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rb only the power of the wicked and become the strongest on Earth RAW novel - Chapter (208)
제208화. 그래 봤자 내 손바닥 위
신대륙이 지구에 생겨난 지 500여 년이 지났다.
그동안 수많은 헌터들이 자리를 잡았고, 그로 인해 혼란해지는 대륙 내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가장 강한 랭커들 일부가 모여서 회의를 진행했다.
그것이 ‘긴급 비상 회의’의 시작이었다.
이 회의에 참석하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메이저 클랜의 마스터들로 한정되었다.
개개인의 실력은 물론, 이끄는 집단 또한 손꼽히게 강해서 신대륙에 미치는 영향력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이들은 바빴다. 개인의 실력도 다듬어야 하고, 클랜 일도 신경 써야 하고, 신대륙에서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항상 정치 싸움을 벌여야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긴급 비상 회의’는, 정말 신대륙 내의 모두가 크게 영향을 받을 만한 중대한 사건이 있을 때만 열리게 되었다.
그 정도로 큰 사건은 신대륙 내에 그리 흔치 않다.
주요 간부의 살인? 메이저 클랜끼리의 대규모 클랜전? 40레벨이 넘어가는 던전 내에서 갑자기 출몰하는 몬스터들의 습격?
이런 건 마스터들에게 있어서 사건의 축에도 끼지 못한다. 다른 대륙이라면 국가가 뒤집힐 만한 대형 사건이지만, 여기는 그런 현상이 워낙 흔하디흔한 신대륙, 셀레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2주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3번의 ‘긴급 비상 회의’가 열린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신대륙 역사를 통틀어서 말이다.
* * *
“아, 아.”
대장이자, 이런 대규모 회의 때 브리핑을 전담하고 있는 이성춘이 마이크 테스트를 하기 시작했다.
단상에 서 있는 그의 눈앞에는 정말 이름만 들어도 입이 떡 벌어질 듯한 신대륙 최고의 랭커들만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회의 진행 경험이 많은 이성춘은 전혀 긴장하지 않은 모습으로 빠르게 모든 점검을 마쳤다.
“바쁘신 와중에….”
“잠깐.”
입을 열자마자 말을 끊는 목소리에 이성춘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용한길에게 돌아갔다.
‘…응?’
동시에 눈이 커졌다.
지난번 두 차례 연속으로 말을 끊은 주인공이라 이번에도 용한길일 것으로 알았는데, 다물고 있는 입이나 표정을 보니 전혀 아니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엔 누가 끊은 것인가?
그 장본인이, 이내 홀로 자리에서 일어서서 걸어 나왔다.
“…청장님?”
자신도 모르게 되묻는 이성춘의 눈이 더 커졌다. 설마 그레이엄일 줄은 상상조차 못 했던 것이었다.
이성춘의 근처까지 걸어온 그가 입을 열었다.
“이번 회의는 내가 진행하겠네. 자네는 옆에 앉아서 보조를 해주게.”
“아, 알겠습니다.”
얼떨결에 마이크를 뺏긴 이성춘은 어쩔 수 없이 옆에 놓인 간이 의자에 앉았다.
단상에 선 그레이엄이 모두를 바라보며 마이크에 대고 말을 시작했다.
“이번 회의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중대한 사안이니만큼, 제가 직접 회의를 진행하면서 질문도 직접 받도록 하겠습니다.”
이후 미리 이성춘이 준비한 대본을 바라보면서 술술 설명을 시작했다.
이번 회의 자체를 이성춘과 그레이엄, 둘이 준비했기 때문에 그레이엄 역시 대본을 사전에 숙지한 상태였다.
“일단 최근 들어 계속된 테러를 당하고 있는 4개의 항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그레이엄의 말 중간중간마다 이성춘이 알맞은 타이밍에 스크린 화면을 넘겼다.
“엘나콘, 네더보그, 린금보, 틸드린. 모두 신대륙을 대표하는 항구이자, 입국 관리소가 있는 도시였습니다.
신대륙으로 입국하려는 입주민들을 받아들이는 중요한 곳이니만큼, 팔라딘 및 각 메이저 클랜들의 지부가 있는 곳이기도 하죠.
하지만 현재, 이 네 곳의 항구는 모든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그레이엄이 스크린 화면에 떠오른 폐허 사진을 가리켰다.
“최근 일주일간의 끊임없는 테러로 인해 입국 관리소, 팔라딘 관청, 메이저 클랜 지부를 포함한 모든 주요 시설이 폭파되었습니다.
당연히 치안은 완전히 붕괴되었으며, 대놓고 밀입국을 시도하는 범죄자들이 엄청나게 늘어난 상황입니다.
자격 미달의 밀입국자들이 많아진 것은 항구 도시는 물론, 최근 수도인 셀레포 시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바로 스크린 화면이 넘어갔고, 여러 사진이 스크린 화면에 떠올랐다.
그레이엄은 사진을 하나씩 가리키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최근 일주일간 수도 외곽에서부터 B구역 내의 살인, 강도, 납치 등등의 강력 범죄 비율이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문제는 하급 레벨 던전 무단 침입 및 던전 내 강력 범죄가 굉장히 자주 발생했다는 점입니다.
개중에는 일부 메이저 클랜들이 신입 교육을 위해 독점권을 행사하던 곳도 있습니다.”
“음….”
그제야 심각한 표정을 짓는 마스터들의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들었던 내용은 그들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기 때문에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자신들의 던전까지 손해가 미친 건 다르다.
본인 휘하의 클랜과 관련된 사건은 그 누구보다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여기 앉아 있는 마스터들이다.
“아시다시피 신대륙에 끊임없이 인재가 수급되었던 가장 큰 요인은, 실력이 떨어지는 초보들도 쉽게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었던 초급 던전의 존재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팔라딘 및 메이저 클랜원들이 주요 던전 포탈을 항상 감시했었죠.
하지만 최근 계속되는 테러로 인해 팔라딘들이 필요한 곳이 많아지면서 미처 손 쓸 수 없는 초급 던전 포탈이 늘어났고, 그로 인해 이러한 결과가 초래되었습니다.”
“병력이 부족하다는 소리요?”
“맞소이다. 용 마스터.”
용한길의 물음에 그레이엄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팔라딘은 수도 내 테러 방지에 가장 많은 병력이 투입되었고, 치안이 박살 난 4개의 항구 도시가 그다음이요.
심지어 아직도 항구 도시 치안을 못 잡고 있어서 추가 병력 지원이 계속 쇄도하고 있소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급 레벨 던전 경비 병력까지 원활하게 교대 근무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소.”
“…흠.”
“여기 계신 메이저 클랜 마스터들에게 병력을 따로 차출해 달라는 부탁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현재 메이저 클랜 경비 쪽에 투입된 팔라딘들을 본사로 귀환시키는 데는 동의가 필요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당신네 파견 나간 병력을 모두 불러 모아도 한참 숫자가 모자랄 지경이외다.”
본론을 꺼낸 그레이엄이 모두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마스터들은 말없이 조용히 서로의 눈치를 보더니, 이내 한 명씩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클랜 내 병력 차출 부탁이 아니라면야, 팔라딘들은 충분히 돌려보낼 수 있지.”
“팔라딘들 대신 우리 애들을 좀 더 경비에 투입하면 되니까.”
“그 정도면 우리 클랜도 적극적으로 협조할 수 있습니다.”
다들 본인 소속 클랜원 차출이 없다는 데에 긍정적으로 판단한 듯했다.
다시 말하지만, 신대륙이나 팔라딘이 어떻게 되든 간에 본인 소유의 클랜이 손해를 본다면 그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들이다.
“그런데 정말 팔라딘들만으로 괜찮겠소?”
그때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알파 클랜의 마스터, 헤밍스턴이 질문했다.
“메이저 클랜 쪽 팔라딘 병력을 모두 수거해도 역부족인 상황이면, 당연히 우리에게 병력을 차출해달라는 제안을 하는 게 정상 아니오?
난 당연히 부탁할 줄 예상했는데 말이지.”
헤밍스턴의 말에 나머지 마스터들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병력 차출을 부탁한다고 해서 100% 다들 동의하는 건 아니었다. 어쩌면 평상시 이들의 성향상 다수결로 넘어가면 부결될 가능성이 더 컸다.
하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고, 현 상황이면 팔라딘 청장의 위치에서는 당연히 병력 차출을 부탁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것이 신대륙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청장으로서의 기본적인 마인드다.
“처음에는 부탁하려고 했소. 하지만 중간에 생각이 바뀌었소.”
그레이엄이 모두를 돌아보며 오히려 질문했다.
“하나 묻겠소. 우코바치를 포함한 반정부 테러 집단들이 왜 4개의 항구를 집중적으로 테러했겠소?”
“그야, 지금과 같은 혼란 상황을 만들기 위한 게 아니오? 밀입국자들 때문에 신대륙 전체가 혼란스러워졌잖소.”
트리운포의 마스터, 에스테반이 먼저 대답해 왔고, 일부 다른 마스터들이 그 의견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레이엄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맨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적들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소.”
“더 큰 그림?”
“내가 만약에 당신네 클랜원들을 모두 차출한다 치면, 어디로 병력을 보내겠소?”
“그야, 치안이 부족한 4대 항구로 모두 보내겠지.”
“그렇소. 차출한 팔라딘들까지 모두 보내야 하오. 그 정도는 해야 항구 쪽 치안을 잡을까 말까 한 상황이니까.”
그때 짝! 하고 상석의 헤밍스턴이 손뼉을 쳤다.
“그렇군. 메이저 클랜 병력과 팔라딘들이 외부로 빠져나가면, 자연스럽게 수도 쪽 치안 병력이 줄어들겠군.”
그의 말에 아! 하고 깨달은 듯이 외치는 마스터들의 모습.
그레이엄 역시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요. 적들은 지금, 4대 항구로 병력이 빠져나간 틈을 이용할 계획을 짜고 있을 것이 분명하오.
치안이 멀쩡한 당시에도 대놓고 김진성 홀로 셀세청을 붕괴시켰는데, 하물며 병력이 줄어든 상황이라면?
전력을 다한다면, 어쩌면 메이저 클랜 한 곳 이상을 괴멸시킬지도 모르는 일이요.”
“……!”
“음….”
그레이엄은 본인의 생각을 계속해서 털어놓았다.
“그래서 일부러 당신들에게 병력 차출을 요청하지 않은 것이요. 혹시 모를 수도 내 테러를 대비해서 말이오.
알고 있겠지만, 아직 우코바치 본대들은 움직이지 않았소. 4대 항구를 테러한 놈들은 우코바치가 아니라 다른 테러 집단들이라는 걸 명심하시오.”
그레이엄의 말에 일행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4대 항구 쪽 테러 성공률이 매우 높기는 하지만, 100%는 아니었다. 즉, 테러 실패 후 생포된 이들도 있다는 소리다.
하지만 잡힌 이들은 하나같이 모두 우코바치가 아닌, 잡다한 반정부집단 소속이었다.
가장 중요한 본체인 우코바치 멤버는 지금껏 단 한 명도 죽거나 잡히지 않은 상태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부탁할 게 하나 더 있소.”
그레이엄이 모두를 바라보며 제안을 했다.
“여러분 소속 클랜원의 일부를, 계엄령이 내려진 동안만 임시로 기동대로 사용하려 하오.”
모두의 눈이 살짝 커졌다.
기동대?
“말 그대로, 테러 등 비상사태가 터졌을 시 명령 한 번에 모일 수 있는 경비 병력을 꾸리고자 함이오.
만약 내가 원하는 대로 기동대가 편성된다면, 만일 여러분 중 한 곳의 클랜이 테러를 당하더라도 곧바로 연락 한 번에 ‘메이저 클랜 연합군’이 도와주러 출동할 수 있게 되지.”
“아하~.”
“흠….”
이해한 마스터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일 그때, 그레이엄의 말이 이어졌다.
“‘메이저 클랜 연합 기동대’만 만들어진다면, 테러 후 도주하는 우코바치 본대를 곧바로 추격하거나 포위해 섬멸하는 것도 가능하오.
개개인이라면 셀세청 때처럼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메이저 클랜 내 실력자들이 연합한 대군을 상대로는 아예 다른 이야기가 될 테니까.”
그레이엄은 이내 상석에 앉아 있는 헤밍스턴을 바라보았다.
사실상 최종 승인권을 가지고 있는 그를 향해 그레이엄은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마스터?”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