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Succession Characteristics RAW novel - Chapter 24
이능 계승잔데 특성이 있다 24화
고명고 대피소 오상배 소장과 이야기를 끝낸 기성이 나오자 그의 형제들은 곧 한풍 대피소로 길을 잡고 나섰다.
유성은 배웅 나온 오상배 소장과 박용민 경감에게 대놓고 은혜를 부탁한다는 말을 하였다.
시선은 기성을 향해 바라보며.
한풍가의 형제들 사이에 불화가 있다는 걸 광고하는 건가 싶어 은성은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큰형보단 자신에게 먼저 다가온 작은형을 그간 편하게 여겼지만 그 생각이 바뀌었다.
은성은 자신만 기분이 상했나 싶어 기성과 미성을 보았다.
큰형이야 워낙 포커페이스라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미성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 역시 자신처럼 이 상황을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걸.
기성과 유성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감정을 눈치챈 오상배 소장은 생선가게를 노리는 고양이처럼 눈빛이 변했고, 박용민 경감은 이 상황을 당혹스러워했다.
같은 상황의 상반된 반응을 통해 오상배라는 인간에 대한 은성의 내적 평가는 또다시 하락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오상배는 기성에겐 공손하지만 사무적인 느낌으로 대하는 반면, 유성에겐 친근감을 드러냈다.
‘큰형이나 내겐 먹히지 않으니까 작은형에게 줄을 대려는 건가?’
오상배 역시 한 대피소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었지만, 어디 한풍 대피소에 비할까.
둘을 비교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다.
오상배도 이를 알기에 한풍이란 간판을 달고 있는 저들 형제에게 저자세를 보였던 것이다.
기성이나 미성은 이를 눈치로 알아차렸지만 개입하지 않고 모른 척하기로 했다.
반면 유성은 오상배 소장이 자신의 말 한마디에도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자 그제야 기분이 풀린 듯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본인은 아닌 척했지만 손금처럼 훤히 들여다보였다.
‘이래서 아버지가 작은형에게 중책을 맡기지 않았던 건가?’
지금까지 은성은 작은형이 공식적인 지위를 내켜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 줄 알았다.
이제 보니 아니었다.
또한 은성은 이번 일을 계기로 가족과의 관계에 있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이 문제는 시간을 갖고 좀 더 숙고하기로 했다.
* * *
어색한 분위기로 복귀한 한풍가의 네 형제들은 그나마 부모님 앞에서는 그와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눈치 못 챌 김정수가 아니다.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다 큰 자식들 문제에 개입해 봐야 편애로 비칠 수 있기에.
똑똑.
“예.”
“시간 있어?”
은성을 방문한 이는 그의 누나 미성이었다.
누나의 방문은 조금 의외였다.
“누나가 내 방엔 무슨 일이야?”
“한잔할래?”
뒤춤에서 양주병을 꺼내 흔드는 미성이었다.
은성은 자신의 방에 있는 안주거리를 챙겨 함께 테라스로 향했다.
테라스 한쪽엔 두 개의 의자와 테이블이 있었기에 가볍게 한잔하기엔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오빠들의 대립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
“솔직히 말하면 조금 놀랐어.”
“작은오빠가 큰오빠에게 예전부터 열등감이 있었어. 중학교 땐 엄청 심했지.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두 사람이 독립하면서 상황은 개선됐어.”
잠시 말을 쉰 미성이 입술을 축였다.
특유의 훈연 향이 있는 블렌디드 위스키는 평소 미성이 즐기는 술이었다.
은성 역시 손에 쥔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목 넘김과 향이 꽤 괜찮아 술병을 새삼 응시했다.
“마음에 들어?”
“뭐가?”
“술.”
“나쁘지 않네.”
“몇 병 갖다 줘?”
“많이 챙겼나 보네.”
“전처럼 쉽게 구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좀 챙겨왔지. 내 방이랑 저택 지하 창고에.”
“술꾼이었네.”
“술꾼은 아니고 즐기는 수준이야.”
“그게 술꾼 아닌가?”
누나와 단둘이 술자리를 가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색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애호가!”
“하하, 그래 애호가라고 할게. 그럼 누난 어때? 큰형이나 작은형과의 관계?”
“큰오빠랑은 나이도 다섯 살이나 차이가 나고, 딱히 접점도 없다 보니 솔직히 데면데면해. 나나 큰오빠 모두 살가운 성격은 아니니까. 그나마 작은오빠의 경우는 살가운 구석이 있긴 한데 부모님이나 나, 그리고 널 제외한 큰오빠랑은 나보다 더 데면데면한 사이야. 그래도 네가 뒤늦게 정신…… 이건 실수, 아무튼 네 덕분에 형제들 사이가 많이 부드러워졌어. 하지만 언젠가는 서로 반발할 거라고 생각하긴 했어. 은혜라는 그 아이 문제가 아니더라도 언제고 터질 일이었어.”
“그랬었군. 그럼 부모님도 아셔?”
“응. 그래도 둘 다 생각이 없지 않으니까 부모님 앞에선 티 내진 않더라. 그런다고 모를 두 분이 아니지만, 두 분 입장에서도 큰오빠와 작은오빠 사이에 개입하는 건 쉽지 않아. 둘 다 성인이니까. 내가 오빠들 보면서 비혼주의를 결심했지. 호호.”
“나만 집안의 골칫거리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네. 그런데 정말 결혼은 생각이 없어?”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되겠다 싶은 사람이 나타나면 마음이 바뀔지 모르겠지만 아직 그런 사람이 없으니까. 그건 운명에 맡길래. 그런 넌 어때? 연애 같은 거 하고 싶지 않아? 아직 한 번도 못 해봤잖아?”
무겁고 가벼운 주제를 넘나들며 나눈 대화에서 은성은 그간 자신이 알지 못했던 가족들이 안고 있던 문제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를 알게 되었지만 그 역시 손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다들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이 있는 성인들이기 때문이다.
이건 누구든 개입하기 힘든 영역이다.
“누나.”
“응?”
“누나는 어때?”
“나? 무슨 의미야?”
“큰형과야, 아니면 작은형과야?”
“그 중간? 내 생각에 그쯤이지 싶다.”
“그나마 다행이네.”
“그런 넌, 너 자신이 어떤 유형의 인간이라고 생각해?”
미성의 반격에 은성은 고개를 돌렸다.
맞은편 유리창에 비친 자신을 보며 은성은 생각에 잠겼다.
사람을 한 가지 유형으로 단정하는 것이 맞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동전이려나.”
“뭐?”
“못 들었으면 됐어. 그보다 술 다 떨어졌네.”
“술 더?”
“그래.”
“알았어. 그런데 너 내일도 나갈 거야?”
“사냥?”
“응.”
“놀면 뭐 해. 레벨업해야지.”
“힘들지 않아?”
“나야 거들 뿐 사냥은 소환수가 하는데 힘들 게 뭐가 있겠어.”
“그리 보이긴 하더라. 그래도 밖은 전쟁터나 다름없으니까 항상 몸조심해. 그럼 한 병 더 가져올게.”
미성이 콧노래까지 부르며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술꾼 맞네.
* * *
은성을 제외한 1군은 여전히 승급하지 못했다.
당장은 일반인도 작정하면 잡을 수 있는 좀비뿐이지만 그게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장담할 수 없으니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 부대장님.”
“예.”
“내일부터 1군 단독으로 움직이세요. 좀비들이 한 장소에 집중된 것도 아니고 현재 뿔뿔이 흩어져 소규모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니 굳이 1군에서 지원하지 않더라도 2군 단독으로 퀘스트를 수행할 수 있을 겁니다.”
“안 그래도 한상우 대장과 그 문제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역시 대장님과 같은 생각이더군요.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일반인들입니다. 특히 남성들 중에 퀘스트를 하고 싶어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일반인 중에서 각성자들이 나오면서 각성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이 커진 상태다.
공동체 입장에서도 각성자는 반가운 전력이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문제는 전문적으로 훈련한 2군도 아닌 일반인을 현장에 투입했다가 자칫 인명사고가 발생할 경우였다.
그때는 대피소의 분위기가 크게 가라앉을 것이다.
세계가 이 지경이 되었지만 이를 온몸으로 실감한 사람들은 드물다.
한풍 대피소 한정해서.
그래서일까? 마음만 앞서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한 사람들을 통제하고 이끄는 것이 바로 김정수 소장과 김기성 부소장의 일이었다.
아니, 김기성 부소장의 업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김정수 소장은 장남 기성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넘겨준 뒤 스스로 뒷방 늙은이를 자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성을 통해 젊은이 못지않은 체력을 가진 이상 일선에 복귀해도 될 텐데 아직은 그럴 의향이 없어 보였다.
“그 문제는 상부에서 지원 요청이 들어오면 그때 고민하도록 하죠. 그러니 당장은 대원들의 승급에 집중하세요.”
“예.”
“오늘은 일전에 말한 오봉로를 거쳐 군포1동까지 정찰하겠습니다. 1군은 오전동까지 진출해 보세요.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물러나시고요.”
“여유가 되면 그 너머로도 정찰하겠습니다.”
“그건 현장에 맡기겠습니다.”
정순철 부대장에게 일과를 지시한 은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본부를 나섰다.
조장들과 대원들의 경례를 받으며 성문을 나섰다.
한풍 대피소를 둘러싼 성벽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이동한 은성은 거기서 방황하는 좀비 세 마리를 발견했다.
궁병들이 놈들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발이 빠른 궁병이 놈들의 사체로 갔다가 곧 복귀했다. 그리곤 은성에게 손을 내밀었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본 궁병의 손에는 스탯석이 쥐어져 있었다.
고작 3마리를 잡았는데 벌써 나오다니.
‘오늘…… 대박 조짐인가?’
* * *
전날 승아에게 약속한 것이 있었기에 은성은 경로를 고수중 대피소를 경유하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이긴 해도 그리 많이 돌아가는 길도 아니었기에.
경로 중간에 교회 건물이 하나 있다.
전날 이곳에서 300마리의 좀비를 만났었다.
하지만 오늘은 서너 마리의 좀비만 그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영혼 없는 육체는 언제 봐도 이질감이 든다.
굳이 접근할 필요도 없었다.
궁병들이 손을 놀리자 말끔히 정리됐다.
이번에도 스탯석이 떨어지나 싶어 기대했지만 결과는 역시 실망.
‘아니지, 기대한 내가 도둑놈 심보긴 하지.’
이동 속도를 높인 은성은 고명고 대피소에 도착했다.
그 안에서 한 무리의 남자들이 나오고 있어 마주쳤다.
“은성 씨.”
“박 경감님이군요. 어디 가시는 길입니까?”
“어제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도 퀘스트를 해볼 생각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박용민 경감의 일행이 눈을 빛내며 은성을 보았다.
은성에 관한 소문이 널리 퍼져있었기에 내심 그가 버스를 제공했으면 하는 바람을 그 눈에 담고 있었다.
은성은 이를 외면했다.
“소규모 무리를 노린다면 위험하진 않을 겁니다. 대신 주변 경계를 확실히 하셔야 합니다.”
은성의 도움을 내심 바랐던 사람들은 그 말에 실망을 드러냈다.
“물론입니다. 참, 오늘도 한풍에선 사냥을 나옵니까?”
“예.”
“필드에서 만날 수도 있겠군요.”
고명고 대피소는 한풍의 산하 대피소로 봐야 한다.
공식적인 발표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곳 대피소 운영진은 물론 일반인들까지 이미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하다 보니 다들 은성의 도움을 기대했던 것이다.
“조심하세요.”
“알겠습니다.”
박용민 경감은 일행을 이끌고 오전천로 방향으로 이동했다.
은성도 곧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방문한 사실을 보고 받은 오상배 소장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귀찮게.
그런데 오상배 소장 옆에 낯익은 얼굴이 서 있었다.
이은혜였다.
‘저 아이가 왜…… 아! 작은형이 부탁해서 챙긴 거군.’
한풍 대피소 내에서 유성의 영향력은 크지 않다.
한풍가 직계로 존중받을 뿐.
하지만 그 지위만으로도 이곳에선 유성의 말 한마디가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생판 남인 이은혜를 오상배가 직접 보살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 안녕하세요. 어제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몸은 괜찮나요?”
“덕분에.”
“그래도 한동안 조심하세요.”
작은형의 체면을 생각해서 부드럽게 대했다.
이에 은혜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 일단 제 사무실로 자리를 옮기시죠.”
“아뇨, 볼일만 보고 바로 갈 생각입니다.”
“볼일이요? 혹시, 은혜 양에게?”
“아뇨, 이승아를 데려갈 생각입니다.”
은성이 승아를 거론하자 은혜의 낯빛이 싹 변하였다.
찰나에.
은혜는 곧 가련함을 연기했다.
가녀리고 예쁜 외모였기에 그 연기가 더 빛을 발하였다.
거기다 가슴 아픈 사연까지 알고 있는 사람의 경우 무한한 동정심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승아?”
오상배는 모르는 눈치였다.
“길잡이로 데려갈 생각입니다. 마침, 저기 오는군요.”
은성은 승아만 데리고 곧장 나가버렸다.
멀어지는 두 사람을 보며 오상배 소장의 표정이 야릇하게 변하였다.
‘한풍가의 둘째는 은혜를 챙기고, 한풍가의 무력을 대표하는 막내는 내 대피소의 이승아를 챙긴다? 나쁘지 않네, 나쁘지 않아.’
오상배는 이승아가 돌아오면 그녀 역시 알뜰히 챙겨주기로 마음먹었다.
연줄이란 하나보단 둘이 나으니까.
이런 오상배와 달리 은혜의 시선은 곱지 못했다.
그러나 그건 찰나에 사라졌다.
오상배를 향해 몸을 돌린 순간 남자로부터 보호본능을 유발하는 애처로운 모습으로 변신했다.
“예, 소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