는데.”
이선화가 방긋 웃었다.
“며칠 뒤에 결과를 알려주시겠대. 이 정도만 돼도 되게 상황이 좋은 거야. 보통은 그 자리에서 떨어지는데, 이번에는 며칠 동안 좋은 꿈 꾸면서 기대할 수 있잖아.”
* * *
서정우는 이쪽 세계 국회의원 이홍국의 의도를 알아내기 위해 움직였다.
그가 평행차원을 오간다는 걸 이홍국이 알 리는 없다. 다른 원인이 있어야 한다.
‘백상어 클랜은 내가 누군지 알고 선화를 납치하려 했어. 날 협박해서 뭔가 시키고 싶은 거겠지. 청부한 놈은 역시 이홍국일까? 그런데 가만히 있다가 하필 이 시기에 일을 벌여?’
그는 최근에 정치권에서 관심 가질 만한 일을 하긴 했다.
서정우가 각성자 특수부대 윤현식 중령을 만났다. 윤현식은 엄청나게 반가워했다.
“정우야! 다음 작전도 같이 가기로 결정했구나? 그래서 나 만나자고 한 거지?”
“형이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상황이 아닐 텐데?”
“어? 왜?”
서정우는 이선화가 습격당한 일을 이야기했다.
윤현식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야. 이선화면, 네가 옛날에 여의도 방어 전투에서 구출한 그 배우?”
“어. 기억하네?
“어떻게 잊냐? 완전 거지꼴에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에 까만 세로줄이 잔뜩 그어져 있었잖아. 그런데도 내가 태어나서 본 여자 중에 제일 예뻤다. 잊을 수가 없지.”
“형수님이 그 말 들으면 뭐라고 할까?”
“어…. 우리 와이프도 양심이 있으면 인정하지 않을까?”
“그대로 전해줄까?”
“살려줘.”
“본론으로 돌아가자. 그놈들이 선화를 납치한 후에 날 협박해서 뭔가 시키려 한 거 같아.”
“그러니까 이선화와 네가 협박이 가능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는 거냐?”
“이 형이 자꾸 요점을 피해가는데? 이렇게 나올 거야?”
“미안.”
“지난번 그 전투 이후에 이홍국이 나에 대해 알게 되었다면, 하필 그 직후에 선화를 납치하려 한 게 설명이 돼.”
윤현식이 멈칫했다.
“그런데 너 이홍국이 얽혀있다는 건 어떻게 알아냈냐?”
“몇 놈 조졌어.”
저쪽 세계에서 조졌다.
“살살 했냐?”
“안 죽였어.”
“야. 내가 방금 중요한 걸 깨달았다. 이선화 씨하고 이홍국 둘 다 이 씨인데 혹시 뭔가 가문의 비밀 같은 건….”
“어디 대대로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 집안하고 선화를 같이 묶어?”
“그치? 아니겠지?”
“자꾸 말 돌리는 걸 보면 뭔가 아는구나?”
윤현식이 머리를 긁었다.
“나도 짚이는 게 있긴 해. 그거면 좀 곤란한데.”
“설명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