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57
57. 탐색
서정우는 저쪽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안다. 특별한 정보도 대가만 지불하면 손에 넣을 방법이 있다.
그런데 이쪽 세계는 아직 익숙하지가 않다. 인터넷 검색은 그럭저럭 하지만, 이쪽 전산 시스템을 해킹하는 능력은 당연히 없다.
저쪽 세계의 서소라는 여러 방면의 정보 수집 능력이 뛰어나지만, 이쪽 세계의 서소라는 연예인 정보 수집 능력만 뛰어나다.
대신에 그는 경찰이다. 그것도 이번 사건에 발끝을 담근 형사다.
‘역시 형사 안 그만두길 잘했네.’
그는 다른 경찰서에서 정리한 자료를 받아 분석했다.
서정우의 진짜 목표는 사리를 훔쳐간 도둑놈이 아니다. 바로 그 사리다. 그런데 그걸 손에 넣으려면 도둑놈부터 찾아야 한다.
‘이쪽 세계의 방식으로 그놈을 찾으면 늦어. 그 도난사건 담당 경찰도 아직 못 찾은 놈이니까.’
그에게는 저쪽 세계의 방식이 있다. 경찰과 같은 자료를 가지고, 경찰은 쓸 수 없는 방법을 쓸 수 있다.
서정우가 받은 자료에 작은 범죄조직의 이름이 나왔다.
‘오소리파.’
오소리파는 작은 규모의 폭력조직이다. 돈 되는 일은 다 하는 건 다른 조직과 마찬가지지만, 장물 처분 쪽 일도 한다.
그리고 범인과 접점이 있다.
서정우가 결정했다.
‘이놈들을 털자.’
경찰의 방식으로 그놈들을 털려는 게 아니다. 그건 이미 다른 경찰이 시도했다.
‘내 방식으로.’
서정우가 경찰서 건물을 나섰다. 그런데 그곳에서 얼굴을 커다란 선글라스로 가리고 모자까지 쓴 젊은 여자와 마주쳤다.
“음?”
이선화였다. 아무리 선글라스로 가렸어도 그가 그녀를 못 알아볼 리는 없다.
그녀가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며 웃었다.
“어머. 서정우 형사님?”
“경찰서에 일이 있나 봅니다?”
“지나가다 서 형사님 얼굴이라도 보려고 들렀는데, 어디 가시나 봐요?”
서정우와 20세기부터 인연이 있던 사람은 21세기에 차원이 둘로 나뉘어도 여전히 그가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쪽 세계의 서소라는 서정우가 20세기부터 알던 바로 그 친동생이고, 쌍둥이 박하연과 박다연도 박철우의 또 다른 친딸이다.
그런데 이선화는 아니다.
서소라나 쌍둥이와는 다르게, 그는 저쪽 세계의 이선화를 여의도 방어전에서 처음 만났다. 그때는 21세기였다.
‘이 아가씨는 내가 아는 선화가 아니야. 다른 이선화야.’
그건 안다.
그런데 똑같은 모습을 한 이선화가 저쪽 세계에서 저주에 당해 쓰러졌다. 창백하던 그녀의 얼굴이 생각났다.
반면에 지금 눈앞의 이선화는 얼굴 피부가 뽀얗게 보일 정도로 건강했다. 옷도 좋아 보였다. 게다가 팬들이 못 알아보게 하려고 선글라스와 모자까지 쓰고 나타났다.
‘선화는 길에서 팬 한 명 만났다고 자랑까지 했는데.’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의 상황을 보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아아.”
이선화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왜 날 보면서 한숨을 쉬어요?”
싫어서 그러는 거라면 이선화도 기분이 나쁠 텐데,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왜 날 보면서 안쓰러운 표정을 지어요? 나 이선화예요. 예쁘고, 인기 많고, 돈도 많고, 팬도 많은 톱스타 이선화. 나한테 그런 표정 짓는 거 되게 이상한데.”
“톱스타인 거 압니다.”
‘처음엔 다 똑같은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까 예쁜 것만 똑같네.’
“서 형사님. 어디 가시냐니까요?”
“사건 조사하러 갑니다.”
이선화가 활짝 웃으며 손뼉을 쳤다.
“어머. 잘됐다. 제 차 타고 가요.”
“차?”
이선화가 주차장을 가리켰다. 저번에 탔던 스포츠카와는 다른 승용차가 서 있었다. 그런데 그 차는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국산 중형차였다.
‘비싼 차만 탈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알뜰…….’
이선화가 말했다.
“새로 한 대 뽑았어요.”
“예?”
“필요할 것 같아서요.”
서정우가 생각했다.
‘그럼 이제 차가 네 대네. 선화는 오토바이도 한 대 없는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톱스타 이선화는 돈이 많다. 돈 많은 톱스타가 국산 중형차를 탈 수는 있지만, 이선화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왜 저 차를 산 겁니까?”
“웅. 오늘 이런 일이 생길까 봐? 형사가 외제 스포츠카 타고 다니면 남들 보기 이상하잖아요.”
그녀는 지난번에 스포츠카를 더 쓰라고 했을 때 서정우가 거절한 이유가 거기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얼른 국산 중형차를 한 대 샀다.
서정우가 차를 슬쩍 본 후에 손을 내밀었다.
“키 주시죠.”
이선화가 방긋 웃었다.
‘역시 형사가 외제 스포츠카 타는 게 부담스러워서였나 봐. 그럼 그렇지. 날 피해서일 리가 없잖아.’
* * *
서정우가 차를 몰았다.
이선화는 조수석에 앉아서 위쪽 손잡이를 꽉 잡았다. 그녀의 얼굴은 조금 창백했다.
“우, 운전 되게 잘 하시……. 꺅!”
서정우의 운전은 과격했다.
속도위반을 한 건 아닌데, 코너를 돌거나 차를 세울 때 보통 사람과 브레이크를 밟는 시점이 달랐다.
이선화는 자기도 모르게 조수석 바닥을 발로 꽉 눌렀다. 그녀 기준으로는 브레이크를 밟을 시점이 한참 지났는데도 차의 속도가 줄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정우는 운전을 몬스터와 싸우는 전쟁터에서 익혔다.
물론 그도 부드럽게, 그리고 천천히 차를 몰 줄은 안다.
그런데 지금은 성물을 찾는 중이다. 시간은 아직 사흘 이상 남아 있지만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전쟁터에서 쓰는 전술 기동 방식으로 차를 몰았다.
사격 스킬 덕분에 동체 시력이 좋고 반사신경도 빨라서 차를 그렇게 몰아도 사고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는 이선화의 비명을 듣고 나서야 실수를 깨달았다.
‘아. 여기서는 이러면 안 되지. 진정하고, 차분하게 작전을 진행하자.’
그는 운전 방식을 다른 차들처럼 부드럽게 바꾸었다.
그때서야 이선화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휴우. 서 형사님. 혹시 카레이싱도 하세요?”
“아니요.”
“작년에 예능 찍으면서 카레이서가 모는 차를 탔을 때가 딱 이런 기분이었는데. 아니지. 그때보다 더한가?”
서정우가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도착했습니다. 차에서 기다려요.”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
“마음대로.”
서정우는 사리가 보관되어 있던 절을 턴 도둑 소상현의 집을 조사했다.
복도식 아파트의 문은 잠겨있었다. 그는 벨을 누르고 안쪽 반응을 확인했다.
감지 스킬은 살기를 감지하는 스킬이지만, 보조 효과 덕분에 신경만 좀 쓰면 인기척을 잘 잡아낸다. 그런데 집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벨 소리를 듣고 당황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아. 바닥을 밟는 소리도, 옷이 스치는 소리도. 거친 숨소리도. 예상대로군.’
소상현이 이 집에 없을 거라는 건 예상했다.
현관 바닥의 먼지도 손으로 한 번 훑었다. 몬스터를 찾던 감으로 바닥을 조사해 봤지만 결론은 그대로였다.
‘역시 여긴 안 왔어.’
그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이선화가 쭈그리고 앉아서 서정우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뭘 봐요?”
“조사하시는 그 모습이요. 연기할 때 참고하려고요.”
서정우가 아파트를 나왔다.
그는 처음부터 범인이 이곳에 없다고 예상했다. 그런데도 일부러 여기를 찾아왔다. 남들처럼 수사하는 척이라도 해야 의심을 받지 않는다. 따라온다는 이선화도 그래서 떨어뜨리지 않고 데려왔다.
‘내가 이 동네 위주로 조사했다는 걸 말해줄 훌륭한 증인이 되겠지.’
이제부터 가야 할 곳이 진짜 목적지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선화를 데려갈 수 없다.
서정우가 이선화를 보내려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선화는 그가 그녀를 보내려 한다는 걸 눈치챘다. 그렇다고 그냥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가 얼른 제안했다.
“밥 먹어요! 밥!”
“밥?”
“아직 밥도 못 먹었어요. 배고파요.”
서정우가 생각해보니, 그도 아직 밥을 못 먹었다.
‘먹어야 싸우지.’
굶으면 힘이 빠지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전투 스킬이 배까지 채워주진 않는다.
‘저쪽 세계로 돌아가려면 내일이 되어야 해. 그때까지 굶으면서 싸울 순 없어.’
“밥만 먹고 각자 볼일 보러 갑시다.”
이선화가 활짝 웃었다.
“네!”
‘드디어 정우 씨하고 밥을 먹네. 이렇게 하나씩 하자. 서두를 필요 없어. 어차피 나보다 예쁜 년은 없으니까.’
* * *
이선화는 모자와 선글라스를 쓴 채로 편의점 안쪽 창가 간이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서정우가 그녀의 앞에 컵라면과 김밥을 놓았다.
당황한 그녀가 물었다.
“이게 뭐예요?”
“내가 좀 바빠서.”
이선화가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며 도도하게 말했다.
“훗. 이게 서민들이 먹는다는 컵라면과 김밥이라는 건가요?”
서정우가 피식 웃었다.
“라면을 처음 보는 척하긴. 좋아하면서.”
이선화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 저쪽 세계의 이선화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 어릴 때 라면 진짜 좋아했는데. 라면 먹고 싶다.
‘선화가 저주에서 벗어나면 같이 먹게 라면도 좀 사 갈까?’
김밥도 괜히 산 건 아니다. 그것도 저쪽 세계의 이선화가 옛날에 좋아했다.
– 소풍엔 역시 김밥이지!
이쪽 세계의 이선화가 나무젓가락을 쪼개며 말했다.
“나에 대해 너무 잘 아는 거 아니에요? 어떻게 내 측근만 아는 식성까지 알아요?”
스토커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서 형사님 수사 능력이 엄청난 건 알고 있지만, 이런 것까지 알아낼 줄이야. 나한테 관심 많은가 봐요?”
그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나한테 관심이 많으면서 왜 이렇게 튕기지? 내가 톱스타라서 부담스러워서 그런가?’
“어머. 이런 소심쟁이.”
서정우가 말했다.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 라면이나 먹어요.”
두 사람은 편의점에서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 밖으로 나왔다.
바로 옆에 금은방이 있었다.
서정우가 금은방을 가만히 보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이선화는 그가 사건 조사 때문에 들어가는 줄 알고 따라갔다.
금은방에서 서정우가 주인에게 물었다.
“속에 작은 물건을 넣을 수 있는 형태의 목걸이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금은방 주인이 여러 개의 목걸이를 보여주었다.
서정우가 이선화에게 물었다.
“어떤 목걸이가 좋아 보여요?”
‘핑크 좋아하는 취향도 그대로인 걸 보면, 목걸이 취향도 비슷하겠지.’
이선화는 살짝 당황했다.
‘이 금은방에서 선물을 사주려고? 여긴 좋은 게 없는데.’
당황한 시간은 짧았다. 그녀는 바로 납득했다.
‘하긴. 공무원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내가 이해해야지.’
그녀는 그에게 선물을 받는다는 생각에 신나서 목걸이 하나를 골랐다.
“이런 디자인을 좋아해요.”
“그렇군요.”
서정우는 그 목걸이를 사고 나서 금은방을 나갔다.
이선화는 잔뜩 기대하면서 따라갔다.
‘그냥 주나? 아니면 목에 걸어주나? 형사라 그런지 갑자기 진도를 훅 나가네?’
서정우가 그녀를 차 있는 곳까지 데려간 후에 말했다.
“이선화 씨와 같이 가는 건 여기까지. 이제부터 갈 곳에는 못 데려갑니다.”
이선화는 살짝 당황했다.
“네? 왜요?”
“수사 기밀입니다.”
“아. 네. 그건 알겠는데요.”
‘목걸이를 왜 안 주지?’
이유 하나가 금방 생각났다.
‘아! 뭔가 넣을 수 있는 목걸이를 샀으니까, 그 안에 다른 선물을 또 넣어주려나 보다.’
“네. 수사하시느라 바쁘시겠죠. 제가 태워다 드릴게요.”
“안 됩니다.”
서정우는 바로 돌아서 걸어갔다.
이선화는 그가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다가 도도하게 웃었다.
“훗.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그녀는 차에 타자마자 천장을 손바닥으로 마구 두드리며 다리를 흔들었다.
“이히힛! 목걸이에 뭘 넣어주려는 걸까? 좋은 걸까? 형사 월급에 설마 보석은 아니겠지? 그럼 뭐지? 꺄아! 엄청 기대되잖아!”
* * *
서정우는 오소리파를 찾아갔다.
“여긴가.”
오소리파는 낡은 3층 건물의 제일 위층을 썼다. 서정우가 계단 올라갔다.
3층의 문은 흔히 쓰는 철문이었다. 그는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일어났다.
“어떻게 오셨…… 어? 이 새끼 얼굴을 가렸네?”
서정우는 얼굴에 손수건을 두르고 오소리파를 찾아왔다.
다른 두 명도 일어났다. 한 명은 구석에 세워둔 쇠파이프 쪽으로 슬쩍 움직였다.
그가 얼굴을 가리고 나타났는데도 오소리파는 공격하지 않았다. 그들이 신중해서가 아니다.
서정우가 그들을 보며 경찰 서류에 나온 내용을 생각했다.
‘사채와 장물 거래가 본업인 놈들.’
장물을 팔러 온 도둑놈 중에는 얼굴을 공개하고 싶어 하지 않는 놈도 있다. 그런 고객을 다짜고짜 두들겨 패면 물건 확보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오소리파는 서정우가 손님인지 아닌지부터 파악하려고 했다.
두목이 인상을 살짝 쓰며 물었다.
“돈 쓰러 온 분은 아닌 것 같고, 물건 때문에 오셨나? 그런데 우리는 얼굴 안 보여주면 거래 안 하는데.”
서정우가 칼치파를 쓸어버릴 때 썼던 전투 마스크가 아니라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건, 이곳에 정보를 캐러 왔지 이놈들을 죽이려고 온 게 아니라서다.
“사람 찾으러 왔다.”
“사람 찾는 일은 우리 일이 아닌데? 물론 돈만 맞으면 할 수도 있고.”
“소상현 지금 어디 있냐?”
오소리파 두목이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입술에 침을 바른 후에 허리를 살짝 숙이며 물었다.
“혹시 형사 나리? 이미 다른 분이 왔다 가셨는데 어디서 나오셨는지?”
“형사가 얼굴 가리고 오는 거 봤냐?”
두목이 당장 허리를 펴며 욕을 했다.
“그럼 넌 뭐 하는 새끼인데 감히 혼자서 여길 찾아와!”
“그걸 알면 넌 죽는다.”
“이 미친 새끼가! 야! 저 새끼 일단 조져!”
제일 먼저 일어났던 놈부터 서정우에게 달려들었다. 덩치는 그놈이 셋 중에서 제일 컸다.
“우워어!”
서정우가 기다란 다리를 앞으로 쭉 뻗었다. 발뒤꿈치가 덩치의 얼굴에 정통으로 꽂혔다.
“케에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