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5
5화 내 발로 들어간다
고개를 슬며시 들어올렸다.
무릎을 꿇고 예를 취하고 있는 이들 중에 대주가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들도 눈치 채지 못했던 존재를 내가 알아보았다.
사존자(四尊子) 칠혈성(七血星).
혈교를 이끌어가는 열한 명의 간부들이다.
사혈성은 칠혈성 중에 서열 4위에 해당하는 자였다.
대주 급이라도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는 직접 알현하기 힘든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으니, 그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사실 나는 나대로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미치겠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저질렀는데 정말 사혈성이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사실상 오늘 처음 본 사혈성에게 혈교의 간부에게 취하는 예를 취했다.
‘멍청이.’
이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완전 의심받기 좋은 행동을 해버린 셈이었다.
그나저나 나도 이렇게 가까이서 사혈성을 본 것은 처음이다.
사혈성 도장호.
혈교뿐만이 아니라 사파를 통틀어서도 명성이 높은 초절정의 고수였다.
“사혈성께서 어인 일로 이런 누추한 곳까지 행차하셨는지?”
대주가 고개를 들어 사혈성에게 아뢰었다.
“오 대주.”
“네. 말씀하소….”
대주가 하던 말을 잇지 못하고 사색이 되었다.
공포에 억눌린 사람마냥 일그러진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말했다.
“소, 송구합니다.”
“자네의 임무에나 충실하게.”
그 말과 함께 사혈성 도장호가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올 때마다 압박감으로 숨이 턱턱 막혀왔다.
‘답답하다.’
솔직히 말하면 두려웠다.
전생에서도 대주 급을 앞에 두고 있으면 긴장이 되고 심장이 두근거렸는데, 혈교의 최고위직에 있는 간부가 눈앞에 있으니 차원이 달랐다.
“소형제.”
“네넵!”
얼른 머리를 조아리고 답했다.
본능적으로 여기서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생사가 결정된다고 여겼다.
“본좌를 어찌 알아보았나?”
도장호는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린 내게 관심을 보였다.
떨리는 것을 최대한 참고서 말했다.
“검입니다.”
“검?”
“사혈성의 검병에 달린 흰 가죽 묶음을 보았습니다.”
“호오. 눈썰미가 좋군.”
사혈성 도장호는 말을 좋아하는 애마가였다.
그는 애지중지하던 보마(寶馬) 백향이 죽고서 이를 기리기 위해 자신의 검병에 백향의 가죽으로 만든 장신구로 달고 다녔다.
혈교인들에게는 꽤 유명한 일화였다.
“흥미로워. 자네의 비밀이 점점 궁금해지는군.”
-쿵! 쿵! 쿵!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자넨 누구지?”
본론으로 들어가자 말문이 막혔다.
머뭇거리자 복면인들 중 한 사람이 소리쳤다.
“빨리 대답하지 못할….”
하지만 그는 말을 다 끝내지 못했다.
사혈성 도장호가 손을 들어 올리고서 관여치 말라는 표시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마호대의 규율이 느슨해졌군. 언제부터 혈성이 하는 말에 끼어들 만큼 대단한 배짱을 지니게 된 건지?”
위엄 넘치는 목소리에 복면인이 몸을 파르르 떨었다.
혈성이란 존재가 얼마나 혈교인들에게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인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사혈성 도장호가 다시 내게 물었다.
“소형제. 부담 갖지 말고 말해보게.”
‘후우……’
이젠 별 수 없었다.
여기서 잘못 돼봐야 죽거나 혈교에 납치되거나 둘 중 하나다.
어차피 그렇게 될 거라면 내 손으로 상황을 좀 더 원활하게 바꾸는 게 나았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며 결의가 담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는 혈교인의 피를 이었습니다.”
“혈교인?”
나의 그 말에 도장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명백히 의심의 가득한 눈초리였다.
“하!”
마호대의 오 대주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여기서 쫄리면 뒈지는 거다.
명색이 첩자 경력만 7년이 넘었다.
거짓말이라면 신물이 날 만큼 쳐왔기에 눈빛조차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익양소가라면 정파의 명문가일 텐데.”
“명문가이지요. 하지만 제 외조부께서는 혈랑대의 하급 무사이셨습니다.”
“혈랑대?”
사혈성 도장호가 관심을 보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혈랑대는 실제로 혈교에 존재하는 무력 부대 중 하나였다.
오 대주가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외조부께서는 혈랑 대주인 노조만 대주의 밑에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노조만이라는 이름에 복면인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왜냐하면 전대 혈랑 대주의 이름이기 때문이었다.
‘이게 여기서 도움이 될 줄이야.’
내가 혈교에 납치되어 훈련받았던 부대가 혈랑대였다.
그 당시 혈랑 대주가 정사 대전 때 죽은 자신의 부친에 관한 이야기를 시도 때도 없이 꺼냈기에 기억했다.
사혈성 도장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는 정사 대전에 참여했던 자네 부친도 알 수 있는 정보일세.”
당연하겠지.
이 정도에 속을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비장의 무기는 바로 이것이었다.
“조부께서는 당시 노조만 대주께서 자식 교육에 엄하셔서 그 자제인 노성구도 어린 나이에 혈랑대의 훈련에 참여했다고 들었습니다.”
노성구라는 이름에 복면인들 서로를 힐끔 쳐다보았다.
이때 혈교는 아직까지 무림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 내 입에서 당대 혈랑 대주의 이름이 거론되었으니 저런 반응도 당연했다.
정작 사혈성 도장호는 생각을 읽기 힘들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한데 어쩌다 익양소가로까지 흘러들어간 겐가?”
“정사 대전에서 겨우 살아남으신 외조부께서는 어떻게든 살고자 하는 의지로 유일한 혈육인 제 어머니를 이끌고 정처 없이 떠돌다 율랑현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흐음.”
“외조부께서는 정사 대전에서 입은 내상으로 많이 약해지셨고, 그때 어머니께서 약값을 벌기 위해 익양소가에 시종으로 들어갔습니다.”
임기응변으로 지은 이야기이지만 그럴 듯 했다.
익양소가의 삼남인 나 소운휘가 시종의 소생이라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었다.
도장호가 궁금했는지 물었다.
“외조부께서는 아직 안녕하신가?”
나는 최대한 애절한 목소리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시종의 몸으로 벌어봐야 얼마나 벌겠습니까? 외조부께서는 장수하지 못하셨습니다.”
“저런. 안타깝게 되었군.”
위로의 말을 했지만 전혀 안타까워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다.
내 이야기에서 허수를 찾아내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외조부께서는 임종하시는 그 순간에도 혈교를 잊지 못하셨습니다.”
거짓말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몇몇 복면인들은 내 말에 넘어갔는지 안타까운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정작 목숨 줄을 쥐고 있는 도장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게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본교의 충성스러운 교인의 후손이 익양소가의 그늘 아래 숨어 있었다라.”
반신반의 하는 느낌이다.
확실하게 지표를 찍기 위해 배웠던 혈교의 기본 권각술이라도 보여줘야 하나 망설여졌다.
그때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도장호가 한바탕 크게 웃어댔다.
“하하하하하하핫.”
‘들킨 건가.’
불안해하고 있는데 그가 말했다.
“외조부가 본교의 사람이면 소형제도 우리의 형제나 다름없지.”
“하아…..”
식은땀까지 흘리며 긴장하고 있던 내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거의 도박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자네의 뿌리를 밝혔다는 것은 다시 돌아오겠다는 의중이 아닌가?”
“그, 그렇습니다.”
‘아아……..’
납치가 아니라 내 발로 혈교에 들어가게 생겼다.
목숨을 건지기는 했다만 점점 꼬여만 갔다.
어쨌든 목숨을 부지해야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바꿔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풀어줘라.”
사혈성 도장호의 명령에 내 목을 베려고 했던 복면인이 달려와, 밧줄을 풀어주었다.
풀려나자마자 나는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외쳤다.
“혈세! 혈세! 혈혈세!”
사혈성 도장호가 흡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을 환영하네. 이렇게 집을 나갔던 늑대의 후손이 다시 본교와 연을 맺게 되었는데, 혹 본좌에게 바라는 것은 없나?”
도장호의 입에서 나온 그 말에 복면인들이 놀라워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혈교의 고위 간부 중 한 사람인 사혈성이 뜻밖의 제안을 했으니 부러워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절대로 부러워할 일이 아니다.
‘……시험하고 있다.’
그를 처음 만났지만 사혈성 도장호는 변덕이 심한 인물이라 들었다.
기분에 따라서 처우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런 자가 하는 제안을 곧이곧대로 받아 들였다간 무슨 사달이 날지도 몰랐다.
“아닙니다. 어찌 미천한 이가 혈성께 무언가를 바라겠습니까?”
“하하하하하. 본좌의 기분이 흥해서 그런 것이니 개의치 말고 이야기 하게.”
두 번째 제안.
여기서 거절하면 분명 그 흥이 식을 것이다.
“하면 제 모친께서 주신 유품을 돌려받아도 될런지요.”
“유품?”
고개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린 내가 오 대주가 들고 있는 단검을 가리켰다.
자신의 수하를 둘이나 죽인 단검을 달라는 요청에 오 대주가 불쾌함을 감추지 못했다.
도장호가 손을 내밀었다.
“사혈성. 아무리 그래도 아직 무기까지 주는 것은…..”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게나. 오 대주.”
“추, 충!”
별 수 없이 오 대주가 도장호에게 단검을 갖다 바쳤다.
-스릉!
단검을 검집에서 뽑아 녹이 슨 검신을 확인 한 도장호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단검의 검 끝을 검지와 중지에 끼웠다.
‘엇?’
-뽀각!
단검의 검 끝이 부러지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녹이 슬어있는데, 찌를 수 있는 부분을 저리 부러뜨리면 단검의 활용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사혈성 도장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건 단검에 우리 교인들의 피를 적신 대가일세. 소중한 유품 잘 보관하게나.”
-팍!
도장호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단검이 내 머리 앞의 땅바닥에 꽂혔다.
그 여파가 남아있는지 단검의 검병이 띵 소리를 내며 흔들거렸다.
대단한 공력이었다.
-오싹!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공력이 놀라워서가 아니라, 마치 내게 경고를 하는 듯해서였다.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다.
* * *
복면인들이 전부 철수한 자리.
사혈성 도장호가 마호대의 오 대주를 남겨두고서 따로 명을 내렸다.
“익양시에 있는 율랑현으로 사람을 보내 소운휘의 외가 쪽을 조사토록 하고, 놈을 계속 예의 주시하도록.”
“충!”
도장호의 결정에 불만스러워 했던 오 대주의 입 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 * *
역시 예상대로였다.
혈교가 그렇게 멍청한 집단도 아니고 무조건 내 말을 신뢰할 거라고 여기진 않았다.
‘의심하고 있군.’
복면인들의 눈빛에는 불신이 가득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 마차다.”
내가 타야 할 마차는 혈교인들이 납치한 소년, 소녀들을 태운 짐마차였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짐마차였지만 그 내부는 탈출할 수 없도록 쇠창살로 막아놓았다.
자발적으로 들어와도 결국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일단 목숨을 부지한 걸로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빨리 타라.”
복면인이 짐마차에 오르라고 나를 종용했다.
“허튼 짓거리 하지 말고 조용히 있어라.”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전생에 비하면 출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안에 있는 녀석들처럼 밧줄에 동동 묶여서 짐짝마냥 내팽개쳐져 있지는 않으니 말이다.
“읍읍!”
참 질긴 인연이다.
짐마차 안에는 송좌백, 송우현. 자칭 호남쌍쾌도가 밧줄에 묶여 끙끙대고 있었다.
입을 틀어막은 것도 아닌데, 저렇게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혈(啞穴)을 점해놓았기 때문이었다.
아혈을 점하면 말을 할 수가 없게 된다.
“읍읍!”
마차로 오르는 나를 발견한 두 형제가 커다래진 눈으로 소리를 냈다.
자신들과 달리 아무런 구속도 없이 마차에 타는 것이 의아했던 모양이다.
“하. 저놈들 아혈을 점해놓아도 저 지랄이네.”
복면인이 짜증을 내며 마차 안으로 들어가 두 형제의 훈혈을 점해버렸다.
훈혈(暈穴)을 점하면 기절하게 된다.
그들이 기절해 잠잠해져서야 복면인은 만족스러워하며 나갔다
밖에서 문이 잠기자 마자 마차가 출발했다.
-다그닥! 다그닥!
짐마차의 한구석에 앉은 나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기절한 쌍둥이 형제들 말고도 납치당한 소년, 소녀들이 두려움에 젖어, 몸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태연한 게 더 이상하긴 했다.
-슥!
품속에서 천으로 감싸놓았던 단검을 꺼냈다.
그래도 이 와중에 어머니의 유품은 챙길 수 있었다.
천을 벗긴 후에 단검을 벗기자 아니나 다를까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끼야아아아아아악!
‘윽!’
이래서 천으로 감싸놓은 것이었다.
비명을 지르던 소담검이 악에 받쳐서 소리 질렀다.
-내 머리! 내 머리 돌려줘어어어!
검 끝이 부러졌다고 이 난리를 치는 것이었다.
이해는 하지만 너무 시끄러웠다.
‘제발 좀 조용히 해. 그래도 완전히 안 부러진 게 어디야.’
그런 내 말에 소담검이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네 머리털도 전부 밀어버리면 그 소리가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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