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153
아카데미 담당 일진 153화
스르릉-
둘은 동시에 검을 뽑아 들었다. 오리하르콘 특유의 흑색을 머금은 천마검과 만년한철 특유의 푸른 청운검의 검신이 묘하게 대치를 이루었다.
비무대를 둥글게 돌면서 서로를 마주 보던 둘은 동시에 비무대의 중앙으로 달려들었다.
카아아가각-
백일진의 천마검과 지대학의 청운검이 맞부딪힌 순간, 파지직- 불똥이 튀며 청운검의 이가 나갔다.
‘청운검이……?’
곧바로 몸을 빼낸 지대학은 작은 홈이 파인 자신의 청운검을 천천히 내려다보았다.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검신이 이렇게 쉽게 나가다니…….’
순간,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은 지대학은 백일진이 들고 있는 검으로 시선을 옮기고 나서야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리하르콘…….’
이명, 신이 내린 광물.
‘저건 또 어디서 난 거야?’
오리하르콘은 돈이 있다고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물론, 오리하르콘을 사용하는 사람을 아예 못 본 것은 아니다. 오리하르콘 검은 종종 경매장에 높은 가격에 나오곤 하니까.
그러나 저렇게 검신 전체를 통짜 오리하르콘으로 만든 검은 처음이었다.
‘역시 볼수록 재미있는 녀석이란 말이야.’
채앵-
백일진과 지대학은 또다시 서로를 탐색하며 검을 맞부딪혔다.
둘은 약속이나 한 듯, 내공을 일으키지 않고 순수한 검술만으로 합을 겨뤘다.
한 번, 두 번 합이 계속될수록 지대학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짙어졌다.
‘확실히 이 녀석은 천재야!’
관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들이 수군거렸다.
“아니, 지금 내공을 사용하는 거야? 안 하는 거야?”
“모르겠어, 근데 둘 다 움직임이 엄청난데?”
“그러게, 백일진이 생각 이상이야. 몇 초식 안에 끝날 거로 생각했는데…….”
“그래도 역시 지대학이 더 우세한 것 같지?”
천마검도 지대학의 움직임을 보고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생각 이상인데? 저 나이에 저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고? 백일진 녀석이야 말도 안 되는 녀석이라는 걸 알았지만, 저 녀석도 만만치 않군.
-그러게, 재능만큼은 수백 년 동안 보아왔던 후기지수 중에 손에 꼽는 것 같군.
-손도 없으면서 손에 꼽기는.
-관용적인 표현이다.
백일진도 천마검, 개벽환과 생각이 같았다. 검을 섞으면 섞을수록 지대학의 재능을 느낄 수 있었으니.
물론, 무공의 완숙도나 실력 면에서 관태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숙했지만, 지대학의 검법은 예측할 수 없는 개성이 있었다.
백일진은 허리를 당겨 뜬금없는 곳에서 허리를 노리고 휘둘러지는 지대학의 검을 피해낸 다음,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같은 실력이라면 그때 그 사람보다 지대학 선배가 더 까다로울 수도 있겠어.’
허공에서 백일진이 내려오는 타이밍에 맞춰 지대학이 재차 쇄도했다.
콰앙-
쾅!
콰아앙-
‘밀린다.’
백일진은 검을 부딪칠수록 자신이 밀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관태산과 대결을 펼칠 때처럼 일방적으로 압도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밀리는 것은 확실했다.
‘아직 순수한 실력으로는 지대학 선배한테도 못 미치는 건가.’
하지만 비무는 검술 실력만으로 승부가 갈리지 않는다.
비무대를 박차고 거리를 벌린 백일진은 검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순간, 천마검이 진동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푸른색 연기 같은 기운을 내뿜었다.
“검기다!”
“저 나이에 벌써 검기를 사용한다고?”
“비그리도 이겼는데 검기 정도에 놀라고 그래.”
검기를 두른 백일진은 곧바로 달려들었고, 지대학도 마찬가지로 검기를 내뿜어 검을 마주쳐 왔다.
“좋아, 이 정도는 돼야지. 실망할 뻔했잖아.”
“…….”
서로 공방을 주고받는 사이, 지대학은 순간적으로 검을 뒤로 당겨 백일진의 자세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그 틈을 타, 무릎으로 백일진의 명치를 가격했다.
“커억-”
예상치 못한 공격에 백일진은 순간적으로 숨이 막혀왔다.
지대학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차 무릎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짧은 순간, 빠른 판단을 한 백일진은 지대학의 무릎을 막아내었다.
‘허어- 이걸 막아?’
지대학의 움직임에 역동작이 걸리자, 백일진은 빠르게 왼발을 들어 지대학의 오른쪽 옆구리를 가격했다.
“크윽-”
서로 한 대씩 주고받은 상황, 이후로도 그들은 수십 합 동안 검을 주고받았다.
“……후우, 후우.”
“……하아, 하아.”
검기만으로는 답이 없다 싶었던 그들은 거의 동시에 검을 들고 기운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검신을 아스라이 휘감은 검기가 점점 얽히고설키더니 조금 더 진하게, 조금 더 굵게 변해갔다.
관객들은 검기가 점점 진해질수록 턱을 벌리며 경악에 찬 소리를 내질렀다.
“거, 검강? 검강이야?”
“내가 뭐랬어, 돈이 안 아깝다고 했지?”
“지대학은 그렇다 치고 저 백일진이라는 애는 아직 1학년 아니야?”
서로 비장의 수를 꺼내 든 그들은 각자 위치에서 숨을 골랐다.
“역시, 백일진 넌 괴물 같은 녀석이야.”
“선배가 할 말은 아닌데요.”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그들은 서로를 단칼에 끝낼 생각인지 방어를 포기한 채 공격만을 하기 시작했다.
닿지 않았음에도 생채기가 생겨났고, 스치기만 했는데도 살점이 터져 나갔다.
“좋아, 너무 좋아!”
“…….”
백일진은 유능제강의 묘리를 담은 초식을 펼치며 지대학의 복부를 노렸고, 지대학은 기기묘묘의 묘리를 담은 초식을 펼치며 맞받아쳤다.
콰앙-
한참 동안 계속해서 검을 겨루던 그들은 마치 약속한 듯, 서로가 익히고 있는 가장 강한 무공을 펼쳤다.
백일진은 옥청혜검(玉淸慧劍)을, 지대학은 적운청하검(赤雲靑河劍)을.
거의 동시에 각자의 검을 통해 발현된 두 개의 상승무공은 이내 상대를 잡아먹기 위해 서로의 무공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툭툭-
처음엔 작은 소리였다.
하지만 검을 부딪칠수록 굉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리가 커지더니, 마침내는 엄청난 빛무리를 일으키며 폭약이라도 터지는 듯한 폭음을 일으켰다.
꽈아아앙-
환한 빛이 터지며 관객들은 순간 시야를 빼앗겼다.
“윽- 내 눈!”
“아, 앞이 안 보여!”
그러기를 2~3분쯤 지났을까.
순간 시야를 뺏긴 관객들의 눈에 다시 초점이 돌아왔을 때, 지대학과 백일진은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누워 있었다.
“와- 안 보이는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누구 본 사람 없어?!”
“그나저나 여기서 먼저 일어난 사람이 이기는 건가?”
“누가 먼저 일어날 것 같아?”
“나는 지대학!”
“너도? 나도.”
하지만, 모두의 생각과 달리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은 지대학이 아닌 백일진이었다.
몸을 꿈틀대던 백일진은 이내, 자신의 무릎을 지지대 삼아 상체를 일으켰다.
“쿨럭.”
백일진의 기침에서 검붉은 피가 섞여 나오자, 천마검과 개벽환은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상태를 물었다.
-괜찮나?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던데? 일어나도 되나?
‘괜찮다. 이번에는 라이비온 영지에서 싸웠을 때처럼 무리하진 않았으니까.’
-다행이군, 하긴 굳이 전력을 낼 필요는 없었지. 금방 낫겠군.
-그래도 당분간은 내공을 사용하지 말고 쉬어라.
천마검과 개벽환의 목소리 차이는 확연했다.
천마검은 백일진의 말도 안 되는 회복력을 알고 있었기에 걱정이 덜했지만, 개벽환은 아직 백일진에 대해 자세히 모르기에 걱정이 앞선 것.
부스에서 장내 해설을 하던 베르만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마이크를 들고 허둥지둥 심판대 위에서 내려왔다.
-이게 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언더독의 반란입니다!
잠시간 정적이 흘렀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좌중이 얼어붙었던 것.
-비무를 시작한 지 22분 30초, 백일진 선수의 승리로 마감합니다!
베르만은 인터뷰를 하기 위해 백일진에게로 다가갔다.
하지만 인터뷰를 할 생각이 없었던 백일진은 가볍게 고개를 내젓고는 관객석 앞으로 자리를 이동해 포권을 취했다.
그러고는 곧장 몸을 돌려 미소를 지은 상태로 쓰러져 있는 지대학을 둘러업었다.
-지대학인가 얜 무슨 변태도 아니고 웃은 채로 기절했어.
관객들은 그때까지도 정적을 유지했다.
“…….”
“…….”
하지만 이내 우레와 같은 엄청난 환호성이 장내를 뒤덮었다.
우와아아아아아-
그날, 백일진은 새로운 별이라는 의미를 담은 신성룡(新星龍)이라는 별호를 얻게 되었다.
* * *
같은 시각 단계홍의 연구실.
똑똑-
“교수님, 저 설하윤입니다.”
“들어오거라.”
단계홍은 들어온 설하윤을 접객용 소파로 안내했다.
“흠…….”
“할 얘기가 있으시다고…….”
“그래, 긴히 할 얘기가 있어서 말이다.”
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그녀는 불안감이 섞인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 할 얘기라는 게 뭔가요?”
“조금 전에 전서가 도착했는데…….”
“네? 전서요?”
단계홍은 품 안에서 웬 서찰을 꺼내 들었다. 서찰 위에 찍힌 도장은 그녀도 잘 알고 있는 문양이었다.
“그 도장은…….”
“그래, 북해에서 온 전서다.”
마음이 급해진 그녀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뭐라고 온 거죠?!”
“빙궁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
단계홍의 말을 들은 설하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
단계홍은 낮은 목소리로 재차 말했다.
“빙궁이 공격을 당했다는 전서를 받았다.”
“네? 빙궁이 공격을 당한다고요? 도대체 왜…….”
빙궁은 척박한 북해에 자리 잡고 있기에 돈도 없고 자원도 없다.
도대체 빙궁을 공격해서 얻을 이익이 뭐가 있단 말인가.
단계홍도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했기에 침묵을 지킨 채, 착잡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린 설하윤이 소파에 주저앉았다.
최대한 감정을 버리려 노력했거늘 빙궁이 침략당했다는 소리를 들으니 감정이 요동쳤다.
“혹시 빙궁을 공격한 이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요?”
설하윤이 애처로운 목소리로 물었지만 알지도 못하는 것을 알려줄 수는 없는 노릇, 단계홍은 나지막이 고개를 내저었다.
“여기 네가 서찰을 읽어보거라.”
서찰을 받아 든 설하윤은 빠른 속도로 글을 읽어 내려갔다.
‘사부님의 필체가 맞아……!’
급하게 쓴 듯, 휘갈겨진 글씨였지만 자신에게 글자를 가르쳐 준 사부님의 필체를 못 알아볼 수는 없었다.
“교수님, 그럼 혹시 전서가 교수님께 언제 도착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내가 전서를 보고 나서 너한테 바로 연락을 취한 것이니, 얼마 되지 않았을 거다.”
그녀가 알기로 빙궁이 있는 북해에서 장안시티에 전서가 도착하는 시간은 빨라도 이틀.
그 말은 곧 이미 침략을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교수님, 실례가 되는 말씀인데 지금 바로 고향에 올라가 봐도 되겠습니까?”
“그래, 빨리 올라가도록 하거라. 학점은 내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그녀는 급한 마음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최대한 빨리……. 워프게이트를 타고서라도 가야 해.’
다행히 평소 돈을 잘 사용하지 않았기에 입학 당시 받았던 장학금이 남아 있었다.
만약 빙궁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다면…….
‘아니야, 안 좋은 생각은 하지 말자.’
주먹을 꼭 쥔 설하윤이 고개를 숙였다.
“그럼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잠깐, 이것을 들고 가거라.”
단계홍이 내민 물건을 본 설하윤은 차마 그것을 받아 들지 못하고 고개를 들었다.
“수정구슬은…….”
“괜찮다. 가져가거라. 그리고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곧바로 나에게 연락하거라. 그때는 교수가 아닌 스승의 마음으로 달려가도록 할 테니.”
“……정말 감사합니다.”
단계홍의 연구실에서 나온 그녀는 서둘러 아카데미의 교정을 향해 걸었다.
건물을 나오니 어디선가 엄청난 환호성이 들려왔다.
‘맞다, 일진이 비무하는 날이 오늘이지…….’
지대학 선배와 비무를 한다더랬다. 마음을 접기로 했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티켓을 구매했었다.
난생처음이었다.
이렇게 과한 소비를 해본 것도, 누군가의 멋진 모습을 두 눈에 직접 담고 싶었던 것도.
그래서 어젯밤까지 비무를 보러 갈지 말지 수많은 고민을 했다.
‘이젠 의미도 없지만.’
문득, 백일진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무공이 강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사실, 이유 같은 건 없었다.
그냥 그를 보면 의지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기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 그것이 호감이고 더 나아가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녀는 애써 마음속 깊은 곳,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곳에 그 감정들을 묻었다.
‘설하윤. 나약해지지 마. 혼자 헤쳐 나가야 해.’
나약한 마음도.
주머니 속 구겨진 티켓도.
전부 버려야 한다.
‘난 빙궁의 소궁주니까.’
환호성이 점점 멀어져 간다.
열여덟 살 소녀의 모습을 한 빙궁의 소궁주는 지금 빙궁을 지키기 위해 가고 있었다.