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223
223. 발작
젊은 남자는 퀵서비스 기사에게 받은 작은 상자를 들고 조금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는 1톤 트럭으로 걸어갔다. 트럭 짐칸에는 작은 금속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의 안은 비어 있었다.
“여기 넣으면 되나?”
그가 받은 고객 요구사항은 퀵서비스로 받은 종이상자를 그 금속상자에 넣으라는 것이다.
“나야 뭐 시키는 대로 하고 돈만 받으면 되니까.”
남자가 떠난 후에 그 트럭의 운전자가 돌아왔다.
“다음 스케줄이 어디더라.”
운전자가 트럭을 몰고 다른 지역사무실로 이동했다. 그가 사무실에 올라간 후에, 또 다른 남자가 걸어 왔다.
“이 차 맞네. 짐칸에 이 상자를 가져가라고 했지?”
* * *
해가 떨어져 어두운 밤에 해커 김수철이 공원을 걸었다. 왼쪽 다리의 통증 때문에 걸을 때 몸의 중심이 흔들렸다.
‘아프다.’
진통제를 먹고 살살 걷는데도 다리가 아팠다.
그는 왼쪽 다리에 만성 통증을 달고 산다. 평소에는 일반적인 아세트아미노펜 계열 진통제만 복용해도 그 통증이 많이 줄어든다. 이렇게 걸을 때는 좀 아프지만, 진통제를 먹고 집에 있으면 참을만하다. 문제는 통증 발작이 일어날 때다. 그건 크게 긴장하면 생기기도 하지만, 예고 없이 갑자기 찾아올 때도 있다.
그때는 다리가 잘려나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 그 고통을 줄이려면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 약이 떨어졌다.
그 진통제는 아무 병원에서나 처방해주지도 않는다.
‘위조할까?’
신분증을 위조하면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을 수 있다.
그런데 그 마약성 진통제는 특별히 관리되는 약품이다. 신분증을 위조 하고 병원도 골라서 가면 한 번쯤은 처방받을 수 있지만, 금방 들통난다.
‘발작이 일어난 지 꽤 돼서 언제 또 아플지 몰라. 안 되겠다. 위조해서라도 약을 타야겠다.’
공원 한쪽에 작은 금속상자가 놓여 있었다.
그 상자의 금속은 내부에서 발생하는 전파를 차단한다. 돈뭉치에 위치 추적장치가 숨겨져 있어도, 여기 넣어두면 추적이 불가능해진다.
그가 그 상자를 손으로 잡았다.
“돈은 생겼으니까, 이제 신분증만….”
갑자기 서정우가 뒤쪽에서 말을 걸었다.
“수철아.”
해커 김수철은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누, 누구냐!”
서정우가 씩 웃었다.
“맞네. 수철이.”
김수철이 눈을 크게 떴다. 여기서 볼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한 사람이 있었다.
“헉! 처, 철가면?”
서정우는 철가면을 쓰고 이곳에 나타났다.
그가 얼굴을 철가면으로 가린 건 여기에 김수철을 체포하러 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김수철은 당황했다.
“추적이 불가능했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서정우가 간단히 설명했다.
“너 퀵으로 보낸 물건 이리저리 돌렸지? 추적 피하려고.”
“미행은 없었어. 내 교란은 완벽했다고!”
김수철은 물건의 이동을 감시할 수 있는 위치의 CCTV를 몇 개 해킹했다. 일부 CCTV는 보안이 너무 약 해서 간단히 통제권을 훔칠 수 있다.
그는 그 CCTV로 미행하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했다.
“내가 뭐하러 돈 상자를 쫓아다니겠냐?”
“뭐?”
“난 처음부터 여기서 그 상자가 오기를 기다렸다. 상자가 아무리 돌고 돌고 돌아다녀도 결국 마지막엔 이 동네로 올 테니까.”
“말도 안돼! 여길 어떻게 알고!”
해커 김도윤은 오랫동안 동료 김수철을 조사했다. 그러다 김수철이 몸을 숨길 비밀 아지트가 어딘가에 있다는 걸 눈치챘다. 그 동네가 어딘 지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후보지는 몇 곳 찾아냈다.
서정우는 그 후보지가 어디인지 김도윤에게 들었다. 그는 거기에 저쪽 세계 김도윤을 통해 알아낸 정보를 더해 비교했다.
그랬더니 이 동네가 나왔다.
확신은 없었다.
만약 여기가 상자의 목적지가 아니라면, 이번에는 서정우의 과거를 조사하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했다. 김 수철을 찾는 건 다음 의뢰에서 다시 시도하면 된다.
다행히 첫 번째 시도에서 김수철을 찾아냈다.
서정우가 말했다.
“널 찾는 것 정도는 나에겐 쉬운 일이야. 아주 쉬웠지. 내가 좀 대단 하거든.”
김수철은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현재 다리 상태로는 될 수가 없다. 상대가 일반인이면 반항이라도 해보겠는데, 철가면은 전적이 워낙 화려하다.
소리를 질러 사람을 부르기도 어렵다. 김수철은 지금 숨어 지내는 중이다.
김수철은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 날 왜 찾아….”
서정우가 해커 김수철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칼치파와 사거리파가 저지른 납치 사건 때다.
일단 떡밥을 던졌다.
“칼치 파.”
김수철이 침을 꼴깍 삼켰다.
“여, 역시 칼치파를 날려버린 건 철가면이었어.”
서정우가 칼치파의 건물에 불을 지를 때 사용한 건 저쪽 세계의 강화 소이탄이다. 그 강력한 화염이 증거를 모두 태워버려, 누가 칼치파를 쓸어버렸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건물이 불타기 전에 총격전 소리가 들렸다는 것만 알려졌다.
그런데 철가면도 총을 쓴다. 그래서 철가면이 범인이라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서정우가 철가면을 쓴 채로 인정했다.
“그래. 내가 그랬지.”
김수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럼 도대체 왜….”
“왜?”
“내 이름을 공개한 거냐! 도대체 왜! 내가 너한테 뭘 어쨌다고!”
서정우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난 그러지 않았다.”
“네가 내 이름을 공개했잖아. 칼치 파 놈들이 내 이름을 알아냈는데, 네가 그놈들을 쓸어버릴 때 내 이름도 알아냈잖아. 그걸 그냥 재미로, 날 괴롭히려고 퍼트렸잖아!”
서정우가 김수철에게 쓱 다가갔다.
항의하던 김수철이 당장 겁을 집어 먹고 시선을 피했다.
“아, 아니. 난 그냥 너무 억울해서….”
“난 그러지 않았다.”
김수철은 믿지 않았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단 말이다.”
서정우는 한 놈 더 안다.
‘김도윤. 김수철이 사라진 후에, 김도윤이 김수철의 고객까지 손에 넣었어. 청부 가격도 5천만 원으로 올리고. 그게 다 김도윤의 설계라면?’
그럴듯했다.
‘그놈 진짜 개놈이네.’
“너의 이름을 아는 놈이 더 있을텐데?”
“아니야. 내가 이 일을 한다는 걸 아는 사람은….”
“김도윤은 알잖아.”
김수철이 멈칫했다.
“서, 설마 도윤이 형이?”
“이젠 형 아니지. 널 제거하려고 네 이름까지 퍼트렸는데.”
“그럴 리가 없어!”
“난 칼치파를 쓸어버린 후에 그 건물 자체를 태웠다. 네 이름은 그때는 못 들었다. 나중에 소문이 파다하게 나고 나서 들었지.”
“네가 소문냈다던데!”
“남에게 들은 말을 잘 믿는 놈이군. 그러니까 김도윤에게 뒤통수나 맞지.”
“그, 그게 무슨….”
“쓸어버린 게 나인 줄 모르게 하려고 건물까지 태운 내가, 단지 재미로 거기서 얻은 단서를 흘려? 네 이름 하나 퍼트린다고 나한테 무슨 이익이 된다고?”
“그건….”
“그런데 김도윤은 네 이름이 공개 되고 나서 이익을 많이 봤잖아. 뉴스 봤지? 네가 몰락하니까 김도윤이 이제 건당 오천씩 받은 거. 네가 없으니까 그 고객들을 놓고 경쟁할 필요도 없어. 가격을 올려도 고객들이 그냥 돈을 내나 봐. 김도윤이 서정우에게 잡히지만 않았으면 떼돈을 벌있겠지.”
“겨우 그런 돈 때문에 도윤이 형이….”
“겨우 그 돈 때문에 너도 해킹을 하고 김도윤도 해킹을 하잖아. 이렇게 내 돈도 받았고. 그런 놈 입에서 어떻게 겨우라는 소리가 나오냐?”
“하, 하지만.”
“김도윤이 칼치파가 망한 걸 기회로 너의 이름을 흘렸다. 경쟁자를 제거하고 독식하려고.”
김수철의 눈이 흔들렸다. 김도윤을 믿었기 때문에 의심하지 않던 것들이, 다른 눈으로 보자마자 우르르 모여서 하나의 그림으로 조합됐다. 김수철이 탄식처럼 말했다.
“거의 이십 년이나 알았는데.”
“그랬겠지.”
“병원해킹할 때, 요즘 일이 없다고 해서 일감도 나눠줬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김수철의 이름은 거의 노출되지 않았다.
서정우가 말했다.
“그때 해킹한 병원 자료와 칼치파와 연결된 사거리파의 납치 피해자들이 겹친다는 걸, 김도윤이 눈치했어. 그놈은 널 제거할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지. 이게 인과응보인가?”
김수철이 변명했다.
“나, 난 설마 사람을 납치할 줄은 몰랐어!”
“그 명단을 범죄에 쓸 거란 건 알았잖아.”
김수철이 고개를 푹 숙였다. 좋은 일에 쓰려고 해킹을 청부할 리 없다는 건 알고 있다.
서정우가 설명했다.
“칼치파가 전멸할 때 건물이 불탔고, 남은 잔챙이도 모조리 체포됐다. 네 이름이 칼치파가 망할 때 흘러나갔다고 소문내도, 아무도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됐지.”
“그렇게 소문이 났어. 맞아.”
일단 소문이 나면 진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김수철이 그런 대형 사건에 연루돼 이름이 노출된 후에는, 그에게 해킹을 청부하는 고객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김도윤이 그렇게 널 매장시키고 고객을 새로 모집했다. 원래 네 고객도 넘어가고, 새 고객도 붙었지. 경쟁자가 없어지니까 가격도 왕창 올렸어.”
2선 의원 김진석의 보좌관이 김도윤에게 청부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도 그때다.
그래서 김도윤은 서정우에게 잡혔을 때, 처음에는 김수철이 진실을 알아내고 복수했다고 착각했다. 서정우가 말했다.
“확실해. 네 이름을 유출한 건 김도윤이야.”
김수철은 충격을 받은 상태로 서 있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 그런데 날 왜 찾은 거지? 날 경찰에게 넘기려고?”
서정우가 손으로 얼굴에 쓴 철가면을 톡톡 건드렸다.
“나도 쫓기는 처지인데 그럴 리가.”
“그, 그럼?”
서정우가 대답 대신 다른 걸 물었다.
“그런데 넌 왜 돈도 없이 도망쳤냐?”
김수철이 망설이다 털어놓았다.
“내가 의뢰한 고객 중에, 내 이름이 공개되니까 날 죽이려는 놈이 있다. 나를 통해서 해킹한 걸 감추려는 것 같은데….”
“그래서 급히 도망치느라 모아놓은 돈도 못 챙긴 거네. 은행 대신에 현금이나 금괴로 숨겨놨으면 그것도 다 빼앗겼을 거고.”
“맞다.”
“그놈이 누군지는 알고?”
“모르겠다. 난 고객 정보는 안 갖고 있으니까.”
서정우는 짐작가는 곳이 하나 있다.
‘장석준이 노출됐다는 이유만으로 제거하려던 놈들.’
장석준은 선상파티를 열었던 마약 밀수업자다.
‘그놈들이라면 노출된 김수철을 없애려고 하고도 남지.’
이번에도 그놈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알아볼 필요는 있다.
서정우는 김수철을 체포하려고 찾은 게 아니다.
잔뜩 부려먹으려고 찾았다.
“그럼 널 제거하려는 놈들을 조사해. 네가 그놈들을 찾아내면 처리할 테니까.”
김수철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저, 정말 네가 처리해준다고?”
“내가 왜 직접 처리해? 경찰에 신고해야지.”
“아….”
“너 바보냐?”
“아, 아니다.”
김수철이 금속상자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네가 준 이천만 원이면 당분간 활동 자금과 약값이 될 거다.”
서정우가 인상을 살짝 썼다. 김수철이 건강해야 더 많이 부려먹을 수 있다.
“약값? 너 어디 아프냐?”
김수철이 왼쪽 다리를 가리켰다.
“예전에 사고를 당한 후부터 왼쪽 다리가 아프다. 지금도 좀 아프지만 이 정도는 일반 진통제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가끔 통증 발작이 일어나. 그때는 일반 진통제는 안 들어서 굉장히 강력한 진통제를 써야 하는데….”
해커 김도윤은 김수철에게 심각한 통증 문제가 있다고 추측했다.
‘김도윤이 김수철의 뒷조사를 참 많이 했구나.’
“마약성 진통제가 필요하겠네? 그거 그냥 아무한테나 막 주냐? 너 숨어 지낸다며?”
“환자의 신분증을 위조할 때마다 한 번씩은 탈 수 있다.”
“그것도 자주 하면 병원에서 진료를 받다가 잡히겠지?”
“다른 방법이 없다. 그 발작은 참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치료 방법은?”
“원인을 모르는데 치료 방법이 있을 리가….”
김수철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졌다. 그가 그 자리에 넘어지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다리의 통증이 점점심해졌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잠시 후에는 다리를 자르는 것처럼 고통스러워진다.
“아, 안돼. 하필 지금…. 컥!”
이 통증 발작은 지금처럼 지나치게 긴장하는 게 원인이 될 때가 있다. 서정우가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김수철의 다리를 손가락으로 콕콕 찔러보며 물었다.
“왜? 아프냐?”
“꺼꺽!”
손가락으로 찔리기만 했는데도 다리에 칼이라도 맞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 지금 병원에 실려 가면 신분이 노출된다.
김수철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끄으으읍!”
서정우가 그 꼴을 보다가 주머니에서 휴대용 약물 케이스를 꺼내 열며 생각했다.
“진짜 아프겠다.”
‘돈 굳었네.’
그가 1회용 진통제 주사기를 집어 김수철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야. 이게 뭔지 알아? 이거 진짜 강한 진통제야. 이거 되게 비싸다?”
저쪽 세계의 상처치료 약물에는 몬스터 추출물이 들어간다. 그 효과는 이쪽 세계보다 훨씬 강력하다.
이 전투용 진통제는 할인 행사 단골 상품이라 값도 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