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90
36화 뜻밖의 (1) >
* * *
회귀 전 무림 연맹에서는 큰 출진 시에 맹주 백향묵이 출진 연사를 하곤 한다.
연사를 맡은 그 끝은 사기를 돋우기 위한 검을 뽑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렇기에 그의 보검 묵선을 기억했다.
그런데 이렇게나 많은 검들이 묵선과 동일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검면에 있는 특유의 원형의 반점 문양조차 말이다.
-제발…..죽여줘.
-부숴줬으면 좋겠어.
거대한 향로에 꽂혀서 괴로워하는 검들.
검들은 하나같이 멀쩡한 것이 없었고 전부 금이 가거나 부서지기 직전의 상태였다.
말 그대로 쓸 수 없는 검이라고 할 수 있었다.
‘왜 이렇게 괴로워하는 거야?’
나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남천철검이었다.
-……그건 우리도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다만 검으로서 죽음을 바라는 순간은 스스로의 가치를 훼손당했을 때가 아닐까?
‘가치를 훼손 당해?’
검의 가치란 무엇일까?
애초에 그것은 병장기였다.
활검이니 뭐니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얼마나 효과적으로 적을 상대하고 죽이기 위해 탄생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런 역할을 수행하지 못해서 그렇다는 말일까?
-저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으면 우리의 말도 들리지 않을걸. 궁금하면 직접 말 걸어봐.
소담검의 말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냥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끼치는데 이걸 잡아보라고?
사실 그냥 평범한 검이었다면 굳지 잡고픈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팔대고수 중 한 사람인 무한제일검의 검과 똑같은 묵선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고민을 하던 나는 결국 녀석의 말대로 검병에 손을 갖다 댔다.
-죽여줘어어어어어!
-오싹!
그 순간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검의 절규소리가 머릿속을 관통하는데 그것은 분노나 한에 가까웠다.
그런데 검을 잡고나서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막 탄생한 검이었나?’
감정이 쏟아져 나오는 것과 달리 검의 자아가 굉장히 약했다.
‘이봐. 이봐!’
-제발….제발 나를 부숴줘.
내가 하는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못 듣는 건지 안 듣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대체 왜 이렇게 검들이 괴로워하는지 영문을 알 수 없어 답답해지려는 순간이었다.
손등의 천기가 푸른 빛으로 일렁였다.
그와 동시에 시야가 스멀거리며 바뀌더니 무언가가 보였다.
장소는 바로 이곳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밖이 깜깜한 밤이었고, 바닥에 주정뱅이처럼 누워있던 장인이 멀쩡한 모습으로 서있다는 점이었다.
검의 시야는 사방으로 열려있다.
그렇기에 검을 쥐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백향묵!’
저 얼굴을 어찌 잊으리오.
그는 무림 연맹의 맹주 무한제일검 백향묵이 틀림없었다.
나는 그저 누군가 묵선의 모조품을 의뢰라도 한 것일까 여겼는데 본인이 직접 이곳에 왔을 줄은 몰랐다.
백향묵의 말에 장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을 쥔 백향묵이 기수식을 취했다.
‘오!’
그 모습에 나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지금 나는 팔대고수의 일인이 펼치는 연무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었다.
백향묵이 눈짓을 하자 장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들고 있던 검은 천으로 자신의 눈을 가렸다.
호흡을 가다듬은 백향묵이 검초의 연무를 시작했다.
검의 시야로 지켜보는 연무.
‘!!!’
이를 지켜보는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검을 휘두르는 궤적과 그 흐름 자체가 완전히 차원이 달랐다.
무한시로 오는 동안 나는 하루도 쉬지 않고 남천검객 호종대가 펼치는 연무를 보았다.
하루하루가 달라지고 있는 남천검객조차 도저히 범접할 수 없을 만큼 백향묵의 검은 완벽 그 자체였다.
‘이게…..무한제일검의 검법…..’
검의 정점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검의 궤적은 충격적이었다.
그의 독문 검법인 묵선대진검(黙鮮大眞劍)은 현 무림에서 최고로 꼽히는 사대검법 중 하나라 불릴 만 했다.
‘하……’
그의 검법을 보고나서 나는 깨닫게 되었다.
성명검법은 아직까지 더 발전할 가능성이 있었다.
남천검객이 검초를 더욱 보완하고 상승시킨 것처럼 더욱 강하게 만들 여지가 충분했다.
가슴 속 깊이 열의가 치솟았다.
연무를 마친 백향묵의 입에서 흡족한 목소리가 나왔다.
이에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 장인이 입을 열었다.
천을 풀려고 하던 장인이 이를 멈췄다.
그리고는 초조한지 마른 입술 위로 혀를 날름거렸다.
‘뭐가 아직이라는 거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의 검초를 완벽히 소화시킬 만큼 뛰어난 검이었다.
여기서 또 무엇을 확인하려는 거지?
그때 백향묵이 검병 위의 검신에 두 손가락을 모은 검결지를 갖다 댔다.
그리고는 검결지로 검신을 쓸어내렸다.
그 순간,
-끄아아아아아아아!
검이 미친 듯이 비명을 내질렀다.
고막이 찢어질 것처럼 절규를 하는 검의 검신이 피처럼 붉게 물들어갔다.
‘!?’
이게 무슨 현상인지 알 수 없었다.
멀쩡하던 검신이 선홍빛으로 붉게 물드는데 검이 심하게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검신이 반 정도 물들던 찰나였다.
-쩌저저저적!
검면에 금이 가며 갈라졌다.
그와 동시에 선홍빛으로 물들던 검의 색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런 기이한 현상도 놀라웠지만 정말로 나를 놀라게 만든 것은 백향묵의 변질된 기운이었다.
정기가 넘치던 그의 기운이 살의(殺意)로 물들어갔다.
마치 살성을 보는 듯 했다.
-푹!
사람이 바뀐 것처럼 백향묵이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금이 간 검을 꽂아 넣었다.
그리고는 두 눈을 감고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자 얼마 있지 않아 살의로 가득했던 기운이 정화가 되듯이 되돌아왔다.
정기가 넘치는 모습으로 돌아온 그는 혀를 차며 장인에게 말했다.
냉담한 말과 함께 대장간을 나가버렸다.
눈을 가리던 검은 천을 벗은 장인이 씁쓸한 얼굴로 금이 간 검을 쳐다보았다.
이를 끝으로 시야가 스멀거리며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괴로웠겠구나.’
나는 어째서 검이 괴로워했는지 알 것 같았다.
백향묵이 보였던 그 살의가 가득했던 기운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검을 회생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었다.
태어나자마자 폐기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으니 괴로워하는 것도 당연했다.
‘괴로워하지 마라. 너는 잘못된 게 없다.’
나는 녀석에게 달래듯이 말했다.
그러자 절규 소리를 내지르던 녀석이 그것을 멈췄다.
그리고는 내게 아이와도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쩌저저저저적!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검면 전체가 금이 가더니, 이내 검의 쇳조각이 가루가 되어 바닥에 쏟아져 내렸다.
남은 것은 오직 검병뿐이었다.
-이게 뭔 일이야?
나도 모르겠다.
검이 왜 저절로 가루처럼 으스러졌는지 말이다.
이게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어하는데, 머릿속으로 백향묵이 펼쳤던 검초가 기억처럼 각인이 되듯이 떠올랐다.
천기가 제대로 발동되었을 때와 같은 현상이었다.
검초를 펼치기 위한 운기 경로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검초의 궤적은 정확히 알 것 같았다.
‘아……’
검초가 머릿속에 각인되자 뭔가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그 기분.
이 한번으로는 알 수 없었다.
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향로에 꽂혀 있는 다른 묵선검들에게로 향했다.
‘……한 번 더 볼까?’
내 예상이 맞다면 다른 묵선들도 이런 과정을 거치고서 금이 간 것 같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묵선대진검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뒤?’
남천철검의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뒤쪽에서 커진 두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장인이 보였다.
아직 술에 깨지 않았는지 붉은 얼굴의 장인.
‘이런.’
너무 집중했나보다.
대장간의 주인인 장인이 깬 것도 눈치 채지 못하다니.
제대로 실례를 했다는 생각에 나는 그에게 포권을 취하며 사과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장인이 헐레벌떡 내게 뛰어왔다.
그리고는 말했다.
“무림인인가? 아니 무림인이겠지?”
‘응?’
뭔가 술이 들 깬건지 말투가 횡설수설이다.
“그렇습니다만. 한데…..”
내가 말을 하기도 전에 장인이 몸을 숙여 바닥에 떨어진 쇳가루를 만졌다.
갈아버린 것처럼 고운 쇳가루.
장인의 미간에 주름이 생겨났다.
이렇게 되면 꼭 내가 검을 일부러 이렇게 만든 것처럼 되어버리지 않나.
“이건 제가 부수려고 그런 게 아니라…..
이를 만지던 장인이 내 말을 끊고서 말했다.
“혹시 향로에 있는 다른 검들도 부숴줄 수 있나?”
“네?”
그의 입에서 나온 뜬금없는 말에 나는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멋대로 들어와서 검을 부쉈다고 뭐라 할 줄 지레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는데,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삯은 치르도록 하겠네.”
심지어 삯마저 치른다니 왜 그런지 모르겠다.
검을 그렇게 부수고 싶었다면 스스로 처분해도 되지 않은가.
표정에서 이것이 드러났는지 장인이 내게 말했다.
“이 검들은 내가 혼을 담아서 만든 것들이네. 하지만 더 이상 쓸 수 없는 검이 되어버렸지. 내가 만든 아이들을 내 손으로 쉽게 부술 수 있을 것 같은가?”
아…….
어째서 검을 향로에 꽂아놨는지 알 것 같다.
혼을 담아 만든 검들이 어처구니없게 부서지고 버림받은 것을 기리기 위함인 듯 했다.
“해줄 수 있나? 없나? 그것만 말하게.”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검을 천기로 살펴보고 싶은 터였다.
주인이 허락한다면 마음 편하게 살펴볼 수 있으니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알겠습니다. 한데 이 검들은 혹시….”
“미안하네. 의뢰자가 아닌 이상 검에 관한 질문은 일절 사양하겠네.”
내가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장인이 대답을 거부했다.
내심 무림 연맹의 맹주 백향묵이 어째서 묵선의 모조검들을 만드는지 궁금했는데 저렇게 완강한 걸 보면 묻기도 힘들었다.
장인이 내가 매고 있는 검집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보아하니 자네도 검을 다루는 듯한데, 삯으로 검을 손봐줘도 되겠나? 보다시피 금전으로 치르기에는 형편이 넉넉하지 않네.”
의도치 않았는데 잘됐다.
그렇지 않아도 남천철검의 손질을 부탁하려고 했던 차였다.
나는 검집에서 남천철검을 뽑았다.
-스릉!
이를 본 장인이 인상을 찡그렸다.
녹이 슨 것을 보고서 그러나 싶었는데 의외의 것을 짚었다.
“안에 넣은 검보다 검집이 조금 커보이는 데 괜찮나?”
장인이 아니랄까봐 곧바로 알아차린 그였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이걸 봐주십시오.”
나는 그에게 남천철검을 넘겼다.
검을 받아든 장인이 남천철검의 녹이 슨 검면을 살펴보았다.
그가 과연 한철마저 다룰 수 있을지 궁금했다.
“한철이 섞였군.”
우려와 달리 장인은 녹이 슨 부분만 보고서 곧바로 한철이 섞였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몇몇 대장간에 들고 갔을 때는 전혀 알아보지도 못했었다.
과연 후에 명장이라 불릴 장인다웠다.
“이런 명검이 이런 꼴이 되다니. 검을 십 년 넘게 습한 곳에 방치라도 해둔 겐가?”
장인이 나를 나무랐다.
15년이 넘게 동굴에 방치되었으니 맞는 말이었다.
“……사정이 있었습니다. 녹을 벗길 수 있겠습니까?”
“어렵지 않네. 다만 한철이 섞이면 작업이 조금 까다로워서 적어도 닷새에서 엿새 정도는 걸릴 듯 하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열흘이나 시간도 남았고 닷새 동안 금이 간 묵선들을 천기로 살펴보면, 나 스스로 한 꺼풀 벗을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 * *
남천철검을 장인에게 맡긴 나는 숙소로 향했다.
곧바로 다른 묵선들을 천기로 살펴보고 싶었지만 금방 다녀오겠다고 말을 해놨기 때문에 숙소로 가서 사마영과 조성원에게 말을 해두기 위해서였다.
일이 잘 풀려서 좋기는 했지만 나는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백향묵의 살의가 담긴 기운에 붉게 변해가던 검신.
그것은 아무리 봐도 정도를 추구하는 무한제일검 백향묵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니 오히려 사도에 가까웠다.
‘대체 뭘까?’
의아해하고 있는 찰나였다.
대장간 거리를 벗어나고 있는데, 인파 속에서 누군가 나를 가로막았다.
죽립에 흑의를 입고 있는 다소 신장도 작고 왜소한 체구의 청년이었다.
무기를 들고 있지 않고 특별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서 인파 때문에 막혔나 보다 싶어서 지나치려고 하는데, 청년이 내 팔목을 붙잡으려 했다.
‘뭐지?’
나는 슬쩍 비켜나며 이를 피하려 했다.
그런데 청년의 손이 교묘하게 이를 따라오며 붙잡으려 들었다.
워낙 뛰어난 금나수의 수법이라 손을 쓰지 않고는 막기 힘들어보였다.
결국 나는 손을 썼다.
-타타탁!
그자의 손과 얽히며 순식간에 두 세수 가량이 부딪쳤다.
손과 손이 부딪치자 청년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놀라기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청년의 공력은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었고, 오히려 나를 억누르려고 하고 있었다.
-파팍!
청년이 팔목을 잡으려던 것을 바꿔서 내 손바닥을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자신을 향해 강하게 잡아당겼다.
안되겠다 싶어서 나는 하단전의 공력을 십성까지 끌어올렸다.
그런데,
‘헛?’
-촤르르르르르!
발바닥이 바닥을 끌며 죽립의 청년이 나를 골목의 구석까지 몰아붙였다.
말도 안 되는 공력이었다.
드러난 얼굴만 봤을 때는 나와 동년배로 보였는데, 이런 공력을 지녔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당혹스러워하고 있는데 청년의 입에서 전혀 예상지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살아있었네?”
놀랍게도 그 목소리는,
‘백혜향!’
백련하와 더불어 혈교의 두 교주 후보 중 한 여인이었다.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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