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344
1화 소영영 이야기 (1) >
무림에 충격을 안겨다준 그날로부터 두 달이 지났다.
정말 오랜만에 고향인 율랑현으로 돌아왔다.
사실 고향이라고 하기에는 더 이상 조금의 애정도 없다.
어머니의 위패도 형산파에서 모시고 있었고, 지금은 내 본가가 무쌍성의 비월영종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월영종은 어머니의 종파다.
외조부께서는 나를 딸처럼 아끼신다.
처음으로 가족의 정을 느꼈고 그로인해 어머니의 빈 자리가 채워진 것 같다.
게다가 나는 오라버니와 다르게 무쌍성주이신 그분의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그분 역시도 나를 친자식처럼 대해주시고 있다.
그래서인지 더 이상 익양소가에는 미련이 없다.
한데 이렇게 오랜만에 율랑현에 오게 된 것은 어렸을 적 어머니께서 물려주셨던 베틀과 어렸을 때 쓰던 짐들을 가지러 가기 위해서였다.
-웅성웅성!
한데 이 번잡함은 대체 뭐지?
겸사겸사 함께 온 봉황당의 당주인 남궁가희 언니가 내게 말했다.
“어머. 영 매.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아?”
“저도 모르겠어요.”
언니의 말대로 소가의 입구 전각 바깥부터 수많은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수레 가득히 온갖 것들이 실려 있었는데, 대체 이게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랏님한테 진상품이라도 상납하러 온 것 같은 분위기인데.”
“…….언니도 그렇게 보이나요?”
내 눈에도 그렇게 보인다.
내가 알기로 익양소가에 특별한 날도 아닐 텐데 이게 무슨 일일까?
입구로 들어가려고 대문 전각으로 가자, 앞을 지키고 있던 대문의 문지기들이 나를 알아보고서 소리쳤다.
“아가씨 오셨습니까?”
“아가씨?”
갑자기 행렬을 이루고 있던 사람들이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동시에 나를 쳐다보는 통에 순간 당혹스러울 지경이었다.
“오오오!”
“봉황당의 부당주 소영영 여협이다!”
“천하제일검 진운휘 대협의 누이 동생이 아닌가.”
사람들의 외침에 얼굴이 달아오르다 못해 확 타버릴 것만 같다.
언니는 이런 나의 반응이 재밌기라도 한지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서 웃음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풋, 영매 너무 인기가 많은걸.”
‘…….망할 오라버니.’
오라버니 덕분에 덩달아 나까지 주목을 받았다.
안 그래도 여기까지 오면서 이런 일이 부지기수로 벌어졌었다.
그 덕에 마을 같은 곳에 들어가기 무서울 정도였는데, 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니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소영영 여협! 저는 조영현에서 온 갑정문의 외당주 장이성입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가씨! 아가씨! 저는 유만 상단의 상단주 고영해입니다.”
“어허. 뒷줄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앞에까지들 와서 이게 무슨 짓들인가. 소영영 여협. 저는 오작 형가의 문형정이올시다. 그렇지 않아도 뵙고 싶었는데….”
아아 진심 머리가 지끈거린다.
왜 나한테 잘 보이려고 이렇게 애를 쓰는 거야?
“후후. 당연히 잘난 오라버니를 둬서 그런 거지. 영 매.”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언니가 말했다.
네네.
잘난 오라버니 덕분에 살면서 이렇게 주목도 받아보네요.
“……그 잘난 오라버니. 언니가 데려가실래요?”
“어머 정말?”
이런 나의 말에 언니가 화색이 돌아서 말했다.
이 언니….오라버니한테 관심 있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제발 참아주세요.
그렇지 않아도 새 언니가 세 명씩이나 돼서 그것도 그거 나름대로 얼마나 골머리가 썩고 있는데.
‘언니는 그 언니들 감당하기 힘들 걸요.’
아직까지 사람들은 모른다.
오라버니의 부인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말이다.
가장 첫째 언니는 오대악인의 일인이었던 월악검 사마착의 여식이다.
그나마 사마영 언니는 애교다.
둘째 새 언니 자리를 다투고 있는 두 언니들은 무림을 통틀어 손가락에 꼽히는 절대고수들이다.
한 사람은 혈교의 신임 교주이고 한 사람은 새롭게 재건되고 있는 북해빙궁의 빙궁주라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또 다시 무림은 경악에 빠질 것이다.
아니 그때보다는 덜 하려나?
그때를 떠올리면 정말 오라버니가 대단하다 싶을 정도다.
‘어떻게 그 자리에서 그걸 전부 밝힐 생각을 한 거지?’
.
.
.
[아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교주께서 무쌍성의 소성주이시기마저 하다고요?]
[하……그러니까 맹주께서 혈교의 교주인 혈마이면서 무쌍성의 성주이신 무정풍신 대협의 아드님이라는 겁니까?]
[소성주가 혈마라니? 어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혈교의 수뇌부들도 오라버니가 무쌍성의 소성주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는지 어처구니가 없어했고, 무림 연맹의 수뇌부들인 장로들 역시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오라버니, 아니 진운휘라는 한 사람이 무림 삼대 세력의 중추를 맡고 있었다는 게 되기 때문이었다.
가장 격하게 반응한 곳은 당연히 무림 연맹 측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무쌍성의 소성주로서의 오라버니는 납득할 수 있으나, 혈마로서의 오라버니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우스운 일이 무엇인 줄 아나?
누구도 대놓고 오라버니에게 맹주 직에서 물러나라고 따지진 못했다.
왜냐하면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한 가지 사실을 인정하고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오라버니는 자타공인의 일인자였다.
그 괴물 같은 교룡마저 없애버린 오라버니를 상대로 누가 함부로 굴 수 있겠는가.
하지만 모두가 조심스럽게 군 것은 아니었다.
혈교 측은 달랐다.
이렇게 오만하게 말한 것은 다름 아닌 혈교의 부교주인 백혜향이었다.
둘째 언니를 다투고 있는 그녀는 그 자리에서 불을 지폈다.
덕분에 인요(人妖) 대전이 끝나자마자, 제 2차 정사 대전이 벌어지는가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하게 돌아갔었다.
오라버니의 스승님이라던 기기괴괴 해악천도 괜히 으름장을 놓으며 상황을 부추겼다.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 오라버니의 선택은 모두의 예상을 벗어나게 했다.
갑작스러운 선언에 이번에는 무림 일통을 부추겼던 혈교 측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오라버니는 모두에게 공언했다.
이제는 무쌍성의 성주인 진성백의 아들 진운휘로서의 삶을 살겠다고 말이다.
.
.
.
그렇게 공언한 오라버니는 그 자리에서 부교주였던 백혜향 언니를 혈교의 교주로 임명했고, 차기 맹주직으로 뜬금없게도 월악검 사마착을 추천했다.
혈교의 후계 건은 혈마의 명이기에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았지만, 오대악인의 일인인 월악검을 맹주 직으로 추천하는 바람에 또 다시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하지만 오라버니가 그 자리에서 월악검 사마착에게 씌어져 있던 누명을 벗기면서 여론이 상당히 묘해졌다.
얼마 후면 있을 맹주 선출의 결과가 어찌 나올지 모를 만큼 월악검 사마착에 대한 정파인들의 선입견이 꽤 바뀐 상태다.
만약 정말 월악검 사마착이 맹주 직에 선출된다면 정파 무림에 있어서 가장 큰 이변이 될지도 모른다.
뭐 나야 누가 되었든 간에 현재가 중요하지만.
“안 돼요.”
단호한 나의 말에 남궁가희 언니가 입술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
“방금 전에는 데려가라면서?”
“오라버니가 아니더라도 좋은 남자들 많아요. 언니.”
“천하제일의 고수는 영 매 오라버니 한 명뿐이잖아.”
“……..흠흠. 그거야 그렇긴 하지만 아무튼 안 된다고요! 다 언니를 위해서 하는 말이에요.”
“이거 은근히 오기가 생기는걸.”
오기부리다가 다친다니까요 언니.
오라버니의 세 부인들이 누군지 이야기하면 포기하려나.
그러던 차에 누군가 내게 말했다.
“양 부인께 저희 문주께서 매파를 보냈는데 어떻게 결정은 내리셨습니까?”
‘!?’
매파?
이건 또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야?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한 명이 아니었다.
“아니 갑정문에서도 매파를 보낸 거요?”
“정도문도 보냈소이까?”
“우리 오연가는 이미 긍정적으로 고려해보겠다는 답신마저 받았소이다.”
“허참. 이거 호남성에 있는 웬만한 문파, 세가에서 다 매파를 보낸 모양이구려.”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 나는 기가 막혔다.
익양 소가와 연을 끊기 위해 작정하고 왔는데, 정작 당사자인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매파가 오가며 혼사를 논하고 있다니 말이다.
남궁가희 언니가 혀를 내두르며 내게 말했다.
“이야…..영 매. 이 정도면 원하는 대로 남편을 고를 수 있겠는걸. 아니면 부군을 여럿 둘 수도…..”
“언니!”
“농담이야. 농담.”
“지금 장난칠 기분이 아니거든요.”
나는 분노에 찬 걸음으로 성큼성큼 소가의 안으로 들어갔다.
원래는 본당 건물로 향하려고 했는데, 곧장 양 부인의 거처인 작양당으로 향했다.
작양당으로 행렬이 이어져 있었고, 창고 밖까지 공물들이 쌓여서 넘쳐나고 있었다.
‘이걸 이용해? 하!’
생각하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이 나는 작양당 안으로 들어갔다.
작양당을 지키던 양 부인의 여자 호위무사들이 나를 발견했는지 깜짝 놀라서 안으로 다급히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양 부인에게 내가 왔다고 보고하려나 보지.
“흥!”
나는 서둘러 작양당의 안으로 들어갔다.
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어서 그런지 평소처럼 제지하며 막진 못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접객실에서 양 부인과 손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키워준 은혜가 있지 않습니까? 하니 부디 양 부인께서 진 대협에게 잘 이야기해주셔서 저희 여식을 어여쁘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설사 잘 안 되더라도 첫째와 둘째도 그 아이 못지않게 인물도 좋고 품성과 재능을 갖췄으니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저는 양 부인만 믿고…..”
절로 콧방귀가 나왔다.
이젠 나뿐만이 아니라 오라버니까지 팔고 있다.
전부터도 나를 가문의 물건인 것 마냥 혼사로 흥정을 하더니, 그 버릇을 아직까지 못고쳤다.
“영 매가 왜 소가랑 연을 끊으려는지 이제 알겠는데.”
언니 보기가 부끄럽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 혼자 안으로 들어올걸 그랬다.
더 듣고 있다간 짜증이 날 것 같다.
-쾅!
나는 접객실의 문을 세차게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작양당의 여자 호위무사가 나를 만류하려 했지만 그녀들의 수준으로는 무리다.
안으로 들어가자 양 부인이 인상을 찡그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손님을 의식했는지 표정을 부드럽게 바꾼 그녀가 말했다.
“영아. 왔으면 이야기를 하지 그랬니? 지금 이 어미가…..”
“어머니라고 부르지 말고 양 부인이라고 존칭하라고 하신 분이 언제부터 제 어머니셨다고 그런 말씀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쏘아붙이는 나의 말에 그녀가 억지로 표정관리를 했다.
“어머. 세양가의 가주께서 오해하시게 얘는 무슨 말을 그렇게……”
“오라버니는 이미 약혼녀가 있는데, 양 부인께서 무슨 권리로 세양가의 가주님께 그런 허황된 약조를 하시는 거죠?”
이런 나의 말에 세양가의 가주마저도 당혹스러웠는지 헛기침을 해댔다.
그러다가 이내 내게 말했다.
“허허허, 무림 연맹의 봉황당의 부당주인 소 여협께서 당차다는 말은 줄곧 들었지만 과연 듣던 대로구려.”
“네에.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듯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이에 세양가의 가주가 불쾌해하면서도 애써 미소를 지어가며 내게 타이르듯이 말했다.
“진 대협처럼 천하가 인정하는 영웅이라면 삼처사첩을 둔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하겠소이까? 본 세가도 진 대협 같은 훌륭한 분을 사위로 두고 싶은 욕심에 이렇게…..”
“저희 오라버니한테 약혼자가 세 명이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세 명?”
이런 나의 말에 오히려 남궁가희 언니가 화들짝 놀란 눈으로 반문했다.
세양가의 가주도 이 사실을 몰랐기에 난처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내게 말했다.
“허허허, 방금 전에 말하지 않았소. 삼처사첩을 둔다고 해도…..”
“세양가의 여식께서 제 새 언니들 사이에서 버틸 수나 있을지 저는 염려되어서 이런 말을 하는 거랍니다.”
“그 아이도 무가의 여식이오. 본 가주가 강하게 키웠으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첫째 새 언니가 월악검 사마착의 여식이에요.”
‘!?’
이런 나의 말에 세양가의 가주의 말문이 막혔다.
나는 이에 그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둘째 새 언니 자리를 두 분이서 다투고 있는데…..한 분이 지금 혈교의 교주인 검혈마녀 백혜향이네요.”
“거, 검혈마녀!”
세양가의 가주가 놀란 나머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남궁가희 언니도 이 사실에 많이 놀랐는지 커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혈교주라니?……세상에.”
양 부인도 어찌나 놀랐는지 안색까지 새파랗게 변해 있었다.
나는 이에 그치지 않고 말했다.
“그리고 한 분은 이번에 새롭게 팔대고수의 일인이 된 빙한여제 설백 언니인데. 그분들 사이에서 가주의 여식께서 잘 버틸 수 있다면….”
내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세양가의 가주가 양 부인에게 포권을 취하며 다급히 말했다.
“야….양 부인. 아무래도 본 가주가 괜한 욕심을 낸 것 같소이다. 오늘 부탁드린 것은 부디 잊어주길 바라오.”
그 말과 함께 부리나케 접객실을 나가버렸다.
그런 모습을 보고나니 조금은 속이 풀리는 것 같다.
한데 옆에서 시무룩해져서 중얼거리는 남궁가희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준이 너무 높잖아.”
오기가 수그러들었나 보다.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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