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16
10화 남천철검 (3)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
남천철검이 이해할 수 없다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선천진기의 기준이 손톱만한 크기에 불과하다고 했는데, 그 몇 배에 달하니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전 주인도 선천진기가 뛰어났지만 이 만큼은 아니었다.
-야! 그러면 네 새 주인님인 운휘가 ‘이야 재능이 더 뛰어나구나’ 하고 좋아해야지. 풍악은 울리지 못할망정 뭘 그렇게 고민하냐? 어차피 좋은 일이잖아.
-으음. 그렇긴 하다.
소담검의 말에 남천철검이 얼떨결에 동의했다.
참 희한하단 말이야.
어째 남천철검이 이 쪼그마한 소담검에게 말려들고 있는 느낌이다.
자연스럽게 서열 관계가 정해지고 있었다.
-시작이 좋은 것은 확실히 축하할 일이다. 이 정도 선천진기라면 적어도 선천심법을 10년 동안 부단히 운기 해야 가능하다.
‘10년씩이나?’
그 말이 사실이라면 굉장한 행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몸속에 10년을 수련해야만 가질 수 있는 선천진기가 있다면 그 시간만큼을 아끼게 된 셈이었다.
-운이 좋구나.
‘운이라……’
익양소가에 있을 때만 가장 재능이 뒤쳐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와중에 단전마저 주화입마로 손상되었다.
운이 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선천진기는 보통 사람들을 훨씬 능가한다는 게 공교롭기마저 했다.
-이렇게 되면 심법과 함께 신공 연마를 같이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
‘신공?’
-심법은 말 그대로 선천진기를 모으고, 원기가 흩어지지 않게 만들어주는 역할이다. 하지만 신공은 선천진기를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게 만든다.
남천철검의 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렸을 적에 그렇게나 가문의 비전 무공인 소양신공을 익히고 싶어 했었다.
물론 그 기회는 영영 떠났지만 참 인생사 새옹지마다.
운남성의 패자라 불리던 남천검객의 신공을 익힐 기회가 생겼으니 말이다.
기대감에 부푼 난 물어보았다.
‘신공 이름은?’
-성명신공(星明神功)이다.
이름부터 비범하다.
무공을 익힐 생각을 하니 감회가 남달랐다.
그런 내게 남천철검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단언컨대 성명신공을 팔성 이상 익히게 된다면, 내가고수로서의 공력은 무림에서 손에 꼽히게 될 거다.
대단한 자신감이었다.
선천진기가 통상의 내공보다 강한 힘을 지녔으니, 남천철검이 이런 자부심을 가지는 것도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한데 무림에서 손에 꼽을 정도라니 상상이 가지 않는다.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한 지역의 패자가 된 남천검객 호종대는 과연 몇 성의 경지에 올랐을까?
-육성의 경지다.
‘……육성만으로 그렇게 됐다고?’
놀라운 이야기였다.
신공을 완전히 대성한 것도 아니고 고작 육성의 경지만으로 그런 명성을 떨쳤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감탄을 하고 있는 내게 남천철검이 말했다.
-그 정도 선천지기라면 십 년을 단축했으니, 운휘 너라면 십 년에서 십오 년을 부단히 연마한다면 6성의 경지에 이르게 될 거다.
아…….
생각보다 까마득했다.
그래도 달리 생각해보면 뒤늦게 출발해도 부단히 연마한다면 최소 십 년 내로 공력만으로는 기기괴괴나 남천검객의 수준에 이른다는 소리였다.
‘죽기 살기로 해보자!’
절로 의욕이 샘솟았다.
* * *
의욕이 불붙은 나는 그 후로 세 시진이 넘게 동굴에서 시간을 보냈다.
배가 고픈 줄도 몰랐다.
그만큼 오랫동안 무공에 목이 말랐었다.
석양이 지면서 동굴 안까지 붉게 물들어서야, 늦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돌아가야겠어.’
-그래. 그 미치광이가 또 무슨 짓 할라.
소담검도 내 말에 동의했다.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가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이다.
밖으로 나가려던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가 해골을 향해 절을 올렸다.
-뭐하는 거야?
‘그래도 고인의 무공을 배우게 되었으니 인사는 드려야지.’
가르쳐주는 것은 남천철검이었지만, 어찌 되었든 남천검객의 진전을 잇게 되었으니 예를 보이는 게 맞았다.
-……전 주인께서도 후인으로 인정하실 거다.
그런 나의 행동에 감격했는지 남천철검의 목소리가 뭉클해졌다.
절을 올린 나는 서둘러 남천철검을 등에 차고서 동굴 밖으로 나왔다.
절벽 위를 쳐다보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두 달 동안이나 그렇게 절벽을 오르고 내렸지만 여전히 기가 질린다.
소담검이 내게 말했다.
-이참에 경신법을 익혀보는 건 어때?
‘경신법?’
-그래. 그런 식으로 절벽을 오르면 힘들잖아. 경신법을 터득하면 경공술로 산을 쉽게 오를 수 있을걸.
녀석의 말이 맞았다.
절벽을 평지처럼 걸어가는 해악천을 보면서 경신법을 익힐 필요성을 느꼈었다.
원래 무술, 무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보법이었다.
발에서 모든 것이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흐음.’
소담검이 가르쳐주겠다고 했지만 익힌다면 남천검객의 경신법을 익히는 편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무래도 성명신공과 일맥상통할 테니 말이다.
그런데 남천철검이 조용했다.
-하아…..
콧구멍을 벌렁거릴 때 나는 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네 등이 참 좋은가 보다.
미치겠다. 그렇게나 이런 소리를 내지 말라고 경고했건만.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그것을 인지라도 했는지 남천철검이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했다.
-흠흠. 경신법이라고 했나?
한 마디 할까 하다가 그냥 참았다.
녀석 덕분에 절세신공도 익히게 되었는데 그 정도 인내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다만 팔에 난 닭살만큼은 어찌 할 수 없다.
-경신법도 가르쳐 줄 거다. 하지만 일단 보법의 기본형부터 익혀야 한다. 걷지도 못하는데 뛸 생각부터 하면 안 된다.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익힐 시간이 없을 듯 했다.
괜히 더 늦어지면 그 미친 늙은이가 직접 찾으러 올 수도 있었다.
-탁!
절벽에 튀어나온 돌부리를 잡고서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경신법을 배우고 나면 나도 미친 늙은이처럼 산봉우리를 직립보행 하듯이 뛸 수 있겠지?
-그건 무리다.
‘응?’
단호한 남천철검의 말에 의아했다.
-아무리 경신법을 배워도 이런 가파른 산을 직립 보행하듯이 걷는 것은 무리다. 전 주인께서도 그건 하지 못했다.
‘그럼 그 미친 늙은이는 어떻게 한 거야?’
-그건 그 자의 독문 경신법이 뛰어난 것이다. 전 주인께서도 늘 그 자의 독특한 경신법에 감탄했었다.
남천검객이 인정할 정도의 경신법이라니.
그건 의외였다.
한 번도 그를 이기지 못했다고 해서 모든 면에서 뒤쳐질 거라 생각했었다.
-경신법만큼은 그가 우위다.
전 주인을 띄워줄 만도 한데, 사실 여부는 확실히 하는 남천철검이었다.
어쨌거나 기기괴괴 해악천의 경신법은 남천검객마저도 인정할 만큼 발군이란 소리였다.
녀석들과 대화를 하면서 오르다보니 어느새 꼭대기가 보인다.
적어도 심심하지는 않다.
‘응?’
그런데 산 정상에 도착한 나는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광경을 목격했다.
쌍둥이 형제 중 동생인 송우현이 거꾸로 지면에 머리를 박은 채, 목석처럼 가만히 버티고 서있었다.
두 팔은 뒷짐을 지고 있었는데, 균형 감각이나 보통이 아니었다.
저렇게 버틸 수 있게 된 근원에는 핏줄이 불룩불룩 튀어나올 만큼 굵어진 목에서 비롯된 듯 했다.
-저래서 탈모가 왔구나. 아이고.
소담검의 말처럼 머리 정중앙에 탈모는 저 훈련 때문으로 보였다.
저러다 머리털 다 빠지겠다.
동생인 송우현 말고도 송좌백을 발견했다.
-타타타타타탁!
송좌백은 달리고 있었다.
그냥 달리는 것이 아니라 주먹을 쥐고서 바닥을 물구나무를 선 채 달렸다.
보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아파보였다.
-애들 잡겠네. 잡겠어.
동감이다.
가르치는 방식이 일반적인 훈련의 범주를 넘어섰다.
거의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방식이었다.
하긴 사람을 절벽에 두 시진이 넘게도 매다는 인간인데 저 정도는 약과일 수도 있었다.
-그 늙은이는 어디 갔나봐.
소담검의 말처럼 산봉우리에는 쌍둥이 형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괜히 여기 있다가 훈련하는 것을 지켜봤다고 한 소리 할 지도 모르니, 얼른 반대편으로 내려가야 할 것 같았다.
도망치듯이 조심스럽게 둘러서 가려던 차였다.
“선천진기는 느꼈느냐?”
깜짝이야.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언제 다가온 건지 해악천이 내 옆에 서있었다.
얼마나 무공을 연마하면 조금이라도 그의 기척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정말 요원해보였다.
“왜 말이 없는 게지?”
재차 묻는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엥? 느끼다 못해 심법도 배웠잖아.
-가만히 지켜봐라. 소담.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담검과 남천철검이 나누는 대화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선천진기를 느끼지 못한다면 뼈도 못 추릴 것처럼 경고했었다.
그렇기에 그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두려웠다.
“속이는 것은 아니겠지?”
해악천이 내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는 진기를 불어넣었다.
따뜻한 기운이 가슴 속으로 들어와 여기저기를 누볐다.
-탁!
한참을 그렇게 진기를 움직이던 해악천이 가슴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는 피식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못 느꼈군.”
실망하거나 화가 나는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결과를 마치 예상이나 했다는 듯 한 말투였다.
순간 나도 모르게 입술을 실룩일 뻔했다.
‘진짜로 못 찾는 구나.’
선천진기를 느끼다 못해 바닥에 끊겨있는 비전이 아닌 제대로 된 심법을 익힌 나였다.
하지만 이렇게 그를 속인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 번째는,
-선천진기는 내공과 궤를 달리하기 때문에 일부러 기운을 일으키지 않는 이상 알아차릴 수 없다.
라고 한 남천철검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정말로 해악천은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내심 두려웠는데 선천진기의 유리한 강점을 확인한 기회가 되었다.
“하긴 그것을 네가 하루 만에 느낄 리가 없지. 클클.”
웃고 있는 해악천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무림이든 어느 곳이든 간에 자신의 밑천을 전부 드러내는 것은 스스로를 불리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나는 내 성취를 육, 칠 할 이상은 숨길 작정이었다.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오. 제법인데. 운휘.
소담검이 내 계획을 칭찬했다.
내가 별다른 소득이 없다고 흡족해하던 해악천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는 비릿하게 입 꼬리를 올리더니 말했다.
“하마터면 속을 뻔 했구나. 클클.”
-쿵!
순간 심장이 덜컥했다.
설마 내가 속이는 것을 눈치 챈 것일까?
“원기를 소진하는 것 때문에 네놈이 잔머리를 굴려서 최대한 늦추려나 본데, 네놈이 제대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을 시켜줘야겠구나.”
‘하아.’
다행히 진의를 알아차린 것이 아니었다.
해악천 이 늙은이도 영악하다보니, 오히려 한술 더 나아가 오판을 했다.
하긴 내가 완벽한 선천심법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니, 그로서는 이런 식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좋다. 네놈이 대결에서 진다면 혈고를 다시 집어넣겠다.”
“네?”
“그리고 네놈은 절대로 하급 무사에서 오를 수 없게 될 거다.”
“약조가 다르지 않습니까?”
“그건 네놈이 잔머리를 굴려서 제대로 대결에 임하지 않으려고 수작을 부리기 전의 이야기다.”
어떻게든 내게 불완전한 심법을 익히게 하려고 종용한다.
결국 자신의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것이다.
“클클, 이 정도면 제대로 익혀볼 의욕이 나지 않느냐?”
그런 식으로 나왔다 이거지.
그렇다면 내게도 생각이 있었다.
“…….제가 진다면 그렇게 처분 하신다고 하셨는데, 만의 하나 제가 이긴다면 어쩌시겠습니까?”
“뭐?”
“원기를 소모하는 선천진기도 익혀야 하고, 대결에서 지면 혈고에다 평생 하급 무사로 살아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겼을 때의 보상은 없는 겁니까?”
“하!”
당돌한 나의 말에 해악천의 웃고 있던 입 꼬리가 비틀렸다.
심기가 불편한 모양인데, 어차피 두 달씩이나 굴린 상태에서 새로운 사람을 찾아 대체하기에는 번거롭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배짱 하나는 여전하구나.”
이에 나는 두려움에 떠는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엎드렸다.
그리고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절벽을 오르내리면서 늘 어르신의 재주를 흠모했습니다.”
갑자기 내가 저자세를 취하자, 해악천이 인상을 찡그리면서 되물었다.
“재주? 설마 경신법을 말하는 것이더냐?”
“어르신이 안 된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제게 어르신의 재주를 배울 기회를 주십시오.”
그런 내 말에 해악천이 눈을 가늘게 뜨고서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그 정도 대가는 있어야 네놈의 의욕이 살아난다면 들어주마. 단 네놈이 이겼을 때에 일이다.”
“감사합니다! 혈세! 혈세! 혈혈세!”
해악천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졌다.
아마 절대로 손해 볼 일이 없다고 확신해서일 것이다.
“흥. 네놈은 이제 거처로 돌아가라. 본좌는 아직 저 망아지들의 훈련이 끝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팍!
예를 표한 나는 그에게서 몸을 돌렸다.
몸을 돌리자마자 자연스럽게 입 꼬리가 올라갔다.
‘그 경신법은 이제 제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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